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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희목사 (지구촌교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종종 아일랜드 소년들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소년들은 높은 울타리를 만나게 되면 우선 쓰고 있던 모자를 울타리 너머로 던집니다. 그렇게 되면 모자를 줍기 위해 어떻게든 울타리의 장벽을 뛰어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R. 슐러는 인생의 수많은 장벽을 뛰어넘은 사람답게 이런 좋은 말을 합니다. “당신의 한계는 가이드라인이지, 정지표시가 아니다.” 아멘!
저는 이번 7월에 미국의 젊은이들을 깨우는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 & All Nations) 컨퍼런스에 참여하였습니다. 미주 전 지역에서 4천 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교포 1.5세, 2세들의 뜨거운 믿음과 비전 지향적인 열정은 너무나 희망찬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강사진들이 참 좋았습니다. John Piper와 Loren Cunningham 등 금세기 최고의 지도자들이 대거 동원되었습니다. 저도 포함되어 있었구요.
그 중에서 Buster Soaries라는 흑인 목사님의 메시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용기와 비전과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뉴저지 주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는데, 지금은 뉴저지 국무장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흑인인데도 미 동부에서 가장 상류층들과 부자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에서 최초로 국무장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젊은이들에게 다윗에 관하여 열정적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간증하며 메시지를 전하는지 학생들이 모두 다 심취하여 경청하였습니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 한 마디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능력으로 장벽을 뛰어 넘었다.”
다윗은 산간벽지 시골 출신이고, 어린 소년시절부터 왕따를 당한 초라한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령 충만함으로 인생의 수 없는 장벽을 거뜬히 넘었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격퇴시키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장벽을 뛰어넘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GE의 CEO인 잭 웰치가 제창하는 대로 한계에 도전하는 창의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벤처 신앙으로 stretch out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한계나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경계선을 긋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포기하고 체념하려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잭 포스터가 말하듯이 “있지도 않은 경계선을 긋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힘들다는 자기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옛날에 올림픽에 출전한 Pat O''brien이라는 선수가 7.2 kg의 투포환을 17미터나 던져 세계 신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때 스포츠 전문가들은 라이언 선수는 조금만 더 연습하여 도전하면 자기가 세운 기록을 깰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4년 후에 라이언은 인간의 한계라는 18미터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18.28미터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세계기록은 21미터를 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계에 도전하는 노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도 9초안으로 들어오는 끊임없는 기록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자기 계발과 성공의 대가로 활약하고 있는 Zig Zigler는 이런 용기를 줍니다.
“성공은 당신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할 때 찾아오는 결과입니다.
기독교 작가인 Henry Drummond가 말하듯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큰일을 시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들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그래요.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벤처 신앙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신앙을 갖게 하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 베드로를 끊임없이 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갈릴리 해변 가의 꿈도 희망도 없는 그에게 위대한 꿈을 품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약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인데도 대목이 되게 하고, 거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고방식에 New paradigm shift를 이루게 하십니다.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시몬이라는 연약한 이름에서 베드로, 곧 바위 같은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웅대한 비전을 품게 하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거시적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겨 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순교자가 되어 자신의 처절한 실패를 만회하게 하십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느 날 베드로는 신비한 환상을 봅니다. 로마 군대의 지역 사령관 고넬료라는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여 세례를 주고 성령 받기를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얼른 이해가 안가는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설득시키려고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 보자기 안에 있는 벼라 별 짐승들을 다 잡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레위기 11장 말씀을 인용하여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9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인 E. Peterson은 참 멋지게 번역합니다.
『If God says it''s okay, it''s okay.』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안목과 관점을 크고 넓게 만들어주십니다.
베드로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 Innovation을 가져다주십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소위 자민족 우월주의, ethnocenticism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로 하여금 민족적 장벽을 뛰어넘게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도, 로마인도 전도대상자임을 각인시켜 주고 계신 것입니다. 소위 New market evangelism을 정립시켜주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는 단계적으로 장벽을 한 단계씩 뛰어넘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들도 성령 받도록 기도해주었습니다. 또 욥바라는 동네가 가서는 무두쟁이의 집에 들어가 머물며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대인의 숙적 로마 군대 장교에게도 세례를 주고 성령을 받게 합니다.
민족과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시야와 비전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생각의 paradigm shift가 필요합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심령의 그릇이 커지기를 바랍니다. 인격의 도량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1.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를 중심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철저한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소위 ethnocentric, 자민족 우월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로마 사람 고넬료와 함께 이방인들에게 세례 준 것을 비난하며 나무랐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자기도 원래 그런 사고방식의 사림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민족적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자기도 거부반응을 나타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편협한 마음을 충분히 깨우치시려고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9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If God says it''s okay, it''s okay.』
하나님은 자그마치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10절). 그래요. 하나님이 O.K하시면 만사 O.K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는 세계선교를 하게 하시려고 하늘의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첫째는 큰 보자기(huge blanket)와 같은 그릇을 보여주십니다.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는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여기 네 귀퉁이는 동서남북을 상징합니다. 셋째는 가서 먹어라(Go to it, and eat)고 하십니다. 특히 가라는 동사를 역설합니다. 『큰 보자기, 네 귀퉁이, 즉 동서남북으로, 가라, Go!』
이제 더 이상 편협하게 살지 말고, 거시적 비전을 품은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자기 아성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견과 편애의 편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21세기의 국제적인 감각에 맞지 않게 너무 지나친 국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인데, 사고방식이나 마인드는 지나치리만큼 편협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들어가 영주권을 얻어 살면서도,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배타적입니다.
