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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영목사 (부천제일교회)
기도를 많이 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섬기시는 장로님이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를 잘 섬기니까 일생 중에 내가 너에게 이루어 줄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을 나에게 주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어 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생각해 보니까 대단한 기회를 얻었는데 경솔하게 세 가지 소원을 말씀드리기가 아무래도 좀 그래서 ''하나님, 제가 깊이 생각해보고 더 기도 많이 해보고 그리고 세 가지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 아뢸 시간을 연기했다고 합니다. 한참 생각해보고, 또 기도 열심히 해보고 나서 첫 번째 기도제목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장로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대접하고, 영접하고, 또 구역예배를 드리거나 혹은 모임이 있을 때, 저희 집이 너무 협소하고, 너무 낙후되어서 미안하고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번듯한 집 하나 주십시오.''라고 간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를 한다면 내가 이루어 주리라.'' 응답을 하셨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서 번듯한 집 하나가 생겨나더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깊이 생각하고 간구하기를 ''성경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합니다. 저를 건강케 해주십시오.''라고 간구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러면 건강하게 해주마.'' 그랬는데 하여간에 이런 저런 연후로 해서 청춘처럼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감사하다'' 생각을 했지만, 걱정이 있어요. 이제 하나가 남았어요. 이제 한 가지 제목을 무얼 하나님께 구해서 노후에 행복하게 살까? 깊이 깊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께 답했답니다. ''하나님, 저와 저의 아내는 벌써 60이 되었습니다. 송구합니다만 저보다 20살 젊은 아내 하나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약속을 했으니까 주어야지.''라고 말씀하더랍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 날 저녁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잘 일어나지지 않아요. ''이상하다'' 생각하고, 겨우 겨우 기어가서 화장실의 거울을 보니까 자기 얼굴이 80이 넘는 얼굴이더랍니다. ''아하! 젊은 아내를 달라고 그랬더니 나를 20살 늙게 만들었구나.'' 이것을 알고는 후회막급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로 어떤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하시는지요.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기 전에 아마 무엇인가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되는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역대하 6장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내용을 다 낱낱이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실제는 다 봉독해야 되겠지만 결론 부분만 봉독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란,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는 방편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기도의 정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의 소망을 두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게 하는 간구가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바른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14절 말씀에 보면,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하는 말씀, 또 15절 말씀 보면,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되''하는 말씀이 있구요, 16절에는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또 17절에는 ''하신 말씀을 확실하게 하옵소서'' 그랬습니다. 솔로몬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언약한 언약, 그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소원은 자기 마음의 바램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된 존재요, 완전치 못한 존재입니다. 죄 되고 완전치 못한 존재의 소원, 이것 또한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만은 꼭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너에게 유익한 것이 없다하실 수도 있고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가시와 문제만큼은 꼭 해결을 받아야 하고, 지금 내가 당하는 상황은 벗어나야 좋을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너에게 적절한 것이다. 그걸 그대로 지녀라. 그 일을 너는 경험하라''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곧 십자가를 질 것이다.'' 그 당시에 사형하는 방법 중에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십자가형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받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 한 마음이겠지만 그 중에 베드로가 수제자이고 성격이 급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 합니다. ''주님, 주님이 십자가에 가셔서 처형당하는 것을 제가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감람산에 가서 예수님은 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 그랬는데 제자들은 자꾸만 자고 있었어요. 성경은 꼭 제자들이 이런 기도를 했다고 기록된 바는 없습니다만 유추해보건데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예수님 건강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면케 하시고 오른팔에다가 세상 권세 다 맡겨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는 자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자고 했을 거예요. 그건 성경 마태복음 16장 23절을 근거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랬습니다. 그리스어로 ''에피티마오''하는 이 말은 사단에게만 쓰는 강력하게 쫓아내고자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예수님이 말씀한 그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여러분 한번 구분해 보실까요? 사람이 베드로의 생각입니다. 베드로의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입니다. ''하나님, 내 소원 들어주십시오.