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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 (마 2:10-12)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절기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 중 기독교가 융성한 나라들은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주님 오심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성도들도 있고, 크리스마스를 단지 자신들의 상업적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휴일 이상의 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놀기에만 급급하는 무리들 등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여하튼 성탄절은 그리스도인들의 큰 명절이고,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는 절기입니다. 오랜만에 친지, 친구들에게 카드나 문안엽서를 보내기도 하고, 문자메시지를 띄우기도 합니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기도 하고, 평소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드리기도 자연스러운 명절입니다.
성탄절 선물의 효시(嚆矢)는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의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은 멀리 동방에서 하늘의 이상한 별을 보고 어려운 길을 찾아온 현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이들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중의 백성들에게 폭탄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 2:2).
하나님은 유대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조차 모르고 있는 엄청난 사실을 이들 이방인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아기 예수께서 계시던 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메시야를 왕으로 예배하며 섬기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에게 신적인 경배, 즉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동족 유대인들은 아무도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지 않았는데, 이방 땅에서 온 박사들은 머나먼 곳으로부터 와서 경배했던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는 마리아에게 경배했다는 표현이 없음을 유의해야 합니다.로마 카톨릭의 성모 숭배사상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 숭배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에서 나온 그릇된 교리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세 개의 보배합에 각기 황금, 유향, 몰약을 넣어서 가져왔는데, 황금은 나이 많고 백발에 긴 수염을 기른 멜기올이 드렸고, 유향은 젊고 수염이 없고 얼굴이 붉은 카스파르가, 그리고 몰약은 새로이 기른 수염에 거무스레한 얼굴을 가진 발타잘이 드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황금 예물
11절,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
당시 중근동의 예법에는 왕 앞에 나갈 때 두 가지 모습으로 나갔습니다. 첫째는 엎드려 절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황금을 선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첫 번째 예물은 황금 예물이었습니다.
칼빈은 황금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황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왕, 제사장, 선지자) 가운데 왕직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께 황금 예물을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땅에 오신 것을 인정하고 그를 왕으로 섬기겠다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는가?”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에 대하여 묻고 찼았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물었습니다. 로마 황제 시저의 신하였던 빌라도는 예수께서 로마의 황제마저도 예수님의 발밑에 꿇어 엎드리게 할 수 있는 온 인류의 왕이심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정도에서 그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마지막 인류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사람의 왕이십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이 세상은 마귀가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은 죄 가운데 빠져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예수께서 오셔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풀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을 믿는 성도는 마귀의 다스림을 받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마귀의 어둠의 세력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주님의 영적 군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성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탄절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비할 바 없이 귀중한 것입니다.
황금에는 독특한 특성이 있고 상징성이 있습니다.
첫째 으뜸성입니다. 모든 금속 중에 왕이고 으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요,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계1:5)이십니다.
둘째 불변성입니다. 금은 아무리 오래 되어도 썩지 아니하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일시적이고 자주 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왕이십니다.
셋째 보배성입니다. 금이 보배이듯,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배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피는 ‘보배로운 피’(=보혈, 벧전 1:19)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102장은 예수님의 보배성을 노래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다스리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온 우주 가운데 가장 귀한 분 예수님을 소유한 복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께 황금의 예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모든 삶을 완전히 주관하시는 왕으로 철저히 인정하고 주님께 나의 마음의 왕좌를 내어놓는 일입니다.
나의 가정, 직장, 시간, 물질, 건강, 의지, 가치관, 장래의 희망...등등 모든 것을 주님의 발 앞에 드리는 일입니다.
이 세상 부귀와 명예와 행복까지도 주님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갖추는 순교적인 결단 -- 이 위대한 황금의 예물을 드리는 이번 성탄 절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향 예물
11절,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
당시 풍속으로는 귀한 분, 직위가 높은 분에게 향료를 뿌려드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향료는 너무 비싸서 한 두 방울씩 뿌렸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 기록된 대로, 여인이 향유를 주님 발에 쏟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것은 주님께 대한 최고의 대접을 한 것입니다.
