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2
분류 |
---|
변한규목사 (광주중앙교회 목사)
누구에게나 첫 번째 만남이 있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첫 번 만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당초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인데 바닷가에서 고민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 지난 밤 허탕을 치고서 허전하고, 괴로워하고, 실망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십니다. 베드로는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는데 5절 말씀을 보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이 말은 내 생각, 판단, 경험, 주관으로 그물을 내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다 부인, 포기해 버리고 예수님의 의지에 그물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의지한다''는 말은 ''기초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베드로는 이 만큼 예수님을 신뢰했고,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기초 삼을 만하게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하면 참 믿음이 무엇인가? 대답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 기초하는 믿음이라할 수 있습니다. 여기 말씀은 무엇이냐? 빛이 있으라 하셔서 빛을 있게 하셨던 태초의 바로 그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참 믿음은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을 신뢰하는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바닷가에 서신 예수님과 그 발아래 무릎을 꿇은 베드로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다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8절에 보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했습니다. 왜 베드로가 처음 만난 예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믿을 때 조용히 사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어찌했습니까? 굉장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올바른 결단을 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처음 열정은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지 아니했나''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전파했습니다. 한 번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외쳤던 엄청난 고백을 한 적도 있고, 깊은 밤에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물 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 저마다 무서워 떨고 있는데 베드로만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오라하소서"예수님께서 "오라"말씀하시니까 물위로 걸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대단합니다. 또 베드로는 크게 장담을 한 때도 있습니다. "주여 나는 죽을지언정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나이다"믿음의 결과인줄 압니다. 능력을 받고 설교했을 때는 하루에 삼 천명 회개하는 심령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베드로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을 받기도 했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돌이켜 볼 때 가슴아픈 일이 한 두 번 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몇 번이나 베드로처럼 부인한 나는 아닌가? 이렇게 외쳐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낙담과 실망가운데 있었지만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어떤 그물을 내릴까요?
첫째, 소망의 그물을 내려야 함.
2절에 보면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왜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까?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밤에는 허탕쳤습니다. 그들에게 지난밤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집니다. 실의, 낙담, 절망의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열 번, 스무 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던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어부들의 눈앞에 소망의 태양이 밝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던져 보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씻고 있는 그 그물이 어떤 그물입니까? 소망의 그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한 해 IMF로 말미암아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는 실패의 해 였는지도 모릅니다. ''얻은 것이 없나이다''이것이 한 해를 보낸 우리 모두의 고백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는 소망의 2001년 새해를 맞아 첫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던질 그물이 무엇입니까? 소망의 그물입니다. 이 그물을 각처에 있는 어장에서 이 쪽, 저 쪽에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던지면서 일 년을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출범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출범할 때 예수님과 함께 손잡고 출범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 던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 축복이 넘치게 될 것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 두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전문가입니까? 베드로입니다. 세속적인 직업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목수요, 또 진짜 목수도 아니고 목수인 아버지 곁에서 배웠던 조수목수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냐?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바다에 대해서는 누구를 무론하고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목수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일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때 만일 베드로가 "당신 내가 누구인 줄 아시오"하면 당황해 했어야 될 예수님이시고, 또 만일 그리했더라면 베드로는 낭패로 끝나버릴 뻔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찌했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이것을 강조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순종을 한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처음 만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예수님의 명령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생각할수록 불합리한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변증학자 터툴리안의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불합리한 점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6절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고 했습니다. 성도여! 한 해를 살고자 할 때 순종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다. 순종이 있는 곳에 기적, 축복이 있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헌신의 그물을 던져야 함
