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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진목사 (갈보리채플은혜교회)
제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열왕기상 6장에 나타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대해서 배웠었습니다. 당시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에 계속 해서 열왕기상 6-8장에 나타난 솔로몬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시 솔로몬의 삶 전체를 보다 큰 시야로 조망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솔로몬은 잠언서와 아가서 그리고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런 데 이 책들 속에서 솔로몬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잠언서 에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아가서에서는 사랑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일종의 바보스런 인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젊은 날들을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실험들로 보냈습니다.
"삶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이것은 역사 속의 모든 인간들이 찾아 헤매던 질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해 볼 수 있는 모든 실험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술과 오락은 통해서, 엄청나고 사치스런 사업과 업적들을 통해서, 학문적인 지식의 축적을 통해서, 철학적 사고를 통해서, 종교 시스템을 통해서... 그러나 솔로몬이 얻은 결론은 모든 사람들이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헛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는 결론으로 전도서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오늘의 말씀에서 해 아래서 살아가는 인간의 작고 연약함, 그리고 그에 따른 허무와 일종의 무력감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과학자의 관점에서, 역사가의 관점에서, 그리고 철학자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I. 첫 번째로, 솔로몬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은 자연의 순환 바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즉 땅, 해, 바람, 물에 대한 조사입니다. 솔로몬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고대 사상에서 모든 물질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던 네 가지 요소들, 즉 "땅, 공기, 불, 물"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세대는 오고 가지만 자연은 그대로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변화무쌍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 자연들 앞에서 유한한 존재로써 단순한 한 세대를 살고 갈 뿐인 인간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A. 그는 먼저 땅을 보았습니다.
[전도서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 인간은 일시적이며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출생의 고리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은 나 한 사람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짧은 순간 이 땅에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2. 우리 가운데 100년 전에 이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3. 북가주에 가면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던 때에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Redwood tree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과학자들이 수백 만년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그랜드 캐년의 바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출내기에 불과하지요.
4. 이 엄청나게 보이는 자연 앞에서 다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의 자신은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것입니다.
B. 그 다음 솔로몬은 해를 보았습니다.
[전도서 1: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 물론 우리는 해가 떴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요. 다만 지구가 돌고 있을 뿐입니다.
2. 방금 우리는 지구(땅)의 엄청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그 지구보다 더 엄청난 태양을 바라보면 할 말이 없지요?
C. 그리고 솔로몬은 바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전도서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 사람은 오고 가지만 공기의 흐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이 바람의 흐름을 우리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남쪽으로 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북쪽으로 돌이키기도 하고, 또 불어오던 곳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우리는 현대인으로써 기상대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상대의 첨단 과학 연구로도 바람의 방향을 완전히 잡지는 못합니다. 태풍이 발생해서 그 태풍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태풍의 방향을 확실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을 하면 그 방향이 여지없이 한반도를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중간에 방향을 바꾸어서 중국이나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본의 기상학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Not again, not again!"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트위스터(Twister)라는 영화를 보니까 태풍의 힘이 어마어마합디다. 그 큰바람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합니다.
D. 그 다음 솔로몬은 바다를 보았습니다.
[전도서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 솔로몬은 여기서 Evaporation, 즉 기화현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 과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지구 전체의 물 가운데에서 97%를 바다가 항상 유지하고 있으며, 단지 0.0001% 정도만이 대기 중에 수증기로 떠돌고 있어서 비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일시에 전 세계에 10일 동안 비를 내릴 수 있는 분량입니다.
3. 우리는 때때로 어떤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단 2,3일만 집중적으로 비가와도 한 나라가 온통 물에 잠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엄청난 재산의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 10일동안 전 세계에 비가 내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E. 하지만 솔로몬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력감에 빠져 절망과 낙심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땅, 해, 공기, 물... 이런 자연들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무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저 해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 고개를 돌려보십시다.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태양을 제자리에 묶어 두셨습니다(여호수아 10:6-14).
2.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태양을 거꾸로 가게 하셨습니다(이사야 38:1-8).
