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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길목사 (하인스빌한인연합감리교회)
본문에 사울이라고 하는 인물은 당대에 최고의 명문가인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며,가말리엘의 문화생이였고, 당시 최고의 권력 기관인 산혜드린의 회원으로 자기 구축의 성벽을 견고히 쌓아 올렸던 큰 인물이였습니다. 사울의 삶은 어느것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던 그가 예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러 다메석(Damascus)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하나님 앞에 자기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자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주여 !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 라는 질문이 였고 고백이였던 것입니다.우리도 인간적인 성벽만 무너지면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에게 밀물처럼 닥아오게되고,주님의 권능의 손이 와 닿기만 하면,못 이룰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7월21일 부터 23일 까지 서울에서 목회하시는 이 중표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감리교회의 유서 깊은 St. Simon 웹워스 웨슬레 수양관에서 은혜로운 천국 잔치를 갖은바 있습니다. 강사님의 설교의 내용인즉 ''별세''하여야만 구원도 받고 소원 성취도 되며 천국도 소유도 할 수 있다는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을 들어 증거 하셨습니다. 별세란 ?(눅9:31 참고), 떠날 별자와 세상사자, 다를별자와 세상사자 입니다. 즉, 이 세상을 떠난다,또는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는 의미 입니다.
우리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 목사님은 미국에 처음 도착하여 군 선교와 인디안 선교에 힘을 기우렸는데 미국의 선교에는 실패를 하시고 병든몸을 이끌고 영국에 돌아가 실의에 빠져 살던 그분에게 ''올더스게잇''의 거리를 걷는 가운데 한 모라비안 교도의 노방 전도시 루터가 쓴 로마인서 주석 가운데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회심하게 되였습니다.방탕자 어거스틴도 종래는 어머님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어느날 정원을 거니는데 갑작이 어미니가 빽에 넣어 준 성경책을 읽고 싶어서 방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니 로마서 13:11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 내려 가는 순간 마음에 뜨거운 변화가 일어 남으로 그는 곧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 생활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말씀데로 살다가 결국에는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부흥사 였던 ''벨리센데''는 술이 만취하여 길에 쓰러저 있을 때 교회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듣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였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공통적인 주님에 대한 질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What shall I do,Lord?") 입니다.
첫째로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라는 질문은 ''자아가 깨지''는 순간
의 고백 입니다.
기독교의 확실한 진리는 옛 사람의 연장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새롭게 시작된 나를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면(눅9:23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즉, 자아가 깨어지지 안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인격으로 형성 될 수가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온 내가 살아져아만 합니다. ''깨여 져야 하리니,
부서져야 하리니, 무너저야 하리니,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니,
씻겨야 하리니,더 많이 씻겨야 하리니, 다 버리고 다 씻어도,겸손이 낮아져도, 주안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깨여 저야 하리니, 부셔저야 하리니, 무너저야 하리니, 더 많이 씻겨야 하리니 !
둘째로,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라는 질문은 인생의 새로운 통로
를 찾는 질문 이라고 생각 합니다.
사울이 지나온 삶은 자기 자신이 선택 한 삶이 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르시는 호통 소리로 인하여 그의 바라는 바는 철저히 막히고 좌절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께 부르 짖습니다. "주님이시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사울은 자기가 바라고 나갈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제시해 달라고 주님께 탄원하며 애원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선택한 길이 막혓다고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됨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새로운 삶의 길을'' 주님께 물어 봐야 합니다. 이 물음은 우물쭈물 해서는 안됨니다. 다시는 어두움에서 방황하지 안을 바른 길로 인도 해 달라고 주님의 도우심을 강청해야 합니다. ''나'' 라는 성벽이 무너지면,반듯이 어디엔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좋은 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아가 죽고도(별세)되고도 의심 하시면 안됨니다.
자아가 무너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팡파르(Fanfare)입니다. 우리 인생길을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마는 그러나 분명하게 확실히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 묻고 가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6:12).
세번째 의미는 내 생명의 하나님 전권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은 피조물인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위임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요 최선의 길이며 조믈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었입니까?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위탁하고 죽든지 살던지 주님 뜻때로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주여 뜻때로 행 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때로 하소서 ! 아멘.
주님은 자아의 성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삶의 통로를 갈구하는 자의 편에 서서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절에 고백하기를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울을 바울되게 하신 주님께 ''나''를 전적으로 위임해 버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이시여 !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라고,''나'' 라고 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합니까? 나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것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내 운명의 주인이 되실 때만이 나의 삶이 바로되고 복되어 진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법을 전폭적으로 주님께 맡기시기만 하시면
반듯이 우리 앞에 놀라운 축복의 별세의 세계가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함께 기도 하실까요;
사랑의 주님이시여 !
우리의 과거 자랑거리 나를 최고로 알았던 습관, 나의 가진 것을 자랑하며 살았던 어리석음을 주님께 내여 놓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자아의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게 하시옵고,새로운 통로가 열려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 나의 삶의 방법을 주님께 전적으로 맡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참 변회된 삶이 나타나는 주님의 그릇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 올리나이다. 아멘.
