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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환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명성교회)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의 생활이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긴장되고 불확실한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실하게 살라."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불평 불만하거나 치우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살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실의 히브리말 '아만'은 '꾸준해야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아만이라는 말에서 두 단어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늘 말하는 '아멘'이 바로 아만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아멘'을 여러 번 하지 않습니까? '진실로'라는 말이에요. '하나님 아버지 진실로' 그 말입니다. 또 하나 이 아만에서 나온 말이 '에무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믿음'이나, '신앙'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실이라는 말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실한 삶은 믿음의 삶이요 신앙의 삶이요 아멘의 삶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곧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실이 없는 믿음은 기초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된 믿음, 인간이 꾸민 잘못된 신앙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헬라어로 이 성실이라는 말은 '하프로테스'라는 말인데 분열이나 이기주의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성실한 삶은 이기적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분열하고 투쟁하는 것은 성실한 삶이 아니지요. 성실한 삶은 관용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프로테스의 뜻은 관대하다, 소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관계는 관대하고 관용하고, 자기 개인의 생활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성실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욕심을 내지 않고 어디 가든지 늘 하나가 되고, 부지런하고,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이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모든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면 하나님은 사람 차별을 안 하신다는 거예요. 잘났느냐, 못났느냐? 있느냐, 없느냐? 이런 차별을 안 합니다. 그러나 행위는 보신다는 것입니다. 행함을 보시는 거예요. 기도를 열심히 드려도 행함이 없는 기도는 거짓 기도예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거예요. 행함과 기도는 일치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한 마디를 해도 그 기도가 힘이 있을 수 있어요. 길게 기도해도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행함이 없었어요. 삶은 회칠한 무덤이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길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있나요. 우리의 모든 신앙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뒤의 생활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실한 생활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셔서 청지기로 쓰시고,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잘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성실한 삶이에요. 잘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행복의 길이 무엇입니까? 성실한 삶이에요. 어떤 분은 "돈이 있어야 돈을 벌지. 돈이 돈을 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경제 원리를 꼭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실하면 돈이 따라옵니다. 성실한 사람이 잘 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모든 분야에 성실한 분들이 잘됩니다.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서 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슈바이처 박사께서 "한 우물을 파라." 그랬어요. 성실하게 평생동안 한 우물을 파야 할 것입니다. 여기 팠다가 또 저기 파고, 이것 했다가 저 것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 우물만 파면 그 우물에는 샘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생수를 발견할 수 있어요. 행복의 우물도 한 우물에서. 여기 저기 다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도 한 우물이에요. 성공도 한 우물이에요. 축복도 한 우물이에요. 은혜도 한 우물이에요.
어느 집에 가난한 소년이 점원으로 들어왔어요. 정원을 가꾸는 일을 했어요. 부잣집에서 많은 사람 가운데 이 소년에게 정원을 꾸미게 했어요. 청소하고 거름주고 물주고 정원을 깨끗하게 꾸미고 잔디를 깎는 일을 맡겼어요. 그런데 이 소년이 오는 그 날부터 정원이 얼마나 아름답게 꾸며지는지…. 깨끗하게 가꿉니다. 관리합니다. 부지런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좋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꽃 사이에 돌을 가져다 놓고 나무를 가져다 놓고. 얼마나 아름답게 조각을 하는지요.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작품이 되었습니다. 모두 감탄해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주인이 그랬어요.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하느냐?"고 그러니까 소년이 말했어요. "아닙니다. 주인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이게 행복합니다. 나는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좋습니다." "그 조각은 왜 그렇게 하느냐?" "이건 나의 취미입니다. 이렇게 하니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년이 나중에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밀레가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한 그림을 그렸습니까? 보잘것없는 무명의 밥도 못 먹는 시골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감사함으로 열심히 그렇게 그림을 그린 밀레는 잘되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남의 집 점원이었습니다. 심부름을 열심히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여기서 사고 저것은 저기 가서 사는 것을 보고 '아, 한 곳에 모두 와서 사 가면 얼마나 편리할까?' 이렇게 해서 백화점이 탄생한 거예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사람에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지혜가 생기고 창의력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는 거예요.
