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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새 집 (계21:1~8)
어제 한 일간지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보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집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런던에 있는 ‘업다운 코트’(Updown Court)라는 이름의 집입니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서 차라리 ‘성’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 집은 시가 1300억원으로 방이 130개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방은 바닥이 24K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7만 평의 숲, 수영장, 영화관, 테니스 장, 스쿼시 장, 리무진 8대 들어가는 차고, 헬기장 등이 있다고 합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유지관리비만 1년에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굉장하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집을 살 돈도 없지만, 거저 줘도 유지비 때문에 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런 집 싫으세요?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에이~ ” 하고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지 정말 싫은 사람은 아마 없을 줄 압니다.
오늘 추석 특별 선물로 그보다 더 좋은 집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니, 아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드리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주시는 겁니다. 그 집의 이름은 「하늘 위의 새 집」입니다. 이 집은 지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모두 하늘 위의 새 집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늘 위의 새 집 : 장차 들어갈 천국의 모습
어떤 사람들은 내세에 대해 부정합니다. “죽으면 끝이지, 뭐~ ”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긍정을 하기는 하지만 내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좋은 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아무개는 좋은 데 갔을 거야 ... ”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세에 대해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내세에는 천국과 지옥 두 나라가 있음을 밝힙니다. 성경은 특히 천국의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부분인데, 짧은 언급이지만 천국에 어떤 곳인지 잘 가르쳐 줍니다.
① 전혀 새로운 세계 :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을 묘사하는데, 천국은 전혀 새로운 세계임을 증거합니다.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새’ 즉 새롭다는 형용사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 것을 의미합니다. 형태가 변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나라가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처음 것들(이 세상에 속한 곳들)은 다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워진 세계는 또한 무척 아름답습니다.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지상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것처럼,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입니다. 거기는 성도들의 영원한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이 거주할 영원한 집인 셈입니다.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단장된 것은 신부의 모습입니다. 가장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단장한’이란 말이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성도들을 데리고 들어갈 신방이 다 꾸며졌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 성경에 묘사된 것만 갖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중에 몇 가지 표현만 봐도 천국이, 새 예루살렘에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대충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21장 중에서 몇 구절을 한번 살펴봅니다. 계21:10~1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이 보석, 벽옥, 수정 같이 맑고 빛나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계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새 예루살렘 성곽이 벽옥으로 쌓여있고 정금으로 되어 있고 유리 같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계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에 문에 열 두 개인데,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길이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길이 정금이니까 새 예루살렘 성의 모든 것이 그 이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광부가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서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죽은 겁니다. 그가 죽어서 천국 문에 가까이 있는데 덩어리가 든 자루를 갖고 갔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천사가 그에게 왜 아스팔트를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광부는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아스팔트가 아니고 황금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상에서는 그것을 황금이라고 부르겠지만, 여기 천국에서는 그것으로 길을 포장하는 데 씁니다.”
황금이나 보석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주 흔합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천국만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죄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언가 문제가 있고 결함이 생깁니다. 불완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좋은 곳을 찾아다닙니다. 말하자면 이상향을 꿈꾸는 겁니다. 이상향을 가리키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본래 뜻이 “그런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좋은 곳이 있어봤자 다 그렇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외 죄로 인해 파괴되어 갑니다. 인간이 세상을 개발하고 점점 발전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건물 짓는 것을 보거나, 물건 만드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개발 개발 하면서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공해가 생기고, 생태계가 변화되고, 재해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더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뉴오올리안즈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많은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TV에서 그 처참함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럼녀서 한편으로 인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누라 무래도 미국이 세계 일등 국가인데, 저럴 수가 있나? 그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리고 인간의 문명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또 의학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습니까? 목사로서 환자 심방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미세한 핏줄에 카메라를 넣어 훤히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다른 한면으로 보면, 무슨 병이 그렇게 많은지!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병들이 발생됩니다. 인간의 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어 질병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이 세상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계도 결함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② 하나님의 임재 처소 :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곳
3절을 한번 읽어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해 주신다는 겁니다. 구약 성경 보면 성막(장막)이 나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물’입니다. 그런데 이제 천국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듯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러므로 천국에는,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계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렇습니다. 천국이 좋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천국이 아름다운 환경, 모습을 갖고 있는 것도 좋지만, 더욱 좋은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함께 해 주시는 겁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제일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엄마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잠시뿐이고, 결국은 엄마를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 심지어 고난과 궁핍 가운데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만 모시면 그 어디에서나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 모신 곳이 천국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있을 때에는 그래도 한계가 있죠. 마치 희미한 구리 거울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듯 뵙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행복입니다.
