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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31-46
나라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며 목이 터지도록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의지하고 살아갈 조국이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한 것처럼
우리들이 영원토록 의지하며 살아갈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데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인 우리들이 그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하고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에 대한 우리 주님의 교훈입니다.
그 나라가 옵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옵니다.
오늘 본문에서(마태복음 24:42-51) 우리 주님은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42절).
둘째, “예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44절).
어떻게 예비합니까?
45절을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맡은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셋째,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45-46절).
49절에도 보면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을 경계합니다.
신비하게도 25장에서 이 사실을 매우 자세하게 예화를 들어 설명합니다.
첫 번째 비유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비유가 달란트비유입니다.
한 달란트이든 열 달란트이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세 번째 비유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염소와 달리 양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주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 대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24장에서 그날의 징조와 일어날 상황들을 자세히 이야기 하신 주님은
혹시라도 우리들이 그 나라를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하실까봐 25장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를 상속받는 성도들이 됩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차기 위해 만세를 불렀던 이 날입니다.
오후 예배가 3.1절 기념 예배라
3.1절의 역사와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는 찬양예배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를 빼앗겨서는 아니됩니다.
주어진 나라 아닙니까?
약속으로 받은 나라입니다.
상속받지 못하는 자가 한 병도 없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그 나라는 준비된 자들이 들어갑니다(25:1-13).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는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슬기로운 처녀만 신랑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미련한 처녀도 같이 기다렸습니다.
문제는 기다리기는 기다리는 데 미련한 처녀는 제대로 준비된 자세가 아닙니다.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신랑이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때에 비로소 기름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심지어는 불신자들 가운데에도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당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 더 있다가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평신도 시절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많이 들었습니다.
지옥에서 사단이 주관하는 가운데 악한 귀신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주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놈이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합시다.
이 과학 시대에 하나님이 어디 있으며,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사람들을 선동하도록 합시다.”
둘째 놈이 나섭니다.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 데 그런 거짓말을 합니까?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더 분명하게 믿는데
그거 안 될 소리입니다.
제 생각에는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천국 가는 길이 예수 믿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도 있다고 선동 합시다.
공자나 석가나 조상신이나 마호메트를 믿든지,
착한 일을 해도 천국 간다고 해야 예수 믿는 사람이 적어지고
지옥에 오는 수가 늘어나지요!”
셋째 놈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그거 안 될 말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인 것을 다 압니다.
역사를 봐도 그렇고, 잘 사는 날들을 봐도 그렇고,
또 실제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려고 나서보아도
우리들은 예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데
무슨 수로 그딴 소리를 합니까?
하나님도 살아계시고, 천국도 있으며,
또 그 하나님 나라 가는 길도 예수님을 믿는 방법밖에 없다고 바른 소리합시다.
다만 우리가 강조할 것은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좀 더 있다가
<이 다음에>,
<좀 더 있다가>라는 말을 사람들 마음속에 넣어주기로 합시다.”
누가 일등을 하였겠습니까?
누구의 것이 채택되었겠습니까?
<돈 벌고 난 다음에>,
<애들 대학 들어가고 나면>,
<졸업한 후에>,
<취직 한 후에>,
<퇴직하고 나면>,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
여러분 아시기 바랍니다.
<내일>, <내년>, <이 다음에>가 문제입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지혜로운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신랑 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유의하실 구절은
분명히 확인하셔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들도 신랑이 더디 오게 되자 졸며 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다 졸며 잤습니다.
분명히 지혜로운 처녀도 졸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된 자들이었습니다.
“신랑이로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미련한 처녀들의 등불이 꺼져 갑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기름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놀라서 허겁지겁 기름을 사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 사이에 신랑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러분!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나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전도 대상자들의 개인적인 종말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는 여러분!
지금 믿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시간을 강조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앞서 24장에서도
그 때와 그 시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마24:36).
신랑을 맞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마25:13).
미련한 처녀들도 신랑을 맞을 수 있는 신부의 자리를 확보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신랑을 기다렸지만 신랑을 맞지 못했습니다.
억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가 주어 졌는데도 말입니다.
왜 머뭇거립니까?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지금 바로 여기에서(Now and Here!)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에”라는 말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둘째, 받은 재능(달란트)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25:14-30).
우리가 왜 이 땅에 삽니까?
지금 주님 나라 가면 좋을 텐데....
일하라고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재능으로, 물질로, 사랑으로
일하라고...
주님은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달란트>라는 헬라어는 영어로 <달러>라는 화폐 단위로 번역되기도 합니다만
본래의 의미는 <재능>이라는 말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연속극을 통해서 보는 <탤런트>가 바로 그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탤런트가 있습니다.
우리말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재주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멀리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소유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오랜 후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을 불러 맡긴 달란트에 대한 결산을 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는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래도 배나 남긴 종들을 칭찬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한 달란트 맡은 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왜 나만 한 달란트냐고 생각하여 묻었는지?
성경대로 하면 ‘악하고 게을러서’ 묻어버렸는지?
아니면 자신의 재산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파 묻어버렸는지 모르지만
그는 한 달란트 그대로 들고 나옵니다.
그래서 가진 것 까지 빼앗기고 나라밖으로 쫓겨납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여 이득을 남겼더라면 …
안타깝습니다.
한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는 못 남겨도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한 달란트를 남기지 못해도
비록 지금은 이자율이 말이 아니지만 은행에라도 맡겼더라면 작은 변리라도 남겼더라면
칭찬을 못 받아도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 갈 수는 있었을 텐데
그는 결국 상속받는 종의 자리에서 영원한 바깥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여러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작은 재능이지만 감사하시고, 작은 직책이라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장로가 아니라서
집사가 아니라서
권사가 아니라서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불평도 그것이었습니다.
집사 직분, 성가대 직분, 교사 직분, 성도의 직분 귀히 여겨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직분이라도
주어진 재능과 기술, 지식과 능력을 구태여 쌓아두려고 하지도 말고
묻어두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지키려고 몸부림치다가 있는 것 까지 다 빼앗기지 마십시오.
달란트는 화폐 단위라고 했습니다.
돈은 돌아야 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달란트는 저장되는 것이 아니고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만족하며 묻어두려다 결국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선교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
3.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라도 사랑해야 합니다(25:31-46).
오늘의 결론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분류하십니다.
오른쪽에는 양을, 왼쪽에는 염소를 두십니다.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25 : 35,36)
이들은 반문합니다.
“어느 때에 저희가 그리하였습니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왼편에 앉은 염소의 무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반문 역시 똑 같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 우리가 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
그렇습니다.
가진 것은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더 큰 복을 받기 위한 방편입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우리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오른 편에 두시고
복 받을 자,
하나님 나라 상속자라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게 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회를 놓치시렵니까?
다음이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입니까?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전도 대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늦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달란트를 묻지 마십시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선행과 나눔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장래를 위한 일입니다.
참된 생명의 길입니다.
사실 이것이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며,
있는 것 위에 더욱 풍족하게 받는 비결입니다(마25:29).
아버지께 복을 받되, 창세전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는 비결입니다(마25:34).
오늘 뿐 아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이 평소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3.1절의 정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출처/손윤탁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