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6
이렇게 감사하십시오. (출 23:14-17)
할렐루야!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 월요일에는 노인복지 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은 도전을 받았고 화요일에 북한 온정리로 출발해서 2박3일동안 남북평화통일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원전도사님도 선교사 현지 적응훈련을 은혜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이번주에는 집중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고를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하겠습니다.
북한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가 보고 싶은 곳이면서도 감추어진 곳, 북한은 육로로 북한을 밟을 수 있도록 길이 열렸고, 우리는 버스로 출발을 했습니다. 금강산 콘도에서 버스로 천천히 달리는데도 남방한계선을 지나 북방한계선을 지나는 동안 2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단농장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훤히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 같습니다. 새까맣게 탄 얼굴, 누렇다 못해 황토색을 띤 넌링셔츠를 입고, 뒤도 돌아 보지도 않습니다. 일할 의욕을 잃은 사람들 처럼 먼산을 바라봅니다. 여행하는 차량들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온정리에는 온정리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는 온정리교회를 복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현대건설측과 협의 중에 있습니다. 온정리교회는 1920년 7월 윤성렬 목사가 당시 김춘학 성도의 가정에서 몇몇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세워진 감리교회입니다.
지금 그 온정리에는 금강산관광지가 되었고 거기에는 온천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틀 저녁을 평화통일 기도회로 가졌습니다. 북한의 동포들이 함께 참여하는 통일기도회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남측 사람들만 모인 가운데 감동에 젖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 사모합창단의 평화콘서트가 있었습니다. 평화를 열망하는 노래가 힘있게 울려퍼졌습니다. 모든 합창이 끝나고 우리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 . ”을 불렀습니다. 북측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자리에서 . .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까?
군데군데 김일성 얼굴이 막힌 뺏지를 단 ‘접대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시원들이죠. 가는곳 마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붉고 힘이 담긴 큰 글씨들을 봅니다. ‘김일성’ 뒤에는 ‘수령’을 꼭 붙여야 하고, ‘김정일’ 뒤에는 ‘국방위원장’을 꼭 붙여야 하고 ‘김정숙’ 뒤에는 꼭 ‘여사’를 붙여야 하는데 안붙이면 문제가 되어서 왜, 안붙는지 반성문을 써야 하고 문제를 해결할려면 아주 복잡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읽지도 못합니다.
제가 어떤 접대원에게 사탕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는 사탕 참 싫어합니다.’ 라고 . .
‘오늘 저녁, 평화콘서트가 있습니다. 오십시오.’ 했더니 ‘콘서트’가 뭡네까?‘ ’아, 예 연주회입니다.’ ‘통일이 꼭 될 겁니다.’ ‘그렇게 쉽게 될까요?’
어떤 분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접대원에게 ‘참 이쁘십니다.’ ‘이쁘지 않아도 괜찬습네다.’ 어떤 분이 ‘월급은 얼마나 받습니까?’ ‘먹을 만큼 받습네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다 그렇게 . .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주체사상’이 문제입니다. 어떤 곳을 지나는데 ‘우리는 우리방식으로 산다’라는 붉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참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북한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길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이렇게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억세게도 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북한에 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주체사상에 물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 . .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감사절이 돌아오면 부담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특별히 감사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박이 터지는 물질을 소유하게 되었거나, 뭐 죽다가 살아나는 대단한 기적을 체험했다든지, 아니면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했다든지. . . . 그래야 감사 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잘 못된 것입니다. 대박이 터지면 그 사람은 타락하기 쉽고, 기적을 체험하면 언제나 기적만을 바라보는 자가 되기 쉬우며, 갑자기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하면 그는 한 영혼을 위한 고통과 사랑의 기도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잘 자라주는 아이들, 생존해 계신 부모님,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가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교회와 좋은 성도들, 좋은 교역자들이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신16:12에는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하던 때를 기억하고 잊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 현재에 받은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것을 두려워하십니다.
신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 .”
1. 맥추절 절기는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대한 저울이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을 해서 자기 방식대로 합니다. 맥추감사도 형식적으로 흉내만 낼려고 합니다.
요즘 맥추감사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 . 라고 생각합니다. 이 절기는 현실성이 없는 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특별히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하는 중에 해방됨을 기념하는 유월절.
*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초실절이라고도 하는 맥추절.
*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수장절 즉 추수감사절.
맥추절은 유월절을 지내고 7주 곧 49일을 지낸 다음날로 처음 익은 곡식과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초실절)
1) 이 절기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맥추절은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로 십계명의 말씀을 주신 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 도착을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것에 대한 명령,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복된 날입니다.