성실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큰 일을 합니다. 성실한 어네스트 링컨이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가 되었어요. 우리는 뭐든지 굉장한 사람이 굉장한 것을 갖추어야 성공하고 잘 되는 줄 아는데 어느 분야든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배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천재가 어디 있어요? 성실한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합니다. 또 어떤 분야든지 머리가 좋고 실력 있고 배경이 좋은 그런 사람이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사람이 기초가 든든해져서 그 분야에 탑이 되는 것이지 좋다고 해서 뛰어드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혼란이 어디 있습니까? 뿌리도 없고 기초도 없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으면서도 여기 뛰어들고 저기 뛰어들고 이것 좋아하고 저것 좋아합니다. 한 가지도 든든한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실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국에 우리 한국사람이 가서 성공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도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백영중'씨라고 있습니다. LA에 있는 저의 친구이기도 한 박종무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의 장로님이에요. 이 장로님은 강철왕이에요. 이 분은 북한에서 신앙생활 때문에 쫓겨서 여기에 왔지만 있을 자리가 없어서 미국으로 갔어요. 이 사람이 이번에 책을 냈습니다. 'No Money, No English'. 이분은 돈도 한푼 없고 영어도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미국의 경량 철근 60%를 다 잡고 계시는 거예요. 이 큰 시장의 0.1%도 대단한데 60%라니…. 미국을 정복을 했어요. 비결이 뭐예요? 영어 나라에서 영어도 못하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도 없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단 말이에요. 성실입니다. 성실. 진실한 거예요. 여러분, 밑천이 없습니까? 성실보다 더 큰 밑천이 없습니다. 빽이 없습니까? 성실보다 더 큰 빽이 없어요. 성실한 사람을 하늘의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성실이 최고의 웅변이요 최고의 자본이요. 최고의 PR이에요. 그래서 이 분은 장사를 해도 자기가 돈을 버는 데에 맞추지를 않았어요.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나쁜 것은 "이것은 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것은 손님들한테 다 떠넘기려고 우리는 다 그러는데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지 마세요. 이건 조금 좋지 못한 겁니다." 또 며칠 있다가 좋은 물건이 오면 그걸 알려주고 "사흘 후에 오세요. 좋은 물건이 옵니다"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꼭 사세요. 그러면 한 달 후에는 이 가격이 오릅니다." 이래가지고 자기가 오를 때에 가져다 놓지 않고 손님들에게 돈을 벌도록 하는 거예요. 1달은 몰랐어요. 1년은 몰랐어요. 2,3년도 겨우 주변만 알았어요. 5 년, 10년 지나니까 전 미국이 아는 거예요. 빠른 사람은 금방 드러나지요. 재치 있고 기술 있고 수단 부리는 사람은 금방 드러나지요. 성실한 사람은 깊이 땅속에 있다가 천천히 싹이 터요. 시간이 좀 늦지요. 그러나 그 시간이 기초를 닦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그 시장이 넓고 그 기초가 든든하여 그 위에 선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큰 일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돈을 벌려고 합니까? 머리가 빨리 돌리고 사람을 이용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내 주머니에만 돈을 넣으려고 앞의 것만 바라보는 이런 기업은 오래 갈 수도 없거니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걸어가도 좋지 않게 봅니다. 사람이 걸어가면 금덩어리가 걸어가야 되고 큰 자본이 걸어가야 되는데 사람이 볼 때 손가락질하는 거예요. 성공 못하는 거예요. 신용을 얻으십시오. 성실을 얻으십시오. 이것을 회복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성실을 떠나서는 어떠한 것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잘 되면 교만하고 게으르고 주어진 일을 경홀히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잘 될수록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잘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도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사극 가운데 '여인천하'라고 하는 것을 가끔 봅니다. 여인천하는 정말 여인천하예요. 대비, 문정왕후, 그리고 여기에 앞으로 깜짝 놀라게 할 인물 난정이까지. 이 난정이는 기생이었어요. 그러나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형의 소실이 됩니다. 윤원형은 나중에 이조판서가 되고 영의정까지 됩니다. 나라에 큰 일을 하는 큰 일꾼이 되지요. 그런데 이 난정이가 자기가 과거에 불행했던 때를 생각하면 겸손해야 되는데 이 윤원형의 소실이 되면서 안하무인이 되는 거예요. 아주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그 윤원형에게는 정실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양반사회에서는 부인을 여러 명 두지요. 남편 빼앗긴 것만 해도 속상한데 새로 들어온 부인이 "안방 내놓으라. 나가라"고 당당하게 막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연속극을 보고 나는 너무 속상해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제부터 굉장히 스릴 있는 게 나옵니다. 난정이가 이제 그 본 부인을 독살시킵니다. 그리고는 궁정을 드나들게 됩니다. 그 때 새로운 임금이 세워졌습니다. 11살짜리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임금이 잘 모르니까 그 뒤에서 섭정을 하게 됩니다. 문정왕후. 문정왕후가 온 나라를 다 손안에 쥐는 거예요. 이럴 때 이제 윤원형이 등장하게 되고 그 소실인 난정이가 일을 벌이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문정왕후도 죽으면서 이 난정이의 운명도 끝나는 거예요.
역사를 보십시오. 성실하게 살지 않고 겸손하게 살지 않고 악을 행하고 술수를 쓰고 남을 해롭게 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삶에 불평 불만하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이 안됩니다. 악인은 안됩니다. 시편 37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의하게 살면 이 지상에 있는 인간은 누구든지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온 인류를 판단하시는 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에요. 우리나라 역사 보십시오. 어느 나라 역사든지 보십시오. 악이 잘 됩디까? 장희빈이, 세조가 잘 됩디까? 온 인류를 향하여 분명히 한 분이 통치자로 계십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나라도 안되고 가정도 안되고 개인도 안됩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보십시오. 안됩니다. 공산주의가 안 되는 것은 불평 불만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 못보고, 잘 되는 사람 못보고, 자기 일에 열심히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를 않아요. 남 뜯어 내리는 사람이, 남 잘되는 것 못 보는 사람이 모여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공산주의예요. 자기 할 일은 안해요. 어떤 책임도 남에게 전가하는 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다" 모든 걸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공산주의예요. 그리고 모든 걸 100% 거짓말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련이 물러앉은 거예요. 다 공산주의가 물러앉은 것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거짓말하는 거예요.
