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6
사랑의 표현인 맥추 감사 (출 34:21,22)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 하세요.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다합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인터넷정보클럽-감사의 철학)
하나님께서 세 절기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출 23:14-17)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무교병의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절기는 맥추절입니다.
레 23:15-22 에는 맥추절에 대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출 23:16), 초실절(출 34:22),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유월절 이후에 50번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고 칠칠절입니다.
맥추절은 말의 의미에서 이미 나왔듯이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이나 추수감사주일 모두 농사의 달력에 맞추어서 지키는 것입니다. 많은 수확이 있은 뒤에, 그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리는 감사 절기가 바로 맥추절과 추수절입니다.
추수감사절보다는 보다 더 성경적 의미가 강한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무교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는 것은 즐거움을 제하고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누룩 있는 떡을 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먹습니다. 그런데 원래 즐거움의 상징은 누룩 있는 떡입니다. 그래서 이 맥추절 자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소산을 즐기며 사랑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감사하는 때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을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고 함께 즐긴다는 개념으로 나와 있습니다. 함께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오히려 남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가 맥추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에 감사하며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감사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합니다.
맥추절은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의 절기입니다. 처음 거둔 보리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초실절이(출34:22)라고도 합니다. 밭에서 거둬들인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출 34:26)너의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며
(출 22:29)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
(잠 3:9-10)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은 처음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여리고성 사건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만난 첫 장벽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첫 장벽을 정복하고 나서 얻어지는 모든 전리품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첫 장벽을 이기게 하셔서 그 성을 주신 하나님이 그 첫 수확을 거룩하게 구별하였을 뿐 아니라 바치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수 6:15-19)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취한 다음 그 모든 전리품은 하나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들은 그 처음 소득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이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바치라 명하신 것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가지지 않았고 다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 아간은 재물에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는 바치지 않았고 전리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이일로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고 아간의 범죄의 결과임을 알게 되고 아간은 아골 골짜기에서 백성들의 돌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고 가만 계시지 않으셨고 징계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첫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하루 생활의 첫 시간에 자신의 계획보다 앞선 하나님을 생각하는 첫 열매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교육의 첫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사회를 위한 개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배움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배움을 통한 첫 열매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첫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만이 첫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의 노동에 따른 소득 역시 처음수입은 첫 열매로써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 하는 맥추 감사.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입각하여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나타나 있습니다.
(레 19:9,10)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신 24:19-2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용된 사람들은 가난한 과부와 고아들과 타국인들이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양식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의 괴로움은 심히도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레 19:33, 3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을 위해서도 양식을 준비하시고 자신의 섭리에 따라 보호해 주며, 타국인들에게 친절과 구호를 베푼 자들에게는 반드시 보상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사랑에 근거해서 주어졌음을 암시해 줍니다.(마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롬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합니다.
추수와 수확의 절기인 맥추절 뒤에 언급된 가난한 이웃을 위한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두게 된 수확의 기쁨을 홀로 독차지하지 말고, 이웃의 소외된 자들과 더불어 나누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 절기들을 명하시는 중에서도, 혹시라도 그 절기의 뒷전에서 방황하는 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세미한 부분까지 각별히 지시하신 것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은 절기 때 바쳐지는 각종 에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절기 준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한 이웃과 사랑의 친목을 나누는 바로 그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을 수 있는 사랑을 베풀다 기업 무를 자가 되어지고 룻을 아내로 맞아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게 되었습니다.
룻기서를 마무리하면서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1,2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 1:5,6)고 합니다.
사랑하사 구원하신 은총에 보답하는 맥추 감사
(레 23:22)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십니다.하시고 FP 19:10에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 특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라” 하는 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너희 선조들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내 이름을 여호와로 알리지 아니하였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시작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시작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출애굽 때에 하나님이 “나는 여호와로다”하십니다. 그 뒤로 출애굽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행한 뒤에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정한 명령을 하실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로다” 라는 말을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뒤에 계속해서 “나는 여호와로다” 하면 구원하신 하나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사건에서 “나는 여호와로다”하신 뒤에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특정한 일, 특히 구원의 일을 하시면서 계속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의미를 담아갑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하실 때는 내가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다 하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이 바로 구원하신 여호와이십니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은총으로 함께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감사절을 지키며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청주에 사는 권용수씨란 사람은 원래 소아마비로 두 발을 못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초등학교 졸업 후에 집안이 어려워서 양복점에 취직을 했습니다. 양복점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만 일을 하다보니까 다음에는 목발로도 짚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두 발이 약해져서 완전히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든 아버지와 착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이 있는 어려운 집안의 장남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삶을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재활원에 있으면서 전자제품 조립공장에 다녔습니다. 조립공장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면서 집안을 살리고 자기는 계속 공부를 해서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했습니다.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한 뒤에 시계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경북 예천에 돌아가서 요한당이라는 시계방을 차렸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하나하나 충북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예천과 충북대가 있는 청주에 두 집 살림을 할 수 없어서 아예 청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변두리에 요한당이라는 시계점을 차리고 또 근처에 사글세방을 얻어서 온 식구가 거기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사는 동안에 지금의 아내도 만났습니다. 그 아내도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쯤 되면 바로 이 권용수씨라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죠? 모든 게 다 요한이에요. 그러면서 점점 그 사업이 번창해서 두 동생을 분가를 시키고 부모님에게는 원래 고향인 농촌에서 사실 수 있도록 전답도 사드리고, 자기 자신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4천만 원을 들여서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지금 현재 그는 30여명의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이분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보통의 사람이면 처음부터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면 그 찌든 삶 때문에 삶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 비록 소아마비의 삶이었고, 가난에 찌든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삶이었고, 어린 두 동생을 계속해서 돌볼 수밖에 없는 삶, 아내를 만났어도 아내도 장애인인 그런 삶이었지만, 그의 삶이 힘을 낼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인생을 극복하고 승리하고, 마침내 번성할 수 있는 축복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죄의 종이던 우리들을 의의 종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나사로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헌데를 앓으며 개들을 쫓을 힘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 있으면 천국의 기쁨을 누릴 줄 믿습니다.
나 하나뿐 아니라 우리의 온 가족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기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고전 15: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죽음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세상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자신을 이기게 하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셨고, 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은혜를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양식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직업을 주시고, 심지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요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사랑 하시고 첫 열매를 주심에 감사하고, 어려운 가운데 이웃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음을 기억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감사하고, 특히 구원하여 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맥추감사 주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