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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목사 (순복음인천교회)
오늘 이 시간에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네, 12월이 되면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뭘까? 성탄절입니다. 성탄이 뭡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다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가 문제냐? 사람들이 성탄절을 좋아하는 이유가 각각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 ''엄마, 아빠가 어떤 선물을 얼마나 많이 사줄까?'', 그 생각이 꽉 차있습니다. 또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아기 예수를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좀 쉴까?'', ''어디로 좀 놀러갈까?'' 그것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성탄절을 여러 휴일 중에 하나로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1년에 휴일이 많아요. 또 절기가 있어요. 그 날 중의 한 날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최대의 축제일인 것입니다. 또 성탄절은 창세기 3장부터 기다리고 준비되어 온 날인 것입니다. 성탄절을 내 생일보다 더 성대하게 축하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성탄절을 자기의 결혼식 기념일보다 더 정성스럽게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성탄절을 첫 아기의 출산을 사모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사모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모하는 날은 참 좋은 거예요.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한다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107편 9절 말씀이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 시간, 성탄을 기다리고 사모했던 성경의 인물을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성탄절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봄으로, 그래서 이 성탄의 기쁨이 나뿐만 아니라, 또 가정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더 나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요셉
첫째, "요셉"을 생각해봅니다. "요셉"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출산한 마리아와 정혼한 남자인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어떤 신앙으로 성탄을 기다렸느냐?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4절입니다.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그랬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마리아와 약혼했습니다. 결혼을 작정하고 정혼한 사이입니다. 마리아와.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겁니다. 자기와 하룻밤도 잔 적이 없는데, 자기와 정혼한 그 여인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이야기입니다. 남의 여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와 함께 결혼할 사람, 자기 여자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잉태한 마리아를 데려올 수 있습니까? 데려올 수 없습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요셉은 데려왔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장 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자기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누가 말씀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이 말씀을 누가 들었습니까? 요셉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인 겁니다. 이 말씀을 믿은 겁니다.
요셉은 자기 기분과 생각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자신을 맞춰서. 아마 자기 생각대로 했다면, 자기 기분대로 했다면, 충청도 말로 말하면 쥐어 팼을 것입니다. 아니면 딱 끊었을 것입니다. 파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기분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자서 잉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인류의 구세주를 자기가 정말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하셨다고 하실 때, 그 말을 받아들인 겁니다. 믿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내가 손해나도, 내가 좀 손해나도, 내가 억울한 일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오늘의 삶에 손해가 안 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나의 삶에 혹 손해가 나더라도, 혹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 이것이 산 믿음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성탄절은 사람들과 기분 내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온전한 성탄절인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 이것이 건강한 성탄절, 성경적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순결한 삶을 통해서 성탄절을 기다렸습니다. 순결한 삶을 통해서 또 기다렸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믿은 것뿐만 아니라, 순결한 삶을 통해서 아기 예수가 탄생할 것을 기다렸습니다. 보세요. 마태복음 1장 25절 상반절에 보니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잉태한,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를 이제 데려왔습니다. 데려왔으니까 자기 아내입니다. 동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한 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까지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를 데려왔지만, 동침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밤 자리에 잠을 같이 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요즘 성탄절은 "성탄 문화"는 없고, "세상 문화"만 가득합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한 성탄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주일이 아닌 성탄절에 헌혈을 하는 것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는 지금까지 계속 한 14, 5년 전부터 해마다, 해마다 헌혈합니다. 언제 합니까?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여름은 언제 합니까? 6.25 주간에. 겨울에는 언제 합니까? 성탄절 날, 성탄절 날. 부족하지만 저도 저 자신도 지금까지 한 30번의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할수록 건강해지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혈 역사상 성탄절 날 헌혈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한 것은 순복음인천교회가 첫 테잎을 끊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언제 헌혈하는 게 좋을까? 민족 전쟁을 일으켰던 6.25 주간에. 우리가 피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헌혈해서 사람을 살리자. 그런 정신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나지 않을 것이다. 6.25 주간에 우리는 헌혈하자. 그 다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 날, 제일 큰 선물이 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피를 주셨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가 할 일이 뭐냐? 우리는 생명의 이 피를, 피 때문에 고통 당하고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헌혈하자. 그래서 성탄절 날 헌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계속. 우리는 14, 5년 전부터 성탄절 날만 되면 헌혈했습니다.
