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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마 1:18-25)
세계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60억 명 째 아기가 작년 11월12일 새벽 0시2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한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나 세계인의 관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생아가 1초에 2.5명씩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 추세가 계속 될 경우 오는 2070년에 세계인구가 1백 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서 전망했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수천 억 명의 아기가 태어났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는 한 생명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신비롭고 귀중합니다.
지난 주 이창진, 김정미 집사의 아들 원민이의 돌잔치가 있어 많은 가족, 친척, 성도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돌 된 원민이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귀여웠습니다. 의젓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원민이는 그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우리 교회는 원민이와 같은 또래의 귀여운 아기가 9명이나 있고 예쁜 아기로 태어나려고 대기 상태에 있는 아기도 3명이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아기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길러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아기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이 아기의 탄생만큼 온 인류의 관심과 축하를 받은 예가 없습니다. 지금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을 Christmas로 이름짓고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내일이 Christmas인데 벌써 세계의 도시는 Christmas Tree와 Christmas Carol로 뒤덮여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이시기에 이렇게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무관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탄생이 너무 초라하였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석가와 같이 왕궁에서 태어난 것도 부유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를 해산하려 하였으나 묵을 방이 없었습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하여 "빈방 있습니까?" 문을 두드려도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외양간에서 아기를 해산하여 구유에 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심성의 악함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들의 악함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보내신 분 예수님을 외면한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의 탄생의 위대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그의 탄생은 이미 수 천년간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저능아요 신체장애자라 할지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 받아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인류의 초창기로부터 수 천년간 지속적으로 예고되어 탄생된 예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때부터 상징적으로 예고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창 3:15), 가죽 옷(창 3:21)을 입히시는 장면, 노아의 방주(창 6:13-20) 등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상징적인 표징입니다.
예수님에 탄생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의 말씀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오시기 약 20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창 22:17,18)"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이 약속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 약 1000년 전에 다윗에게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삼하 7:12-16 "....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약속은 예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하였던 이사야에 의하여 확인됩니다.
사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마태복음 1:1-17까지의 족보는 수 천년에 걸친 하나님의 예언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심으로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 말씀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2.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예수께서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부활사건 이상으로 놀랍고 신비한 일입니다. 모든 생물이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에 의하여 종족을 번식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기는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는 얼마나 황당하였겠습니까? 결혼도 안하고 약혼한 상태에서 그것도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아니한 상태에서 아기가 몸 속에서 자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가무라 칠 일이 아닙니까? 약혼한 남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아내 될 사람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 당시 법으로는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고발하여 분풀이를 할 것인가? 조용히 갈라 설 것인가? 요셉은 착한 사람이라 조용히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19-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20-23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요셉이 이 놀라운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 드린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피조물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요한복음은 그가 본래 하나님이셨다고 증언합니다(요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창조의 사건 못하지 않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3.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예수이외에 임마누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1-23절)
예수라는 이름이 그가 오신 목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임마누엘은 그가 오신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중심이 되는 때에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단순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의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보다도 더 깊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성경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랑의 극치가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대로 표현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성경 전체의 요절로 삼는 것도 매우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신 예수님은 한 종교의 대표가 아닙니다.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를 멋있게 장식하였던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역사의 한 중심에 서 계시고 그 분의 역사는 바로 세계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History라고 부릅니다. History는 그 분이라는 뜻을 가진 His와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story의 합성어입니다. 역사는 바로 그 분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을 나타내는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 예수께서 오시기 전의 역사요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 예수께서 오신 후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지금 세계인이 쓰는 달력은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멀리 동방에서 찾아와 그 앞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어떻게 냄새나는 구유에 뉘인 아기를 향하여 왕에게 하듯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수 있습니까? 이 일도 만 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세상으로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에 천사들은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경배와 찬양은 나의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향한 당연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어느 정도로 감격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원민이를 보는 부모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여러분들의 자녀의 출생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경배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세계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60억 명 째 아기가 작년 11월12일 새벽 0시2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한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나 세계인의 관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생아가 1초에 2.5명씩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 추세가 계속 될 경우 오는 2070년에 세계인구가 1백 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서 전망했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수천 억 명의 아기가 태어났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는 한 생명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신비롭고 귀중합니다.