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데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나로 하여금 중요한 직책을 맡게 하옵시고, 지금 예수님이 뭔가 착각을 하시는데 십자가 지려고 하는 생각을 빨리 잊어버리게 하옵시고, 그가 오직 권좌의 자리에 앉음을 위하여 도모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 열두 제자, 우리 공동체 앞으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게 하옵소서.''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의 일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아들은 예수 하나 밖에 없다. 독생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아들을 인류를 위하여 타인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내놓느라.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극악무도한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는 십자가 형틀에서 희생되어야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왜 이런 하나님의 일은 도모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도모하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보다 더 클 것입니다. 이건 비교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여하시고 싶은 것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비교해 보면, 이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것들이고, 지혜로운 것들입니다. 이것을 솔로몬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솔로몬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언약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솔로몬에게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이 열거하신 언약에만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경험했습니다. 아직 어린 시절에 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게 될 때, 그는 산당 제사를 지내는데 일천 마리의 제물 양을 가지고 가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러분, 일천 마리의 양을 번제로 드리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 양을 다 잡아서 피를 빼고, 각을 떠서 다 태워 제가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천 번을 했으니 얼마나 오래 기도했겠습니까? 이러한 기도하는 솔로몬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아,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 솔로몬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왕이 됩니다만 제가 유약하고 지혜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할 수 있게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흡족하셔서 구하지 않아도 주고 싶었는데 그것을 구하니까 준비하고 있는 것을 바라니까 지혜를 주면서 얼마나 기쁘셨는지 ''네가 구하지 않는 것까지 너에게 주노라. 부귀와 영화도 너에게 주겠노라.'' 그랬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면 ''국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군사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백성을 잘 먹이기 위해서 경제를 부요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지 마시고 우리에게 연벽을 면케 하옵시며, 또한 나도 장수케 하셔서 나로 하여금 나라를 오래 오래 다스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런걸 하나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만 구했으니 너 이전에도 너보다 더 부귀영화 누린 왕이 없을 것이고, 너 이후에도 너만큼 부귀영화를 누릴 왕은 없게 너에게 해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언약의 소망을 들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또한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영성회복을 위해 하나님 앞에 진실로 진실로 간구하다보니까 왕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기도까지 하게 됩니다. 36절 말씀 보면,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 붙이시며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도'' 38절에 보면, ''자기를 사로잡아 적국의 땅에서 온 맘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저희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용서하옵소서'' 왕은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왕은 이런 생각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왕은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어찌 올리겠습니까? 나라가 망하더라도 백성이 다 포로로 잡혀가서 그야말로 노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아버지, 그런 채찍을 치시더라도 백성의 영성을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께서 솔로몬의 기도 그대로 기도를 드린다면, 이렇습니다.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사지가 멀쩡할 때,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막상 누워서 나의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서 내가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내 영성을 회복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에게 병을 주신 은혜에 더욱 감사합니다. 병석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8장 8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려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 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참 안타까운 심방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시다가 트렁크에서 무엇을 꺼낼 것이 있어서 차를 차선 밖으로 세우셔서 트렁크를 열고 뭘 꺼내는 중에 다른 차가 와서 그 사람을 쳐버렸습니다. 그 분은 장군같이 건장한 분입니다. 인격이 매우 수려하고 매사가 참 성실한 분입니다. 병석에 누워 있는데 가 보았더니 아예 장단지 다리를 둘 다 잘라 놓았습니다. 저를 보자 그 큰 눈에 눈물이 주룩 주룩 흐릅니다.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기도할 제목이 많지요. 하나님 기적을 베풀어서 두 다리를 멀쩡하게 회복해 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열정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제는 육체를 버리게 하옵소서. 영의 차원으로 이 사랑하는 아들을 승화시켜 주옵소서. 이젠 인생의 시작을 영적인 인생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하옵소서.'' 저도 눈물을 참느라 애를 썼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의 말씀을 봉독하고 위로하고 돌아왔습니다. 