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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신목사 (영락교회)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날 때, 슬픔과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된다. 부활, 영적 회복, 소생
가. 슬픔 (1)
1.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 전에 어두운 길을 여인 두 사람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서 길을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오래 전에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막 16:9)이 여인은 일곱 귀신이 들려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치유하셔서 그 은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마리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도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는 벌써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섬기고 돕는 일을 했습니다.(눅 8:2)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쫓아 예루살렘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을 때에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으나 이 여인들은 도망가지 아니하고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지켜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지켜봤으며(마 27:56),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까지도 지켜봤습니다.(마 27;61)
2. 그리고 이제 안식일이 지난 후에 동이 트기 전에 그 무덤에 갔습니다. 향품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 당시 중동지방에는 시신에 향품을 발라서 부패하는 것을 늦추고 냄새나는 것을 없애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그렇게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가에 갔습니다. 무덤가로 가는 그 여인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죄 없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부패하고 타락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고난을 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잔인 무도한 로마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 너무나 분했습니다.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던 예수님을, 그토록 겸손하고 온유하던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별의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내 민족을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믿고 따랐는데 예수님께서 맥없이 죽게 되니까 너무나 낙심이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슬픔 가운데 무덤으로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여인 둘이서 무덤에 가는 것도 무섭고, 시체를 만질 것도 무섭고, 무덤 앞의 돌로 만들어진 문을 치울 생각하니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또한 로마 군인들을 만나서 실랑이 할 생각을 하니까 그것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이 여인들은 슬픔, 두려움, 걱정 등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하면서 무덤에 갔습니다.
여러분, 시체에 향품을 바르므로 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조금 부패가 더디다고 해서 생명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당장은 없겠지만 조금 지나면 그것도 마찬가지고...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향품을 바른다고 해서 슬픔과 낙심과 걱정들이 모두 없어지고 기쁨과 희망이 생길까요? 생명이 없는 속에는 기쁨과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향품을 바른다는 것은 생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상태에서 궁여지책으로 손을 본다는 정도이지 역시 슬픔과 낙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낙심되고 좌절된 마음으로 무덤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무덤에 도착해서 상상 밖의 일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나. 기쁨 (2-8)
1. 천사의 역사(2-4)
이미 천사가 그 무덤에 내려왔습니다. 지진이 나고 돌이 굴러져 가고 천사와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그 하늘영광을 보고 두려워서 기절해버렸습니다. 죽은 사람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요. 무덤을 인봉하고 창과 칼을 들고 군인들이 지켰으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천사를 통해서 일을 시키시면 사람이 지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든든하게 지키는 것 같던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자 같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천사의 전한 소식(5-7)
무덤에 와서 여인들이 그러한 장면을 봤을 때에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천사들이 ‘무서워 말라’(5a)고 아주 부드러운 말로 여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1) 그리고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것이 6절 말씀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것을 보라”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그래서 의아해하며 쳐다보니까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들을 몇몇 가지를 쭉 이야기 해줍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생전에 계셨을 때에 이미 여러 번 예고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 번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여기에 온 여인들도 그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고 많이 말씀하셨는지 그 얘기를 제자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은 후 십자가에서 죽은 뒤 사흘만에 부활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군인들로 하여금 무덤가를 지키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그전에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며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잘 몰랐는데, 반대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잘 기억했습니다. 그 얘기를 상기시키면서 예수님께서 여러 번 예고하신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2)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빈 무덤을 와서 보고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시체가 있던 무덤은 텅 비어있고 시체를 쌓던 세마포는 천만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시체를 덮었던 수건도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까 잘 정리가 되어있는데 시체가 없었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3) 천사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전에 하시던 말씀을 증명해 보이며 이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이야기와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라고 하였습니다.(7)참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예수님께서 잡히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제자들이 모두 다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제 저 제자들은 쓸모 없다고 생각도 할 만한데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아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다시 사용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이 귀한 은혜의 소식, 이 귀한 우리 주님의 은혜의 계획을 전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3. 기쁨으로 떠남(8)
1) 여인들이 천사의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달려나갔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천사들을 만난 두려움도 있었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것, 본 것, 경험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2)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기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났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도 확인했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시긴 사셨나보다는 기쁜 마음을 가졌습니다.
3) 그리고 이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빨리 뛰어갔습니다. 무덤에 올 때에는 조심스럽게 조용히 왔으나 무덤을 떠날 때에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빨리 달려갔습니다. 제자들과 이 기쁜 소식을 나누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달려갔습니다.