성탄절 날 최고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뭘까? 예수님의 탄생을 제일 기뻐할 것이 뭘까? 피가 없어서 수술 못 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그 깨끗한 피를 우리가 헌혈해서 그들을 위해서 준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성탄 선물이 어디 있냐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날 헌혈하는 것도 성탄의 문화인 것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인터넷 통해서 설교를 들으시는 분은 이해하세요. 우리끼리 이야기예요. 순복음인천교회가 보통 교회가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교회입니다. 성탄 문화, 성탄절 날 헌혈함으로 말미암아, 성탄 문화를 바꿉니다. 성경적 효를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성경 문화가 이제 세상 문화를 바꿔놓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웃과 함께, 고통 당하는 사람과 함께, 외로운 사람과 함께, 자녀 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독거 노인들과 함께, 부모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 소녀 가장들과 함께, 어려움을 당하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우리가 함께 해야 됩니다. 화해하고, 사랑하고, 저 북한 땅에도, 성탄을 모르는 저 북한 땅에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물품을 보내서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인 줄 믿습니다.
요셉은 순결한 삶을 통해서 성탄절을 기다렸다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주일이 아닌 성탄절에 헌혈하는 것,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헌혈 같은 좋은 일이 성탄절에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일이 막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눈이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 때문에 세상이 순결해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바뀌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둘째, 마리아
두 번째,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 마리아. 마리아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성탄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했습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1장 38절에 보니까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게 웬 일입니까?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여, 성령의 능력으로 너에게 예수님의 잉태가 임할 것이다." 마리아가 볼 때, 이것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정혼한 남자가 있습니다. 정혼한 요셉이 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잉태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올까? 잉태했다면 정혼은 파혼될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정혼한 상태에서 결혼하지 아니하고 잉태하면, 그 아버지도, 그 부모도 그를 족보에서 빼버려야 돼요. 그 뿐이 아닙니다. 이제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 손해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약혼자와 파혼해야 됩니다. 자기 아버지 족보에서 뽑혀나가야 됩니다. 돌로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불이익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동정녀 탄생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고도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동정녀 탄생, 그것을 믿었습니다. 이게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상식으로, 의학으로 도저히 안 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이 그랬대." 그러면 "아, 그런 가보다. 그럴 수 있나 보다." 그러는데, 그 일이 자기에게 오는 겁니다. 엄청난 손해가 옵니다. 불이익이 옵니다. 그런 걸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 요셉에, 그 마리아 아닙니까?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구세주로 오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분이 구세주로 오시기 때문에, 내가 죽어도, 내가 희생을 당해도, 하나님의 아들, 그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시는데 내 몸을 써주신다면 나는 받아들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위대합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성탄은 성탄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는 성탄은 성탄절이 아닌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누구이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독생자 예수이십니다. 아기 예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주인공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아기 예수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구세주로 오셨음을 선포하는 성탄절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최고의 성탄 준비는 무엇일까요? 영혼구원입니다. 전도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겁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친척에게,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선물 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전해서 "갑시다. 교회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갑시다. 갑시다." 그러므로 최고의 선물은 뭐냐? 물질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아기 예수를 전하면,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아기 예수의 오심에 기뻐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자마자 곧장 엘리사벳에게 가서 소식을 전했습니다(눅 1:39-46).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또 엘리사벳에게 가서 아기 예수의 오심을 또 찬양했습니다(눅 1:46-55). 감사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잉태를 또 찬양했습니다.