저는 1989년에 소련에 갔어요. 지방 체르노빌까지 가서 오페라 하우스와 7-8곳에서 집회를 했어요. 너무 놀라운 것은 겉은 화려하게 꾸몄는데 안에 가 보면 사람이 살지도 않아요. 겉만 페인트칠을 했고 바로 뒤로 넘어 가 보면 거지예요 거지. 이런 불쌍한 삶이 없습니다.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거예요. 거짓으로 꾸미는 거예요. 그러니까 될 리가 없는 거지요. 북한도 보십시오. 지금 100층이 넘는 호텔이 있어요. 북한 하늘에 비행기가 한 대도 안 들어가는데 호텔이 왜 필요합니까? 100층 되는 게 왜 필요합니까? 10층만 해도 들어가고도 남는데 왜 100층을 만듭니까? 전부 전시예요. 꾸미는 거예요. 불평불만한 사람은 공산주의 하기가 딱 맞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감사하는 삶이에요.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에요. 열심히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은 끊임없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바뀝니다. 삶이 바뀝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록펠러는 그 집안에 태어나는 자녀들이 일곱 살만 되면 누구든지 신문배달 시키고 구두닦이 하게 하고 청소시키고 나가서 아주 천한 일을 하게 하는 거예요. 성실하게 인생의 밑바닥부터 배우게 하는 거예요. 밥 한 그릇을 먹어도 참 고맙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는 거예요. 잠 하나도 열심히 일함으로 잘 자게 만들고 하나하나 밑에서부터 차근히 밟아 올라가게 합니다. 그래서 록펠러의 가문에서 부통령이 나오고 대통령 보좌관이 끊임없고, 주지사, 학자, 기업가가 끊임없이 다 일어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얘야, 이런 건 하지 말아라. 아무 것도 하지말고 공부만 해라."하면서 길러 놓으니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서 조그만 일을 만나도 자살해 죽고 조그만 일 만나도 가정 생활 감당하지 못하고 깨어지고 해어집니다. 이것이 다 어디서 나왔느냐? 성실을 모르는 삶에서입니다. 인생은 성실해야합니다. 가정은 성실해야합니다. 사업은 성실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PR이 없습니다. 더 큰 재산이 없습니다. 더 큰 배경이 없습니다. 성실하면 다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교역자들도 오면 제일 처음에 유치부부터 시킵니다. 그것부터 알아야지 어린아이들하고 안 통하면 어른하고도 안 통한다구요. 요사이는 우리 전도사님들도 박사학위 받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와요. 그러나 "유치원해라." 그럽니다. 말도 안 통하지요. 하지만 거기서 안 통하면 어른도 안 통하는 거예요. "애들부터 통해라.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주면 어디서도 기쁨을 못 준다." 기초부터 배우라 말이지.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굉장한 이력서를 제출해도 갈 곳은 오직 유치원입니다. 차츰 차츰 올라와야지 당장에 올라 와서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고 설교자가 되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찮은 것이라고 해서 이런걸 할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뭐 이런 것 하려고, 이것 나하고 맞는 일인가?' 성실한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내 선생이요 모든 것이 나에게 지식이요 힘이라고 고백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보십시다. 1절로 3절까지 다같이 읽겠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행악하는 자를 불평하지 마세요.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투기하지 마세요. 남의 일에, 남의 죄에 너무 간섭하지 마십시오. 이것저것보고 다 알고 다 말하고 불만을 가지고 살지 마십시오. 성실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악인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앞날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누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명성교회 목사님 설교는 참 은혜롭고 좋기는 좋은데 정부를 향해 너무 비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당이구나." 무슨 소리냐고 교회가 설교시간에 꼭 누구를 차 가지고 화 있을진저 이럴 수 있냐 하면서 흥분을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이 교회가 날마다 정부나 치는 교회가 되면 이것이 은혜 될 것 같아요? 당신의 마음이 병이 들었어요. 이 나라의 문제가 치는 사람이,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 나라가 어려운 줄 아세요? 성실함이 없어서 나라가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해야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자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나라가 잘 되느냐? "군군신신자자(君君臣臣子自)"라 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임금은 임금의 길에서, 신하는 신하의 길에서, 백성은 백성의 길에서 자기의 일에 성실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것저것 다 보고 남의 일에 불평 불만하고 "나라가 이럴 수가 있냐?" 하는 것은 하나의 발전도 가져올 수 없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모두 성실하십시다. 잘 살려면, 하나님을 잘 믿으시려면 성실하십시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가정 주부들은 열심히 가정주부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음식도 좀 잘 만들고 김치도 좀 잘 담고 된장도 좀 잘 담그세요. 이런 건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죠…. 김치도 가을에 한 두 가지만 담으면 안됩니다. 새우젓을 넣고도 만들고 식혜 가지고도 만들고…. 대구도 착착 잘라서 식혜를 만들어봐요 얼마나 맛있는대요. 이런 건 하나도 할 줄 모르고 늘 밖에 나가자 그러면 안됩니다. 성실한 가정에 천사가 찾아오고 성실한 가정에 축복이 찾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부부간에도 성실하게 살아가세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세요. 내가 어제 어느 집사님 보고 몇 살이냐 그러니까 마흔 여덟이라고 그래요. 그러냐고…. 환갑 남아 봐야 13년 남았는데 젊을 때에 단풍 들면 단풍 찾아 둘이 같이 다녀오고…. 성실하게! 자기 집에 있는 아내는 우습게 여기고 남의 집 담 넘어 여인이나 쳐다보고 그러면 안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단풍도 젊을 때 가서 봐야지 다 되어서 단풍을 가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부부간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서로 사랑하며 성실해야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성실한 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진실히 주를 믿고 그 뜻을 따르면
주는 길이길이 함께 하시고
물불이 두렵잖고 창검이 겁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기 원하네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진실히 주를 믿고 성실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면 여기서 보면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고 또 저기에 가면 저기에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진실하시니까, 하나님이 성실하시니까 그렇습니다. 성실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4절부터 세 곳이 나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성실한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성실하지 아니한 사람은 기쁨이 없어요. 남을 속이는데 무슨 기쁨이 있어요? 불의 하게 살아가는데, 원망 불평하는데 세상에 무슨 기쁨이 있나요? 성실한 자에게 기쁨이 주어집니다. 성실한 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성실한 사람은 앞날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앞날에 대한 너무 지나친 염려가 오늘 불성실하게 하고 조급하게 만들고 강퍅하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왜 앞날을 염려하십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 앞날을 인도하실 좋으신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나의 발걸음을 여기서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으십시오. 내일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좋은 내일, 복된 내일, 축복의 미래를 미리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예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맡깁니다. 자녀의 앞날을 맡깁니다. 내 건강을 맡깁니다.
