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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정신 (빌 2:5-11)
금년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회의 분위가가 어두워서 그런지 예년 같지 않습니다. 매년 12월이 되기가 무섭게 거리마다 추리 장식이나 캐럴 송으로 온통 요란한데 금년에는 뜸한 느낌입니다. 차라리 요란한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주변의 썰렁한 분위기에 묻혀 성탄절을 덤덤하게 보낼까 조금은 염려가 됩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조용한 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며 성탄절의 참 의미를 깊이 되새겨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쪼록 우리의 신앙과 삶이 성숙하게 다져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성탄절의 정신(Christmas Spirit)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성탄절이란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죠. 단순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교회 절기입니다. 그런데 좀더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려면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 좋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Christ)+경배, 미사(Mass)의 합성어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 혹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죠. 어느 가정에서 성탄절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한 보따리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다 나눠 주고 나니까 아버지 것만 없었습니다. 재치있는 막내 딸 아이가 얼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선물 꾸러미에 달린 리본을 떼다가 자기 머리 위에 얹어 놓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빠, 제가 크리스마스 선물이예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정말 그 어느 것보다 해맑은 딸 아이가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이야기 속에서 성탄절의 양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릴 선물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그 선물은 곧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 그리고 온갖 인생의 슬픔과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즉 성탄절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런데 성탄절은 우리도 하나님께, 예수님께 선물을 올려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 이제 우리 편에서 주님께 감사의 선물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 선물은 단편적으로 찬양, 기도, 헌금 등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제사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롬12:1은 거룩한 산 제사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 자신의 신앙과 삶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성탄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의 마음에 성탄의 정신을 충만히 가지고 나 자신의 삶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간직할 성탄절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5절. 예수님의 마음, 이것이 곧 성탄의 정신입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도록 합니다.
[1] 비움 - 포기
6절~7절.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요1:1~3.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cf. 골1:15~16 "그=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신성 자체를 몽땅 버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시지만 그 영광과 존귀를 포기, 유보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대신 종의 형체, 즉 인간의 비천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즉 신성은 그대로 가지고 계시면서 자발적으로 인성을 입으시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신인 양성)
그 비움, 포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의를 주기 위해서, 가난한 우리에게 부요함을 주기 위해서, 슬픈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
예> 왕자가 거지와 옷을 바꿔 입는 것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고후5:21 죄로 삼으심 - 죄 덩어리가 되심으로 믿는 우리에게 의를 주심
고후8:9 가난해 지심으로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심
그러므로 우리가 성탄절의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비우고 포기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채움 받은 우리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스스로 비워야 됩니다.
우리가 얻은 복음, 물질, 재능, ...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여지도록 포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정신입니다. 나를 비움으로써 남을 채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어렵다고 다들 엄살을 들을 부리지만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너무나 부해져 있습니다. 어쩌면 가난한 것보다 오히려 너무 부해져 있는 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서울 시내 유명 호텔 객실과 식당들이 연말까지 계약이 꽉 차 있다는 사실! 반면 어렵다는 핑계로 양로원, 고아원에 지원의 손길이 뚝 끊겼다는 사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길거리의 서민들이 참여하는 자선 남비의 모금액은 증가한다는 사실! 두 벌 입을 것 한 벌 입으면 다른 한 사람이 입을 수 있고, 몇 만 원 짜리 먹을 것 몇 천 원 짜리 먹으면 여러 사람 먹는데 ... 우리 주변의 어려움들은 가만보면 부를 조금도 포기하기 싫어하는데서 생기는 문제들 ...예>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5만 명씩 아사합니다. 그러나 비만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수는 부지기수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죽어가는 백성이 많건만, 말씀을 너무 많이 들어서 영혼이 무디어져 이제는 아무런 감각없이 흘려버리고 전하지도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마치 홍수 때 식수난이 있는 것처럼 말씀의 홍수 시대에 '은혜난'입니다.
이런 세태 가운데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계속해서 부해지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가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고후8:12~14 구제 헌금 권면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너희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함을 보충하여 평균케 하려 함이라"
눅12:20~21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 인색한 사람의 세 종류 - 자기에게 & 남에게 인색한 사람(수전노), 자기에게 후하고 남에게 인색한 사람(욕심쟁이), 자기에게 인색하고, 남에게 후한 사람(예수님의 마음, 성탄절의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
이처럼 내게 있는 것들을 비우고 포기할 줄 아는 게 성숙한 신앙이요 성탄절의 정신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이 비우고 포기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2] 낮아짐 - 겸손
8절. 예수님은 자기를 스스로 낮추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자기 비하'라고 부릅니다. 겸손이란 단어보다 더 강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으로 낮아졌습니다. 특히 사람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가 되었습니다. 왕비의 몸에서 태어나도 시원찮을 그분이 시골의 어린 소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습니다. 왕의 아들이라도 시원찮을 그분이 낮고 천한 목수의 아들로 입적되셨습니다. 왕궁에 태어나서도 시원찮을 그분이 마구간의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그리고 머리 둘 곳도 없이 떠돌아 다니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 사형틀에 달려 중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 영광의 자리에서 이 세상에 오신 것만도 엄청나게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도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데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이처럼 낮아지셨습니까? 섬김을 위해서입니다.
예> 제자들이 누가 크냐? 논쟁할 때 - 막10:45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 눅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우리를 섬겨 주신 주님은 우리도 섬기는 자들이 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한 태도입니다.
예> 요13:14~15 세족 사건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섬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겸손하다는 것은? 겸손이란 말이 라틴어로 humilitas라는 단어입니다.(영어의 humility가 여기서 나왔음) 이 단어의 어원은 humus라는 말인데 그 뜻이 '땅'입니다. 땅은 가장 낮은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것을 다 받아 줍니다. 더러운 것, 썩은 것, 추한 것, ...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속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뿌리가 돋고, 줄기가 올라오고, 싹이 틉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하늘을 마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생명의 에너지가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겸손한 사람은, 섬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처럼 높은 자이나 스스로 낮아진 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생명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겸손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합니까? 자기 스스로 충분히 높아져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해지고, 은혜로 충만해진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을 섬기기 보다는 남을 밟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아닙니다. 성탄절이 정신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얼마나 높아져 있는지 모릅니다. 직함도 많고, 타이틀도 많고, ... 그런 것들이 섬김을 위해 사용되면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그런 것들이 우리의 겸손을 질식시켜 버린다면 비극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높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섬기면 거기서 놀라운 변화들이 생기게 됩니다. 인간 관계의 변화가 생깁니다. 가정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가 될 것입니다.(고후2:15, 3:2)
예> 사도 바울의 생활 원칙, 사역 원칙 - 고전9:19~22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 같이 된 것은 유대인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마치 땅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힘으로 모든 사람은 받아주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성탄절의 정신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이 넘칠 것이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역사를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3] 성탄절의 정신으로 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9절~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 뛰어난 이름 ... 주라 시인하여 ...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심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그냥 비하의 모습 그대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영광 가운데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승귀'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귀하게 영광스럽게 승리하며 사는 비결이 곧 성탄절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포기함으로써 남을 부요케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부요해 주십니다. 또 나를 낮추고 섬기면 더욱 더 존귀한 이름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어러분! 이번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시고 성탄절 정신으로 성숙한 신앙을 가꿔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성탄절 절기 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1년 365일 내내, 그리고 평생토록 간직할 정신입니다. 다만 우리가 늘 부족하기에 성탄절에 즈음해서 다시 한번 다지고 성숙해지자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진정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