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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랑목사 (부천동광교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절) 이 말씀은 인간의 출처와 근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형상” Image이란 “닮은 꼴”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존재입니다.
26절에 보면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였는데 “모양대로”(likeness)란 ‘유사하게’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만이 하나님과의 교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랐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추리하는 능력”으로 보았고 영지주의자들은 “영적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도덕적인 판단력”이라 해석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적인 창의성”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스리라
사람은 자신의 실존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경이롭고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 입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판단력이 있고 창의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기적이지만 인간같은 기적은 없습니다. 시편기자가 “내가 주께 감사하옵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시139:14)고 하였습니다. 신통하고 오묘하여 감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윌리엄 섹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말했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훌륭한 예술작품인가! 이성에 있어서 얼마나 고상하며, 능력에 있어서 얼마나 무한한가, 형체와 운동에 있어서 얼마나 유연하고 인식에 있어서 얼마나 신적인가?”라고 격찬했습니다. 과연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하여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다스리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26절하) 나의 허락 없이는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내가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허락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는 것은 빛입니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빛은 희망이요 능력입니다. 주관한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바로왕이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창41:40) 요셉이 한 나라의 주관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리는 그 나라는 태평하고 풍부했습니다. “나라에 죄가 많으면 통치자가 자꾸 바뀌지만 슬기로운 사람이 다스리면 자리가 잡힌다”(공동번역 잠28:2)고 했습니다. 교회에 경건한 자가 없고 충실한 자가 없어지면 말이 많아집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시 12:4) 그들은 아무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어지면 어리석음이 판을 칩니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죄가 주관하지 못하는 것은 그 교회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은혜가 죄를 다스립니다. 그래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죄를 이길만한 은혜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다스리는 자로 오셨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 다스리는 것은 문란하지 않도록 보살피고 바로 잡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사람은 벌을 주고 병든자는 고치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카리스마로서 회중을 인도하고 치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광야교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다스렸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고 낮은 구름 기둥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나도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으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8:22-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개발하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28절) 여기서 말하는 ‘정복하라’는 말씀은 복종시키고 다스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개발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개발이란 개척하여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물적 인적자원을 작용시켜 경제적 가치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교육시켜 지능을 깨우쳐 주고 창의력을 북돋아 주는 것도 개발입니다. 산업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이 떨어진 나라를 개발도상국가라고 합니다.
인간 개발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한 것은 디모데를 영적으로 개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기 위하여”(딤후1:4-6)라고 했습니다. 잠자는 믿음을 깨우고 잠재된 은사를 불일듯이 일으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보시고 그에게 안수하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그의 귀가 열리고 혀에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습니다”(막7:34-35)
‘에바다!’ 란 열리라는 뜻입니다. 열리라고 명령하실 때 입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의 귀가 하나님을 말씀을 듣게 되고 그 입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열린 마음, 열린 사람, 열린 가정, 열린 교회가 개발됩니다. 닫힌 마음 닫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교회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3:8) 교회가 열려야 은혜가 임하고 말씀과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발보다 개방이 먼저입니다. 개방이 있어야 개발이 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끌어내 주었습니다(행5:19). 기도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개발됩니다. 기도문을 열면 능력이 임합니다.
겨울은 문을 닫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문을 여는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창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 막힌 것을 뚫고 눌린 것에서 해방되며 결박된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를 개발함에 있어 늦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기회는 지금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도다”(고후6:2) 내가 변하고 내가 새롭게 되는 시간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개발해야할 사람은 ‘너’가 아니라 ‘나’입니다.
1520법칙이 있습니다. 나 한사람이 변하면 내 주위 사람 5인이 변하고 5인이 변하면 20명이 변한다는 원리입니다. 내 집을 더 좋은 집으로,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길은 나의 개선입니다.
건강이 행복의 맥박입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다름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됩니다.
내 마음속에 박힌 돌맹이 가시나무를 뽑아내고 옥토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나게 하고 질려대신 화석류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쁨 감사 평화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나약함이나 불만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안에 영적인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영적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나쁜 조건이 생겨나도 최선의 결과를 추구합니다. 노숙자 의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노숙을 동정은 하나 장려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경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먹고 살 것이 없었으니까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워지는 대한민국의 경제개발계획은 고도의 성장과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국민 소득 1백만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경제발전은 경제개발시대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원자재를 수입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개발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냄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세계 최고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건국되었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시조들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상을 기초로 국민의 정부를 세웠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능력을 최대한 인정하고 있어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개인의 은사를 개발하고 그 능력을 신장시키는 곳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신나고 스릴을 느껴야 합니다. 이상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자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여호와요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로 모든 것을 개발하는 자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절) 이 말씀은 인간의 출처와 근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형상” Image이란 “닮은 꼴”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존재입니다.