세 번째,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삶입니까?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불평합니까? 왜 불만합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참고 기다리십시오. 성실한 사람은 기다립니다.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내 마음대로, 내 소원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정권이 바뀌면서 언제나 혼란이 일어납니다. 가장 큰 것은 사울 왕이 죽고 다윗에게로 넘어가면서 많은 혼란이 옵니다. 그 다음 다윗 왕이 죽고 솔로몬에게로 넘어갈 때도 국가적으로 큰 혼란이 옵니다. 그럴 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보면 '아, 이럴 때 기회를 잘 잡아야 되겠다. 찬스를 잡아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배반하고 술수를 꾸미는 분들은 하나같이 안 됩니다. 성실한 분이 잘 됩니다. 한 곳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울 왕이 죽고 다윗에게로 넘어갈 때에 몇 명이 등장합니다.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말렉 소년입니다. 사무엘하 1장에 나오지요. 이 소년은 누구냐 하면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화살을 맞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하여 이기지 못하고 견딜 수가 없어서 옆에 신하들보고 "나 좀 죽여 달라." 그러니까 누가 죽이겠어요? 그 때 사울 왕이 참지를 못하고 창을 땅에 거꾸로 박아 놓고 자기가 그 곳에 엎드러져 자살해 죽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모두 다 죽었으니까 적군도 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그 때 그 주변에 있던 이 아말렉 소년이 가서 사울 왕을 발견하고 사울 왕의 투구와 그가 쓰던 창과 칼을 들고 다윗에게로 빨리 옵니다. 그래서는 "각하,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사울 왕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사울 왕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말합니다. "네가 사울 왕이 죽은 걸 어떻게 아느냐?" "예, 내가 그 옆에 있었는데 부상을 당해서 나보고 죽여 달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죽이고 이걸 가져 왔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지요. 이러면 크게 한 몫, 강동구 국회의원이라도 줄 줄 알고 한 것입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런 걸 좋아하겠어요? 원수가 죽었다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남이 다 안되고 나 혼자 되면 좋고, 나 싫어하는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살면 좋다는 것, 이것이 다 불성실한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다윗은 얼마나 슬퍼하는지요. '사울이 죽다니…. 그 아들 요나단이 죽다니…. 내 사랑하는 친구가 이렇게 죽다니….'하고 슬퍼하면서 오히려 그 소년을 죽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네가 감히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종을 죽일 수 있느냐?" 다윗이 왜 잘 됩니까?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보시고 다윗을 축복해 주시는 겁니다. 내 원수가 잘 안되고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면 시원해하는 이 마음이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버려야 됩니다.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들이 이렇게 모두 강퍅해져 있어요. 그저 저 사람이 안되면 좋고, 저 나라가 안되면 좋고, 저 집이 안되면 좋고…. 이것 우리 마음에서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넬입니다. 다윗 왕국의 참모총장은 요압입니다. 사울 왕국의 군대장관은 아브넬입니다. 그 당시는 요사이 같이 국가에 부서가 많은 시대가 아니고 임금 다음에는 군대장관이에요. 최고였어요. 그런데 아브넬이 사울이 죽고 나니까 무슨 짓을 하느냐하면 사울왕이 데리고 살던 부인을 취합니다. 주인이 없으니까 그만 내가 불쌍히 여겨야 되겠다 그러고 취해버립니다. 그런데 누구한테 걸리느냐 하면 이스보셋이라고 하는 사울의 아들에게 걸립니다. 그럴 수 있느냐고, 우리 아버지를 보더라도 그럴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아브넬이 그럽니다. "뭐? 나 아니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데, 너희들이 사는 것도 다 나 때문인데, 내가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내가 그런 한가지 죄를 지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합니다. 결국 이 아브넬이 밤에 군대를 이끌고 다윗에게로 옵니다. "각하, 나는 이제 이 몸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다가 요압에 의해서 아브넬이 죽습니다. 오늘 출세를 위해서 그냥 배반하고 어느 줄에 설까? 눈치를 빨리 보고 온갖 죄를 짓고도 어디만 가서라도 잘 되려고 하는 것, 이것 다 아브넬이에요. 성실하지 못한 삶이에요. 우리 사회에는 각 분야에 너무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내 주어진 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가정, 하나님이 주신 귀한 믿음의 생활을 하나하나 열심히 살아가면, 부지런하게 살아가면 가정도 천국이 되고 교회도 천국이 되고 여러분의 심령에도 천국이 되고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루하루를 언제나 성실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의 생활이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긴장되고 불확실한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실하게 살라."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불평 불만하거나 치우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살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실의 히브리말 '아만'은 '꾸준해야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아만이라는 말에서 두 단어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늘 말하는 '아멘'이 바로 아만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아멘'을 여러 번 하지 않습니까? '진실로'라는 말이에요. '하나님 아버지 진실로' 그 말입니다. 