오늘 날 세상 사람들보다 교회가 더 성탄절에 찬양하지 않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기업이나,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에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까, 어떻게 하면 수지 맞을까, 어떻게 하면 좀 즐겁게 놀까, 신날까" 해서 성탄 문화가 아닌 것 가지고, 성탄을 기뻐합니다. 즐거워합니다. ''한 탕 벌자.'' 그런 식으로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정작 아기 예수의 탄생을 더 많이 기뻐하고, 온전하게 성경적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찬양하고 기뻐해야 할 교회는 오히려 잠잠합니다. 세상에 문화의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의 캐롤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의 이름을 힘껏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아기 예수가 없는 캐롤이 더 많습니다. 캐롤이라고 다 캐롤이냐?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어야 캐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년 중에 12월 한 달만큼이라도 예수 찬양이 세상을 뒤덮게 만듭시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12월 달 우리가 더 많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많이 찬양하고, 그러므로 잃어버렸던 예수를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린 영혼 구원을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전도를 다시 회복하고, 12월 달 한 달 가정도, 일터도, 직장도, 교회도, 구역에도, 모두가 다 예수님의 찬양으로 덮어버립시다.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셋째, 시므온
세 번째입니다.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은 간절한 기다림으로 아기 예수를 만난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림으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에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이스라엘의 위로가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라."
시므온은 세상적인 유익과 쾌락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은 부귀와 명예와 출세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린 것은 만민을 향한 주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기다림 끝에 시므온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고 안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시므온은 그 아기 예수가 성전을 찾아갔었을 때, 그 예수님을 보고, 그 뿐이 아닙니다. 시므온은 나이 많이 예수님을 그렇게 사모하고 기다렸던 그 시므온은 예수님을 안아봤습니다. 누가복음 2장 28절로 32절 말씀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기다렸습니다. 기다렸어요. 기독교는 기다리는 거예요. 우리는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소망을 품고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 자녀들에게 성탄절에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를 소망하는 예수 가족이 됩시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을 소망하는 예수 가족이다. 예수 가족이다." 아멘. 지난 열한 달 동안 우리의 기다림과 소망은 세상적인 것이 너무나 많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예배하는 것조차도, 혹시라도 육체적 소원 때문에 더 많이 할 때가 없었습니까? 금번 한 달만큼은 예수님을, 예수님만을 더 많이 바라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아기 예수를 위해서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봅시다. 예수를 향한 거룩한 기다림은 거대한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예수를 직접 안았다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시므온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면, 이제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가족 구원, 직장 구원, 사회 구원, 민족 구원, 세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8선 너머 저 북한 땅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공산당, 저 땅에 우리의 동포들이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배고파하는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가지고 가서 줄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그 땅에도 봄이 오듯이 오게 될 것입니다.
넷째, 안나
네 번째, 한 사람 더 말합니다. "안나." "안나"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해 아기 예수를 만난 여 선지자입니다. 안나는 배운 게 없습니다. 가진 게 없습니다. 세상 말하는 것처럼 명예도 없습니다. 권세도 없습니다. 빽도 없습니다. 안나는 시므온처럼 예수를 만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안나에게는 동방박사처럼 별이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안나에게는 목자들처럼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안나가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뭘까? 쉽게 말하면 성전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안나가, 안나가 아기 예수를 만났다, 그 말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37절로 38절입니다.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아기 예수는 몸된 성전을 찾는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가 아기 예수를 사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기 예수를 사랑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 증거가 뭐냐고요?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복음인천교회 성도는 순복음인천교회 이 본당이 성전입니다. 북인천성전이 성전입니다. 연수성전이 성전입니다. 제 2성전이 성전입니다. 동해안순복음교회 교회가 성전인 것입니다. 그 성전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거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울수록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해져야 됩니다. 혹시라도 세상살이 바빠서, 학교공부 바빠서,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시험으로 바빠서, 직장생활에 바빠서, 자식들과 처와 함께 돈 벌어먹기에 바빠서 힘들었다 하더라도, 해마다 이제 12월 달, 성탄절이 있는 12월 달은 더 많이 성전에 찾아와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성전을 향해서 자꾸 달려와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세상의 거리와 백화점이 사람들로 북적북적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의 성전에 구원받은 성도들로 북적북적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할 불신자들로 북적북적되어야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은 가족, 친척, 친구, 이웃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와서 아기 예수를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아기 예수를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결론입니다. 성탄절은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축제의 날인 것입니다. 나 하나만이 아닙니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우리가 사는 인천광역시, 우리가 사는 조국 대한민국, 저 북한 땅에까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온 세계가 다. 온 인류가 다,.예수님의 탄생하심은 하나님 아버지께는 영광이요,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말씀했습니다. 거룩한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며, 거룩하게 준비하는 거룩한 성도가 됩시다.