26절에 보면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였는데 “모양대로”(likeness)란 ‘유사하게’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만이 하나님과의 교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랐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추리하는 능력”으로 보았고 영지주의자들은 “영적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도덕적인 판단력”이라 해석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적인 창의성”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스리라
사람은 자신의 실존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경이롭고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 입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판단력이 있고 창의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기적이지만 인간같은 기적은 없습니다. 시편기자가 “내가 주께 감사하옵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시139:14)고 하였습니다. 신통하고 오묘하여 감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윌리엄 섹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말했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훌륭한 예술작품인가! 이성에 있어서 얼마나 고상하며, 능력에 있어서 얼마나 무한한가, 형체와 운동에 있어서 얼마나 유연하고 인식에 있어서 얼마나 신적인가?”라고 격찬했습니다. 과연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하여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다스리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26절하) 나의 허락 없이는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내가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허락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는 것은 빛입니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빛은 희망이요 능력입니다. 주관한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바로왕이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창41:40) 요셉이 한 나라의 주관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리는 그 나라는 태평하고 풍부했습니다. “나라에 죄가 많으면 통치자가 자꾸 바뀌지만 슬기로운 사람이 다스리면 자리가 잡힌다”(공동번역 잠28:2)고 했습니다. 교회에 경건한 자가 없고 충실한 자가 없어지면 말이 많아집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시 12:4) 그들은 아무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어지면 어리석음이 판을 칩니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죄가 주관하지 못하는 것은 그 교회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은혜가 죄를 다스립니다. 그래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죄를 이길만한 은혜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다스리는 자로 오셨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 다스리는 것은 문란하지 않도록 보살피고 바로 잡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사람은 벌을 주고 병든자는 고치고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카리스마로서 회중을 인도하고 치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광야교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다스렸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고 낮은 구름 기둥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나도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으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8:22-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개발하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28절) 여기서 말하는 ‘정복하라’는 말씀은 복종시키고 다스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개발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개발이란 개척하여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물적 인적자원을 작용시켜 경제적 가치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교육시켜 지능을 깨우쳐 주고 창의력을 북돋아 주는 것도 개발입니다. 산업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이 떨어진 나라를 개발도상국가라고 합니다.
인간 개발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한 것은 디모데를 영적으로 개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기 위하여”(딤후1:4-6)라고 했습니다. 잠자는 믿음을 깨우고 잠재된 은사를 불일듯이 일으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보시고 그에게 안수하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그의 귀가 열리고 혀에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습니다”(막7:34-35)
‘에바다!’ 란 열리라는 뜻입니다. 열리라고 명령하실 때 입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의 귀가 하나님을 말씀을 듣게 되고 그 입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열린 마음, 열린 사람, 열린 가정, 열린 교회가 개발됩니다. 닫힌 마음 닫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교회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3:8) 교회가 열려야 은혜가 임하고 말씀과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발보다 개방이 먼저입니다. 개방이 있어야 개발이 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끌어내 주었습니다(행5:19). 기도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개발됩니다. 기도문을 열면 능력이 임합니다.
겨울은 문을 닫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문을 여는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창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 막힌 것을 뚫고 눌린 것에서 해방되며 결박된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를 개발함에 있어 늦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기회는 지금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도다”(고후6:2) 내가 변하고 내가 새롭게 되는 시간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개발해야할 사람은 ‘너’가 아니라 ‘나’입니다.
1520법칙이 있습니다. 나 한사람이 변하면 내 주위 사람 5인이 변하고 5인이 변하면 20명이 변한다는 원리입니다. 내 집을 더 좋은 집으로,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길은 나의 개선입니다.
건강이 행복의 맥박입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다름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됩니다.
내 마음속에 박힌 돌맹이 가시나무를 뽑아내고 옥토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나게 하고 질려대신 화석류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쁨 감사 평화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나약함이나 불만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안에 영적인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영적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나쁜 조건이 생겨나도 최선의 결과를 추구합니다. 노숙자 의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노숙을 동정은 하나 장려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경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먹고 살 것이 없었으니까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워지는 대한민국의 경제개발계획은 고도의 성장과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국민 소득 1백만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경제발전은 경제개발시대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원자재를 수입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개발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냄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세계 최고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건국되었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시조들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상을 기초로 국민의 정부를 세웠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능력을 최대한 인정하고 있어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개인의 은사를 개발하고 그 능력을 신장시키는 곳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신나고 스릴을 느껴야 합니다. 이상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자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여호와요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로 모든 것을 개발하는 자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