또 하나 이 아만에서 나온 말이 '에무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믿음'이나, '신앙'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실이라는 말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실한 삶은 믿음의 삶이요 신앙의 삶이요 아멘의 삶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곧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실이 없는 믿음은 기초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된 믿음, 인간이 꾸민 잘못된 신앙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헬라어로 이 성실이라는 말은 '하프로테스'라는 말인데 분열이나 이기주의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성실한 삶은 이기적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분열하고 투쟁하는 것은 성실한 삶이 아니지요. 성실한 삶은 관용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프로테스의 뜻은 관대하다, 소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관계는 관대하고 관용하고, 자기 개인의 생활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성실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욕심을 내지 않고 어디 가든지 늘 하나가 되고, 부지런하고,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이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모든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면 하나님은 사람 차별을 안 하신다는 거예요. 잘났느냐, 못났느냐? 있느냐, 없느냐? 이런 차별을 안 합니다. 그러나 행위는 보신다는 것입니다. 행함을 보시는 거예요. 기도를 열심히 드려도 행함이 없는 기도는 거짓 기도예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거예요. 행함과 기도는 일치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한 마디를 해도 그 기도가 힘이 있을 수 있어요. 길게 기도해도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행함이 없었어요. 삶은 회칠한 무덤이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길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있나요. 우리의 모든 신앙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뒤의 생활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실한 생활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셔서 청지기로 쓰시고,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잘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성실한 삶이에요. 잘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행복의 길이 무엇입니까? 성실한 삶이에요. 어떤 분은 "돈이 있어야 돈을 벌지. 돈이 돈을 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경제 원리를 꼭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실하면 돈이 따라옵니다. 성실한 사람이 잘 됩니다. 성실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모든 분야에 성실한 분들이 잘됩니다.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서 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슈바이처 박사께서 "한 우물을 파라." 그랬어요. 성실하게 평생동안 한 우물을 파야 할 것입니다. 여기 팠다가 또 저기 파고, 이것 했다가 저 것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 우물만 파면 그 우물에는 샘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생수를 발견할 수 있어요. 행복의 우물도 한 우물에서. 여기 저기 다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도 한 우물이에요. 성공도 한 우물이에요. 축복도 한 우물이에요. 은혜도 한 우물이에요.
어느 집에 가난한 소년이 점원으로 들어왔어요. 정원을 가꾸는 일을 했어요. 부잣집에서 많은 사람 가운데 이 소년에게 정원을 꾸미게 했어요. 청소하고 거름주고 물주고 정원을 깨끗하게 꾸미고 잔디를 깎는 일을 맡겼어요. 그런데 이 소년이 오는 그 날부터 정원이 얼마나 아름답게 꾸며지는지…. 깨끗하게 가꿉니다. 관리합니다. 부지런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좋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꽃 사이에 돌을 가져다 놓고 나무를 가져다 놓고. 얼마나 아름답게 조각을 하는지요.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작품이 되었습니다. 모두 감탄해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주인이 그랬어요.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하느냐?"고 그러니까 소년이 말했어요. "아닙니다. 주인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이게 행복합니다. 나는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좋습니다." "그 조각은 왜 그렇게 하느냐?" "이건 나의 취미입니다. 이렇게 하니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년이 나중에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밀레가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한 그림을 그렸습니까? 보잘것없는 무명의 밥도 못 먹는 시골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감사함으로 열심히 그렇게 그림을 그린 밀레는 잘되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남의 집 점원이었습니다. 심부름을 열심히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여기서 사고 저것은 저기 가서 사는 것을 보고 '아, 한 곳에 모두 와서 사 가면 얼마나 편리할까?' 이렇게 해서 백화점이 탄생한 거예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사람에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지혜가 생기고 창의력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는 거예요.
