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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중목사 (관악교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2>
우리 믿는 자가 갖춰야 할 여덟 가지 필요한 것 중에서 여섯 번째 마음 청결에 관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마음이라는 말을 희랍어로 카루디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신체의 중심 기관, 감정이나 사고 이해의 중심지,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근거, 이런 개념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청결이라는 말은 희랍어에 카다로스라는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끗하다, 순수하다, 오염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를 카다로스 청결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출 30:12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면서도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죄 많은 인생이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영원불변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대면할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을 했으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는 86년도 7월26일날 저 시나이 반도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본 일이 있습니다. 새벽 2시에 산에 올랐는데 같은 하늘인데 시나이 반도에서 바라보는 빛나는 별들은 왜 그렇게도 별들이 많은지 그리고 별들이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보이고, 거기에 은하수는 눈가루를 뿌려놓은 듯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왜 그렇게 선명하게 보일 수 있었을까요? 오염되지 않은 하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이판이라고 하는 저 태평양 가운데 있는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하와이라는 곳에도 가봤는데 그 곳의 바다는 전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은 물 속이 보이고 커다란 고래가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큰 대형 거울, 값비싼 거울이라도 거기 먼지가 많이 묻어있거나 때가 묻어있으면 전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또, 흙탕물 속은 한 치도 들여다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하고 깨끗한 그 곳에는 투명하게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면 저희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종국,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으니 요한1서 3:2-3절 말씀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주님 앞에 서는 날, 그 때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1:17절 이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는 계시는 보통 세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이미 기록된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계시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가 우리 죄를 사해줌으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주 되심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준 자상한 계시가 있으니 그것이 두번째는 꿈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저 페르시아에서부터 먼 길을 왔습니다. 유대 땅에 와서 헤롯궁으로 들어갑니다. 헤롯왕을 만나서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분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왕에게 매우 기분 나쁜 얘기였습니다. 자기가 지금 왕인데 무슨 또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말인가? 그래서 성경에 능한 제사장을 불러놓고, 아니!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난다고 기록되었느냐? 고 물었더니, 네,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태어난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동방박사들을 불러놓고 헤롯왕이 말합니다. 당신들 가서 유대인으로 탄생되신 아기 메시아가 있으면 그 분에게 경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에 좀 들렀다 가십시오. 나도 가서 경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 메시아 탄생을 확실히 알게 되면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헤롯왕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기 예수께 경배하던 그 날, 하나님은 꿈에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시어 헤롯왕에게로 가지 말라.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가라 하매 동방박사들은 꿈의 계시를 통해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편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니 아기 예수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얼마 후에 다시 천사가 꿈에 나타나 헤롯왕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니 아기 예수와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나라로 가라 하매 이스라엘 나라로 다시 와서 저 북쪽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와서 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꿈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꿈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어떤 사람에게 나타났는가? 역시 의로운 사람, 마음이 정직한 사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 청결한 마음에 이런 계시가 비춰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마태복음 1:19절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자기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 임신이 되어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마음이 나쁜 사람 같으면 캐묻고 따지고 정죄하고 심판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요셉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얼마나 언짢았겠습니까? 배신감이나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을 했는데 바로 그 날밤 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네 아내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 어떤 남자의 씨를 받아 된 것이 아니니 그를 아내로 데려 오라 하매 꿈에 지시를 받은대로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계시는 환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그의 2차 선교여행 중 드로아라고 하는 항구에서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마게도니야 사람 하나가 나타나더니 손짓하면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고 외칩니다. 환상이 지난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나를 아시아 지역으로 전도하는 일을 금하고 우선 마게도냐, 즉 유럽으로 가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타고 빌립보라고 하는 동네에 가서 전도했는데 루디아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으사 예수 믿게 하고 그 집을 거점으로 빌립보 교회를 탄생시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 주님을 위해 살아보려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은 언제나 계시를 통해서 어떻게 행할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 일이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교회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이후에, 성령 받고 난 이후에 그의 삶은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23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행 24:16절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고, 고후 1:12절에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선한 지식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내 안에 있지만 내 편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 편입니다. 이런 양심대로 살아가는 마음이 청결했던 사도 바울에게 계시, 환상이 언제나 나타납니다. 한번은 행 18장에 보면, 고린도지역에 가서 전도할 때 같은 동족인 유태인들이 전도를 방해합니다. 바울의 사역을 훼방하고 대적합니다. 바울의 맘이 상했습니다. 어쩌면 내 하는 일을 도와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가? 마음이 상해서 다시는 유대인들에게 전도하지 않아야 하겠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방인에게로 가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그 날 밤에 기도를 하는데 환상 중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이 성에는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니 떠나지 말고 좀 머물러 있어라. 