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6
여호수아 24장 14 - 18절
할렐루야!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오늘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좋은 일들만
생겨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일대의 결단을 촉구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상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양자택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중요한 것은 여호수아의 선언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는 그의 선언은 우리에게
신선하고도 강력한 충격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섬긴다는 것은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종교 행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하나는 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격적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 인격은 하나님이시고 상대적 인격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크고 높은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고 하셨고
예수님도 섬기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 인격을 절대화해서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겠다는 결단이라는 사실입니다.
(2) 경배한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종교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종교는 교주나 신앙의 대상을 따르고 숭배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 을 따르고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순종은 신앙의 알맹이와 같은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수아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까지엔 세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1) 잘못된 다수 속에서 내려야 하는 고독한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다수의 횡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다수가 타락한 다수이며 잘못된 다수일 때는 더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멋대로 살려는 사람은 다수인데 반해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적을 때 고민은 큰 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와 타협하고 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만 별나게 살 것이 있는가라는
회의와 좌절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런 정황 속에서 선언하고 결단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입니다.
(2)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지금 이 시간 이 자기에서 결단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결단은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오늘 이 시간 택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 집은 가족을 말합니다.
여호수아 자신은 이미 모세의 후계자로 부름받아 연단받고 훈련받은 사람이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남들이 다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을 다 버려도 자신은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입니다. 가족이 따라와 주어야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신만만하게 '나와 내 집은'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가족 중 하나가 잘못되면 서로 마음이 아픈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 중 하나가 불행해지면 온 가족이 함께 불행해지는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 중 하나가 잘 되면 함께 기뻐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믿는 예수를 남편이 믿어야 합니다.
이유는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믿는 예수를 자식들이 믿어야 합니다.
이유는 가족은 함께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가족 구성이 본문에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가장의 결단에 온 가족들이 말없이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좋은 일은 마음먹었을 때해야 합니다.
나쁜 일은 깊이 빠지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결단은 용기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지혜로운 결단이었고 믿음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그의 결단이 준 영향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선봉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백성들이 큰 소리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며
여호수아의 결단에 동조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린 여기서 지도자의 올바른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결단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실한 지도자의 말 한 마디는 태산과 같이 무겁습니다.
그가 이때까지 여호와를 성실히 섬겨왔지만 여기서 그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는 늘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성도는 신앙생활에 늘 새힘을 얻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는 현재의 신앙부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무궁한 새힘의 원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무엇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첫째 그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종이었다고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전에 모세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종이었을 때부터 열심으로 모세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열심으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을 보면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그가 하나님의 종 이전에 먼저 모세의 종으로 인정 받았다는데 주목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책임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합격했다는 사실도 중요시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길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다되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두 번째 주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4장 9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여호수아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성령께서 그와 함께 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그를 인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자기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인 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나는 변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악조건을 무릅쓰고 주님을 사랑할 때, 고통을 견디며 사명을 수행할 때, 손해를 보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때 주님은 나를 종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써 믿고 일하고 섬기는 사람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이여 !
세상 끝날까지 주님을 섬깁시다. 열심을 다해 일합시다.
그리고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
할렐루야!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오늘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좋은 일들만
생겨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일대의 결단을 촉구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상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양자택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중요한 것은 여호수아의 선언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는 그의 선언은 우리에게
신선하고도 강력한 충격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섬긴다는 것은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종교 행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하나는 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인격적 대상을 경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격적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 인격은 하나님이시고 상대적 인격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살아야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크고 높은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고 하셨고
예수님도 섬기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 인격을 절대화해서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겠다는 결단이라는 사실입니다.
(2) 경배한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종교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종교는 교주나 신앙의 대상을 따르고 숭배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 을 따르고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순종은 신앙의 알맹이와 같은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수아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까지엔 세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1) 잘못된 다수 속에서 내려야 하는 고독한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다수의 횡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다수가 타락한 다수이며 잘못된 다수일 때는 더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멋대로 살려는 사람은 다수인데 반해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적을 때 고민은 큰 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와 타협하고 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만 별나게 살 것이 있는가라는
회의와 좌절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런 정황 속에서 선언하고 결단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입니다.
(2)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지금 이 시간 이 자기에서 결단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결단은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오늘 이 시간 택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 집은 가족을 말합니다.
여호수아 자신은 이미 모세의 후계자로 부름받아 연단받고 훈련받은 사람이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남들이 다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을 다 버려도 자신은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입니다. 가족이 따라와 주어야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신만만하게 '나와 내 집은'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가족 중 하나가 잘못되면 서로 마음이 아픈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 중 하나가 불행해지면 온 가족이 함께 불행해지는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 중 하나가 잘 되면 함께 기뻐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믿는 예수를 남편이 믿어야 합니다.
이유는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믿는 예수를 자식들이 믿어야 합니다.
이유는 가족은 함께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가족 구성이 본문에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가장의 결단에 온 가족들이 말없이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좋은 일은 마음먹었을 때해야 합니다.
나쁜 일은 깊이 빠지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결단은 용기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지혜로운 결단이었고 믿음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그의 결단이 준 영향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선봉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백성들이 큰 소리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며
여호수아의 결단에 동조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린 여기서 지도자의 올바른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결단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실한 지도자의 말 한 마디는 태산과 같이 무겁습니다.
그가 이때까지 여호와를 성실히 섬겨왔지만 여기서 그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는 늘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성도는 신앙생활에 늘 새힘을 얻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는 현재의 신앙부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무궁한 새힘의 원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무엇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첫째 그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종이었다고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전에 모세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종이었을 때부터 열심으로 모세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열심으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을 보면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그가 하나님의 종 이전에 먼저 모세의 종으로 인정 받았다는데 주목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책임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합격했다는 사실도 중요시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길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다되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두 번째 주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4장 9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여호수아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성령께서 그와 함께 했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그를 인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자기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인 나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나는 변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불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악조건을 무릅쓰고 주님을 사랑할 때, 고통을 견디며 사명을 수행할 때, 손해를 보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때 주님은 나를 종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써 믿고 일하고 섬기는 사람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이여 !
세상 끝날까지 주님을 섬깁시다. 열심을 다해 일합시다.
그리고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