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9:1-10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 뵙고 싶어서 거리로 나갔지만 안타깝게도 키가 작아서 뵈올 수 없어서 뽕나무로 올라갔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하시는 말씀이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주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은 만남에서부터 시작하고 만남의 과정을 거쳐 만남으로 일생을 마친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남이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할 때 가장 위대하고 값진 만남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은 우리의 일생을 완전히 바뀌어 놓기 때문입니다.

1. 소유욕을 버리고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위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아오며"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 난다음부터 변하기 시작하는데 예수께 대한 호칭을 신앙적인 의미의 주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한가를 실천 가능성에 있어서 자신 만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같은 말은 6절에서 언급된 바 있는 그의 기쁨과 결부되어 나오는 즐거운 선언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강요에 의한 타율적 선언이 아니라 기쁨에 의한 자율적(自律的) 결단인 것입니다.
삭개오는 당시 랍비들에 의해 제시된 구제비 곧 소유 혹은 수입의 20%보다 훨씬 많은 파격적 액수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태도는,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께로 나아왔으면서도 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던 부자 청년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입니다(18:18-23).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두고 살기로 단단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삶을 살려고 하였습니다(딤전 6:17-19).

2.회개하여 참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8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이 부당하게 취한 모든 것은 본래의 주인에게 확실하게 그리고 무엇이나 돌려준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서 삭개오는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에게 본래의 것의 4배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데 율법에 의하면 부정으로 취한 것을 돌려 줄 때에는 1/5을 덧붙여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레 6:5 민 5:7).
또 남의 것을 도적질한 것은 4배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출 22:1 삼하 12:6). 따라서 삭개오의 이 같은 선언은 당시 율법이 정하는 도적질에 상당하는 배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삭개오 자신이 그 같은 정도의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하는 셈입니다. 이 같은 삭개오의 파격적(破格的)인 행위는 자기 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격적인 회개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회개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동반해야 합니다.

3.구원받아 아브라함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본문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하였습니다. 삭개오의 선언에 대한 예수의 응답 역시 즉각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구원이 오늘 이 집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죄인으로 취급받았던 죄인에게 구원을 선언한 것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실로 파격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 같은 선언은 삭개오의 헌신적 자아 부인의 선언에 따른 직접적 결과임에 분명합니다. 구원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자아 부인의 실천적 결단을 통해 경험되는 현재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 말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고 배타적인 대접을 받아온 삭개오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당당하게 한 형제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삭개오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삭개오야말로 참된 믿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종교적 복권은 곧 정치. 사회적 복권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는 전인적 인간 구원을 의미합니다.

"결론"
주님을 만난 삭개오는 소유욕이 없어졌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옛사람은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 쳐놓고 변화되지 아니한 사람은 없습니다. 눈먼 사람은 앞을 보고 중풍병자는 고침을 받으며 죄인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지옥 갈 사람이 천국으로 가고 실패한 사람은 성공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출처 이윤근목사 설교 자료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