3. 또한 홍해 바다를 가르셨고(출애굽기 14장), 홍수가 넘치는 요단강의 흐름도 멈추게 하셨습니다(여호수아 3-4장).
4.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비를 멈추게도 하셨고, 또한 다시 내리게도 하셨습니다(열왕기상 17장).
5.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기도 하셨고, 바람을 잠잠케도 하셨습니다(마 4:36-41).
F.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결코 여러분의 삶은 엄청난 자연 속에서 단조롭게 살아가는 무력한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청난 자연 위에 계신 분, 이 엄청난 자연을 지으시고 움직이시는 분과 기도를 통해서 연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필요를 여러분의 삶 속에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 위에 계신 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마태복음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II. 이제 솔로몬은 두 번째 단원에서 과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역사를 연구하고 아무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A.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전도서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1.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싶어하고, 새로운 것을 듣고싶어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울 수 없습니다.
2.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말미암아 피곤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 누구나 욕심을 버리면 피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욕구들을 심어주셨습니다. 새것을 향한 갈증을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4. 물론 문명의 이기나 삶의 유희들이 사람들의 새것을 추구하는 갈증을 약간은 해소해 줍니다. 그리고 많은 혜택과 기쁨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거기엔 참 만족이 없습니다.
B. 인간은 언제나 새것을 추구하지만, 사실 이 땅에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연구 결과입니다.
[전도서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의 창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이 새로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 아니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혹은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것들은 사실 새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것들의 발견, 혹은 이미 있던 것들의 새로운 결합에 불과합니다.
[전도서 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3. 가장 위대한 발명가중의 한 사람인 Thomas Edison도 자신의 발명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이미 있는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어 그것을 인류의 행복을 위해 적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C. 솔로몬은 이어서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들려줍니다.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우리들은 새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인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것을 발명했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솔로몬은 말합니다.
[전도서 1: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 인간이 무엇을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억력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보았던 순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세대차이도 큰 이유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아버지 세대를 다 이해하지 못하며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다 우리를 보고 "말세다, 말세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의 세대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아주 귀한 것으로 기억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 세대도 그렇겠지요.
D. 하지만 해 아래에서 지금도 새로운 역사는 창조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 새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죄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만이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 또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그리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하나님의 존전에 이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5. 장차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그러면 그때에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7. 자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에게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열정과 욕구를 주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III. 마지막 단원에서 솔로몬은 철학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그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그는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 쾌락 [전도서 2:1-3]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3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위대하고 사치스런 사업 [전도서 2:4-6]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많은 재물의 축적 [전도서 2:7-10]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8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결론은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A. 삶은 괴롭고 험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 성경은 인간의 삶이 괴로운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이렇게 괴롭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타락으로 삶은 탄식과 고통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이 창조 세계는 다시 그 속박에서 자유 하게 될 것입니다.
B.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인간의 수단들은 다 헛됩니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 해 아래서 하는 일들은 사람의 마음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2. 일에 취한 사람, 알콜에 취한 사람, 정욕과 쾌락에 도취한 사람들... 모두가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대용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환상이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3.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매년 4만 명이 자살하고, 또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의 수는 대략 40만 명 정도가 된다고 말합니다.
4. 여러분이 무엇을 잡으려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단 한 분 주님을 붙드는 삶은 여러분에게 참 만족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려 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생을 사시렵니까?
C. 솔로몬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지혜를 제공합니다. 지난 삶의 과거에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해 버린 행동에 대해서 안달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전도서 1: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 하나님만이 이미 구부러진 모든 것을 곧게 하실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통해서 뒤틀린 것들을 곧게 하셨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3:11-17]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마태복음 12:10-13]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
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D. 지혜와 경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 1:16-18]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1.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는 인간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명하신다 해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2.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약속과 믿음으로 살도록 하셨지 설명과 그에 따른 이해력, 그리고 보이는 것을 따라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 아담과 하와에 대한 사탄의 속임수는 바로 "지식과 지혜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이 때문에 한계에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지혜는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그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거니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동산에 있는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짓되 하나도 중복되지 않게 지었으니까요.