그래서 일년 육 개월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맙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 양심껏 살고 순수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원칙적인 계시가 있고, 구체적인 계시가 때로는 꿈으로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은 지금도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계시의 목적은, 꿈이나 환상의 목적은 하나같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을 복음을 통해서 구원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 자칫 잘못 생각해서 사람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나 꿈꿨고 환상 보았다고 하면서 어떤 육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쪽으로 육신의 문제 해결하는 데로만 나아가면 그것이 바로 기복신앙으로 잘못 빗나갈 수도 있고, 또한 예수 믿는 목적을 이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밀레도라는 도시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마지막 고별사를 할 때 여러분, 내가 여러 성에서 기도 중에 느낀 것이 있고, 환상도 보았고, 꿈도 꾸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환영인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환란과 결박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루살렘에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복음 전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환상이 있을 때,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나를 두드려 팰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가이사랴라고 하는 동네에 갔는데 전도 많이 했던 안수집사 빌립이 있었고, 거기에는 네 딸들이 있는데 모두 예언하는 딸들이었습니다. 마침 예루살렘교회에 예언을 많이 했던 예언가였던 아카보라는 사람이 내려왔는데 그때에 뭐라고 하냐면 지금 예루살렘에서는 바울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면은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마십시오. 바울이 죽으면 안됩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리니까, 행 21:13절에서 바울이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전도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친다. 그러면서 사명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환상이나 계시의 목적이 육신의 안일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육신의 문제만을 위한 무당 찾아가서 점치는 식의 예언을 받는다거나 하나님의 사명을 저버리고 십자가와는 상관없는 세상 출세만을 위해서 걸어간다면 이것은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마다 금세에서는 복락을 누리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누리기를 꿈꿉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원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사람이 원한다고 다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면 주님이 앞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람은 육신적인 문제를 우선에 두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혼 잘되며, 우리 마음가짐이 바로 서기를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종국에 가서 하나님을 밝히 볼 날이 올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써야 될 것은 마음이 청결해지기를 힘써야 됩니다. 힘써야 할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힘쓰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우선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세 가지 입니다.
마음이 청결해 지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난 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한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데 힘써야 됩니다. 왜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까? 이사야 59:1-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멀리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도 응답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가까이 계실 때는 크게 고함지르지 않고 소근소근 적은 말로 이야기해도 알아듣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 친한 사이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잠 1:23절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랬습니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야 할 것, 하나님 말씀 불순종하고 뜻을 따라 살지 못하고 고집 부리는 죄에 대해서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렘 4:14절에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우리 속에 버려야 할 죄악의 쓴뿌리가 있는데도 그것을 회개하기를 뒤로 미루겠느냐 그 말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진노의 징계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1:2절 이하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안타까워서 이사야 선지자가 부르짖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까지는 소망이 있는 자에게 주님은 책망도 하시고 징계도 하시는 것이고 징계해도 책망해도 고집 계속 부리면 나중에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은 하나님이 외면하는 것입니다. 내 비록 환난 가운데 있어도 주님이 동행하면 소망이 있거니와 부귀영화 왕좌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외면하면 그것이 인생의 끝입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아말렉과 싸울 때 왕도 짐승도 없애라 했는데 자기 위세하려고 왕은 끌어오고, 짐승도 끌어오고,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하지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신 우상 앞에 절하는 죄와 같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당신을 버려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시나이다. 그 정도로 경고를 했으면, 변명하지 말고 네 믿음 없어 그렇게 했습니다. 내 마음이 교만했습니다. 사람 비위 맞추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하고 회개했으면 소망이 있을텐데, 그때만 깨닫는 것처럼 보이다가 또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삼상 28장에 보니,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켜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대는 수넴에 진쳤고 사울과 그 군대는 길보아라고 하는 곳에서 진을 쳤는데 사울이 블레셋 군대를 보는 순간에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하고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꿈으로나 우림으로나, 이 우림은 제사장의 몸에 있는 보석에서 하나님의 뜻이 비취는 것인데 우림으로나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치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위급하니까 어디로 갔습니까?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즉 무당을 찾아간 것입니다. 점치는 사람 찾아간 것입니다. 나는 이럴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여호와의 부린 악신이 사로잡으니 그는 타락하게 되었고, 결국 그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 회개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고집을 부리면 결국 남는 것은 형벌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외칩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의와 평강과 희락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 양심의 거리끼는 죄를 회개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두번째, 이 마음이 청결함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회개할 사람은 두번째 힘써야 할 것이 있는데 세속에 물들지 않기를 힘써야 됩니다.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 청소년 시절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력하게 유능하게 보인 청소년들에게 국비 장학생으로 3년 동안 특수 교육을 시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뽑혔습니다. 갈대아 소년들과 함께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그들은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왕이 식사한 같은 내용의 식사를 했으니 얼마나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왕이 먹는 음식은 그 나라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 앞에 제사하고 물려받은 음식이었으므로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귀신 앞에 제사하고 물려받은 음식은 먹을 수 없다, 내 몸을 성별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관리하는 환관장을 찾아가서 우리는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환관장이 놀래면서 너희들이 건강상태가 나빠지면 내 목이 위태롭도다. 