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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머니” 요 2:1-11
오늘은 어머니 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생각해온 마태복음은 오늘 잠깐 쉬고, 어머니 주일에 맞는 본문을 택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오늘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흔히 “예수님의 첫 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The Public Life)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행한 이적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라는 표현에는 어떤 강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첫 사랑은 잊지 못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일의 처음 경험은 잘 잊혀지지 않는 강한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첫 이적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이러한 첫 번째 이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아직은 내 때가 아니라”고 이 일에 나서려고 하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은근하게 밀어붙이는 모습 때문에 오늘 본문의 귀한 일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예수님의 첫 이적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노고가 크게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1. 로마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의 기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숭배하는 성경적인 근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흔히 “성모 마리아”라고 표현하면서 신앙의 한 대상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로마 천주교회에 가면, 성모 마리아 상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왜 당신들은 마리아를 섬기십니까?” 하고 질문하면, “마리아는 우리의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 거기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오늘 본문을 제시합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요청을 결국 들어주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우리들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간구하면, 이 간구를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바르게 잘 전달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마리아를 성모로서 숭배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것은 약 4세기경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6세기경에 로마 카톨릭을 배경으로 한 로마 군대가 어떤 이방 민족을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무력으로 정복하고자 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무력 정복과 동시에 선교적인 차원에서 정복하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복하고자 한 그 이방 민족은 여신, 특히 어머니 신을 섬기는 민족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포교를 하면서 우리 기독교도 어머니를 숭상한다는 사실을 소개하기 위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내세우게 된 것이라고 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즉, 이방 민족의 어머니 신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로 대체하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2. 이에 대한 개신교회(The Protestant Church)의 입장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우리 개신교에서는 로마 천주교처럼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한 훌륭한 신앙인으로서 존경하고 배울 점을 찾고자 하지만, 신앙이나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 점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로마 천주교와 우리 개신교의 차이점인 것입니다.
2. 마리아와 예수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은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마리아에게서 배울 수 있는 신앙인의 모습, 특히 어머니와 연관된 의미에서 귀한 모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부모 된 우리 모두가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배운다면, 우리 역시도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귀한 도구들이 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부모들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두 곳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3절입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그리고 5절입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우리는 이렇게 두 곳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모습이 바로 오늘의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귀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두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의 모습을 살피도록 하십시다.
2-1. 본문에 나타난 예수의 어머니의 모습 - 결혼식 집의 어려운 사정에 동참함.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머니의 첫 번째 역할은 결혼식을 치르는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예수님께 고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확대해서 적용해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먼저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 혼인잔치 집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는 그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은 당연하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그리 쉽지마는 않은 모습입니다. 사실 남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서는 겉으로는 “참으로 안 됐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안 그런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쌤통이다”, “그거 참 고소하다”고 여길지도 모를 것입니다. 특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별로 친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게 경쟁상대로 여기는 사람일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될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남의 어려움을 감상하고자 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없는지요?
우리 사람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어딘가에서 부족한 점이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혼인집 주인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혼인을 치르는 집인 만큼 결혼준비에 얼마나 만전을 기했겠습니까?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손님이 예상외로 많이 왔나 봅니다. 그래서 가득 준비했던 포도주가 동이 났습니다. 이 혼인집은 나중에 하인들이 나오는 것과, 두, 세통 드는 물 항아리가 6개씩이나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넉넉한 집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가 모자라는 난처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모든 수고와 준비에도 어려운 일이 생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러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의 깊은 이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자세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어야만 하나님을 향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어서, 남들이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형편에서 상대방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게 주인들은 종업원들이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또 종업원들은 주인들이 자기 이익만 채우려고 한다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서로 오해한다면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주인의 입장에 있든, 종업원의 입장에 있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어려운 형편에서 그 집의 입장을 이해하였습니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포도주가 모자랐을 것이라고 이해했기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2-2. 본문에 나타난 예수의 어머니의 모습 -문제 해결의 바른 대상을 찾음
마리아의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른 대상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아들 예수에게 의논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구나”하고 아들 예수에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처신은 단순히 예수님께 말했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모습입니다. 즉,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 다음 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즉각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응답에 대해 “독일성서공회”에서 발간된 해설서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물음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여, 나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자여!’ 라는 호칭은 그 어머니께 냉혹한 말로 들렸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히브리적 어법도 역시 그에게 냉혹하게 들렸을 것이다. 이 어법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그 요구 자체의 한계성을 지적하거나 혹은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통고하는 표현방식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러한 강한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마리아에게는 이 가정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해결의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예수에 대한 강한 기대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에게 이러한 사정을 말했던 것 역시, 그저 말할 사람이 없어서 예수에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어떤 의지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줍니다. 이렇게 어머니 마리아는 이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을 위한 대상자로 예수를 택한 것입니다. 이 점이 마리아의 또 하나의 귀한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떤 점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는 일종의 돈 문제입니다. 돈만 있으면 당장 어디 가서 사다가 채울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돈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 혹은 “어떤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 있다”라고 여기고 그리로 향하고자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기도를 하겠지요. 하나님께 구하기도 하고, 또 해결을 위한 합당한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하나의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일을 추진한 사실을 본다면 그저 형식적으로 예수에게 말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2-3. 본문에 나타난 예수의 어머니의 모습 - 하인들에게 명함
마리아는 예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에게 명하였습니다. “이 예수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명령에 결국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을 거절하던 예수님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하인들에게 명하여,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이르고는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그 물은 포도주로 변하게 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마리아로 하여금 이렇게 하인들에게 “이 예수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12살 되던 때에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절기를 지키러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절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일행 중에 함께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나중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성전에서 성전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수님을 발견해서 찾았던 일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이렇게 야단치듯 말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예수에 대해 깊이 있는 관찰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눅 2:51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왜 예수에게 혼인집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했으며,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에게 “이 예수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할 수 있었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관찰이 지속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모습과 행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매일 매일의 삶에서 터득되어온 신앙의 결실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3. 결론 - 마리아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
이러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활동은 그 자리에 귀한 모습들을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그 혼인집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혼인집에 큰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님으로 온 사람들에게 귀한 칭찬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11절,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리고 세 번째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때가 임한 사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자기 발견이 이루어지게 되는 귀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이러한 것들은 그저 포도주만 있다고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즉, 이러한 것들은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대 교부 시프리안(Cyprian)은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상이 예수님의 어머니의 모습과 활동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부모 된 우리들도 이러한 마리아와 같은 모습과 행동으로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침으로 칭찬받는 자녀들이 되게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머니날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뜻이 계셔서 그를 통해 독생자를 낳게 하시고, 그의 손에 길리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부모 된 자로서, 이렇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신앙과 자세를 본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하시고, 이웃에게 유익을 가져다주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됨으로 진정한 삶과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노강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