③ 악이 존재하지 않는 곳 : 세상의 모든 악한 것이 사라짐
4절을 읽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것들, 고통스러운 것들, 슬픈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갔음이러라’는 말은 영어 성경 보니까 ‘has passed away'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성경에도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악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도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합니다. 어쩌면 좋을 꼴보다 나쁜 꼴을 더 많이 보는 게 이 세상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사라집니다. 질병도, 고통도, 슬픔도, ... 그리고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마치 와이퍼(wiper)로 깨끗이 씻어내듯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실은 천국 소망 외에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470장을 작시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사카고에 스패포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 그는 재산을 다 잃어버립니다. 상심이 되었지만 심기일전하는 의미로 가족이 유럽 여행을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마침 무디 교회 화재 사건 마무리를 위해 잔무를 처리하고자 부인과 네 딸을 먼저 보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뉴욕 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1주일만에 사고를 만납니다. 반대편에서 오던 여객선과 충돌하여 선체가 두 동강 났습니다. 그 사고로 226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와중에 부인만 극적 구조되고 네 딸이 죽었습니다. 전보가 왔습니다. “Saved Alone!"(혼자만 구조됨) 그는 눈물을 흘리며 즉시 사고 해역으로 떠납니다. 사고 해역에 도착했짐나 네 딸의 흔적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영적 회의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데 순간 성령님이 그에게 여감을 주십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신앙 생활을 하느냐?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신아으이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네 딸들은 천국에 들어갔느니라!“ 그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시를 쓴 게 470장 찬송시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눈물이 씻겨지고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편안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④ 영원한 만족이 있는 곳 : 갈증이 없고 싫증나지 않는 곳
이 세상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싫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엔ㄴ 좋아서 난리지만, 조금 후에는 시들해집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21:6 “ ...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샘물의 특징은 생수가 계속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증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갈증이 없습니다. 싫증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천국이 그렇게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루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영원히 산다고 하는데 도대체 뭘 하고 지내지? 찬송하고 예배나 드리면 어떻게 하지? 한 시간 남짓한 예배 시간도 빨리 안 끝나나 시계를 들여다 보는데 말이야 ...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국에서 무얼 하면서 영생할까 성경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내용을 토대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할 일도 많고 즐길 것도 많습니다.
이런 예를 통해 생각해 보죠. 새가 새장에 갇혀 있습니다. 기껐해야 먹이통, 물통, 앉을 수 있는 가로막대기, 그리고 철창, ... 이게 전부입니다. 그 안에서 겨우 먹이나 먹고, 푸eemr 거리다 맙니다. 그런데 새장 문을 열어주고 넓은 숲으로 날려 보냅니다. 환한 햇살, 졸졸 흐르는 시냇물, 시원한 폭포, 각종 수목, 드넓고 푸른 하늘 ... 마음껏 날아다니면 즐깁니다. 과연 이 새가 새장을 다시 그리워할까요? 숲이 너무 지루하다고 새장으로 돌아고고 싶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 하늘 위의 새 집에 들어갈 자 : 신앙의 승리자
7절을 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늘 위의 새 집에 들어갈 자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이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승리자입니다.
하늘 위의 새 집에 들어갈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기는 자, 즉 신앙의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요1:12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십자가 지셨음을 믿는 자입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 입국하려고 할 때 비자가 필요합니다. 비자 심사를 할 때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에 충족되면 비자를 내줍니다. 천국 입국 비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 보고 내줍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요14:6에서 주님은 오직 예수님 당신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막연하게 아무개는 좋은 데 갔을 거야가 아니라, 오직 예수 믿는 자만이 천국에 입국할 수 있습니다. ‘하늘 위의 새 집’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입국이 거절됩니다.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기서 여러 종류의 범죄자가 열거되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불신자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지만 십자가 피로 죄 사함을 받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사함 받지 못한 죄악 때문에 천국 입국이 거절됩니다. 그것ㄷ 불행인데, 영원한 불 못(fiery lake)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곧 둘째 사망입니다. 첫째 사망은 사실 별 게 아닙니다.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믿음의 소유자는 그 믿음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로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난 그날을 기약하면서 신부 수업하는 처녀처럼 순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맡겨 주신 사명(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 사랑을 실천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 등)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 승리자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항상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고(빌3:14), 그 상을 확신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딤후4:6~8)
오늘은 추석입니다. 여러분, 추석이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족 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것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추석에는 먼저 가신 조상을 추모하면서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월을 느끼며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미래가 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잘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장례 서비스 업체의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예정 없는 장례 평소에 준비합시다!” 수의나 관을 미리 준비해 두라는 이야기였지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보다 신앙의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마치고 하늘 위의기쁨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