목사에게도 애정이 있어요. 감정이 있어요. 목사에게도 인간적 면이 있다고요.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학적 이론에서 그렇습니까? 신앙적 논리가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교리적 체계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올시다. 이것은 당연히 일어나야 할 사건이요, 또한 이루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 일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성경 봉독한 말씀을 보면, ''돌아 오라 돌아오거든, 회복되거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유다가 몰락하던 그 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이 뜨거운 부저로 지져 다 뽑혔습니다. 그리고 또한 백성들은 오랏줄에 묶여서 낯설고, 산설고, 물설은 저 수억만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솔로몬의 상상 속에 나라의 마지막 그 참혹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그들은 바벨론에 가 포로 생활하면서 70년 동안에 영성을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연고라. 우리의 포로의 비참한 이런 연고라. 그들은 말씀을 집대성하고, 성전 건축을 결심하며,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고, 말씀을 자녀에게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진정한 우리가 자유인이 된다는 사실로 알고 그들은 귀향하여 영적 회복을 이루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유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관점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침해해서 자기의 군무로 삼고, 노예화하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그것으로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저 위대한 아메리칸 드림, 그 넓은 목화밭에 노동력이 필요할 때, 아프리카의 흑인을 사다가 그 목화밭에 집어넣어서 말만 할 줄 알지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흑인을 길렀습니다. 그 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위 영토주의에 의해서 흑인들의 자녀가 모두 미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노예 관리제도가 바뀌었습니다. 본국은 끌어오지 않아요. 관리가 복잡해요. 각각 그대로 두고 문화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정신은 빼고 물질가치로 집어넣어 버립니다. 공동체적인 민족이라던가 국가관을 빼버리고 개인주의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리고 감성적이며 본능위주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IT 정보와 자본으로 인간을 관리해가는 것이 오늘날 강대국이 하는 행동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포로입니까? 자유입니까? 우리는 지금 정신이 중요합니까? 육신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영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내 일생동안 한 시대를 사는 세상 것이 더 중요합니까? 오늘 하나님의 선교의 목표는 영성회복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오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데 하나님의 선교의 목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간 포로생활하고, 돌아와서 영성회복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돈의 노예가 되고, 육신의 노예가 되고, 쾌락과 본능에 종살이하며, 철저한 이기주의가 되어서 개인주의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야 하느냔 말이에요. 이때야말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영성회복을 위해서 기도할 때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치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신다.'' ''하나님, 우리나라가 타국과 전쟁할 때 아주 박살을 내시옵소서. 영적으로 제대로 잘못되거든 하나님, 채찍을 치시옵소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은 24절, 25절도 똑같은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 빌면 간구대로 하옵소서.'' 25절에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똑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26절, 27절 말씀 보면, ''이 땅에 비가 오지 않게 될 때에'' 그 당시에 비라고 하는 것은 풍요, 경제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경제가 형편없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비를 주지 마옵소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가고 하나님께 돌아오거든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경제 문제가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문제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솔로몬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그 이후의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8절과 31절 말씀도 같습니다. 이 땅의 기근이나 온역이나 재앙이나 질병이 오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질병의 가시로 찌르시던지 아니면 온역, 재앙의 채찍으로 치시던지,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참기 어려울 정도의 비통스러운 어려운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찌르시던지 하여지간에 우리로 하여금 영성을 바르게 하여달라''고 간곡히 기도하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에 나가 기도하는 기도문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해 왔으며, 앞으로 기도해야 될 것인가? 육을 위한 영이냐? 영을 위한 육이냐? 순간을 위한 기도냐? 영생을 위한 기도를 할 것이냐를 판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응답해 주기 위하여 듣고 있습니다. ''구하라 주고 싶다. 그리고 거기 준비해 두었으니 찾아가라. 또 하나 문빗장을 열어 놓았다. 두드리라는 말은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내 앞으로 오라.'' 이런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자 마라. 이런 것을 가지고 제목 삼아 기도하지 마라.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시지 않느냐?'' 그런고로 또 말씀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 달라 하면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하면 돌을 내주는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악한 자 아버지라도 아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세요. 여러분, 하늘 창고를 열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늘의 키로 열어야 합니다. 