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25-34


본문 말씀은 ① 염려하지 말 것(25-32절)과, ② 성도가 먼저 구할 것(33-34절)을 교훈하셨습니다.

1. 성도가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하여(25-32절)

1) 성도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① 하나님이 성도의 목숨(생명)을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생명에 대하여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저희의 연대를 정하셨다”(행17:25-26)하셨으며 또 “참새의 생명도 주관하시고 성도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신다”(마10:29-30)하셨고, 또 시116:15에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도가 굶어 죽는 것을 모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막8:1-8).

② 하나님은 기적의 양식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양식의 이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나와 물을 주신 이적(출16:13,17:6), 메추라기를 몰아주신 일(출16:13), 과부가 적은 기름으로 빚을 갚은 일(왕하14:1-7), 까마귀와 천사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전한 일(왕상17:4,19:5), 고기를 잡게 하신 이적(눅5:7), 5병2어와 7병2어(마14:19,15:38)의 기적 등은 다 하나님이 양식을 해결하시는 특별 섭리의 방법입니다. 또 문명의 발달이 양식을 더욱 풍족하게 해결하는 것을 체험하였으므로 성도는 양식의 핍절로 인한 생명문제를 더욱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8:3에서 “하나님이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으니 이 말씀 중에는 “성도가 양식문제로 계명을 범하지 말라 하나님은 기적의 양식도 주실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 포함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후에도 여러 차례 기적의 양식을 주신 사실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막8:1-8).

③ 공중에 나는 새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활동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생들도 양식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고 땀 흘리는 일을 계속하므로 식생활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창3:19).

2)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① “몸을 위한다”함은 육신의 건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복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하나님은 건강도 지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동물들이 추운 곳에서 사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② 또 이 말씀은 의복을 안 입어도 춥지 않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고 헐벗어 죽도록 버려두시지 않고 입혀주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감옥에서 겉옷을 필요로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그에게 겉옷과 건강을 주셨습니다(딤후4:13,17).

③ 하나님은 성도의 생명과 건강이 양식이나 의복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도에게 최소한의 생활필수요소인 양식과 의복을 공급해 주실 책임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물며 너희일까보냐”하신 말씀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④ 사람이 자기의 몸을 위하여 염려한다 해도 스스로 자기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여(신28:60) 자기의 키를 한자(페쿠스:앞팔)도 임의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사실을 깨달을 때 건강은 물론 성장하는 문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3:6).

⑤ 여기에 주택문제를 거론하시지 않은 것은 일기가 춥지 않은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천막생활로도 족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 그것이 생활문제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이 자연계의 생물들을 스스로 양육하시는 사실을 목도하면 더욱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① 공중의 새를 보고(26절), ② 들의 백합화를 보고(28절), ③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보라(30절)고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일체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지만 하나님이 생육시키신 것입니다. 공중의 새는 임의로 잘 번성하며, 들의 백합화는 신비할 정도로 아름답고(들의 백합화:채송화 꽃 같으며 붉은 꽃, 흰 꽃이 있음), 또 무가치해 보이는 들풀도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볼 때 성도의 생활문제는 더욱 잘 보살펴 주실 것임이 확실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은 인간이 가공한(제작한) 영광이며, 하나님이 키우신 백합화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솜씨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것들의 비교는 마치 생화와 조화를 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자는 “믿음이 적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① 인간이 아닌 하등 동물이나 식물도 키워주시는 것을 볼 때 그러하고, ②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요, 기업인 존귀로 볼 때 그러하고, ③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처럼 따라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요, ④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시기 때문입니다(32절). 따라서 신령한 복을 추구하며 또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과 인도를 믿는 성도는 이방인처럼 현실에 집착하거나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2. 성도가 먼저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셨습니다(33-34절).

1) 여기에서 성도들은 먼저 할 일에 대하여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할 것이요,

2)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①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신앙세계를 뜻하고(주기도문 해설 참조),

② “그의 의”는 십자가 구속을 통한 죄사함의 복을 의미합니다. 이 죄사함의 복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정죄와 심판에서 해방되는 것이요, ㉡ 징계의 대상에서 용서 받는 것입니다. 전자는 믿음으로 받고, 후자는 회개로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믿음의 결속을 든든히 갖고 또 생활에 대한 순결을 도모하므로 의인의 인정을 받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욥 1:8). “구한다”는 뜻은 기도로만 성취한다는 뜻이 아니요, 순종도 아울러 시행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 을 더하여 주신다 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바로 앞에서 말씀한 의식주 문제와 현실의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의 말씀은 시1:1-3과 요삼1:2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4) 성도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33절)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32절)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만큼 성도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① 예수님은 풍랑 만난 배에서도 주무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당면한 환난을 염려하시지 않은 것입니다(마8:24). ② 또 내일 일은 인간이 알지 못합니다(약4:14). ③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맡기고 한날에 당면한 일에 충실하며 만족하고 감사하며 견디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목숨과 건강과 성장문제, 의식주문제, 내일을 위한 문제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책임에 진력하면서 염려 없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다하여 자신이 미래에 책임질 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도는 미래의 책임에 대하여 힘이 있는 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준비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특히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는 더욱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일들에 대하여는 물에 떠내려가듯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창 8:4).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