오늘 이 시간에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성탄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네, 12월이 되면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뭘까? 성탄절입니다. 성탄이 뭡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다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가 문제냐? 사람들이 성탄절을 좋아하는 이유가 각각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 ''엄마, 아빠가 어떤 선물을 얼마나 많이 사줄까?'', 그 생각이 꽉 차있습니다. 또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아기 예수를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좀 쉴까?'', ''어디로 좀 놀러갈까?'' 그것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성탄절을 여러 휴일 중에 하나로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1년에 휴일이 많아요. 또 절기가 있어요. 그 날 중의 한 날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최대의 축제일인 것입니다. 또 성탄절은 창세기 3장부터 기다리고 준비되어 온 날인 것입니다. 성탄절을 내 생일보다 더 성대하게 축하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성탄절을 자기의 결혼식 기념일보다 더 정성스럽게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성탄절을 첫 아기의 출산을 사모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사모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모하는 날은 참 좋은 거예요.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한다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107편 9절 말씀이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 시간, 성탄을 기다리고 사모했던 성경의 인물을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성탄절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봄으로, 그래서 이 성탄의 기쁨이 나뿐만 아니라, 또 가정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더 나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요셉
첫째, "요셉"을 생각해봅니다. "요셉"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출산한 마리아와 정혼한 남자인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어떤 신앙으로 성탄을 기다렸느냐?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4절입니다.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그랬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마리아와 약혼했습니다. 결혼을 작정하고 정혼한 사이입니다. 마리아와.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겁니다. 자기와 하룻밤도 잔 적이 없는데, 자기와 정혼한 그 여인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이야기입니다. 남의 여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와 함께 결혼할 사람, 자기 여자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잉태한 마리아를 데려올 수 있습니까? 데려올 수 없습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요셉은 데려왔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장 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자기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누가 말씀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이 말씀을 누가 들었습니까? 요셉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인 겁니다. 이 말씀을 믿은 겁니다.
요셉은 자기 기분과 생각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자신을 맞춰서. 아마 자기 생각대로 했다면, 자기 기분대로 했다면, 충청도 말로 말하면 쥐어 팼을 것입니다. 아니면 딱 끊었을 것입니다. 파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기분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자서 잉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인류의 구세주를 자기가 정말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하셨다고 하실 때, 그 말을 받아들인 겁니다. 믿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내가 손해나도, 내가 좀 손해나도, 내가 억울한 일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오늘의 삶에 손해가 안 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나의 삶에 혹 손해가 나더라도, 혹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 이것이 산 믿음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성탄절은 사람들과 기분 내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온전한 성탄절인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 이것이 건강한 성탄절, 성경적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순결한 삶을 통해서 성탄절을 기다렸습니다. 순결한 삶을 통해서 또 기다렸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믿은 것뿐만 아니라, 순결한 삶을 통해서 아기 예수가 탄생할 것을 기다렸습니다. 보세요. 마태복음 1장 25절 상반절에 보니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잉태한,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를 이제 데려왔습니다. 데려왔으니까 자기 아내입니다. 동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한 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까지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를 데려왔지만, 동침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밤 자리에 잠을 같이 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요즘 성탄절은 "성탄 문화"는 없고, "세상 문화"만 가득합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한 성탄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주일이 아닌 성탄절에 헌혈을 하는 것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는 지금까지 계속 한 14, 5년 전부터 해마다, 해마다 헌혈합니다. 언제 합니까?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여름은 언제 합니까? 6.25 주간에. 겨울에는 언제 합니까? 성탄절 날, 성탄절 날. 부족하지만 저도 저 자신도 지금까지 한 30번의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할수록 건강해지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혈 역사상 성탄절 날 헌혈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한 것은 순복음인천교회가 첫 테잎을 끊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언제 헌혈하는 게 좋을까? 민족 전쟁을 일으켰던 6.25 주간에. 우리가 피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헌혈해서 사람을 살리자. 그런 정신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나지 않을 것이다. 6.25 주간에 우리는 헌혈하자. 그 다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 날, 제일 큰 선물이 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피를 주셨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가 할 일이 뭐냐? 우리는 생명의 이 피를, 피 때문에 고통 당하고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헌혈하자. 그래서 성탄절 날 헌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계속. 우리는 14, 5년 전부터 성탄절 날만 되면 헌혈했습니다.