성실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큰 일을 합니다. 성실한 어네스트 링컨이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가 되었어요. 우리는 뭐든지 굉장한 사람이 굉장한 것을 갖추어야 성공하고 잘 되는 줄 아는데 어느 분야든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배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천재가 어디 있어요? 성실한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합니다. 또 어떤 분야든지 머리가 좋고 실력 있고 배경이 좋은 그런 사람이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사람이 기초가 든든해져서 그 분야에 탑이 되는 것이지 좋다고 해서 뛰어드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혼란이 어디 있습니까? 뿌리도 없고 기초도 없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으면서도 여기 뛰어들고 저기 뛰어들고 이것 좋아하고 저것 좋아합니다. 한 가지도 든든한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실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국에 우리 한국사람이 가서 성공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도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백영중'씨라고 있습니다. LA에 있는 저의 친구이기도 한 박종무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의 장로님이에요. 이 장로님은 강철왕이에요. 이 분은 북한에서 신앙생활 때문에 쫓겨서 여기에 왔지만 있을 자리가 없어서 미국으로 갔어요. 이 사람이 이번에 책을 냈습니다. 'No Money, No English'. 이분은 돈도 한푼 없고 영어도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미국의 경량 철근 60%를 다 잡고 계시는 거예요. 이 큰 시장의 0.1%도 대단한데 60%라니…. 미국을 정복을 했어요. 비결이 뭐예요? 영어 나라에서 영어도 못하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도 없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단 말이에요. 성실입니다. 성실. 진실한 거예요. 여러분, 밑천이 없습니까? 성실보다 더 큰 밑천이 없습니다. 빽이 없습니까? 성실보다 더 큰 빽이 없어요. 성실한 사람을 하늘의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성실이 최고의 웅변이요 최고의 자본이요. 최고의 PR이에요. 그래서 이 분은 장사를 해도 자기가 돈을 버는 데에 맞추지를 않았어요.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나쁜 것은 "이것은 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것은 손님들한테 다 떠넘기려고 우리는 다 그러는데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사지 마세요. 이건 조금 좋지 못한 겁니다." 또 며칠 있다가 좋은 물건이 오면 그걸 알려주고 "사흘 후에 오세요. 좋은 물건이 옵니다"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꼭 사세요. 그러면 한 달 후에는 이 가격이 오릅니다." 이래가지고 자기가 오를 때에 가져다 놓지 않고 손님들에게 돈을 벌도록 하는 거예요. 1달은 몰랐어요. 1년은 몰랐어요. 2,3년도 겨우 주변만 알았어요. 5 년, 10년 지나니까 전 미국이 아는 거예요. 빠른 사람은 금방 드러나지요. 재치 있고 기술 있고 수단 부리는 사람은 금방 드러나지요. 성실한 사람은 깊이 땅속에 있다가 천천히 싹이 터요. 시간이 좀 늦지요. 그러나 그 시간이 기초를 닦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그 시장이 넓고 그 기초가 든든하여 그 위에 선 기업이 흔들리지 않고 큰 일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돈을 벌려고 합니까? 머리가 빨리 돌리고 사람을 이용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내 주머니에만 돈을 넣으려고 앞의 것만 바라보는 이런 기업은 오래 갈 수도 없거니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걸어가도 좋지 않게 봅니다. 사람이 걸어가면 금덩어리가 걸어가야 되고 큰 자본이 걸어가야 되는데 사람이 볼 때 손가락질하는 거예요. 성공 못하는 거예요. 신용을 얻으십시오. 성실을 얻으십시오. 이것을 회복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성실을 떠나서는 어떠한 것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잘 되면 교만하고 게으르고 주어진 일을 경홀히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잘 될수록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잘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도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사극 가운데 '여인천하'라고 하는 것을 가끔 봅니다. 여인천하는 정말 여인천하예요. 대비, 문정왕후, 그리고 여기에 앞으로 깜짝 놀라게 할 인물 난정이까지. 이 난정이는 기생이었어요. 그러나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형의 소실이 됩니다. 윤원형은 나중에 이조판서가 되고 영의정까지 됩니다. 나라에 큰 일을 하는 큰 일꾼이 되지요. 그런데 이 난정이가 자기가 과거에 불행했던 때를 생각하면 겸손해야 되는데 이 윤원형의 소실이 되면서 안하무인이 되는 거예요. 아주 머리 회전이 빠릅니다. 그 윤원형에게는 정실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양반사회에서는 부인을 여러 명 두지요. 남편 빼앗긴 것만 해도 속상한데 새로 들어온 부인이 "안방 내놓으라. 나가라"고 당당하게 막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연속극을 보고 나는 너무 속상해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제부터 굉장히 스릴 있는 게 나옵니다. 난정이가 이제 그 본 부인을 독살시킵니다. 그리고는 궁정을 드나들게 됩니다. 그 때 새로운 임금이 세워졌습니다. 11살짜리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임금이 잘 모르니까 그 뒤에서 섭정을 하게 됩니다. 문정왕후. 문정왕후가 온 나라를 다 손안에 쥐는 거예요. 이럴 때 이제 윤원형이 등장하게 되고 그 소실인 난정이가 일을 벌이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문정왕후도 죽으면서 이 난정이의 운명도 끝나는 거예요.
역사를 보십시오. 성실하게 살지 않고 겸손하게 살지 않고 악을 행하고 술수를 쓰고 남을 해롭게 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삶에 불평 불만하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이 안됩니다. 악인은 안됩니다. 시편 37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의하게 살면 이 지상에 있는 인간은 누구든지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온 인류를 판단하시는 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에요. 우리나라 역사 보십시오. 어느 나라 역사든지 보십시오. 악이 잘 됩디까? 장희빈이, 세조가 잘 됩디까? 온 인류를 향하여 분명히 한 분이 통치자로 계십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나라도 안되고 가정도 안되고 개인도 안됩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를 보십시오. 안됩니다. 공산주의가 안 되는 것은 불평 불만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 못보고, 잘 되는 사람 못보고, 자기 일에 열심히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를 않아요. 남 뜯어 내리는 사람이, 남 잘되는 것 못 보는 사람이 모여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공산주의예요. 자기 할 일은 안해요. 어떤 책임도 남에게 전가하는 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다" 모든 걸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공산주의예요. 그리고 모든 걸 100% 거짓말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련이 물러앉은 거예요. 다 공산주의가 물러앉은 것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거짓말하는 거예요.