3) 또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한 날입니다. 이날은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인 오순절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와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분부 하신대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날입니다. 이 날 초대교회가 탄생되는 복된 날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날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교육적이고 훈련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실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알아도 훈련 속에서 생활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지난 전반기동안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찾아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간순간마다 찾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전쟁 뒤에 얻은 평화는 참 감사할 것이지만, 전쟁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은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질병 뒤에 얻은 건강은 참 감사할 것이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다면 더욱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고 뒤에 수습 된 것은 참 감사해야 하지만, 사고 없이 무사했으면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2.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성숙한 성도입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복입니다. 수준 높은 사람입니다. 어떤 글에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병은 감사 결핍증이라고 하는 지적을 보았습니다. 한국인들은 대개 가게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설 때 가게 주인은 '감사합니다.' 대신에 '또 오십시요'라는 이기적인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고맙습니다' 대신에 '신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50개중에 28%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옷 한 가지, 신문 한 장을 살 때도 땡큐라고 합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라고 하는 신학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 것,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은 저주입니다.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가 있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가 없는 이유는 건방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감사하지 못합니까? 교만한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늘 불평하게 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감사생활을 통해서 날마다 겸손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감사생활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우리민족, 겸손한 우리 성도들이 되어서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60만 대군이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셔서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고기 먹고, 양식 떨어지지 않고 살았습니다. 모두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뭔가를 잘해서 우리가 넉넉하게 먹고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어린아이 같이 줘도, 줘도 끝이 없는, 감사가 없는 인생은 아닙니까?
어떤 40대 초반의 남자가 혀에 암이 생겨서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그 환자에게 "이제 당신은 혀를 절단하면 영영 말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하시지요" 라고 했습니다. 정말 비통한 순간입니다. 곁에 있던 가족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한참 지난 후에 그 환자는 입을 열었습니다. 가족들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 상황이라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환자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인생의 성공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가지는 것입니까? 지식을 많이 가지는 것입니까? 명예를 가지는 것입니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습니까? 감사가 없는 인생이라면 실패자인 것입니다. '얼마나 넘치는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가 성공의 바로메타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하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감사하는 곳에는 형통의 복이 넘칩니다.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불평은 불평을 부릅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 . .민14:27-33절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 . . .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 .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만 되풀이 하다가 광야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빨리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망하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아예 감사하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어떤 유대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는데 그 어머니는 별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다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 비결은 세가지를 늘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 .두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과는 놀지 말아라. 물든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과 사귀지 마십시오 그것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 . 진실된 마음으로 감사하며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형통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일까요?
호텔에서 한 할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일은 고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나와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바닥을 닦습니다. 하루는 한 손님이 할머니에게 “힘들지요?" "예 힘들어요." “일요일에도 합니까?" "아니오 쉽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잘 수 있겠군요." 라고 묻자 할머니의 대답은 예상 외였습니다. “아니오 주일에는 손자들 데리고 교회에 가느라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손님은 한심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보며 말합니다. “아니, 일요일. . . 노는 날 잠이라도 자고 쉬어야지 그렇게 하고 어떻게 몸이 견딥니까?"라고 말을 하자 할머니의 대답은 단호하였습니다.
“아닙니다. 그 한 날 교회를 가서 은혜를 받아야 나머지 엿새동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어요."
이 가난한 할머니에게 주일날 감사로 드리는 예배는 삶의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감사의 사람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 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영육의 모든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34:24)
일본에 에모토 마사루,라는 사람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눈(雪)’과 같이 물도 얼리면 다른 결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8년을 연구했는데 “사랑, 감사”라는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고 “악마”라는 글을 보여준 물은 중앙의 시커먼 부분이 주변을 공격하는 듯한 형상을 나타났으며 또"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정돈된 깨끗한 결정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망할 놈, 바보, 짜증나네, 죽여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폭행을 당하는 듯한 형상을 나타냈으며, “그렇게 해주세요. . ”라는 말에는 예쁜 형태의 육각형의 결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험 즉 두 개의 유리병에 밥을 넣고, 한 병을 향해서는 “고맙습니다.” 다른 한 병을 향해서는 “망할 놈” 이라고 말을 하며, 그렇게 한 달을 계속했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 을 건 밥은 발효한 상태로 누룩처럼 푸근한 향기를 풍겼고 . . 그에 반해 “망할 놈”이라는 말을 건 밥은 부패하여 새카맣게 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 결과를 소개했더니, 일본 전역의 수백 가정에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그 밥과 물 자체도 우리의 몸에 좋은 양약이 되어 우리의 몸이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감사가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었고, 오늘을 있게 하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를 하지 못하였으며,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시 한 번 헤아려 보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감사하라는 주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 월요일에는 노인복지 세미나에 참석해서 많은 도전을 받았고 화요일에 북한 온정리로 출발해서 2박3일동안 남북평화통일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원전도사님도 선교사 현지 적응훈련을 은혜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이번주에는 집중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고를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하겠습니다.