성탄절 날 최고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뭘까? 예수님의 탄생을 제일 기뻐할 것이 뭘까? 피가 없어서 수술 못 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그 깨끗한 피를 우리가 헌혈해서 그들을 위해서 준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성탄 선물이 어디 있냐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절 날 헌혈하는 것도 성탄의 문화인 것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인터넷 통해서 설교를 들으시는 분은 이해하세요. 우리끼리 이야기예요. 순복음인천교회가 보통 교회가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교회입니다. 성탄 문화, 성탄절 날 헌혈함으로 말미암아, 성탄 문화를 바꿉니다. 성경적 효를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성경 문화가 이제 세상 문화를 바꿔놓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웃과 함께, 고통 당하는 사람과 함께, 외로운 사람과 함께, 자녀 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독거 노인들과 함께, 부모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 소녀 가장들과 함께, 어려움을 당하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우리가 함께 해야 됩니다. 화해하고, 사랑하고, 저 북한 땅에도, 성탄을 모르는 저 북한 땅에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물품을 보내서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인 줄 믿습니다.
요셉은 순결한 삶을 통해서 성탄절을 기다렸다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주일이 아닌 성탄절에 헌혈하는 것,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헌혈 같은 좋은 일이 성탄절에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일이 막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눈이 와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 때문에 세상이 순결해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바뀌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둘째, 마리아
두 번째,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 마리아. 마리아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성탄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했습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1장 38절에 보니까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이게 웬 일입니까?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여, 성령의 능력으로 너에게 예수님의 잉태가 임할 것이다." 마리아가 볼 때, 이것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정혼한 남자가 있습니다. 정혼한 요셉이 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잉태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올까? 잉태했다면 정혼은 파혼될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정혼한 상태에서 결혼하지 아니하고 잉태하면, 그 아버지도, 그 부모도 그를 족보에서 빼버려야 돼요. 그 뿐이 아닙니다. 이제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니 손해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약혼자와 파혼해야 됩니다. 자기 아버지 족보에서 뽑혀나가야 됩니다. 돌로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불이익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동정녀 탄생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고도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동정녀 탄생, 그것을 믿었습니다. 이게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상식으로, 의학으로 도저히 안 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이 그랬대." 그러면 "아, 그런 가보다. 그럴 수 있나 보다." 그러는데, 그 일이 자기에게 오는 겁니다. 엄청난 손해가 옵니다. 불이익이 옵니다. 그런 걸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 요셉에, 그 마리아 아닙니까?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구세주로 오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분이 구세주로 오시기 때문에, 내가 죽어도, 내가 희생을 당해도, 하나님의 아들, 그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시는데 내 몸을 써주신다면 나는 받아들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위대합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성탄은 성탄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는 성탄은 성탄절이 아닌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누구이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독생자 예수이십니다. 아기 예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주인공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아기 예수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구세주로 오셨음을 선포하는 성탄절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최고의 성탄 준비는 무엇일까요? 영혼구원입니다. 전도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겁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친척에게,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선물 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전해서 "갑시다. 교회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갑시다. 갑시다." 그러므로 최고의 선물은 뭐냐? 물질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아기 예수를 전하면,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아기 예수의 오심에 기뻐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자마자 곧장 엘리사벳에게 가서 소식을 전했습니다(눅 1:39-46).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또 엘리사벳에게 가서 아기 예수의 오심을 또 찬양했습니다(눅 1:46-55). 감사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잉태를 또 찬양했습니다.