4. 우리가 이 지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제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열왕기상 6장에 나타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대해서 배웠었습니다. 당시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에 계속 해서 열왕기상 6-8장에 나타난 솔로몬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시 솔로몬의 삶 전체를 보다 큰 시야로 조망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솔로몬은 잠언서와 아가서 그리고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런 데 이 책들 속에서 솔로몬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잠언서 에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아가서에서는 사랑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일종의 바보스런 인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젊은 날들을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실험들로 보냈습니다.
"삶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이것은 역사 속의 모든 인간들이 찾아 헤매던 질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해 볼 수 있는 모든 실험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술과 오락은 통해서, 엄청나고 사치스런 사업과 업적들을 통해서, 학문적인 지식의 축적을 통해서, 철학적 사고를 통해서, 종교 시스템을 통해서... 그러나 솔로몬이 얻은 결론은 모든 사람들이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헛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는 결론으로 전도서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오늘의 말씀에서 해 아래서 살아가는 인간의 작고 연약함, 그리고 그에 따른 허무와 일종의 무력감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과학자의 관점에서, 역사가의 관점에서, 그리고 철학자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I. 첫 번째로, 솔로몬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은 자연의 순환 바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즉 땅, 해, 바람, 물에 대한 조사입니다. 솔로몬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고대 사상에서 모든 물질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던 네 가지 요소들, 즉 "땅, 공기, 불, 물"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세대는 오고 가지만 자연은 그대로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변화무쌍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 자연들 앞에서 유한한 존재로써 단순한 한 세대를 살고 갈 뿐인 인간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A. 그는 먼저 땅을 보았습니다.
[전도서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 인간은 일시적이며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출생의 고리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은 나 한 사람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짧은 순간 이 땅에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2. 우리 가운데 100년 전에 이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3. 북가주에 가면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던 때에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Redwood tree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과학자들이 수백 만년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그랜드 캐년의 바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출내기에 불과하지요.
4. 이 엄청나게 보이는 자연 앞에서 다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의 자신은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것입니다.
B. 그 다음 솔로몬은 해를 보았습니다.
[전도서 1: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 물론 우리는 해가 떴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요. 다만 지구가 돌고 있을 뿐입니다.
2. 방금 우리는 지구(땅)의 엄청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그 지구보다 더 엄청난 태양을 바라보면 할 말이 없지요?
C. 그리고 솔로몬은 바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전도서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 사람은 오고 가지만 공기의 흐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이 바람의 흐름을 우리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남쪽으로 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북쪽으로 돌이키기도 하고, 또 불어오던 곳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 우리는 현대인으로써 기상대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상대의 첨단 과학 연구로도 바람의 방향을 완전히 잡지는 못합니다. 태풍이 발생해서 그 태풍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태풍의 방향을 확실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을 하면 그 방향이 여지없이 한반도를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중간에 방향을 바꾸어서 중국이나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본의 기상학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Not again, not again!"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트위스터(Twister)라는 영화를 보니까 태풍의 힘이 어마어마합디다. 그 큰바람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합니다.
D. 그 다음 솔로몬은 바다를 보았습니다.
[전도서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 솔로몬은 여기서 Evaporation, 즉 기화현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 과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지구 전체의 물 가운데에서 97%를 바다가 항상 유지하고 있으며, 단지 0.0001% 정도만이 대기 중에 수증기로 떠돌고 있어서 비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일시에 전 세계에 10일 동안 비를 내릴 수 있는 분량입니다.
3. 우리는 때때로 어떤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단 2,3일만 집중적으로 비가와도 한 나라가 온통 물에 잠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엄청난 재산의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 10일동안 전 세계에 비가 내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E. 하지만 솔로몬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력감에 빠져 절망과 낙심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땅, 해, 공기, 물... 이런 자연들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무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저 해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 고개를 돌려보십시다.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태양을 제자리에 묶어 두셨습니다(여호수아 10:6-14).
2.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태양을 거꾸로 가게 하셨습니다(이사야 38:1-8).
3. 또한 홍해 바다를 가르셨고(출애굽기 14장), 홍수가 넘치는 요단강의 흐름도 멈추게 하셨습니다(여호수아 3-4장).