저는 1989년에 소련에 갔어요. 지방 체르노빌까지 가서 오페라 하우스와 7-8곳에서 집회를 했어요. 너무 놀라운 것은 겉은 화려하게 꾸몄는데 안에 가 보면 사람이 살지도 않아요. 겉만 페인트칠을 했고 바로 뒤로 넘어 가 보면 거지예요 거지. 이런 불쌍한 삶이 없습니다.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거예요. 거짓으로 꾸미는 거예요. 그러니까 될 리가 없는 거지요. 북한도 보십시오. 지금 100층이 넘는 호텔이 있어요. 북한 하늘에 비행기가 한 대도 안 들어가는데 호텔이 왜 필요합니까? 100층 되는 게 왜 필요합니까? 10층만 해도 들어가고도 남는데 왜 100층을 만듭니까? 전부 전시예요. 꾸미는 거예요. 불평불만한 사람은 공산주의 하기가 딱 맞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감사하는 삶이에요.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에요. 열심히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은 끊임없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바뀝니다. 삶이 바뀝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록펠러는 그 집안에 태어나는 자녀들이 일곱 살만 되면 누구든지 신문배달 시키고 구두닦이 하게 하고 청소시키고 나가서 아주 천한 일을 하게 하는 거예요. 성실하게 인생의 밑바닥부터 배우게 하는 거예요. 밥 한 그릇을 먹어도 참 고맙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는 거예요. 잠 하나도 열심히 일함으로 잘 자게 만들고 하나하나 밑에서부터 차근히 밟아 올라가게 합니다. 그래서 록펠러의 가문에서 부통령이 나오고 대통령 보좌관이 끊임없고, 주지사, 학자, 기업가가 끊임없이 다 일어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얘야, 이런 건 하지 말아라. 아무 것도 하지말고 공부만 해라."하면서 길러 놓으니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서 조그만 일을 만나도 자살해 죽고 조그만 일 만나도 가정 생활 감당하지 못하고 깨어지고 해어집니다. 이것이 다 어디서 나왔느냐? 성실을 모르는 삶에서입니다. 인생은 성실해야합니다. 가정은 성실해야합니다. 사업은 성실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PR이 없습니다. 더 큰 재산이 없습니다. 더 큰 배경이 없습니다. 성실하면 다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교역자들도 오면 제일 처음에 유치부부터 시킵니다. 그것부터 알아야지 어린아이들하고 안 통하면 어른하고도 안 통한다구요. 요사이는 우리 전도사님들도 박사학위 받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와요. 그러나 "유치원해라." 그럽니다. 말도 안 통하지요. 하지만 거기서 안 통하면 어른도 안 통하는 거예요. "애들부터 통해라.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주면 어디서도 기쁨을 못 준다." 기초부터 배우라 말이지.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굉장한 이력서를 제출해도 갈 곳은 오직 유치원입니다. 차츰 차츰 올라와야지 당장에 올라 와서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고 설교자가 되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찮은 것이라고 해서 이런걸 할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뭐 이런 것 하려고, 이것 나하고 맞는 일인가?' 성실한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내 선생이요 모든 것이 나에게 지식이요 힘이라고 고백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보십시다. 1절로 3절까지 다같이 읽겠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행악하는 자를 불평하지 마세요. 불의를 행하는 사람을 투기하지 마세요. 남의 일에, 남의 죄에 너무 간섭하지 마십시오. 이것저것보고 다 알고 다 말하고 불만을 가지고 살지 마십시오. 성실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악인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앞날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누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명성교회 목사님 설교는 참 은혜롭고 좋기는 좋은데 정부를 향해 너무 비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당이구나." 무슨 소리냐고 교회가 설교시간에 꼭 누구를 차 가지고 화 있을진저 이럴 수 있냐 하면서 흥분을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이 교회가 날마다 정부나 치는 교회가 되면 이것이 은혜 될 것 같아요? 당신의 마음이 병이 들었어요. 이 나라의 문제가 치는 사람이,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 나라가 어려운 줄 아세요? 성실함이 없어서 나라가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해야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자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나라가 잘 되느냐? "군군신신자자(君君臣臣子自)"라 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임금은 임금의 길에서, 신하는 신하의 길에서, 백성은 백성의 길에서 자기의 일에 성실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것저것 다 보고 남의 일에 불평 불만하고 "나라가 이럴 수가 있냐?" 하는 것은 하나의 발전도 가져올 수 없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모두 성실하십시다. 잘 살려면, 하나님을 잘 믿으시려면 성실하십시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가정 주부들은 열심히 가정주부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음식도 좀 잘 만들고 김치도 좀 잘 담고 된장도 좀 잘 담그세요. 이런 건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죠…. 김치도 가을에 한 두 가지만 담으면 안됩니다. 새우젓을 넣고도 만들고 식혜 가지고도 만들고…. 대구도 착착 잘라서 식혜를 만들어봐요 얼마나 맛있는대요. 이런 건 하나도 할 줄 모르고 늘 밖에 나가자 그러면 안됩니다. 성실한 가정에 천사가 찾아오고 성실한 가정에 축복이 찾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부부간에도 성실하게 살아가세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세요. 내가 어제 어느 집사님 보고 몇 살이냐 그러니까 마흔 여덟이라고 그래요. 그러냐고…. 환갑 남아 봐야 13년 남았는데 젊을 때에 단풍 들면 단풍 찾아 둘이 같이 다녀오고…. 성실하게! 자기 집에 있는 아내는 우습게 여기고 남의 집 담 넘어 여인이나 쳐다보고 그러면 안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단풍도 젊을 때 가서 봐야지 다 되어서 단풍을 가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부부간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서로 사랑하며 성실해야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성실한 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진실히 주를 믿고 그 뜻을 따르면
주는 길이길이 함께 하시고
물불이 두렵잖고 창검이 겁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기 원하네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진실히 주를 믿고 성실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면 여기서 보면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고 또 저기에 가면 저기에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진실하시니까, 하나님이 성실하시니까 그렇습니다. 성실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4절부터 세 곳이 나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성실한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성실하지 아니한 사람은 기쁨이 없어요. 남을 속이는데 무슨 기쁨이 있어요? 불의 하게 살아가는데, 원망 불평하는데 세상에 무슨 기쁨이 있나요? 성실한 자에게 기쁨이 주어집니다. 성실한 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성실한 사람은 앞날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앞날에 대한 너무 지나친 염려가 오늘 불성실하게 하고 조급하게 만들고 강퍅하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왜 앞날을 염려하십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 앞날을 인도하실 좋으신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나의 발걸음을 여기서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으십시오. 내일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좋은 내일, 복된 내일, 축복의 미래를 미리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예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맡깁니다. 자녀의 앞날을 맡깁니다. 내 건강을 맡깁니다.
