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8

본문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① 덕을 세우는 선행에 관한 말씀(1-4절)이고 ② 기도에 대한 상식(5-8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덕을 세우는 선행에 대하여(1-4절)

1) 선행이란 의를 행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을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① 1절의 “의를 행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 을 의미 합니다. “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공로로 속죄함 받는 의이고 또 하나는 성도가 계명을 지키는 의입니다. 본문의 의는 “사람이 행하는 의”이기 때문에 당연히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의”를 일컫는 말씀입니다. 이 “의”의 표준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표준에 달렸고 성경말씀에 계시된 것입니다.

② 2절 말씀에서 “구제하는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과 “구제하는 일”을 선행이 아니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2) 그런데 문제는 이 “선행을 어떻게 실행하느냐”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행의 시행 방법이 옳지 않음에 대하여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런 잘못을 범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마 23:5). 따라서 저희들은 선행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의를 행함에 있어서

①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란 것은 그 표준과 명령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본다하여 행하고 안 본다하여 안할 성격의 일이 아니며 항상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의가 신령한 예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한다”는 말씀은 사람에게 자랑하고 칭찬을 받아 자기의 입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것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무를 묵묵히 이행하는 사람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할 때에 빛을 발할 것이며 향기가 날것이고 그 들어난 모범이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주게 될 것입니다. 묵묵히 시행하는 선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감화를 줄 수 있지만 사람에게 보이려는 선행은 덕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도 얻지 못할 것임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② 구제를 함에 있어서도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는 외식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는다”는 뜻은 구제로 말미암아 칭찬이나 명성 얻기를 바람이고 “외식자”란 남을 위한 자선가가 아니고 자신을 위한 자선가 라는 뜻입니다. 이런 자선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지켜보는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자기의 선행을 선전한다는 뜻)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선행하는 일을 사람이 앎으로 칭찬이나 감사나 명성을 얻으면 그것이 이미 상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그런고로 구제할 때는 가까운 사람도 모르게 즉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은밀한 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 139:1-3) 다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사람이 주는 칭찬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더 귀한 것을 아셔서 사람에게 보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받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2. 기도에 대한 상식입니다(5-8절).

기도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지만 성도가 개인 기도를 함에 있어서

1) 우선 “골방기도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은밀한 기도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대중과 함께 합석하여 기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마 18:19). 다만 ① 사람에게 나타내려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되는 점과 ② 대중기도에 딸려가는 연약한 기도나 대중과 함께 기도하면서 혹 지장을 받는 경우 보다는 개인의 은밀한 기도가 더 효과적이란 말씀입니다.

2)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5-8절).

① “중언부언” 이란 “중복되는 말” 을 뜻하지만 언사를 성의 없이 표현하는 것도 의미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사도도 같은 기도를 세 번씩 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마 26:44, 고후 12:8). 하나님께 드리는 의사표시는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나타내도록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고상한 말을 구상해서 사용해야 한다” 는 의미가 아니고 자기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되 마음과 말을 다듬어서 나타내는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이 잘못 표현되어 사람이 듣기 민망하면 하나님 듣기에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느니라”하셨는데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 23:5에서 “바리새인들이 경문을 넓게 한다”는 말씀이 있지요? 이 말씀은 기도문을 많이 낭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이 많아야 이해하시고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말씀이 있는데(출 3:7) 이 말씀은 말을 많이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고통을 호소하는 강한 표현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합리한 상태에서의 말이 많은 것보다 합리적 상태에서의 말이 적은 것이 더 귀한 것입니다. 합리적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의 정당한 입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조리 있고 함축성 있게 간단히 해도 되는데 “기도를 많이 한다” 는 사실을 사람 앞에 나타내기 위하여 말을 많이 한다면 그런 기도는 잘못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라” 고 하셨으니 이 말씀도 외식적인 긴 기도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겔36:37,마7:7). 정성 없고 간절함도 없으면서 인기주의로 길게 기도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듯이 하나님도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니까 문제는 중심이 얼마나 통하느냐? 에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들은 선행과 기도를 하실 때에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시며 기뻐하시고 응답하실만하게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