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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10절로 20절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오늘 한날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여 주시고 크신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2장 10절로 20절 사이에서 아브라함, 그의 생애에서 첫 번째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주시는 싹을 벌써 보았습니다. 도착해 보니 안전하였고, 도착해 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적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뜻대로 살 때, 원수가 친구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음으로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는 정도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점점 남방으로 가더니'라고 기록하여 점점 애굽으로 가까이 가까이 갔습니다. 마침 그때 가뭄이 심하여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잠시 버리고 피신을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도 조금 양보하고 부드럽게 지나가야 되는 것이지 너무 곧이 곧대로 행하면 손해가 너무 크다라고 하여 타협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적당히 해도 된다는 것이 없습니다. 성도는 아무리 어려워도 약속의 땅에 있어야 되는 것이지 약속의 땅을 벗어나면 실패합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예수 떠난 심령은 살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차츰 차츰 남방으로 가다가 애굽 세상에까지 가게 되어 실패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안목으로는 아브라함의 계산이 잘 맞은 것처럼 보여집니다. 애굽에 가서 돈도 많이 벌었고, 나귀도 가져오고, 약대도 받았고, 노비도 받았고, 소도 받았고, 양도 많이 받았으니 수지 맞았습니다. 잘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방 왕, 바로에게 '네가 왜 그땅이냐'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성도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여러가지 좋은 것을 얻었지만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크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실패를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은 우리들이 세상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토록,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하지 않토록 하시기 위함 것입니다. 또 어떻게 해서 실패하느냐, 성도가 왜 실패하느냐, 그 이유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요, 또 실패를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려주시려고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사람을 변호해 주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우리들은 훌륭한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도 별 수 없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 때문에 아브라함은 긍휼을 입었고 회복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에도, 전적 은총으로 받았지만 가다가 실패하거나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실패를 했는가? 그 원인을 찾아 보겠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세상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있으므로 남방으로 갔습니다. 남방으로 가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브엘세바'라는 땅이있습니다. 이 브엘세바가 바로 이스라엘 땅과 애굽 땅의 경계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하는 신앙, 여러분, 그런 신앙을 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브엘세바라는 곳은 물이 잘 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대로 조금만 내려가서 우물물을 얻어서 이 어려운 때를 좀 면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점점 남방으로 갔습니다.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처럼 잠시 잠깐 닥친 환란 때문에 신앙을 중단하고 잠깐만 하고 육신의 일에 몰입할 때가 있습니다. 급한 일 때문이라며 잠깐만 하고 밤 예배를 빼먹고, 주일 한번 빼먹고 그러다가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이 그의 생각을 사로잡게 됩니다.
결국 어느날엔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사업이 '퍽'하고 깨지고 나서 두 손 들고 돌아옵니다. 건강이 '퍽'하고 깨지고, 자녀가 가더니 '퍽'하고 깨지고 나서 울면서 돌아옵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신앙보다 환경을 더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신앙보다 먹고 사는 일에 더 관심이 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바른 자세만 갖추면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속에서도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사렙다 과부를 통해서라도 입히시고 먹이시지 않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환란과 시험을 주어서 테스트를 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 신앙이 진짜 신앙인가 아닌가를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일평생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육신이 항상 편안하고 풍년이 들고 잘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걸어가도 기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대로 산다고 해서 기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믿고 걸어가도 경우에 따라 기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더 의지하라고, 하나님께 더 기도하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 확실히 맛보라고 기근이 있는 중에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어두운 밤에는 작은 불빛이라도 환하게 밝습니다. 이와 같이 기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확실한 증거를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해보지 않고,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지시한 약속의 땅에 도착했는데 기근이 들어 물이 없어 죽게 생겼는데 애굽으로 내려 갈까요? 말까요?" 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기도를 했더라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너는 거기 머물러 있어라. 내가 너에게 양식을 주리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방법이 한없이 많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나도 주실 수 있고, 반석에서 물도 내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애굽에 우거하려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도 해보지 않고 행동부터 시작했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애굽은 비가 오지 않아도 농사가 잘 되는 땅입니다. 나일강 근처가 얼마나 옥토인지 무엇을 심든지 잘 됩니다. 보통 하루에 한번씩 비가 꼭 오는데 두 시쯤 되면은 꼭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아 가물다 싶으면 애굽에 잠깐 내려갔다가 오자고 말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도 그 지방 사람들의 상식을 따른 겁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이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상식을 따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사람의 방법을 따르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뭄이 와서 버틸 수가 없으니 흉년이 없는 애굽에 잠깐 갔다오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영 살려고 이민 가는 것이 아니라 우거하려 갔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왜 실패했습니까?
