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1:28-30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28-30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 오네…”본당을 꽉 메운 성도들의 우렁찬 찬송 속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198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금년은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있지만 우리 교회도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기대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창립 10주년 동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빠른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기까지는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보이지 않는 수고와 봉사 그리고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르며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 사업에 더욱 전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지금까지는 디딤돌을 쌓았다고만 생각합시다. 우리 교회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금년은 우리 교회 창립 10주년이 시작되는 해이므로 한 층 더 의미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저는 우리 교회를 교회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염려하라는 말은 어느 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인 줄 압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의 염려는 영혼을 위한 근심입니다.

오늘날 가정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고 그 사회 역시 복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여 염려하는 국민이 많다면 그 나라는 장래가 있는 나라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회사를 위하여 염려하는 사원이 많다면 그 사업은 번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자가 많으면 그 교회는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벌써 교회를 위하여 염려한다는 것은 ‘교회가 내 집이다’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역 식구 중에 한 사람이 실족하여 교회에 안 나오면 자나깨나 걱정합니다. 이는 그가 내 식구이며 내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영혼을 염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9:27에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자기의 영혼을 위하여 염려했습니다.

1.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근심할 때 먼저 해야 할 큰 염려는 자신이 쓴뿌리가 될까봐 염려하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 중에 쓴뿌리는 가롯 유다였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안수 집사 중에 쓴뿌리는 니골라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자신이 쓴뿌리가 될까봐, 은혜에 이르지 못할까봐, 장자의 기업을 팔아먹는 자가 될까봐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근심하는 자는 새벽 기도에 한 번만 빠져도, 성경 말씀을 하루에 몇 절만 읽지 않아도 속상해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영혼을 염려하는 자입니다. 자기 영혼을 위하여 염려하는 자는 저절로 신앙이 성장될 줄 믿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받은 후에 자신을 위하여 더 염려했습니다.

2. 남의 영혼을 위해서도 염려합시다.

남의 영혼 중에서도 특히 불신자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됩시다. 바울은 로마서 9:3 이하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영혼의 가치를 아는 자는 남의 영혼을 위해서도 염려할 줄 아는 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 이하에서도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권이라는 것은 권력입니다.

바울은 권력과 지위가 있는 자였으나 복음을 전하는 데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같이 행세했습니다. 그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9:23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바울은 지위와 권력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쓰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오히려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3.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자가 됩시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습니다(고전 1:111; 3:3; 5:1). 그때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가랴”고 했습니다. 이 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히브리서 12:6에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고 염려한 것을 로마서 1:9-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율법을 강조하며 할례를 주장한다는 것을 듣고 그는 복음에서 떠난 갈라디아 교인들을 염려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또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첫사랑을 잊어 버리고 은혜에서 떠나 신앙이 흔들리고 있을 때도 바울은 그들을 염려하여 편지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수많은 교회에 편지를 썼던 것은 모두 그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우리 성도님들도 바울과 같이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인이라면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먼저 ‘교회가 내 집이다’하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꼭 문제가 있어서 염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드시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는 교회, 지역 사회를 향하여 교회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교회로 조심스럽게 다져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염려하고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로마서 11:29에서 영혼을 위한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밤을 새워하며 하는 영혼을 위한 염려에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염려는 기쁨을 줍니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9:10에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어린아이들에서부터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영혼과 이웃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염려하고, 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일처럼 염려함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김충기목사 설교 자료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