북한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가 보고 싶은 곳이면서도 감추어진 곳, 북한은 육로로 북한을 밟을 수 있도록 길이 열렸고, 우리는 버스로 출발을 했습니다. 금강산 콘도에서 버스로 천천히 달리는데도 남방한계선을 지나 북방한계선을 지나는 동안 2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단농장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훤히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 같습니다. 새까맣게 탄 얼굴, 누렇다 못해 황토색을 띤 넌링셔츠를 입고, 뒤도 돌아 보지도 않습니다. 일할 의욕을 잃은 사람들 처럼 먼산을 바라봅니다. 여행하는 차량들이 하나도 신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온정리에는 온정리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는 온정리교회를 복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현대건설측과 협의 중에 있습니다. 온정리교회는 1920년 7월 윤성렬 목사가 당시 김춘학 성도의 가정에서 몇몇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세워진 감리교회입니다.
지금 그 온정리에는 금강산관광지가 되었고 거기에는 온천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틀 저녁을 평화통일 기도회로 가졌습니다. 북한의 동포들이 함께 참여하는 통일기도회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남측 사람들만 모인 가운데 감동에 젖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 사모합창단의 평화콘서트가 있었습니다. 평화를 열망하는 노래가 힘있게 울려퍼졌습니다. 모든 합창이 끝나고 우리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 . ”을 불렀습니다. 북측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자리에서 . .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까?
군데군데 김일성 얼굴이 막힌 뺏지를 단 ‘접대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시원들이죠. 가는곳 마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붉고 힘이 담긴 큰 글씨들을 봅니다. ‘김일성’ 뒤에는 ‘수령’을 꼭 붙여야 하고, ‘김정일’ 뒤에는 ‘국방위원장’을 꼭 붙여야 하고 ‘김정숙’ 뒤에는 꼭 ‘여사’를 붙여야 하는데 안붙이면 문제가 되어서 왜, 안붙는지 반성문을 써야 하고 문제를 해결할려면 아주 복잡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읽지도 못합니다.
제가 어떤 접대원에게 사탕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는 사탕 참 싫어합니다.’ 라고 . .
‘오늘 저녁, 평화콘서트가 있습니다. 오십시오.’ 했더니 ‘콘서트’가 뭡네까?‘ ’아, 예 연주회입니다.’ ‘통일이 꼭 될 겁니다.’ ‘그렇게 쉽게 될까요?’
어떤 분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접대원에게 ‘참 이쁘십니다.’ ‘이쁘지 않아도 괜찬습네다.’ 어떤 분이 ‘월급은 얼마나 받습니까?’ ‘먹을 만큼 받습네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 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다 그렇게 . .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주체사상’이 문제입니다. 어떤 곳을 지나는데 ‘우리는 우리방식으로 산다’라는 붉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참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북한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길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이렇게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억세게도 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북한에 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주체사상에 물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 . .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감사절이 돌아오면 부담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특별히 감사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박이 터지는 물질을 소유하게 되었거나, 뭐 죽다가 살아나는 대단한 기적을 체험했다든지, 아니면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했다든지. . . . 그래야 감사 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잘 못된 것입니다. 대박이 터지면 그 사람은 타락하기 쉽고, 기적을 체험하면 언제나 기적만을 바라보는 자가 되기 쉬우며, 갑자기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하면 그는 한 영혼을 위한 고통과 사랑의 기도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잘 자라주는 아이들, 생존해 계신 부모님,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가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교회와 좋은 성도들, 좋은 교역자들이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신16:12에는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하던 때를 기억하고 잊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 현재에 받은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것을 두려워하십니다.
신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 .”
1. 맥추절 절기는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대한 저울이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을 해서 자기 방식대로 합니다. 맥추감사도 형식적으로 흉내만 낼려고 합니다.
요즘 맥추감사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 . 라고 생각합니다. 이 절기는 현실성이 없는 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특별히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하는 중에 해방됨을 기념하는 유월절.
*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초실절이라고도 하는 맥추절.
*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수장절 즉 추수감사절.
맥추절은 유월절을 지내고 7주 곧 49일을 지낸 다음날로 처음 익은 곡식과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초실절)
1) 이 절기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맥추절은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로 십계명의 말씀을 주신 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 도착을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것에 대한 명령,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복된 날입니다.