오늘 날 세상 사람들보다 교회가 더 성탄절에 찬양하지 않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기업이나,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에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까, 어떻게 하면 수지 맞을까, 어떻게 하면 좀 즐겁게 놀까, 신날까" 해서 성탄 문화가 아닌 것 가지고, 성탄을 기뻐합니다. 즐거워합니다. ''한 탕 벌자.'' 그런 식으로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정작 아기 예수의 탄생을 더 많이 기뻐하고, 온전하게 성경적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찬양하고 기뻐해야 할 교회는 오히려 잠잠합니다. 세상에 문화의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의 캐롤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의 이름을 힘껏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아기 예수가 없는 캐롤이 더 많습니다. 캐롤이라고 다 캐롤이냐?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어야 캐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년 중에 12월 한 달만큼이라도 예수 찬양이 세상을 뒤덮게 만듭시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12월 달 우리가 더 많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많이 찬양하고, 그러므로 잃어버렸던 예수를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린 영혼 구원을 다시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전도를 다시 회복하고, 12월 달 한 달 가정도, 일터도, 직장도, 교회도, 구역에도, 모두가 다 예수님의 찬양으로 덮어버립시다.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셋째, 시므온
세 번째입니다.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은 간절한 기다림으로 아기 예수를 만난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림으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에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이스라엘의 위로가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라."
시므온은 세상적인 유익과 쾌락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은 부귀와 명예와 출세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린 것은 만민을 향한 주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기다림 끝에 시므온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고 안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시므온은 그 아기 예수가 성전을 찾아갔었을 때, 그 예수님을 보고, 그 뿐이 아닙니다. 시므온은 나이 많이 예수님을 그렇게 사모하고 기다렸던 그 시므온은 예수님을 안아봤습니다. 누가복음 2장 28절로 32절 말씀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기다렸습니다. 기다렸어요. 기독교는 기다리는 거예요. 우리는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소망을 품고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 자녀들에게 성탄절에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를 소망하는 예수 가족이 됩시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을 소망하는 예수 가족이다. 예수 가족이다." 아멘. 지난 열한 달 동안 우리의 기다림과 소망은 세상적인 것이 너무나 많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예배하는 것조차도, 혹시라도 육체적 소원 때문에 더 많이 할 때가 없었습니까? 금번 한 달만큼은 예수님을, 예수님만을 더 많이 바라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아기 예수를 위해서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봅시다. 예수를 향한 거룩한 기다림은 거대한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예수를 직접 안았다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시므온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면, 이제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가족 구원, 직장 구원, 사회 구원, 민족 구원, 세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8선 너머 저 북한 땅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공산당, 저 땅에 우리의 동포들이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배고파하는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가지고 가서 줄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그 땅에도 봄이 오듯이 오게 될 것입니다.
넷째, 안나
네 번째, 한 사람 더 말합니다. "안나." "안나"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해 아기 예수를 만난 여 선지자입니다. 안나는 배운 게 없습니다. 가진 게 없습니다. 세상 말하는 것처럼 명예도 없습니다. 권세도 없습니다. 빽도 없습니다. 안나는 시므온처럼 예수를 만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안나에게는 동방박사처럼 별이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안나에게는 목자들처럼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안나가 예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뭘까? 쉽게 말하면 성전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안나가, 안나가 아기 예수를 만났다, 그 말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37절로 38절입니다.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아기 예수는 몸된 성전을 찾는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가 아기 예수를 사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기 예수를 사랑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 증거가 뭐냐고요?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복음인천교회 성도는 순복음인천교회 이 본당이 성전입니다. 북인천성전이 성전입니다. 연수성전이 성전입니다. 제 2성전이 성전입니다. 동해안순복음교회 교회가 성전인 것입니다. 그 성전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거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울수록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해져야 됩니다. 혹시라도 세상살이 바빠서, 학교공부 바빠서,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시험으로 바빠서, 직장생활에 바빠서, 자식들과 처와 함께 돈 벌어먹기에 바빠서 힘들었다 하더라도, 해마다 이제 12월 달, 성탄절이 있는 12월 달은 더 많이 성전에 찾아와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성전을 향해서 자꾸 달려와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세상의 거리와 백화점이 사람들로 북적북적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의 성전에 구원받은 성도들로 북적북적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할 불신자들로 북적북적되어야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은 가족, 친척, 친구, 이웃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와서 아기 예수를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아기 예수를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결론입니다. 성탄절은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축제의 날인 것입니다. 나 하나만이 아닙니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우리가 사는 인천광역시, 우리가 사는 조국 대한민국, 저 북한 땅에까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온 세계가 다. 온 인류가 다,.예수님의 탄생하심은 하나님 아버지께는 영광이요,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말씀했습니다. 거룩한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며, 거룩하게 준비하는 거룩한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