11절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는데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이었습니다. 여기 모든 것 속에는 그들의 배가 있고, 그물들도 있습니다. 고기 잡는 장비도 있고, 식량을 끓이는 도구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 처자식도 뒤에 두고, 직장, 고향도 버려두고 오직 예수님만 좇아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 꽉 붙잡혔습니다. 예수님만 믿었고 예수님 때문에 새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헌신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던진 그물이 무엇입니까? 헌신의 그물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의 남을 생애 전부를 예수님께 바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핍박을 받았고, 조롱당하고, 손해를 보았습니다. 베드로에게는 통장하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을 했습니다. 충성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거꾸로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헌신은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 물질, 몸도 드리는 일이 헌신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작은 것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주님께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금년에도 이러한 성도들을 불러서 축복하시고, 능력을 입혀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주는 자가 내게로부터 받을 것이라" 또 말씀하십니다. "헌신하는 자는 이 땅에서 조금 손해가 될지라도 하늘 나라에 필요한 모든 보화와 상급을 받게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주님께 헌신하다가 이 땅에서 조금 손해를 보고 또 가난해 진다고 낙망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 손해, 가난이 하늘나라에서 상 받을 조건이 될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헤밍웨이 작품가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남을 생애는 짧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만 있기에는 생애가 짧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누구를 위하여 바칠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지금도 믿기에 마침내는 우리 함께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신 그 예수님께 헌신해야 되지 않겠습니다. ♬사나 죽으나♬ 살던지 죽던지입니다. 바울처럼 우리 모두는 남은 생애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로다. 작정하고 남은 생애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하고 싶습니까?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 모든 것이 드려지려고 하면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그물을 씻고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물을 담으려고 하면 구정물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왕자, 공주가 되었습니다. 왕자의 예복, 공주의 예복을 입으려면 돼지 칠 때 입었던 냄새나는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해 벽두에 우리 모두는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해야 합니다. 훗날 베드로가 설교할 때 어찌했습니까? 무리들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고"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그물로는 고기를 담을 수 없습니다. 찢어진 그물에 고기를 모을 수가 없습니다. 새해 벽두입니다. 우리함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고 해야 합니다.
셋째 전도의 그물을 던져야 함.
10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금년을 전도하는 해로 정하고 눅5:10말씀을 표어로 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한 번 돌이켜 보십시다. 지난해에는 고기 낚는 일에만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명함을 바꾸어야 합니다. 너도 한 사람 나도 한 사람 모두 모두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여기 취하리라는 말은 사로잡는다. 죽는 것을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 있는 고기를 낚아서 그 고기를 죽게 하는 베드로를 이제부터서는 죽을 목숨인 사람을 취해서 천국 생명으로 살게 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선언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도의 그물을 던지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지난해에 전도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었나이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새해 벽두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무슨 뜻입니까? ''뱃머리를 돌리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라'' 전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힘차게 전도의 그물을 던져라. 너는 할 수 있다. 전도의 그물을 가지고 한 번 더 시도해 보라는 뜻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① 중단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물론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일 년을 결산할 때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부가 그물 던지는 일을 중단할 수가 있습니까? 갈6:9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이어서 말합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무슨 일이나 중단하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에 그물 던지는 일은 결코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② 한 번 더 수고하라는 교훈입니다. 모든 성공의 비결이 한 번 더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한 번더 용서하고, 사랑하고, 수고하고, 전도하는 생활입니다. 베드로가 어찌했습니까? 한 번더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두 배를 채울 만큼 많은 고기를 에울 수가 있었습니다.
