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6
왕상 13:24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객관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계시를 주심으로 자신의 존재와 뜻을 나타내시고 그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주심에 있어서 특별히 사용하는 사람이 선지자의 직분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예언이 역사를 이루어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주시는 계시는 주관적인 것이었으므로 누구의 예언이 하나님의 참된 계시인지 증명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 예언의 성취로만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알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거짓 예언을 함으로 백성을 멸망의 길로 이끌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여로보암에게 심판을 예언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이 요시야라는 다윗의 후손으로 심판을 행하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예언은 유다 말기에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통해 여로보암이 쌓았던 단과 벧엘의 우상 제단을 제거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선포한 예언이 진실임을 보이시려고 단이 갈라져 재가 단에 쏟아지는 예조를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람에게 예언을 선포하게 하시면서 그 예언의 진실됨을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아무것도 먹지 말고 왔던 길로 다시 가지도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무조건 순종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주관적으로 계시하시지만 그 계시의 객관성을 역사를 통해 입증하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속의 뜻을 인류에게 분명하게 증거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계시를 기록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객관적 계시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누구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고 그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얻는 지혜를 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삶을 사는 방법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딤후3:15-17).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말씀을 좇아 순종하여 복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지체치 아니하고 돌아갈 때에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가 그를 만나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여로보암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하라고 하셨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불러 먹게 했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는 악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호기심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왜곡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노인의 집에서 먹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우리를 유혹하려는 요소가 함께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 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도 방심한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악은 독버섯과도 같아 번식력이 강하며,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방심할 때 악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유다에서 온 예언자는 임무를 완수하게 돌아가는 도중에 그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른 선지자의 유혹을 받아(18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떡과 물을 마심으로 열조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멸망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임무를 완수하였다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마치 선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의 폭풍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돌풍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재난은 도적처럼 임하고 신앙의 교만함으로 방심할 때 사탄의 유혹이 따르게 됩니다.
모세도 다윗도 솔로문도 이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유혹은 우리들의 약점을 잘 이용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명하심으로 금지시킨 일들을 늙은 선지자의 말에 들음으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경 이외의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사단의 영을 받아 스스로 속는 것이거나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자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하고 깨끗한 양심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구하다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된 말씀 이외에 어떠한 객관적인 계시도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 이외의 어떠한 계시라고 주장되는 것에도 미혹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뜻을 왜곡시킴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요17:26). 선한 양심으로 말씀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과 성령의 지혜로 무장함으로 거짓 교훈에 요동되지 않고 진리 가운데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분명히 받았고 그 계시의 예조까지 체험한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 그 대가는 죽음이었습니다.
불순종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릅니다. 거짓에 의한 유혹에 넘어간 유다의 예언자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그저 간과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 불순종에 따른 징계를 반드시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불순종한 자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20-22절). 두 예언자가 함께 먹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늙은 예언자를 들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예언자를 꾸짖게 하셨기 때문입니다(21절).
불순종은 확실히 벌을 받습니다(22절). 벌은 예기치 않았던 형태일지라도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해 선지자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사자는 본능적으로 먹이를 산산조각 내지만 유다에서 온 예언자를 죽이기만 하였을 뿐, 당나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자가 그저 굶주려 선지자를 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 대행자임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징계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사용하여 벌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벌은 분명히 사실로 나타납니다(25절). 이 장면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불순종한 죄의 결과는 슬픔입니다(26-30절). 하나님께서 늙은 예언자를 통해 시체를 처리시킴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형태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재 다짐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언자의 불행한 운명을 슬퍼하며 시체를 가족 묘지에 묻었습니다.
그가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서 음식을 먹은 것이 윤리적으로 악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한 것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로 인하여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그 과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문제였던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들음으로써 죽음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늙은 선지자도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기에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볍게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양심에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의인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징벌을 받게 됨을 보게 됩니다. 이는 성도 한 사람의 하나님 앞에서의 행위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가를 교훈하여 줍니다. 성도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여 언제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영육 간에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