하늘 창고를 땅의 키로는 열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이제 결론 부분으로 이렇게 들어갑니다. ''주의 종들에 위한 기도와 그리고 은혜를 아는 백성 되게 하옵소서.''하는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기쁨과 행복은 그리고 사랑은 깨달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많이 입고도 영적 무지로 깨닫지 못하면, 기쁨도 감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아주 아름다운 약을 준비해서 먹으려고 할 때,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자기 몸에 유익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사랑은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생활을 되돌아보십시다. ''내가 영적 지각이 모자라 아내의 사랑을 남편의 사랑을, 그리고 아내의 은혜를 남편의 은혜를, 또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연고로 원망하며 늘 내가 불만으로 살아갔구나. 그런고로 불행했구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셉은 바로의 궁전의 별채에서 그 타향에서 열한 자기 형제를 만납니다. 성경대로 말씀드리면, 목을 어긋 맞추고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이렇게 감사합니다. ''형들이여, 두려워 마옵소서. 형들이여, 근심 마옵소서.'' 이 말속에 감사의 언어가 다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들이여, 감사합니다. 은혜가 큽니다. 내가 형들을 위문하러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음식을 준비해 갔을 때, 나를 물 없는 웅덩이에 떠밀어 주신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형님. 형들이여, 감사합니다. 나를 인신매매 상들에게 팔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노예로 팔아주신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보디발의 아내여, 고맙다. 나에게 유혹을 하다가 내가 유혹을 뿌리치니까 나를 오히려 모함해서 억울하게 옥살이 시킨 것,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고로 내가 지금 총리가 되었고, 그런고로 형제와 아버지의 잡수실 식량을 마음껏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요셉은 은혜를 아는 지각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그야말로 불행 중에 불행, 고통중의 고통의 삶을 행복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미래, 영적 지각을 가지고 은혜로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출애굽을 하다가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 같은 시각으로 보시겠습니까?
42절 말씀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은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가 있고요. 그리고 그는 기도의 마지막을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은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다윗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너의 대대손손 왕의 대를 이어가게 하겠다. 영구토록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랬습니다. 기도는 소망을 성취하는 열쇠입니다. 솔로몬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면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구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하여 소망이 성취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섬기시는 장로님이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를 잘 섬기니까 일생 중에 내가 너에게 이루어 줄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을 나에게 주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어 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생각해 보니까 대단한 기회를 얻었는데 경솔하게 세 가지 소원을 말씀드리기가 아무래도 좀 그래서 ''하나님, 제가 깊이 생각해보고 더 기도 많이 해보고 그리고 세 가지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 아뢸 시간을 연기했다고 합니다. 한참 생각해보고, 또 기도 열심히 해보고 나서 첫 번째 기도제목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장로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대접하고, 영접하고, 또 구역예배를 드리거나 혹은 모임이 있을 때, 저희 집이 너무 협소하고, 너무 낙후되어서 미안하고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번듯한 집 하나 주십시오.''라고 간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를 한다면 내가 이루어 주리라.'' 응답을 하셨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서 번듯한 집 하나가 생겨나더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깊이 생각하고 간구하기를 ''성경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합니다. 저를 건강케 해주십시오.''라고 간구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러면 건강하게 해주마.'' 그랬는데 하여간에 이런 저런 연후로 해서 청춘처럼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감사하다'' 생각을 했지만, 걱정이 있어요. 이제 하나가 남았어요. 이제 한 가지 제목을 무얼 하나님께 구해서 노후에 행복하게 살까? 깊이 깊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께 답했답니다. ''하나님, 저와 저의 아내는 벌써 60이 되었습니다. 송구합니다만 저보다 20살 젊은 아내 하나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약속을 했으니까 주어야지.''라고 말씀하더랍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 날 저녁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잘 일어나지지 않아요. ''이상하다'' 생각하고, 겨우 겨우 기어가서 화장실의 거울을 보니까 자기 얼굴이 80이 넘는 얼굴이더랍니다. ''아하! 젊은 아내를 달라고 그랬더니 나를 20살 늙게 만들었구나.'' 이것을 알고는 후회막급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로 어떤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하시는지요.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기 전에 아마 무엇인가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되는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역대하 6장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내용을 다 낱낱이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실제는 다 봉독해야 되겠지만 결론 부분만 봉독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란,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는 방편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기도의 정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의 소망을 두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게 하는 간구가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바른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14절 말씀에 보면,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하는 말씀, 또 15절 말씀 보면,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되''하는 말씀이 있구요, 16절에는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또 17절에는 ''하신 말씀을 확실하게 하옵소서'' 그랬습니다. 