다. 회복 (9-10)
1. 예수님 만남 (9a,10)
1) 이들이 열심히 달려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번에 진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평안하뇨?”(9a)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이 말은 평상시에 늘 사용되는 인사말입니다. 그 평상시의 인사말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지금 머릿속에는 고통을 겪은 예수님과 십자가에 죽은, 그래서 무덤에 묻힌 예수님만을 생각했었는데, 예수님께서 “평안하뇨” 라고 이야기 할 때에 그것은 전혀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인사말은 바로 평상시에 늘 하던 인사말이고 평상시에 늘 친숙하게 듣던 인사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랫동안 계속 교제한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전화음성만으로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친숙하게 듣던 인사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친숙한 그 말투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서워 말라”(10a)고 이들을 또 위로해 주셨습니다. 평상시에 다정히 인사하시고 말을 건네시던 바로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2. 여인들의 인사(9b)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예수님을 그전 그대로의 친숙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까 갑자기 예전의 친숙하던 인간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덥석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과 의심과 낙망과 이 모든 것들은 사라졌습니다. 슬픔은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서 이전의 친밀한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기쁨과 희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이전의 관계가 회복되고 소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기운과 맥이 빠져있던 것이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것이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우리 주님의 생명을 직접 접촉하게 되었을 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이 여인들은 영육간이 회복이 되고 소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명 없는 시체에 향품을 바르고 있으면 슬픔과 낙심이 사라지고 기쁨과 소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시 보고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기쁨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생명을 느끼게 되었고 생명을 만지게 되었고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그 여인들의 마음 가운데에 기쁨과 희망이 샘솟게 되었고 그들 속에 생명력이 다시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 사순절 고난주간을 정말로 의미 있는 주간으로 보냈습니다. 3주전에 우리는 회개와 영적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회를 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나 하려면 벌써 작년부터 연간계획을 세워서 시행하지 무계획적으로 갑자기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기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에게 기도회를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대로 놔두면 안되겠다고 싶어서 우리에게 기도회를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3주간 동안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 한심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가지고 묵상할 때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7교회를 가지고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것을 마태복음을 가지고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수같이 우리의 심령을 찔러서 쪼갰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찔렸고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찢으며 기도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 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드러냈습니다. 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했던 것들이 모두 다 죄고 잘못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에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던 것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게으름과 신실치 못한 것과 믿음이 없는 것과 사랑이 없는 것이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사랑과 처음 열심을 버리고 순수하지도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했던 것이 여지없이 다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가 시체와 같이 생명 없는 것에 매달렸던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조직이나 예산, 직분과 같이 생명 없는 것들에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던 것을 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수치와 고통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신앙양심을 예민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순수한 신앙과 깨끗한 신앙과 거룩한 신앙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향해서 회복해 나갈 열심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동안에 생명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고 생명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절 아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생명 없는 것을 붙들어야겠습니까? 생명 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어루만지면서 낙심하고 슬퍼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다시 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생명을 만지고 느끼고 그 분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날 때, 슬픔과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된다. 부활, 영적 회복, 소생
가. 슬픔 (1)
1.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 전에 어두운 길을 여인 두 사람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서 길을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오래 전에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막 16:9)이 여인은 일곱 귀신이 들려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치유하셔서 그 은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마리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도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는 벌써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섬기고 돕는 일을 했습니다.(눅 8:2)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쫓아 예루살렘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을 때에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으나 이 여인들은 도망가지 아니하고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지켜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지켜봤으며(마 27:56),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까지도 지켜봤습니다.(마 27;61)
2. 그리고 이제 안식일이 지난 후에 동이 트기 전에 그 무덤에 갔습니다. 향품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 당시 중동지방에는 시신에 향품을 발라서 부패하는 것을 늦추고 냄새나는 것을 없애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그렇게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가에 갔습니다. 무덤가로 가는 그 여인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죄 없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부패하고 타락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고난을 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잔인 무도한 로마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 너무나 분했습니다.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던 예수님을, 그토록 겸손하고 온유하던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별의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내 민족을 구원하실 메시야라고 믿고 따랐는데 예수님께서 맥없이 죽게 되니까 너무나 낙심이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슬픔 가운데 무덤으로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여인 둘이서 무덤에 가는 것도 무섭고, 시체를 만질 것도 무섭고, 무덤 앞의 돌로 만들어진 문을 치울 생각하니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또한 로마 군인들을 만나서 실랑이 할 생각을 하니까 그것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이 여인들은 슬픔, 두려움, 걱정 등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하면서 무덤에 갔습니다.