4.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비를 멈추게도 하셨고, 또한 다시 내리게도 하셨습니다(열왕기상 17장).
5.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기도 하셨고, 바람을 잠잠케도 하셨습니다(마 4:36-41).
F.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결코 여러분의 삶은 엄청난 자연 속에서 단조롭게 살아가는 무력한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청난 자연 위에 계신 분, 이 엄청난 자연을 지으시고 움직이시는 분과 기도를 통해서 연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필요를 여러분의 삶 속에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 위에 계신 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마태복음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II. 이제 솔로몬은 두 번째 단원에서 과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역사를 연구하고 아무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A.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전도서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1.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싶어하고, 새로운 것을 듣고싶어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울 수 없습니다.
2.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말미암아 피곤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 누구나 욕심을 버리면 피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욕구들을 심어주셨습니다. 새것을 향한 갈증을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4. 물론 문명의 이기나 삶의 유희들이 사람들의 새것을 추구하는 갈증을 약간은 해소해 줍니다. 그리고 많은 혜택과 기쁨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거기엔 참 만족이 없습니다.
B. 인간은 언제나 새것을 추구하지만, 사실 이 땅에 새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연구 결과입니다.
[전도서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의 창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엇이 새로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 아니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혹은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것들은 사실 새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것들의 발견, 혹은 이미 있던 것들의 새로운 결합에 불과합니다.
[전도서 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3. 가장 위대한 발명가중의 한 사람인 Thomas Edison도 자신의 발명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이미 있는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어 그것을 인류의 행복을 위해 적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C. 솔로몬은 이어서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들려줍니다.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우리들은 새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인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것을 발명했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솔로몬은 말합니다.
[전도서 1: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 인간이 무엇을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억력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보았던 순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세대차이도 큰 이유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아버지 세대를 다 이해하지 못하며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다 우리를 보고 "말세다, 말세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의 세대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아주 귀한 것으로 기억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 세대도 그렇겠지요.
D. 하지만 해 아래에서 지금도 새로운 역사는 창조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 새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죄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만이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 또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그리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하나님의 존전에 이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5. 장차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그러면 그때에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7. 자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에게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열정과 욕구를 주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III. 마지막 단원에서 솔로몬은 철학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그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그는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 쾌락 [전도서 2:1-3]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3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위대하고 사치스런 사업 [전도서 2:4-6]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많은 재물의 축적 [전도서 2:7-10]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8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결론은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A. 삶은 괴롭고 험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 성경은 인간의 삶이 괴로운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이렇게 괴롭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타락으로 삶은 탄식과 고통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이 창조 세계는 다시 그 속박에서 자유 하게 될 것입니다.
B.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인간의 수단들은 다 헛됩니다.
[전도서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 해 아래서 하는 일들은 사람의 마음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2. 일에 취한 사람, 알콜에 취한 사람, 정욕과 쾌락에 도취한 사람들... 모두가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대용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환상이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3.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매년 4만 명이 자살하고, 또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의 수는 대략 40만 명 정도가 된다고 말합니다.
4. 여러분이 무엇을 잡으려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단 한 분 주님을 붙드는 삶은 여러분에게 참 만족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려 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생을 사시렵니까?
C. 솔로몬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지혜를 제공합니다. 지난 삶의 과거에 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해 버린 행동에 대해서 안달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전도서 1: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 하나님만이 이미 구부러진 모든 것을 곧게 하실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지상 사역을 통해서 뒤틀린 것들을 곧게 하셨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3:11-17]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마태복음 12:10-13]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
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D. 지혜와 경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 1:16-18]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1.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는 인간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명하신다 해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2.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약속과 믿음으로 살도록 하셨지 설명과 그에 따른 이해력, 그리고 보이는 것을 따라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 아담과 하와에 대한 사탄의 속임수는 바로 "지식과 지혜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이 때문에 한계에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지혜는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그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거니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동산에 있는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짓되 하나도 중복되지 않게 지었으니까요.
4. 우리가 이 지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