솔로몬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언약한 언약, 그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소원은 자기 마음의 바램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된 존재요, 완전치 못한 존재입니다. 죄 되고 완전치 못한 존재의 소원, 이것 또한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만은 꼭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너에게 유익한 것이 없다하실 수도 있고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가시와 문제만큼은 꼭 해결을 받아야 하고, 지금 내가 당하는 상황은 벗어나야 좋을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너에게 적절한 것이다. 그걸 그대로 지녀라. 그 일을 너는 경험하라''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곧 십자가를 질 것이다.'' 그 당시에 사형하는 방법 중에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십자가형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받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 한 마음이겠지만 그 중에 베드로가 수제자이고 성격이 급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 합니다. ''주님, 주님이 십자가에 가셔서 처형당하는 것을 제가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감람산에 가서 예수님은 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 그랬는데 제자들은 자꾸만 자고 있었어요. 성경은 꼭 제자들이 이런 기도를 했다고 기록된 바는 없습니다만 유추해보건데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예수님 건강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면케 하시고 오른팔에다가 세상 권세 다 맡겨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는 자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자고 했을 거예요. 그건 성경 마태복음 16장 23절을 근거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랬습니다. 그리스어로 ''에피티마오''하는 이 말은 사단에게만 쓰는 강력하게 쫓아내고자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예수님이 말씀한 그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여러분 한번 구분해 보실까요? 사람이 베드로의 생각입니다. 베드로의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입니다. ''하나님, 내 소원 들어주십시오.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데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나로 하여금 중요한 직책을 맡게 하옵시고, 지금 예수님이 뭔가 착각을 하시는데 십자가 지려고 하는 생각을 빨리 잊어버리게 하옵시고, 그가 오직 권좌의 자리에 앉음을 위하여 도모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 열두 제자, 우리 공동체 앞으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게 하옵소서.''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의 일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아들은 예수 하나 밖에 없다. 독생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아들을 인류를 위하여 타인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내놓느라. 그리고 이 세상에 가장 극악무도한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는 십자가 형틀에서 희생되어야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왜 이런 하나님의 일은 도모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도모하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보다 더 클 것입니다. 이건 비교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여하시고 싶은 것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비교해 보면, 이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것들이고, 지혜로운 것들입니다. 이것을 솔로몬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솔로몬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언약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솔로몬에게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이 열거하신 언약에만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경험했습니다. 아직 어린 시절에 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게 될 때, 그는 산당 제사를 지내는데 일천 마리의 제물 양을 가지고 가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러분, 일천 마리의 양을 번제로 드리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 양을 다 잡아서 피를 빼고, 각을 떠서 다 태워 제가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천 번을 했으니 얼마나 오래 기도했겠습니까? 이러한 기도하는 솔로몬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아,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 솔로몬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왕이 됩니다만 제가 유약하고 지혜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할 수 있게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흡족하셔서 구하지 않아도 주고 싶었는데 그것을 구하니까 준비하고 있는 것을 바라니까 지혜를 주면서 얼마나 기쁘셨는지 ''네가 구하지 않는 것까지 너에게 주노라. 부귀와 영화도 너에게 주겠노라.'' 