기도없이, 하나님의 보장없이 자기 맘대로 갔다는 것과 잠시 우거할 양으로 약간 양보할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곡식이 안될 지경이 됐으니, 곧 핑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됐으니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풀도 다 말라 죽어가니 여기서 양을 어떻게 먹이며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으리' 핑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흔히 잘 그럽니다. 이 정도 되면 안 그럴 사람 없다, 삼일 다 굶으면 담 안 넘을 사람 없다는데 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래도 성도는 굶어도 담을 타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 다 그럴지라도 우리 성도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훌륭해 보이지만 이 사람도 그 당시, 그 때에는 믿음이 어린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수단으로, 세상의 생각대로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잠시만 살다가 오면 되겠지' 하며 마귀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또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했으니 가기도 쉬운 겁니다. 그래서인지 아브라함은 기도도하지 아니하고 그만 내려가 버렸습니다. 여기에 실패의 원인이 있습니다.
나오미도 세상으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고, 어떤 사람이 세상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고, 요나가 다시스로 내려가다가 풍랑을 만났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시험이 그냥 오는게 아닙니다. 하나님 곁을 떠나고 불순종하다가 실패하고, 환란을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시험이 많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세상을 선택할 것이냐, 재물을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보장없이, 하나님의 약속없이, 하나님의 말씀없이 애굽에 가니까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이 앞섰기 때문에 애굽에 가까이 가면 좋아야 되겠는데 '아! 이제 살았구나'싶어서 좋아야 되겠는데 반대로 불안해졌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애굽 가까이 가니 불안해졌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애굽에 가서 살면 무언가 찜찜합니다. 세상적으로 미끄러져 살면서도 성도는 심령의 갈등을 느낍니다. 이래 가지고 안되는데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때 깨달아야죠? 회개해야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근심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되게 했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를 근심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은 그때 불안을 인간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그 아내, 사라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뭡니까? 아내입니다. 왜 아내가 가장 소중합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내입니다. 가장 귀중한 선물인 아내가 가장 위험했습니다. 가장 귀중한 부인의 가장위험한 곳이 그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애굽으로 가면, 우리가 세상으로 가면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 위태롭습니다. 왜 위태롭습니까? 아리땁기 때문에 위태롭습니다. 못생겼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사실 아리따운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오히려 우리에게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바로가 뭐라고 책망했습니까? 네가 처음부터 아내라고 했더라면 내가 취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인데 네 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안심하고 취하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염려와는 달랐습니다. 여러분, 실패를 미리 예견하면 실패가 찾아오게 됩니다. '내가 아무래도 실패하지, 실패하지' 하면 꼭 실패를 합니다. 사람은 자기 말한 대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서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매였으며 네 입의 말로 잡히게 되었느니라'했고, 잠언서 12장 13절에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말한 대로 그대로 됐습니다. 13절에,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문제가 있지만 사라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내가 뭡니까? 성경적 아내는 돕는 자입니다. 남편이 진리에서 어긋 나갈 때, 진리대로 가도록 권면하는 것이 아내요, 돕는 것입니다. 삽비라는 남편, 아나니아가 범죄할 때, 진리대로 가도록 권면하지 아니하다가 함께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듣고 안듣고는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권면하고 충고해야 합니다. 권하고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책임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권면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다 함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족을 주시고, 형제를 주시고, 교회를 주신 것은, 서로가 약할 때에 붙잡아주며 도와주라고 주신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 말씀에서 어긋날 때, 충고 해주고 바르게 인도해 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목숨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 하여 거짓말을 정당화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때도 얼마든지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때에 애굽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생각도 애굽식으로 하고, 행동도 애굽식으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복일지라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복이었던 것이 큰 저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차라리 사라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괜찮았겠는데 아름다웠기 때문에 큰 실패의 짐이 됐습니다. 차라리 돈이나 명예가 없었더라면 괜찮은데 있었기 때문에 큰 실패의 짐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물질이나 지식이나 건강이나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 뜻대로 쓰지 않을 때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큰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악한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식이 많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라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애굽 사람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15절에,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함으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제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능한 자리에 빠지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없이 세상에 내려가는 성도는 완전한 무능자가 돼버리고 맙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한 마디 대꾸도 해보지 못하고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장없이 세상에서의 생활이란 실패의 자리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 애굽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없이, 하나님의 간섭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 빼앗길 수 밖에 없습니다.
