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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이번 대통령 선거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기를 지켜보듯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 후보가 승리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거북이로 보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했습니다. 전직 대통령까지 지지 선언을 하면서 세몰이에 성공했으나, 두 번째 도전했던 이 후보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가난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중학교 갈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책값 만 내고 중학교입학금은 농사져서 내기로 하고 중학생이 되었지만 그것도 4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말단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다가 3년 장학금을 보장받고 부산상고에 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취직하려고 시험을 보았으나 탈락했습니다.
경상남도 진영에 있는 대창 초등학교가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학교 출신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통령 부인이 두 명이나 나온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와 노무현 당선자의 부인 권영숙 여사도 그 학교 출신입니다. 권영숙씨는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고 홀어머니가 그를 키웠다고 합니다. 계성 여상에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고 취직했습니다. 그가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노 당선자는 여섯 번 입후보하여 네 번 낙선하고 두 번 당선했습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국민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미국의 링컨같지 않습니까? 그들은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난에 반항하고 위기에는 정면 돌파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탄생했습니다.
본문말씀 2절을 보세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베들레헴이나 에브라다는 이명일지(二名一地)입니다. 한 동네를 베들레헴이라 부르고 에브라다라고 부릅니다. 에브라다는 고대 이름이고 베들레헴은 후대 이름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 비해 보잘것없이 지극히 작은 촌락입니다. 그 크기와 거주하는 사람의 수는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곳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유명한 특정지역의 후광을 받거나 영향력 있는 가문을 통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는 다스릴 자로 오셨습니다. 왕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마 2:1-1-3). 예수님은 빌라도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내가 왕이니라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8:33-37).
그는 세상의 통치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며, 그의 백성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2절에서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는 말은 베들레헴에서 나실 자가 통치자가 되어 하나님께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사렛은 작을지라도 메시아를 키웠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나사렛에서 자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때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5-46)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말입니다. 출생지가 유명한 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자가 출생지를 유명하게 합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때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교양이 부족하고 촌스러운 사투리와, 이방인들과의 교역 때문에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만 듣고 예수님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곤란합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먹이는 목자가 탄생했습니다.
목자란 양을 인도하며 먹이는 자입니다. 4절을 보면,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양을 먹이는 목자이십니다. 먹일 때 앉아서 먹이는 것이 아니라 서서 먹입니다. 앉아 있는 것은 재판장의 자세이고 서 있는 것은 시중 드는 모습니다. 자기 양떼들을 돌보며 사나운 짐승이 공격하는 것에 대비한 자세입니다. 그는 굶주린 영혼을 먹이는 목자입니다. 그는 말씀으로 인간의 영혼을 먹이고 영적인 갈망과 욕구를 만족하게 채워주십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95:7) 그에게 나아와 그를 따르는 자는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양떼들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하였습니다. 소수로 시작된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나라는 쉬지 않고 성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께서 좋은 것으로 잘 먹이심으로 번성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뜨거운 여름 뙤약 빛에서나 추운 겨울밤이나 양떼를 거느리고 들판이나 산에서 양떼와 함께 지냅니다. 목자의 눈은 양떼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목자의 마음은 언제나 양에게 있습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양을 우리로 데리고 들어 올 때는 그 수를 일일이 셉니다. 한 마리라도 없으면 양떼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1-4) 예수님을 목자로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목자가 없는 자는 곤고를 당합니다(슥 10:2). 부족함이 없는 삶은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평강이 탄생했습니다.
5절에서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통치자"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평강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뿐아니라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상태까지를 말합니다.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5절) 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사람"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파멸 시키고자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통이 있고 환란을 겪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일곱 목자를 일으켜 원수를 물리쳐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 목자는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좌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덟 군왕은 메시아의 사역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세우신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세상에는 근심되는 일과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것은 평화요 안정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평화와 만족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맺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 주십니다.
사9:6에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들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 2:14-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의 심령에 부어 주십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찬송 469장)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라"(롬 12:8)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케 된 자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를 통해 평강을 누리며 적극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하신 2절 말씀은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요 영원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태초부터 계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니까 세가지 일이 생기더군요. 첫째로 모든 불안이 없어지고, 둘째로 대단히 명랑해지고 셋째로, 어려움이 많아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어려움이 많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히 극복 할 수 있어요. 평안도 좋고 명랑해지는 것도 좋습니다. 그보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목마른 자는 와서 생명수를 마셔라. "내 안에 있으라!"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담력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가라!" 집으로 직장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은 나를 다스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먹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것으로 먹여 주실 때 잘 받아먹어 건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평강 이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여러분 마음의 구유에 주님의 평강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기를 지켜보듯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 후보가 승리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거북이로 보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했습니다. 전직 대통령까지 지지 선언을 하면서 세몰이에 성공했으나, 두 번째 도전했던 이 후보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가난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중학교 갈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책값 만 내고 중학교입학금은 농사져서 내기로 하고 중학생이 되었지만 그것도 4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말단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다가 3년 장학금을 보장받고 부산상고에 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취직하려고 시험을 보았으나 탈락했습니다.