세 번째,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삶입니까?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불평합니까? 왜 불만합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참고 기다리십시오. 성실한 사람은 기다립니다.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내 마음대로, 내 소원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정권이 바뀌면서 언제나 혼란이 일어납니다. 가장 큰 것은 사울 왕이 죽고 다윗에게로 넘어가면서 많은 혼란이 옵니다. 그 다음 다윗 왕이 죽고 솔로몬에게로 넘어갈 때도 국가적으로 큰 혼란이 옵니다. 그럴 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보면 '아, 이럴 때 기회를 잘 잡아야 되겠다. 찬스를 잡아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배반하고 술수를 꾸미는 분들은 하나같이 안 됩니다. 성실한 분이 잘 됩니다. 한 곳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울 왕이 죽고 다윗에게로 넘어갈 때에 몇 명이 등장합니다.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말렉 소년입니다. 사무엘하 1장에 나오지요. 이 소년은 누구냐 하면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화살을 맞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하여 이기지 못하고 견딜 수가 없어서 옆에 신하들보고 "나 좀 죽여 달라." 그러니까 누가 죽이겠어요? 그 때 사울 왕이 참지를 못하고 창을 땅에 거꾸로 박아 놓고 자기가 그 곳에 엎드러져 자살해 죽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모두 다 죽었으니까 적군도 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그 때 그 주변에 있던 이 아말렉 소년이 가서 사울 왕을 발견하고 사울 왕의 투구와 그가 쓰던 창과 칼을 들고 다윗에게로 빨리 옵니다. 그래서는 "각하,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사울 왕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사울 왕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말합니다. "네가 사울 왕이 죽은 걸 어떻게 아느냐?" "예, 내가 그 옆에 있었는데 부상을 당해서 나보고 죽여 달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죽이고 이걸 가져 왔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지요. 이러면 크게 한 몫, 강동구 국회의원이라도 줄 줄 알고 한 것입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런 걸 좋아하겠어요? 원수가 죽었다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남이 다 안되고 나 혼자 되면 좋고, 나 싫어하는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살면 좋다는 것, 이것이 다 불성실한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다윗은 얼마나 슬퍼하는지요. '사울이 죽다니…. 그 아들 요나단이 죽다니…. 내 사랑하는 친구가 이렇게 죽다니….'하고 슬퍼하면서 오히려 그 소년을 죽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네가 감히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종을 죽일 수 있느냐?" 다윗이 왜 잘 됩니까?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보시고 다윗을 축복해 주시는 겁니다. 내 원수가 잘 안되고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면 시원해하는 이 마음이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버려야 됩니다.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들이 이렇게 모두 강퍅해져 있어요. 그저 저 사람이 안되면 좋고, 저 나라가 안되면 좋고, 저 집이 안되면 좋고…. 이것 우리 마음에서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아브넬입니다. 다윗 왕국의 참모총장은 요압입니다. 사울 왕국의 군대장관은 아브넬입니다. 그 당시는 요사이 같이 국가에 부서가 많은 시대가 아니고 임금 다음에는 군대장관이에요. 최고였어요. 그런데 아브넬이 사울이 죽고 나니까 무슨 짓을 하느냐하면 사울왕이 데리고 살던 부인을 취합니다. 주인이 없으니까 그만 내가 불쌍히 여겨야 되겠다 그러고 취해버립니다. 그런데 누구한테 걸리느냐 하면 이스보셋이라고 하는 사울의 아들에게 걸립니다. 그럴 수 있느냐고, 우리 아버지를 보더라도 그럴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아브넬이 그럽니다. "뭐? 나 아니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데, 너희들이 사는 것도 다 나 때문인데, 내가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내가 그런 한가지 죄를 지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합니다. 결국 이 아브넬이 밤에 군대를 이끌고 다윗에게로 옵니다. "각하, 나는 이제 이 몸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다가 요압에 의해서 아브넬이 죽습니다. 오늘 출세를 위해서 그냥 배반하고 어느 줄에 설까? 눈치를 빨리 보고 온갖 죄를 짓고도 어디만 가서라도 잘 되려고 하는 것, 이것 다 아브넬이에요. 성실하지 못한 삶이에요. 우리 사회에는 각 분야에 너무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내 주어진 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가정, 하나님이 주신 귀한 믿음의 생활을 하나하나 열심히 살아가면, 부지런하게 살아가면 가정도 천국이 되고 교회도 천국이 되고 여러분의 심령에도 천국이 되고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루하루를 언제나 성실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