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2
너는 나를 따를라 (요21:17-23)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
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
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
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
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
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요한복음 21 : 17-23
이 땅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따르기를 원하고 자기 편이 되어 주기를 원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싸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기 편이 많은 줄 알았는데 선거를 하고 개표
를 해보면 예상 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밝은 시대가
되어서 누가 따르라고 하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요즈음은 자
기를 따르라고 하기도 어렵고, 또한 자원해서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그만큼 짐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인간에게 누구를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자기의 일생을 두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따를 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초월하지 못하는 유한적인 존재로 완
전하고 영원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따를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
스도만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죄
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4 : 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
시니라"고 했고, 요한일서 3 : 5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
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
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기가 약속하신 것은 꼭 이루시는 분
입니다. 그분은 거짓이 없으신 진리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입
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두 번씩이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에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
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고 했고, 22절에 "예수께서 가
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감히 베드로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
을 가지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주를 따르자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베드로와 그 형제들을 찾
아가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들은 생업
과 가정을 버려 두고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이 가정과 생업보다도 더 중요하
고 가치 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예수님에게서 멀리 도망하여 다시 고기잡이를 하고 있습니
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자 그들은 각기 제 곳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
수를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부인했고, 그 후에 예루살렘을 떠나 멀리 도망쳐 버렸습니
다. 이러한 제자들, 디베랴 바다까지 도망하여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
님께서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이런 제자들처럼 요즈음 교인들 가운데에도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한다든지 어떤 특별한 일
을 추진한다든지 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희
생이 요구되면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부담이
나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맞지 않거나 부담스러우면 교
회를 옮겨 다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열심히 고백을 합니다. 주
님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도 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이 돼야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면
따르지 않습니다. 오랫 동안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를 했는데 하나님
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 것 같으면 교회를 그만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
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이 있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따릅니다. 그러나
자기 것을 희생하고 손해를 보면서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인가 자기에게 도움이 되
기에 따른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줄은 생각
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유익을 생각하고 따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나 역
사를 보면 자기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는 예수께서 왕
이 되어 권력을 잡게 되면 주요 관직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다 도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따르되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마태복음 24 : 13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 : 12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
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믿음을 지키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혹 아내 때문에 아내에 이끌려서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내를 의지하지 말고 예
수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에 이끌려서 억지로 예수를 믿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스스
로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를 의지하기 바랍니다. 사람을 보고 예수를 따르다가는 실망하게
됩니다. 비판하게 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에게 이끌려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예수를 따랐기에
지금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했으면 전도한 그 사람을 내가 끌고 다니지 말고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고 따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합니다. 입장을 해서 그 손을 신랑에게 넘겨 줍니다. 이것은
딸을 신랑에게 맡기고 위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끝내고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다시 데리고 간다면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
도를 끝까지 따릅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버리고 뿔뿔히 흩어진다 하더라고 우리는 예
수를 끝까지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2. 주를 따르려면 주를 사랑해야 한다
돈을 보고 결혼한 사람은 돈이 없을 때에는 돈이 있는 다른 사람을 따라갑니다. 이것은 사
람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사람의 인격이나 사랑을 보고 해야 합
니다. 그래야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내하고 참게 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힘들고 괴로워
도 끝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도망한 제자들을 찾아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확
인하신 일이 있습니다. 15절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고 묻고 있습니다. 16절에서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똑같은
질문을 두 번째 물으셨습니다. 또 17절을 보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
냐?"고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으셨습니다. 그때마다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를 따르려면 주를 사랑해야 합
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따를 수 없습니다.
로마서 8 : 35에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39절에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
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
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주가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는 언제나 주 안에 있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도 우리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끝까지 주를 따를 수 있습니까?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따를 수 있습니
다. 사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이깁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이 사
랑이 필요하기에 주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것은 유익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달아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했으나 제자들은 사랑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두려워했고,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
지 주를 버리고 달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2 :27을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
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입니다. 나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내가 주 안
에 있고 주가 내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요 주가 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
구도 주를 따를 수 없으나 주님과 내가 하나인 사람은 주를 따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한 몸을 이루었기에 그가 주님을 위해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
도 한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고통과 영광을 언제나 함께 했던 것입니다. 이와같
이 그리스도와 내가 연합된 사람이 오직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3. 주를 따르려면 죽어야 한다.
마태복음 16 : 24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
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
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한다는 말이요 자기를 죽인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는 예수
를 따를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죽여야 주를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시고 30년 동안을 나사렛에서 죽어 지내셨습니다. 드러내거나 나타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잠잠히 지내셨습니다. 예수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지내셨습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훼방할 때에도 그때마다 죽어 지내셨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가
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어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뛰어들어가면 둘 다 죽
습니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 하더라도 허우적 거릴 때는 끌어내지 못하고 같이 물 속에 들
어가고 맙니다. 오직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물 속에 들어가서 잡아당기기 전에 먼
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 후에 끌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둘 다 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주를 따르지 못합니까? 우리가 살아 있기에 주를 따를 수 없는 것입니
다. 우리가 죽어야만이 주를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주를 따를 수 있는데 우리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죽여서라도 주를 따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5 : 5에 보면 "육
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육을 때려서
라도 영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2 : 5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
는 채찍과 징계를 통해서라도 끌어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를 따르다가 잠시 주를 떠나서 우리의 몸이 병들고, 사업이 망하고,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인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어려움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
들고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면 하나님
은 모든 것을 회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식구들이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내려갔을 때 그들은 대우받고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굽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로라는 강팍한 왕을 통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했습니다. 전보다
도 더 힘든 일을 하게 하고 온갖 고통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견디지 못해서 이제는 떠나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들
은 결국 애굽에서 해방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고난당할 때가 오히려 축복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베드로가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를 말
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젊어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이제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주를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주를 따르지 못합니까? 그것은 아직도 내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를 따르고 싶
으면 따르고 따르기 싫으면 도망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를
따르려면 오직 죽어야만 끝까지 주를 따를 수 있습니다.
4. 영원히 주를 따르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려면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다시 살아야 주님을 따를 수 잇습니다.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영적인 부활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부활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영원히 주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 : 42에 보면, 십자가 위에서 한 강도가 회개를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강
도는 예수를 영원히 따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세리장 삭개오가 회개하고 주님
을 영접한 내용이 있습니다. 주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
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영원히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를 만나서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
이 예수가 메시야인 것을 알고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
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 : 28, 29)고 하면
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왔습니다(4 : 30). 이 사
마리아 사람들이 여인의 간증을 듣고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된 것은 41, 42절 말씀에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
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인을 보고 예수를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을 듣고 그분이 구주가 되시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람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
이 나의 구세주요 주인이심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모두 부인하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를 따르되 끝까지 주를 따릅시다. 우리가 주를 따를 때 어려운 일이
생기고 고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요 주인이심을 알고 끝까지 주를 따르
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믿음이 약해서 도망한
베드로같이 되지 말고 끝까지 주를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이번 한 주간도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