경상남도 진영에 있는 대창 초등학교가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학교 출신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통령 부인이 두 명이나 나온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와 노무현 당선자의 부인 권영숙 여사도 그 학교 출신입니다. 권영숙씨는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고 홀어머니가 그를 키웠다고 합니다. 계성 여상에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고 취직했습니다. 그가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노 당선자는 여섯 번 입후보하여 네 번 낙선하고 두 번 당선했습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국민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미국의 링컨같지 않습니까? 그들은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난에 반항하고 위기에는 정면 돌파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탄생했습니다.
본문말씀 2절을 보세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베들레헴이나 에브라다는 이명일지(二名一地)입니다. 한 동네를 베들레헴이라 부르고 에브라다라고 부릅니다. 에브라다는 고대 이름이고 베들레헴은 후대 이름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 비해 보잘것없이 지극히 작은 촌락입니다. 그 크기와 거주하는 사람의 수는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곳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유명한 특정지역의 후광을 받거나 영향력 있는 가문을 통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는 다스릴 자로 오셨습니다. 왕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마 2:1-1-3). 예수님은 빌라도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내가 왕이니라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8:33-37).
그는 세상의 통치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며, 그의 백성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2절에서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는 말은 베들레헴에서 나실 자가 통치자가 되어 하나님께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사렛은 작을지라도 메시아를 키웠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나사렛에서 자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때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5-46)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말입니다. 출생지가 유명한 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자가 출생지를 유명하게 합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때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교양이 부족하고 촌스러운 사투리와, 이방인들과의 교역 때문에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만 듣고 예수님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곤란합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먹이는 목자가 탄생했습니다.
목자란 양을 인도하며 먹이는 자입니다. 4절을 보면,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양을 먹이는 목자이십니다. 먹일 때 앉아서 먹이는 것이 아니라 서서 먹입니다. 앉아 있는 것은 재판장의 자세이고 서 있는 것은 시중 드는 모습니다. 자기 양떼들을 돌보며 사나운 짐승이 공격하는 것에 대비한 자세입니다. 그는 굶주린 영혼을 먹이는 목자입니다. 그는 말씀으로 인간의 영혼을 먹이고 영적인 갈망과 욕구를 만족하게 채워주십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95:7) 그에게 나아와 그를 따르는 자는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양떼들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하였습니다. 소수로 시작된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나라는 쉬지 않고 성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께서 좋은 것으로 잘 먹이심으로 번성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뜨거운 여름 뙤약 빛에서나 추운 겨울밤이나 양떼를 거느리고 들판이나 산에서 양떼와 함께 지냅니다. 목자의 눈은 양떼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목자의 마음은 언제나 양에게 있습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양을 우리로 데리고 들어 올 때는 그 수를 일일이 셉니다. 한 마리라도 없으면 양떼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1-4) 예수님을 목자로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목자가 없는 자는 곤고를 당합니다(슥 10:2). 부족함이 없는 삶은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평강이 탄생했습니다.
5절에서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통치자"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평강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뿐아니라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상태까지를 말합니다.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5절) 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사람"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파멸 시키고자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통이 있고 환란을 겪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일곱 목자를 일으켜 원수를 물리쳐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 목자는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좌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덟 군왕은 메시아의 사역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세우신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세상에는 근심되는 일과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것은 평화요 안정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평화와 만족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맺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 주십니다.
사9:6에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들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 2:14-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의 심령에 부어 주십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찬송 469장)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라"(롬 12:8)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케 된 자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를 통해 평강을 누리며 적극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하신 2절 말씀은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요 영원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태초부터 계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니까 세가지 일이 생기더군요. 첫째로 모든 불안이 없어지고, 둘째로 대단히 명랑해지고 셋째로, 어려움이 많아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어려움이 많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히 극복 할 수 있어요. 평안도 좋고 명랑해지는 것도 좋습니다. 그보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목마른 자는 와서 생명수를 마셔라. "내 안에 있으라!"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담력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가라!" 집으로 직장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은 나를 다스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먹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것으로 먹여 주실 때 잘 받아먹어 건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평강 이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여러분 마음의 구유에 주님의 평강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