16절에서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라함을 후대하므로 아브라함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소,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했습니다. 성도에게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내도 빼앗기고, 자신은 실컷 두들겨 맞고 했더라면 '아이고, 하나님! 살려주세요. 다시는, 다시는 이런 짓 않하겠습니다' 했을 텐데 거기서 아내는 빼앗겼지만 선물은 잔뜩 받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갈 때, 오히려 가난해지고, 오히려 고통이 많고 한다면 감사해야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세상적으로 갔는데도 양도, 소도, 나귀도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본문에, 아브라함이 이 때 기도했다는 말이 없고, 회개했다는 말이 없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가는 대로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올무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것을 얻으면 축복을 받았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아내를 주고 받은 물질이 어떻게 복이 됩니까?
그런데 다음 절, 말씀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17절과 18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니라. 바로가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에게 크게 책망받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가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책망 듣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들이 더 기록돼 있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배 밑창에서 잠자고 있는 요나에게 선장이 말하기를 "잠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 너희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실패입니까? 세상 사람에게 성도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적인 것이든,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든 세상 사람들에게 책망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졌고, 아브라함의 영광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 영광이 가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잃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실패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축원드립니다.
19절로 20절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그를 취하여 아내로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데 바로가 평안히 갈 수 있도록 잘 보내줬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여기서 이렇게 큰 부끄러움 당하느니 돌아가자' 아브라함은 그 때에 정신이 버쩍 들어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 때 평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움직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성도가 어느 때에 실패합니까? 믿음으로 살고, 은혜로 살아가는데도 역경이 있을 때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귀한 일을 많이 체험하고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고난에서 제외되지는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런 일 당할 때에 깨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방법으로 해결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았는데도 왜 이러지?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지?' 하는 마음이 생기면 슬쩍 여러분 마음속에 시험이 들어가지고 하나님 바라보는 마음은 사라지고 세상 바라보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역경에서 제외된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가나안에 살아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도 가끔씩 가끔씩 역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고 분명한 체험을 경험할 기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왜 실패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의논이 없었기 때문에 환경을 바라보고 자기를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고 기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떨 때는 채찍으로 같이 하시고, 어떨 때는 이방의 책망으로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경의 때에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바르게 알아서 세상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거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라고, 돌아오라'고 간섭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아브라함은 바로의 책망을 통해서 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이 욕을 해 오고, 우리의 신앙을 조롱해 오고, 우리의 생활을 조롱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인 줄을 알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간섭하셨습니다. 바로를 책망하셔서 아브라함을 돌아오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전부를 간섭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인생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간섭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나안에 살면서 역경을 당할 때에 더욱 기도하여 역경을 이기면 영광스런 승리를 주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승리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상처투성이의 승리입니다. 가정이 어려워졌고, 이방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하여 가나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상처투성이의 승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만 따르면 상처없는 참 승리를 주시지만 세상 방법으로 걸어가면 상처를 많이 당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중 당하는 역경을 믿음으로 해결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됨으로, 그 역경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분명한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