본문에 사울이라고 하는 인물은 당대에 최고의 명문가인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며,가말리엘의 문화생이였고, 당시 최고의 권력 기관인 산혜드린의 회원으로 자기 구축의 성벽을 견고히 쌓아 올렸던 큰 인물이였습니다. 사울의 삶은 어느것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던 그가 예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러 다메석(Damascus)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하나님 앞에 자기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자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주여 !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 라는 질문이 였고 고백이였던 것입니다.우리도 인간적인 성벽만 무너지면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에게 밀물처럼 닥아오게되고,주님의 권능의 손이 와 닿기만 하면,못 이룰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7월21일 부터 23일 까지 서울에서 목회하시는 이 중표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감리교회의 유서 깊은 St. Simon 웹워스 웨슬레 수양관에서 은혜로운 천국 잔치를 갖은바 있습니다. 강사님의 설교의 내용인즉 ''별세''하여야만 구원도 받고 소원 성취도 되며 천국도 소유도 할 수 있다는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을 들어 증거 하셨습니다. 별세란 ?(눅9:31 참고), 떠날 별자와 세상사자, 다를별자와 세상사자 입니다. 즉, 이 세상을 떠난다,또는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는 의미 입니다.
우리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 목사님은 미국에 처음 도착하여 군 선교와 인디안 선교에 힘을 기우렸는데 미국의 선교에는 실패를 하시고 병든몸을 이끌고 영국에 돌아가 실의에 빠져 살던 그분에게 ''올더스게잇''의 거리를 걷는 가운데 한 모라비안 교도의 노방 전도시 루터가 쓴 로마인서 주석 가운데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회심하게 되였습니다.방탕자 어거스틴도 종래는 어머님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어느날 정원을 거니는데 갑작이 어미니가 빽에 넣어 준 성경책을 읽고 싶어서 방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니 로마서 13:11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 내려 가는 순간 마음에 뜨거운 변화가 일어 남으로 그는 곧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 생활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말씀데로 살다가 결국에는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부흥사 였던 ''벨리센데''는 술이 만취하여 길에 쓰러저 있을 때 교회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듣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였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공통적인 주님에 대한 질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What shall I do,Lord?") 입니다.
첫째로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라는 질문은 ''자아가 깨지''는 순간
의 고백 입니다.
기독교의 확실한 진리는 옛 사람의 연장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새롭게 시작된 나를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면(눅9:23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즉, 자아가 깨어지지 안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인격으로 형성 될 수가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온 내가 살아져아만 합니다. ''깨여 져야 하리니,
부서져야 하리니, 무너저야 하리니,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니,
씻겨야 하리니,더 많이 씻겨야 하리니, 다 버리고 다 씻어도,겸손이 낮아져도, 주안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깨여 저야 하리니, 부셔저야 하리니, 무너저야 하리니, 더 많이 씻겨야 하리니 !
둘째로,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라는 질문은 인생의 새로운 통로
를 찾는 질문 이라고 생각 합니다.
사울이 지나온 삶은 자기 자신이 선택 한 삶이 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르시는 호통 소리로 인하여 그의 바라는 바는 철저히 막히고 좌절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께 부르 짖습니다. "주님이시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사울은 자기가 바라고 나갈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제시해 달라고 주님께 탄원하며 애원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선택한 길이 막혓다고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됨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새로운 삶의 길을'' 주님께 물어 봐야 합니다. 이 물음은 우물쭈물 해서는 안됨니다. 다시는 어두움에서 방황하지 안을 바른 길로 인도 해 달라고 주님의 도우심을 강청해야 합니다. ''나'' 라는 성벽이 무너지면,반듯이 어디엔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좋은 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아가 죽고도(별세)되고도 의심 하시면 안됨니다.
자아가 무너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팡파르(Fanfare)입니다. 우리 인생길을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마는 그러나 분명하게 확실히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 묻고 가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6:12).
세번째 의미는 내 생명의 하나님 전권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은 피조물인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위임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요 최선의 길이며 조믈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었입니까?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위탁하고 죽든지 살던지 주님 뜻때로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주여 뜻때로 행 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때로 하소서 ! 아멘.
주님은 자아의 성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삶의 통로를 갈구하는 자의 편에 서서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절에 고백하기를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울을 바울되게 하신 주님께 ''나''를 전적으로 위임해 버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이시여 !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라고,''나'' 라고 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합니까? 나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것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내 운명의 주인이 되실 때만이 나의 삶이 바로되고 복되어 진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법을 전폭적으로 주님께 맡기시기만 하시면
반듯이 우리 앞에 놀라운 축복의 별세의 세계가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함께 기도 하실까요;
사랑의 주님이시여 !
우리의 과거 자랑거리 나를 최고로 알았던 습관, 나의 가진 것을 자랑하며 살았던 어리석음을 주님께 내여 놓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자아의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게 하시옵고,새로운 통로가 열려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 나의 삶의 방법을 주님께 전적으로 맡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참 변회된 삶이 나타나는 주님의 그릇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 올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