③ 깊은 데로 가라는 교훈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데 있습니다. 얕은 물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얕은 물에서 철썩, 철썩하면서 노는 생활이 아닙니다. 깊이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사랑, 기도, 성경지식에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한지라 낙담가운데 있었을 때 그는 어장에 나타나신 주님을 만나 횡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 년을 살아 갈 때 더러 낙심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장에 찾아와 주십니다. 인생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어장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어장인 교회에 새해 벽두에 주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장이 어디입니까? 자동차를 굴리고, 기계를 놀리고, 물건을 팔고, 밭을 갈고, 주사를 놓고, 백묵을 들고 강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고기를 낚는 모든 우리의 모든 일터가 예수님이 서신 어장이요,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신 우리의 어장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 년 동안 우리의 어장에 서 계실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어장에 서 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한 축복이 임합니다. 이와 같은 넘치는 축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에게나 첫 번째 만남이 있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첫 번 만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당초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인데 바닷가에서 고민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 지난 밤 허탕을 치고서 허전하고, 괴로워하고, 실망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십니다. 베드로는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는데 5절 말씀을 보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이 말은 내 생각, 판단, 경험, 주관으로 그물을 내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다 부인, 포기해 버리고 예수님의 의지에 그물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의지한다''는 말은 ''기초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베드로는 이 만큼 예수님을 신뢰했고,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기초 삼을 만하게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초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하면 참 믿음이 무엇인가? 대답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 기초하는 믿음이라할 수 있습니다. 여기 말씀은 무엇이냐? 빛이 있으라 하셔서 빛을 있게 하셨던 태초의 바로 그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참 믿음은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을 신뢰하는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바닷가에 서신 예수님과 그 발아래 무릎을 꿇은 베드로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다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8절에 보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했습니다. 왜 베드로가 처음 만난 예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믿을 때 조용히 사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어찌했습니까? 굉장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올바른 결단을 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처음 열정은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지 아니했나''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전파했습니다. 한 번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외쳤던 엄청난 고백을 한 적도 있고, 깊은 밤에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물 위로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 저마다 무서워 떨고 있는데 베드로만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오라하소서"예수님께서 "오라"말씀하시니까 물위로 걸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대단합니다. 또 베드로는 크게 장담을 한 때도 있습니다. "주여 나는 죽을지언정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나이다"믿음의 결과인줄 압니다. 능력을 받고 설교했을 때는 하루에 삼 천명 회개하는 심령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베드로에게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을 받기도 했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돌이켜 볼 때 가슴아픈 일이 한 두 번 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몇 번이나 베드로처럼 부인한 나는 아닌가? 이렇게 외쳐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낙담과 실망가운데 있었지만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어떤 그물을 내릴까요?
첫째, 소망의 그물을 내려야 함.
2절에 보면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왜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까?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밤에는 허탕쳤습니다. 그들에게 지난밤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집니다. 실의, 낙담, 절망의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열 번, 스무 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던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어부들의 눈앞에 소망의 태양이 밝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던져 보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씻고 있는 그 그물이 어떤 그물입니까? 소망의 그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한 해 IMF로 말미암아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는 실패의 해 였는지도 모릅니다. ''얻은 것이 없나이다''이것이 한 해를 보낸 우리 모두의 고백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는 소망의 2001년 새해를 맞아 첫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던질 그물이 무엇입니까? 소망의 그물입니다. 이 그물을 각처에 있는 어장에서 이 쪽, 저 쪽에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던지면서 일 년을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출범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출범할 때 예수님과 함께 손잡고 출범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 던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 축복이 넘치게 될 것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 두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전문가입니까? 베드로입니다. 세속적인 직업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목수요, 또 진짜 목수도 아니고 목수인 아버지 곁에서 배웠던 조수목수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냐?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바다에 대해서는 누구를 무론하고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목수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일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때 만일 베드로가 "당신 내가 누구인 줄 아시오"하면 당황해 했어야 될 예수님이시고, 또 만일 그리했더라면 베드로는 낭패로 끝나버릴 뻔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찌했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이것을 강조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순종을 한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처음 만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예수님의 명령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생각할수록 불합리한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변증학자 터툴리안의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불합리한 점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6절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고 했습니다. 성도여! 한 해를 살고자 할 때 순종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다. 순종이 있는 곳에 기적, 축복이 있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헌신의 그물을 던져야 함
