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1
검을 주러 왔노라 (마10:32-3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는데, 이를 뒤집는 말씀을 한다.(34절)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다. 그런데 본문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며 칼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한다. 무슨 뜻인가?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 마귀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흑암에서 빛으로 옮겨진 사람이 되기에, 빛과 어둠이 하나님과 사탄이 충돌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영적으로 싸우고 이겨야 한다.
그러면 검을 주러왔노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을 시인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검을 주셨다.(요10:32-33절)
세상 앞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시인해야한다. 어떤 손해와 유혹 앞에서도 예수를 시인하기 위해싸우라고 칼을 주셨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 왕에게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지기까지 주를 시인했다.(단3:18)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며 산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승리 할 수 있는 영적전쟁이다. 믿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거절 당하고 외면 당한 경험이 있는가? 아직 도박판이나 술자리를 기웃거리지 않는가? 년말 년시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둘째,가족과 영적으로 싸우라고 검을 주셨다. (35-37절)
대단히 어려운 말씀이다. 가족끼리 사랑을 나누고 화목하고 단란하게 지내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먼저는 비록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의미이다.(37절) 이것은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안 믿는 가족이 있을 때 생긴다. 믿지 않는 가족들은 가족보다 예수님을 소중하게 챙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 예수에 미쳤다고 비난하고 핍박자가 된다. 그래서 영적으로 가족들과 싸우라는 말씀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자기 십자가를 위해서 검을 주러 오셨다.(38-39)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고 이것은 고통을 가져온다. 그래서 벗고 싶고 피하고 싶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르르라!(마16:24) 결단이란 말은 “선택(Choice)”이라는 말과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선택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을 말하지만, 결단이란 말은 하나를 택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길 결단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과 싸워야 할까?
(1) 죄와 싸워야 한다. 죄에서 구원받고 새 생명을 가진 크리스찬들은 죄와 싸우고 불의와 싸워야 한다. 저항 없이 세상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사람은 크리스찬이라고 할 수가 없다.
(2) 마귀와 싸워야 한다. 영혼이 거듭나서 영안이 조금이라도 열린 사람이라면 순간순간 사탄 마귀가 저항해 오고 핍박해 오고 유혹해 올 때에 마귀와 타협하거나 고난의 길을 피해 가지 않는다.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한다.(약4:7-8)
(3). 잘못된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못 박힌 정욕이 다시 살아 발동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한다.(고전9:27)
이런 영적 싸움을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무기, 검은 무엇인가?
첫째, 기도이다. 기도가 없이는 절대로 마귀를 이길 수가 없고 죄를 이길 수가 없다.
둘째, 말씀이다.(히4:12)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쳤다.
맺음말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마귀와 싸우지도 않는 교회는 마귀들이 지붕에서 졸고 있다. 그런데 기도하고 전도하고 영적싸움을 하는 교회는 마귀가 어쩔 줄 모르고 활동한다. 성령 충만하여 살아 역사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영적 싸움을 쉬지 않고 계속하게 마련이다. 서문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사탄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다. 싸워서 승리하시기 바란다.
편안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은 자랑하지 말라! 이런 자는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다. 사탄이 깔보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요14:27)고 하셨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진정한 평안이 아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사탄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한 이후에 주시는 참된 평안이다. 예수를 나의 구주라 시인하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가족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 사랑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주어진다.
출처/이상민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