그럴 수 없다. 그랬더니 다니엘이 자신 있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열흘동안 채식만 먹도록 시험해보시고, 열흘 후에 우리 건강상태가 갈대아 소년들, 왕의 진미를 먹는 갈대아 소년들보다 못하시면 그때는 처분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면 알았다. 열흘동안 해보자 해서 열흘이 지난 후에 건강상태를 체크했는데 왕의 진미를 먹는 갈대아 소년들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건강이 아주 양호함으로 그때부터 왕의 진미를 먹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는 먹을 음식까지도 절제하면서 하나님 편으로 기울어지려고 할때 건강까지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삼 년 기간이 끝이 나고 시험을 치렀는데 구두시험을 치렀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묻는 말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갈대아 소년들보다 열 배나 대답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몽조, 꿈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 지혜를 주시니 이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느부갓네살 왕이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다니엘이 해석함으로 그는 당장에 국무총리로 등용이 되고 그리고 다니엘의 간청으로 세 친구는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언제 다니엘이 국무총리를 구했나요? 세 친구가 우리 도지사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나요? 명예와 지위와 권세와 재물 언제 구했나요? 나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 보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힘썼는데 하나님은 구하지 않은 명예, 지위, 권세, 재물을 주셨습니다. 우선 순위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잠언서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성전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전의 몸이 우리 마음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인줄 믿습니다. 고전 3:16절에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한다고 했으니 여러분 마음의 성전 안에 더러운 것들, 악한 것들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위에 배가 떠있을 때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고,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데 배 안에 물이 새어 들어오면 그 배는 침몰되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에 세속 문화가 들어와서 세상의 악한 사상들이 들어와서 이 교회가 세상에 가라 앉아버리면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은 사람이라도 마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다시 유혹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깨어라 근신하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순수성과 깨끗함이 세상의 죄악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마음을 성결케할 때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은혜 베푸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니 우리도 그의 자녀된 자로써 하나님을 닮아 예수님을 닮아 마음이 청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약 1: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내 자신들이 세상적인 죄악의 유혹을 받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성결을 지켜 살아가는 것,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라는 그 말입니다.
세번째,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 하나님 앞에서 서는 날, 흠도 없고 점도 없기를 우리가 힘써야 합니다. 벧후 3:8절 이하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힘쓰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되기 위해서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야당의 소리, 여당의 소리, 소리로 싸우지 말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약사나 의사는 자기 이익 챙기는데 싸우지 말고 국민의 건강부터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국민이 없이 정치가 있습니까? 백성이 없는데 의사와 약사가 필요합니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영광은 생각하지도 않고 개인의 이익만 챙기려 드는 이런 자기 중심, 이기주의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기 때문에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떤 일하는 사람되기 원하기 전에 순수한 마음부터 가지라. 깨끗한 양심을 가지라.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 욕심을 버리라. 탐심은 우상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돌아 보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경건이고, 정결한 마음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말세에 성도들의 타락상,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에게서 자기로, 하나님보다 돈, 하나님보다 쾌락,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거룩을 지키십시오. 요한계시록 3: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내가 하나님 앞에 세번씩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작정했으면 사자 굴속에 던져 들어갈지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리라. 그렇게 살았던 다니엘, 주님이 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기도를 해도 우선순위로 기도해야 합니다. 건강 주십시오. 재물을 주십시오. 명예와 지위와 권세도 주십시오. 우리 부모 형제 예수 믿게 하십시오. 우리 자녀들 다 성령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구할 것은 정결한 마음을 기도해야 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이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합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하지요.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의 지혜를 알게 하시옵소서. 주의 얼굴을 내게서 돌이키지 마옵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내 마음이 정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깨끗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청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심령이 새로워지기 위한 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마음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도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내 어둔 눈 밝히시면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옴은 정결한 맘 주옵소서.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죄질 생각 다 버려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죄 때문에 고민하고 우는 자의 모습,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마음상해서 울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한 내 죄를 바라보고 우는 사람, 하나님이 주의 보혈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별 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주님 만날 날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볼 날이 있을 것이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태한 것 면케 하시고, 꿈으로 환상으로 그밖에 여러 계시로 우리의 신원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깨끗한 사람, 하나님이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2:20절 이하에서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유식한 사람 많습니다. 유능한 사람이 많습니다. 고급인력이 남아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세상이 어둡습니다. 이유는 깨끗한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유력한 인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마음 깨끗하고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 가진 사람을 주님은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하여 천국은 예비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 24편 3-6절까지의 말씀을 저는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