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10

서론

나귀 새끼는 생각도 아니하고 있는데 주께서 그 나귀 새끼를 쓰시기로 작정하시고 제자들에게 끌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귀하게 쓰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와 같이 귀하게 쓰임받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선택이 되었습니다.

본문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하였습니다. 이는 주께서 그 나귀 새끼를 쓰시려고 선택하였다는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나귀 새끼가 원해서 쓰임받게 된 것이 아니고 주께서 쓰시겠다고 선택하였습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도 자기들이 원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쓰시려고 선택하여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이 확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주의 종들을 허수아비 같다고 합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사명지로 가는 것이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고전 15:10). 쓰임을 받는데는 주의 선택과 부르심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2. 끌려왔습니다.

본문 3-6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새끼를 풀어 무엇하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하였습니다. 나귀 새끼가 제 발로 걸어서 주님 앞에 와서 써주십시오 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쓰시기로 선택하여 놓고 끌어와서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도 일반 대학을 하고 신학을 해서 써주시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쓰시려고 준비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3.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본문 7-10 "나귀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하였습니다. 이 나귀 새끼는 자의에서가 아니고 타의에 의하여 끌려와서 저는 원치도 생각지도 않은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등에 태우게 되었고 그를 태우고 갈 때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 때문에 받은 환영입니다. 나귀 새끼는 그와 같은 환영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의 종들은 그렇지 아니합니까. 그것을 모르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결론

나귀 새끼는 주님의 선택을 받고 끌려와서 주님을 태우고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의 우리들도 특히 주님의 종들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때는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