그랬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면 ''국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군사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백성을 잘 먹이기 위해서 경제를 부요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지 마시고 우리에게 연벽을 면케 하옵시며, 또한 나도 장수케 하셔서 나로 하여금 나라를 오래 오래 다스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텐데 너는 그런걸 하나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만 구했으니 너 이전에도 너보다 더 부귀영화 누린 왕이 없을 것이고, 너 이후에도 너만큼 부귀영화를 누릴 왕은 없게 너에게 해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언약의 소망을 들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또한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영성회복을 위해 하나님 앞에 진실로 진실로 간구하다보니까 왕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기도까지 하게 됩니다. 36절 말씀 보면,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 붙이시며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도'' 38절에 보면, ''자기를 사로잡아 적국의 땅에서 온 맘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저희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용서하옵소서'' 왕은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왕은 이런 생각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왕은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어찌 올리겠습니까? 나라가 망하더라도 백성이 다 포로로 잡혀가서 그야말로 노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아버지, 그런 채찍을 치시더라도 백성의 영성을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께서 솔로몬의 기도 그대로 기도를 드린다면, 이렇습니다.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사지가 멀쩡할 때,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막상 누워서 나의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서 내가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내 영성을 회복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에게 병을 주신 은혜에 더욱 감사합니다. 병석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8장 8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려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 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참 안타까운 심방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시다가 트렁크에서 무엇을 꺼낼 것이 있어서 차를 차선 밖으로 세우셔서 트렁크를 열고 뭘 꺼내는 중에 다른 차가 와서 그 사람을 쳐버렸습니다. 그 분은 장군같이 건장한 분입니다. 인격이 매우 수려하고 매사가 참 성실한 분입니다. 병석에 누워 있는데 가 보았더니 아예 장단지 다리를 둘 다 잘라 놓았습니다. 저를 보자 그 큰 눈에 눈물이 주룩 주룩 흐릅니다.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기도할 제목이 많지요. 하나님 기적을 베풀어서 두 다리를 멀쩡하게 회복해 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열정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제는 육체를 버리게 하옵소서. 영의 차원으로 이 사랑하는 아들을 승화시켜 주옵소서. 이젠 인생의 시작을 영적인 인생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하옵소서.'' 저도 눈물을 참느라 애를 썼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의 말씀을 봉독하고 위로하고 돌아왔습니다. 목사에게도 애정이 있어요. 감정이 있어요. 목사에게도 인간적 면이 있다고요.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학적 이론에서 그렇습니까? 신앙적 논리가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교리적 체계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올시다. 이것은 당연히 일어나야 할 사건이요, 또한 이루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 일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성경 봉독한 말씀을 보면, ''돌아 오라 돌아오거든, 회복되거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유다가 몰락하던 그 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이 뜨거운 부저로 지져 다 뽑혔습니다. 그리고 또한 백성들은 오랏줄에 묶여서 낯설고, 산설고, 물설은 저 수억만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솔로몬의 상상 속에 나라의 마지막 그 참혹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그들은 바벨론에 가 포로 생활하면서 70년 동안에 영성을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연고라. 우리의 포로의 비참한 이런 연고라. 그들은 말씀을 집대성하고, 성전 건축을 결심하며,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고, 말씀을 자녀에게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진정한 우리가 자유인이 된다는 사실로 알고 그들은 귀향하여 영적 회복을 이루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유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관점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침해해서 자기의 군무로 삼고, 노예화하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그것으로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저 위대한 아메리칸 드림, 그 넓은 목화밭에 노동력이 필요할 때, 아프리카의 흑인을 사다가 그 목화밭에 집어넣어서 말만 할 줄 알지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흑인을 길렀습니다. 그 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위 영토주의에 의해서 흑인들의 자녀가 모두 미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노예 관리제도가 바뀌었습니다. 본국은 끌어오지 않아요. 관리가 복잡해요. 각각 그대로 두고 문화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정신은 빼고 물질가치로 집어넣어 버립니다. 공동체적인 민족이라던가 국가관을 빼버리고 개인주의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리고 감성적이며 본능위주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IT 정보와 자본으로 인간을 관리해가는 것이 오늘날 강대국이 하는 행동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포로입니까? 자유입니까? 우리는 지금 정신이 중요합니까? 육신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영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내 일생동안 한 시대를 사는 세상 것이 더 중요합니까? 오늘 하나님의 선교의 목표는 영성회복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오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데 하나님의 선교의 목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간 포로생활하고, 돌아와서 영성회복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돈의 노예가 되고, 육신의 노예가 되고, 쾌락과 본능에 종살이하며, 철저한 이기주의가 되어서 개인주의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야 하느냔 말이에요. 