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1:12-20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찌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찌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마치도록(맞도록) 누울찌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밭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욜 1:12-20


우리 민족이 지나온 세월은 수많은 전쟁과 경제적 빈곤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악순환으로 잠시도 평안할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대에는 희망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온 국민이 어떤 불의나 부정도 없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오직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서로 맞대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온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십니다. 우리의 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평강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희생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은 주저 820년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유다 왕 요나스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정을 베풀었으나, 대제사장이며 스승인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우상 숭배의 길에 빠져 버렸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 24:17-19)

요아스 통치 기간 중 유다는 항상 주변 나라들에게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북한 공산주의의 침략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듯이 요아스의 말년에는 북방의 수리아로부터 침략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요아스 왕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사회악은 점점 더 크게 번져 갔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의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온 국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 우리 믿는 자만 모일 것이 아니라 4000만 동포가 함께 모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4000만의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성취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에 성회를 선포하고 각 도성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여 제사장이 모이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면 내 중심이 뜨거워져 너희를 어려운 가운데서 구하고 축복하리라”

우리는 지금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완전한 성장과 안정을 위한 과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1. 인간의 희락이 메말라가는 때입니다.

요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성회를 선포해야 합니다. 외적으로 외세의 침략에 대한 위협이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경제적인 빈곤이 있습니다. 요엘이 활동하기 전에 메뚜기떼의 극심한 피해와 가뭄이 유다 땅 전역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우상 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이루어 주실는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공산주의의 총부리 앞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절망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요엘 1:6에 보니“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이처럼 엄청난 현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입니다. 사자와 암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대처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엄청난 위협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들이 짓밟고 간 흔적은 요엘 1:7에서 말한 것처럼 소생할 수조차 없는 비극입니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그러나 우리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6·25 동족 상잔의 피비린내나는 잿더미 속에서 이처럼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벗겨진 가지는 절로 소생할 수 없습니다. 껍질이 벗겨져 말라 버린 가지처럼 비참한 전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영광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는 아직도 여전한 거짓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교회 속에서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시키는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입니다. 그들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이는 암사자의 성난 이빨처럼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의 회복은 물질주의의 만능에 유혹돼 버린 거짓 선지자들을 추방시키는 일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내세우면서 자기의 욕심을 위하여 기만과 권모술수를 일삼고 있는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방지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최후의 양심이 될 수 없을 만큼 변질되어 버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2. 인간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때입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금 우리는 모두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마칠 때쯤이면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일들은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1)사상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이념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변질된 사상의 오류에 빠져 버린 몇몇 사람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세계가 테러의 공포 속에 떨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보다도 변질된 사상에 자기 몸을 던져 버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테러 사건보다도 김 일성의 공산주의라는 세뇌된 사상의 오류 앞에서 얼마나 가슴 쓰라림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 그 어떤 것도 다 용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만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피도 눈물도 없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산주의는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도 사상의 오류가 범람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점에서 하나님 앞에 돌아와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2)신앙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모든 어두움을 벗겨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쳤지만 어두움은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빛이 바래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특히 복음의 변질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적 그리스도의 출현과 거짓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한 구속의 복음을 외면해 버리고 허울좋은 명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휘말려들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실천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까지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말합니다. 복음이 삶 속에서 실천되는 삶입니다. 요엘 1:9에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하셨습니다. 화려하고 형식적인 예배 행위가 아닙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는 위선적인 회개의 행위가 아닙니다. 가슴을 찢고 눈물을 흘리는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변질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3. 회개하면 살 길을 얻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비록 불만스럽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감사제를 먼저 드리고 살아갑시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을 주십니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은 희망적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증가된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희망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서로 가슴을 부딪치는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시다.

이 말이 신학적으로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마음과 마음을 열고 내 속에 있는 부정과 모순과 죄의 요소들을 들어내는 고통으로 가슴을 찢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그 지극하신 긍휼하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회를 선포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회를 선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회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계획을 중단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향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향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자유와 평화의 정착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우리가 갈 수 없는 북한 공산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형제들에게도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주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금식하며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성회를 선포하여 온 민족이 함께 더불어 회개하기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외면하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성회를 선포하고 모일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요엘 2:18, 19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계속 피흘리며 싸워 왔습니다. 이제는 그 고통이 끝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번영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에워 싸고 있는 수많은 강대국들 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 땅을 축복하시고 주관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이제 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곧 이 민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요엘 2:20에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요엘 2:21에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우리가 당한 분단의 슬픔 속에서 가슴을 찢는 통곡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요엘 2:19 말씀을 상고하며 우리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와 이 민족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김충기목사 설교 자료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