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눅 8:01-03
가끔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서 임금이 사는 대궐 구조에 대해서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큰 사건 뒤에는 대부분 여인들의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왕들 가운데 최장기 집권한 임금이 바로 영조입니다. 83세 때 죽을 때까지 52년을 통치했던 임금입니다. 그런데 그 영조가 66세 되던 해 15세 신부를 맞이하여 결혼식을 올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가례도감의궤라는 책인데 오늘 날로 말하면 결혼 예식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영조의 나이가 66세에 15세의 신부를 맞이하여 정순왕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정순왕후는 며느리 되는 혜경궁 홍씨보다도 10살이나 나이가 어렸습니다. 문제는 왜 영조에게는 많은 후궁들이 있음에도 후궁들 가운데서 왕비를 삼지 않고 무려 51살이나 어린 아이를 신부로 맞이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영조의 아버지되는 숙종의 유언 때문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숙종은 후궁인 장희빈을 왕후로 삼았다가 여자에게서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아들 되는 영조에게는 후궁을 왕비로 맞이하지 말라는 유지를 따라 66세의 나이에 가례도감을 친히 설치하고 15세 신부를 맞이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 나라의 역사까지 여인에 의해서 농단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여성들에 의해서 한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는 역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합 왕의 왕후인 이세벨은 한 나라를 우상의 장소로 만들어 버린 여인이었습니다. 그야 말로 아합 왕은 이세벨의 손에 조종당하는 인형같은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또한 아하시야 임금의 모친인 아달랴는 왕의 씨를 진멸하고 6년 동안을 나라를 다스리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위대한 여성들이 많이 나옵니다. 위대한 여성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에게는 어머니 요게벳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배후에는 그 어머니 한나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배후에는 어머니 엘리사벳이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믿음의 외조모와 어미니 유니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때에도 많은 사람이 있지만 특별히 위대한 신학자요 교회의 지도자인 어거스틴의 배후에는 신앙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전도자 요한 웨슬레 배후에 신앙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믿음은 그 스스로 앞장서서 충성하기보다는 위대한 일군들을 양육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음껏 전도하며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헌신하며 봉사하였던 여성들의 섬김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자들이 뜻을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들을 섬기며 봉사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최초의 여전도회였고 이들이 바로 여전도회 회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도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해서 주의 종들이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봉사자들과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를 비롯해서 다비다와 루디아 그리고 브리스가 루포의 어머니 등 여러 여인들이 크게 봉사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들의 사역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이라면 여성들의 사역은 나무의 뿌리처럼 숨어 있는 사역임을 보게 됩니다.
여성들의 사역에는 매우 중요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지위가 높은 집안의 여성들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천한 여성도 있었고 그 중에는 고관 대작의 아내들도 있었습니다. 각계 각층의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섬김에 참여한 여성들은 신분이나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역사속에 나타난 위대한 여성들의 공통점은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돈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위나 지식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도구일 뿐이고 실제로는 믿음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된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다 믿음으로 누구는 무엇을 했고 믿음으로 누구는 어떤 일을 했다는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성들 가운데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자신의 삶의 배경이 바꾸어진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귀신이 자신의 인격과 삶을 지배했지만 예수님 만나는 순간 귀신은 떠나가고 주님이 그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이 없으면 난 살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헌신인 것입니다.
헌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는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 주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서 헌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하면서 헌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 살면서 헌신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헌신은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니면 그것이 하나도 가치 있어 보이지 않고 주님을 위한 일은 작은 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헌신이 바로 그런 헌신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헤롯의 청직이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있습니다. 여기 청직이는 헬라어로 에피트로포스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지배인이라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임금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거나 헤롯 왕의 일정을 관리하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요안나의 남편 구사라는 분은 헤롯 왕을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주님의 사역을 도왔다는 말입니다.
선교지에 가면 이외로 이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중국 가정 교회들 가운데는 교회의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람이 공산당 간부의 아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 복음화는 그 아내가 먼저 믿고 나중에 가족이 믿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아내된 자여 너로 인하여 남편이 구원을 얻을는지 누가 알겠느냐 라고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말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여자들이 자기의 소유로 주님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자기 소유란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의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소유로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해보면 교회의 예산을 가지고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자기 소유로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서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소유로 섬기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합니다.
행 16:11에 보면 바울의 일행이 마게도냐 지경 첫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여 기도처소를 찾고 있을 때에 루디아라고 하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와 온 식구가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에서 기도했는데 기도처소가 변하여 빌립보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깊이 헌신할 때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성들의 헌신을 소중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딤전 6:17-18절에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