여기 유향(리바노스)은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등지에서 자생하는 나무에서 추출하는 향수였습니다. 이것은 고대에 제의적(祭儀的)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칼빈은 유향을 ‘그리스도의 제사장권을 상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가운데 제사장직을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께 유향 예물을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신 제사장이심을 인정하고, 그분만을 의지하기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제사장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3:1은 말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구약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져온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통해 하나님의 죄용서를 받아냈습니다. 제사장은 오직 백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봉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제사장의 직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동방박사가 유향을 예물로 드린 것에는 이와 같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성막에서 하는 많은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은 향불을 피우는 일이었습니다. 향불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 향의 영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향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 위험한 일, 급한 일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정직하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향은 치료제의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유향은 각종 상처의 치료제 역할을 했습니다.
렘 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인간은 영적으로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병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님께로 나아오는 자는 어떤 질병으로부터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병을 고치시던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병을 고쳐주신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마음의 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주님께 나오면 능히 고침받습니다. 우리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불안, 두려움, 고독, 절망, 우울증 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영혼의 병은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이것은 각종 죄로 인해 우리 위에 드리워진 사망의 병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이 병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은 이처럼 그가 우리를 돌보시고 도우시는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친히 제물로 드리셔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어려운 삶 속에 개입하셔서 돌보시며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유향의 선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 되심을 확실히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철저히 자백하며 아뢰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주님으로부터 채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우한 이웃,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주님의 자비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펴는 일입니다.
이 아름다운 유향의 예물을 마음껏 드리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몰약 예물
11절,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몰약(스뮈르나)은 역시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등지에서 자생하는 나무에서 추출한 향수입니다. 이것은 유향과 달리 약간 쓰고 톡 쏘는 냄새를 지니고 있고,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사용되었습니다.
칼빈은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몰약은 시체에 발라 방부제로 쓰인다는 점(요 19:39)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난과 희생과 핍박 받음의 대명사인 선지자직분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몰약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주님께서 고난 받으신 종임을 인정하고 우리도 주를 위하여 고난에 동참할 것임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시며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선포하는 직책을 감당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다가, 감옥에 같히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였습니다. 광야로 내어 쫓기기도 하고 칼날에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리다가 톱에 쓸려 순교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목이 곧은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다가 매맞고 우물에 빠지게 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레미야는 우상의 땅 애굽으로 가지 못하도록 백성들을 막아서다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백성들에 의해 개처럼 질질 끌려 갔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외치던 선지자는 마침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 선지자 직분을 받아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어받은 사도들과 속사도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모두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아 마셨습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죠지 아틀레이 선교사는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품속에 있는 영국제 원체스타 연발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대로 쏘면 저들은 죽고 자기는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려오는 자들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저 사람들을 죽이게 되면 이 마을에서의 하나님의 선교는 영영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죽인 자가 전하는 예수를 누가 믿고자 하겠느냐 에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총을 가지고도 개처럼 끌려가서 사지를 찢기며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를 죽인 다음에 보니 그에게는 그런 자동 연발 총이 있었고 탄환도 수십 발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원주민들은 뒤늦게나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일세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이방 땅 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가장 귀한 것들을 아기 예수께 받쳤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예배하러 나오실 때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옵니까?
여러분도 동방박사들처럼 가장 귀한 것을 믿음으로 준비하여 나아옵니까?
여러분은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신 주님을 위해 어떤 보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또 그 보배합에는 어떠한 예물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18세기 영국의 Isaac Watt 목사님은 평생 혼자 살면서 찬송시만 6천여 편을 썼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세 가지 의미를 깨닫고, 기쁨에 넘쳐 찬송을 지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아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 찬양 찬양하여라.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의 보배합을 열어 주님께 예물을 드립시다.
회개와 순종과 믿음과 헌신의 아름다운 예물을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