3) 또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한 날입니다. 이날은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인 오순절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와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분부 하신대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날입니다. 이 날 초대교회가 탄생되는 복된 날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날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교육적이고 훈련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실천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알아도 훈련 속에서 생활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지난 전반기동안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찾아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간순간마다 찾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전쟁 뒤에 얻은 평화는 참 감사할 것이지만, 전쟁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은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질병 뒤에 얻은 건강은 참 감사할 것이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다면 더욱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고 뒤에 수습 된 것은 참 감사해야 하지만, 사고 없이 무사했으면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2.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성숙한 성도입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복입니다. 수준 높은 사람입니다. 어떤 글에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병은 감사 결핍증이라고 하는 지적을 보았습니다. 한국인들은 대개 가게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설 때 가게 주인은 '감사합니다.' 대신에 '또 오십시요'라는 이기적인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고맙습니다' 대신에 '신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50개중에 28%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옷 한 가지, 신문 한 장을 살 때도 땡큐라고 합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라고 하는 신학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 것,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은 저주입니다.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가 있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가 없는 이유는 건방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감사하지 못합니까? 교만한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늘 불평하게 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감사생활을 통해서 날마다 겸손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감사생활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우리민족, 겸손한 우리 성도들이 되어서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60만 대군이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셔서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고기 먹고, 양식 떨어지지 않고 살았습니다. 모두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뭔가를 잘해서 우리가 넉넉하게 먹고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어린아이 같이 줘도, 줘도 끝이 없는, 감사가 없는 인생은 아닙니까?
어떤 40대 초반의 남자가 혀에 암이 생겨서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그 환자에게 "이제 당신은 혀를 절단하면 영영 말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하시지요" 라고 했습니다. 정말 비통한 순간입니다. 곁에 있던 가족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한참 지난 후에 그 환자는 입을 열었습니다. 가족들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 상황이라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환자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인생의 성공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가지는 것입니까? 지식을 많이 가지는 것입니까? 명예를 가지는 것입니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습니까? 감사가 없는 인생이라면 실패자인 것입니다. '얼마나 넘치는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가 성공의 바로메타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하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감사하는 곳에는 형통의 복이 넘칩니다.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불평은 불평을 부릅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 . .민14:27-33절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 . . .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 .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만 되풀이 하다가 광야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빨리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망하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아예 감사하는 것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어떤 유대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는데 그 어머니는 별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다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 비결은 세가지를 늘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 .두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과는 놀지 말아라. 물든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과 사귀지 마십시오 그것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 . 진실된 마음으로 감사하며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형통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일까요?
호텔에서 한 할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일은 고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나와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바닥을 닦습니다. 하루는 한 손님이 할머니에게 “힘들지요?" "예 힘들어요." “일요일에도 합니까?" "아니오 쉽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잘 수 있겠군요." 라고 묻자 할머니의 대답은 예상 외였습니다. “아니오 주일에는 손자들 데리고 교회에 가느라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손님은 한심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보며 말합니다. “아니, 일요일. . . 노는 날 잠이라도 자고 쉬어야지 그렇게 하고 어떻게 몸이 견딥니까?"라고 말을 하자 할머니의 대답은 단호하였습니다.
“아닙니다. 그 한 날 교회를 가서 은혜를 받아야 나머지 엿새동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어요."
이 가난한 할머니에게 주일날 감사로 드리는 예배는 삶의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감사의 사람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 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영육의 모든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34:24)
일본에 에모토 마사루,라는 사람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눈(雪)’과 같이 물도 얼리면 다른 결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8년을 연구했는데 “사랑, 감사”라는 글을 보여준 물에서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이 나타났고 “악마”라는 글을 보여준 물은 중앙의 시커먼 부분이 주변을 공격하는 듯한 형상을 나타났으며 또"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정돈된 깨끗한 결정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망할 놈, 바보, 짜증나네, 죽여버릴 거야”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폭행을 당하는 듯한 형상을 나타냈으며, “그렇게 해주세요. . ”라는 말에는 예쁜 형태의 육각형의 결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험 즉 두 개의 유리병에 밥을 넣고, 한 병을 향해서는 “고맙습니다.” 다른 한 병을 향해서는 “망할 놈” 이라고 말을 하며, 그렇게 한 달을 계속했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 을 건 밥은 발효한 상태로 누룩처럼 푸근한 향기를 풍겼고 . . 그에 반해 “망할 놈”이라는 말을 건 밥은 부패하여 새카맣게 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 결과를 소개했더니, 일본 전역의 수백 가정에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그 밥과 물 자체도 우리의 몸에 좋은 양약이 되어 우리의 몸이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감사가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었고, 오늘을 있게 하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를 하지 못하였으며,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시 한 번 헤아려 보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감사하라는 주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