이때야말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영성회복을 위해서 기도할 때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영적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치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신다.'' ''하나님, 우리나라가 타국과 전쟁할 때 아주 박살을 내시옵소서. 영적으로 제대로 잘못되거든 하나님, 채찍을 치시옵소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은 24절, 25절도 똑같은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 빌면 간구대로 하옵소서.'' 25절에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똑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26절, 27절 말씀 보면, ''이 땅에 비가 오지 않게 될 때에'' 그 당시에 비라고 하는 것은 풍요, 경제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경제가 형편없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비를 주지 마옵소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가고 하나님께 돌아오거든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경제 문제가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문제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솔로몬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그 이후의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8절과 31절 말씀도 같습니다. 이 땅의 기근이나 온역이나 재앙이나 질병이 오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질병의 가시로 찌르시던지 아니면 온역, 재앙의 채찍으로 치시던지,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참기 어려울 정도의 비통스러운 어려운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찌르시던지 하여지간에 우리로 하여금 영성을 바르게 하여달라''고 간곡히 기도하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에 나가 기도하는 기도문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해 왔으며, 앞으로 기도해야 될 것인가? 육을 위한 영이냐? 영을 위한 육이냐? 순간을 위한 기도냐? 영생을 위한 기도를 할 것이냐를 판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응답해 주기 위하여 듣고 있습니다. ''구하라 주고 싶다. 그리고 거기 준비해 두었으니 찾아가라. 또 하나 문빗장을 열어 놓았다. 두드리라는 말은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내 앞으로 오라.'' 이런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자 마라. 이런 것을 가지고 제목 삼아 기도하지 마라.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시지 않느냐?'' 그런고로 또 말씀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 달라 하면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하면 돌을 내주는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악한 자 아버지라도 아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세요. 여러분, 하늘 창고를 열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늘의 키로 열어야 합니다. 하늘 창고를 땅의 키로는 열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이제 결론 부분으로 이렇게 들어갑니다. ''주의 종들에 위한 기도와 그리고 은혜를 아는 백성 되게 하옵소서.''하는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기쁨과 행복은 그리고 사랑은 깨달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많이 입고도 영적 무지로 깨닫지 못하면, 기쁨도 감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아주 아름다운 약을 준비해서 먹으려고 할 때,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자기 몸에 유익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사랑은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생활을 되돌아보십시다. ''내가 영적 지각이 모자라 아내의 사랑을 남편의 사랑을, 그리고 아내의 은혜를 남편의 은혜를, 또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연고로 원망하며 늘 내가 불만으로 살아갔구나. 그런고로 불행했구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셉은 바로의 궁전의 별채에서 그 타향에서 열한 자기 형제를 만납니다. 성경대로 말씀드리면, 목을 어긋 맞추고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이렇게 감사합니다. ''형들이여, 두려워 마옵소서. 형들이여, 근심 마옵소서.'' 이 말속에 감사의 언어가 다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들이여, 감사합니다. 은혜가 큽니다. 내가 형들을 위문하러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음식을 준비해 갔을 때, 나를 물 없는 웅덩이에 떠밀어 주신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형님. 형들이여, 감사합니다. 나를 인신매매 상들에게 팔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노예로 팔아주신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보디발의 아내여, 고맙다. 나에게 유혹을 하다가 내가 유혹을 뿌리치니까 나를 오히려 모함해서 억울하게 옥살이 시킨 것,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고로 내가 지금 총리가 되었고, 그런고로 형제와 아버지의 잡수실 식량을 마음껏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요셉은 은혜를 아는 지각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그야말로 불행 중에 불행, 고통중의 고통의 삶을 행복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미래, 영적 지각을 가지고 은혜로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출애굽을 하다가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 같은 시각으로 보시겠습니까?
42절 말씀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은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가 있고요. 그리고 그는 기도의 마지막을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은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다윗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너의 대대손손 왕의 대를 이어가게 하겠다. 영구토록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랬습니다. 기도는 소망을 성취하는 열쇠입니다. 솔로몬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면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구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하여 소망이 성취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