여러분, 시체에 향품을 바르므로 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조금 부패가 더디다고 해서 생명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당장은 없겠지만 조금 지나면 그것도 마찬가지고...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향품을 바른다고 해서 슬픔과 낙심과 걱정들이 모두 없어지고 기쁨과 희망이 생길까요? 생명이 없는 속에는 기쁨과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향품을 바른다는 것은 생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상태에서 궁여지책으로 손을 본다는 정도이지 역시 슬픔과 낙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낙심되고 좌절된 마음으로 무덤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무덤에 도착해서 상상 밖의 일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나. 기쁨 (2-8)
1. 천사의 역사(2-4)
이미 천사가 그 무덤에 내려왔습니다. 지진이 나고 돌이 굴러져 가고 천사와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이 그 하늘영광을 보고 두려워서 기절해버렸습니다. 죽은 사람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요. 무덤을 인봉하고 창과 칼을 들고 군인들이 지켰으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천사를 통해서 일을 시키시면 사람이 지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든든하게 지키는 것 같던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자 같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천사의 전한 소식(5-7)
무덤에 와서 여인들이 그러한 장면을 봤을 때에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천사들이 ‘무서워 말라’(5a)고 아주 부드러운 말로 여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1) 그리고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그것이 6절 말씀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것을 보라”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그래서 의아해하며 쳐다보니까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증거들을 몇몇 가지를 쭉 이야기 해줍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생전에 계셨을 때에 이미 여러 번 예고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 번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여기에 온 여인들도 그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고 많이 말씀하셨는지 그 얘기를 제자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은 후 십자가에서 죽은 뒤 사흘만에 부활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군인들로 하여금 무덤가를 지키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그전에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며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잘 몰랐는데, 반대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잘 기억했습니다. 그 얘기를 상기시키면서 예수님께서 여러 번 예고하신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2)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빈 무덤을 와서 보고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시체가 있던 무덤은 텅 비어있고 시체를 쌓던 세마포는 천만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시체를 덮었던 수건도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까 잘 정리가 되어있는데 시체가 없었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3) 천사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전에 하시던 말씀을 증명해 보이며 이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이야기와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라고 하였습니다.(7)참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예수님께서 잡히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제자들이 모두 다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제 저 제자들은 쓸모 없다고 생각도 할 만한데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아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다시 사용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이 귀한 은혜의 소식, 이 귀한 우리 주님의 은혜의 계획을 전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3. 기쁨으로 떠남(8)
1) 여인들이 천사의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달려나갔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천사들을 만난 두려움도 있었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것, 본 것, 경험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2)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기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났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도 확인했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시긴 사셨나보다는 기쁜 마음을 가졌습니다.
3) 그리고 이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빨리 뛰어갔습니다. 무덤에 올 때에는 조심스럽게 조용히 왔으나 무덤을 떠날 때에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빨리 달려갔습니다. 제자들과 이 기쁜 소식을 나누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달려갔습니다.
다. 회복 (9-10)
1. 예수님 만남 (9a,10)
1) 이들이 열심히 달려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이번에 진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평안하뇨?”(9a)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이 말은 평상시에 늘 사용되는 인사말입니다. 그 평상시의 인사말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지금 머릿속에는 고통을 겪은 예수님과 십자가에 죽은, 그래서 무덤에 묻힌 예수님만을 생각했었는데, 예수님께서 “평안하뇨” 라고 이야기 할 때에 그것은 전혀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인사말은 바로 평상시에 늘 하던 인사말이고 평상시에 늘 친숙하게 듣던 인사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랫동안 계속 교제한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전화음성만으로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친숙하게 듣던 인사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친숙한 그 말투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서워 말라”(10a)고 이들을 또 위로해 주셨습니다. 평상시에 다정히 인사하시고 말을 건네시던 바로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2. 여인들의 인사(9b)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예수님을 그전 그대로의 친숙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까 갑자기 예전의 친숙하던 인간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덥석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과 의심과 낙망과 이 모든 것들은 사라졌습니다. 슬픔은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서 이전의 친밀한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기쁨과 희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이전의 관계가 회복되고 소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기운과 맥이 빠져있던 것이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것이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우리 주님의 생명을 직접 접촉하게 되었을 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이 여인들은 영육간이 회복이 되고 소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명 없는 시체에 향품을 바르고 있으면 슬픔과 낙심이 사라지고 기쁨과 소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시 보고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기쁨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생명을 느끼게 되었고 생명을 만지게 되었고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그 여인들의 마음 가운데에 기쁨과 희망이 샘솟게 되었고 그들 속에 생명력이 다시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 사순절 고난주간을 정말로 의미 있는 주간으로 보냈습니다. 3주전에 우리는 회개와 영적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회를 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나 하려면 벌써 작년부터 연간계획을 세워서 시행하지 무계획적으로 갑자기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기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에게 기도회를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대로 놔두면 안되겠다고 싶어서 우리에게 기도회를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3주간 동안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 한심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가지고 묵상할 때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7교회를 가지고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것을 마태복음을 가지고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수같이 우리의 심령을 찔러서 쪼갰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찔렸고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찢으며 기도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 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드러냈습니다. 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했던 것들이 모두 다 죄고 잘못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에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던 것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게으름과 신실치 못한 것과 믿음이 없는 것과 사랑이 없는 것이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사랑과 처음 열심을 버리고 순수하지도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했던 것이 여지없이 다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가 시체와 같이 생명 없는 것에 매달렸던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조직이나 예산, 직분과 같이 생명 없는 것들에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던 것을 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수치와 고통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신앙양심을 예민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순수한 신앙과 깨끗한 신앙과 거룩한 신앙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향해서 회복해 나갈 열심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동안에 생명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고 생명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절 아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생명 없는 것을 붙들어야겠습니까? 생명 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어루만지면서 낙심하고 슬퍼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다시 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생명을 만지고 느끼고 그 분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