11절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는데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이었습니다. 여기 모든 것 속에는 그들의 배가 있고, 그물들도 있습니다. 고기 잡는 장비도 있고, 식량을 끓이는 도구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 처자식도 뒤에 두고, 직장, 고향도 버려두고 오직 예수님만 좇아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 꽉 붙잡혔습니다. 예수님만 믿었고 예수님 때문에 새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헌신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던진 그물이 무엇입니까? 헌신의 그물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의 남을 생애 전부를 예수님께 바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핍박을 받았고, 조롱당하고, 손해를 보았습니다. 베드로에게는 통장하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을 했습니다. 충성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거꾸로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헌신은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시간, 물질, 몸도 드리는 일이 헌신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작은 것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주님께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금년에도 이러한 성도들을 불러서 축복하시고, 능력을 입혀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주는 자가 내게로부터 받을 것이라" 또 말씀하십니다. "헌신하는 자는 이 땅에서 조금 손해가 될지라도 하늘 나라에 필요한 모든 보화와 상급을 받게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주님께 헌신하다가 이 땅에서 조금 손해를 보고 또 가난해 진다고 낙망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 손해, 가난이 하늘나라에서 상 받을 조건이 될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헤밍웨이 작품가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남을 생애는 짧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만 있기에는 생애가 짧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누구를 위하여 바칠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지금도 믿기에 마침내는 우리 함께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신 그 예수님께 헌신해야 되지 않겠습니다. ♬사나 죽으나♬ 살던지 죽던지입니다. 바울처럼 우리 모두는 남은 생애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로다. 작정하고 남은 생애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하고 싶습니까?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 모든 것이 드려지려고 하면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그물을 씻고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물을 담으려고 하면 구정물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왕자, 공주가 되었습니다. 왕자의 예복, 공주의 예복을 입으려면 돼지 칠 때 입었던 냄새나는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해 벽두에 우리 모두는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해야 합니다. 훗날 베드로가 설교할 때 어찌했습니까? 무리들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고"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그물로는 고기를 담을 수 없습니다. 찢어진 그물에 고기를 모을 수가 없습니다. 새해 벽두입니다. 우리함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고 해야 합니다.
셋째 전도의 그물을 던져야 함.
10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금년을 전도하는 해로 정하고 눅5:10말씀을 표어로 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한 번 돌이켜 보십시다. 지난해에는 고기 낚는 일에만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명함을 바꾸어야 합니다. 너도 한 사람 나도 한 사람 모두 모두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여기 취하리라는 말은 사로잡는다. 죽는 것을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 있는 고기를 낚아서 그 고기를 죽게 하는 베드로를 이제부터서는 죽을 목숨인 사람을 취해서 천국 생명으로 살게 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선언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도의 그물을 던지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지난해에 전도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었나이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새해 벽두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무슨 뜻입니까? ''뱃머리를 돌리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라'' 전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힘차게 전도의 그물을 던져라. 너는 할 수 있다. 전도의 그물을 가지고 한 번 더 시도해 보라는 뜻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① 중단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물론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습니다. 일 년을 결산할 때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부가 그물 던지는 일을 중단할 수가 있습니까? 갈6:9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이어서 말합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무슨 일이나 중단하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에 그물 던지는 일은 결코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② 한 번 더 수고하라는 교훈입니다. 모든 성공의 비결이 한 번 더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한 번더 용서하고, 사랑하고, 수고하고, 전도하는 생활입니다. 베드로가 어찌했습니까? 한 번더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두 배를 채울 만큼 많은 고기를 에울 수가 있었습니다.
③ 깊은 데로 가라는 교훈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데 있습니다. 얕은 물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얕은 물에서 철썩, 철썩하면서 노는 생활이 아닙니다. 깊이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사랑, 기도, 성경지식에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한지라 낙담가운데 있었을 때 그는 어장에 나타나신 주님을 만나 횡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 년을 살아 갈 때 더러 낙심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장에 찾아와 주십니다. 인생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어장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어장인 교회에 새해 벽두에 주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장이 어디입니까? 자동차를 굴리고, 기계를 놀리고, 물건을 팔고, 밭을 갈고, 주사를 놓고, 백묵을 들고 강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고기를 낚는 모든 우리의 모든 일터가 예수님이 서신 어장이요,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신 우리의 어장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 년 동안 우리의 어장에 서 계실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어장에 서 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한 축복이 임합니다. 이와 같은 넘치는 축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