지난 주 이창진, 김정미 집사의 아들 원민이의 돌잔치가 있어 많은 가족, 친척, 성도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돌 된 원민이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귀여웠습니다. 의젓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원민이는 그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우리 교회는 원민이와 같은 또래의 귀여운 아기가 9명이나 있고 예쁜 아기로 태어나려고 대기 상태에 있는 아기도 3명이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아기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길러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아기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이 아기의 탄생만큼 온 인류의 관심과 축하를 받은 예가 없습니다. 지금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을 Christmas로 이름짓고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내일이 Christmas인데 벌써 세계의 도시는 Christmas Tree와 Christmas Carol로 뒤덮여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이시기에 이렇게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무관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탄생이 너무 초라하였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석가와 같이 왕궁에서 태어난 것도 부유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를 해산하려 하였으나 묵을 방이 없었습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하여 "빈방 있습니까?" 문을 두드려도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외양간에서 아기를 해산하여 구유에 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심성의 악함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들의 악함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보내신 분 예수님을 외면한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의 탄생의 위대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그의 탄생은 이미 수 천년간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저능아요 신체장애자라 할지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 받아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인류의 초창기로부터 수 천년간 지속적으로 예고되어 탄생된 예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때부터 상징적으로 예고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창 3:15), 가죽 옷(창 3:21)을 입히시는 장면, 노아의 방주(창 6:13-20) 등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상징적인 표징입니다.
예수님에 탄생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의 말씀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오시기 약 20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창 22:17,18)"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이 약속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 약 1000년 전에 다윗에게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삼하 7:12-16 "....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약속은 예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하였던 이사야에 의하여 확인됩니다.
사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마태복음 1:1-17까지의 족보는 수 천년에 걸친 하나님의 예언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심으로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 말씀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2.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예수께서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부활사건 이상으로 놀랍고 신비한 일입니다. 모든 생물이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에 의하여 종족을 번식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기는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는 얼마나 황당하였겠습니까? 결혼도 안하고 약혼한 상태에서 그것도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아니한 상태에서 아기가 몸 속에서 자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가무라 칠 일이 아닙니까? 약혼한 남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아내 될 사람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 당시 법으로는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고발하여 분풀이를 할 것인가? 조용히 갈라 설 것인가? 요셉은 착한 사람이라 조용히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19-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20-23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요셉이 이 놀라운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 드린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피조물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요한복음은 그가 본래 하나님이셨다고 증언합니다(요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창조의 사건 못하지 않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3.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예수이외에 임마누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1-23절)
예수라는 이름이 그가 오신 목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임마누엘은 그가 오신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중심이 되는 때에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단순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의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보다도 더 깊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성경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랑의 극치가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대로 표현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성경 전체의 요절로 삼는 것도 매우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신 예수님은 한 종교의 대표가 아닙니다.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를 멋있게 장식하였던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역사의 한 중심에 서 계시고 그 분의 역사는 바로 세계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History라고 부릅니다. History는 그 분이라는 뜻을 가진 His와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story의 합성어입니다. 역사는 바로 그 분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을 나타내는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 예수께서 오시기 전의 역사요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 예수께서 오신 후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지금 세계인이 쓰는 달력은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세계사의 중심이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멀리 동방에서 찾아와 그 앞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어떻게 냄새나는 구유에 뉘인 아기를 향하여 왕에게 하듯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수 있습니까? 이 일도 만 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세상으로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에 천사들은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경배와 찬양은 나의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향한 당연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어느 정도로 감격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원민이를 보는 부모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여러분들의 자녀의 출생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경배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