우리가 백인들한테는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동남아 사람들이나 흑인들을 얕잡아보고 무시합니다.
저는 이렇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국제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 21세기 현대인들의 가장 큰 병리 현상은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개인주의입니다. 편협적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역류하여 우리는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너희 마음을 넓혀라』(고후 6:13).
루드야드 키플링은 이런 좋은 시를 들려줍니다.
「마음 넓게 갖자」
주위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때에도 침착할 수 있다면,
또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의심하는 것을 포용할 수 있다면,
또 만약 네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순간마다 거리를 두고 관조할 수 있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안에 있다.
내 아들아! 네가 그러할 때 너야말로 진정한 대장부가 될 것이니라.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영성으로 자민족중심의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위 사고방식의 change champion이 됩니다. 변화의 챔피언! 얼마나 멋진 평가입니까?
사마리아로 내려가 전도하고, 이웃들로부터 소외당한 무두장이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머물며 친구가 되고, 로마 군인도 전도하고, 나중에는 실패자 마가도 푸근하게 품어줍니다.
그는 갈수록 장벽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영성으로 자기 아성의 장벽을 뛰어넘는 폭넓은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포기와 체념의 장벽을 뛰어넘자
우리는 요즘 계속해서 베드로를 연구하며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정점에 오르려고 할 때마다 뜻하지 않는 반대세력에 부딪칩니다.
그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자마자 유대인 지도자들이 술 취한 사람들이라고 찬물을 끼얹습니다
가슴에 불타는 열심으로 전도하며 기적을 일으킬 때 가로막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그는 과감하게 로마 군인에게 전도하여 세례를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세계 선교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작업을 했더니 당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집니다.
이럴 때 사람은 열정이나 비전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체념하고 주저앉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포기하기를 포기한 사람!』
성공적인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할 마음을 가졌으나,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요즘 학자들의 정리에 의하면, 성공적인 사람들에게는 『역경 지수 : Adversity Quotient』가 매우 높음을 보도해줍니다. 성공의 요인은 IQ에 있지 않고, 역경지수에 있습니다.
한국최초의 맹인 학자로 존경받고 있는 강영우 박사는 수 없는 포기와 체념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람답게「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는 책을 써서 용기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생의 어떤 처절한 운명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 LA 동양선교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강준민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때마침 금요일 밤에 특별 집회를 하는데, 한국에서 이지선이라는 자매가 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좋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지선은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한 자매입니다. 그가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술 취한 사람으로부터 교통 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7개월 간 입원하여 11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예뻤던 이지선 자매의 그때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절망적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어 얼마나 감사하며 창의적으로 살아가는지 그의 간증은 너무나 감동이 됩니다.
이제 그는 8월에 미국에서 얼굴 성형수술을 받고, 9월에 귀국하여 우리 교회에 간증하러 옵니다.
그리고 그는 10월에 뉴욕대학교 대학원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납니다. 가슴아픈 인생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치유하며 꿈을 심어주고자 자신의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는 창의적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지선아 사랑해’ 라는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도 자신의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는 역전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태인 포로 수용소 출신인데도 금세기 최고의 상담심리학자인 V. Frankle은 이런 멋진 감동적인 말을 합니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어떤 악천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장벽을 뛰어넘는 자는 이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한계에 부딪치더라도 포기(give up)하지 말고, 꿋꿋이 전진(go on)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인간 한계의 장벽을 뛰어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종종 아일랜드 소년들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소년들은 높은 울타리를 만나게 되면 우선 쓰고 있던 모자를 울타리 너머로 던집니다. 그렇게 되면 모자를 줍기 위해 어떻게든 울타리의 장벽을 뛰어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R. 슐러는 인생의 수많은 장벽을 뛰어넘은 사람답게 이런 좋은 말을 합니다. “당신의 한계는 가이드라인이지, 정지표시가 아니다.” 아멘!
저는 이번 7월에 미국의 젊은이들을 깨우는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 & All Nations) 컨퍼런스에 참여하였습니다. 미주 전 지역에서 4천 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교포 1.5세, 2세들의 뜨거운 믿음과 비전 지향적인 열정은 너무나 희망찬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강사진들이 참 좋았습니다. John Piper와 Loren Cunningham 등 금세기 최고의 지도자들이 대거 동원되었습니다. 저도 포함되어 있었구요.
그 중에서 Buster Soaries라는 흑인 목사님의 메시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용기와 비전과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뉴저지 주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는데, 지금은 뉴저지 국무장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흑인인데도 미 동부에서 가장 상류층들과 부자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에서 최초로 국무장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젊은이들에게 다윗에 관하여 열정적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간증하며 메시지를 전하는지 학생들이 모두 다 심취하여 경청하였습니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 한 마디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능력으로 장벽을 뛰어 넘었다.”
다윗은 산간벽지 시골 출신이고, 어린 소년시절부터 왕따를 당한 초라한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령 충만함으로 인생의 수 없는 장벽을 거뜬히 넘었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격퇴시키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장벽을 뛰어넘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GE의 CEO인 잭 웰치가 제창하는 대로 한계에 도전하는 창의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벤처 신앙으로 stretch out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한계나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경계선을 긋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포기하고 체념하려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잭 포스터가 말하듯이 “있지도 않은 경계선을 긋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힘들다는 자기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옛날에 올림픽에 출전한 Pat O''brien이라는 선수가 7.2 kg의 투포환을 17미터나 던져 세계 신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때 스포츠 전문가들은 라이언 선수는 조금만 더 연습하여 도전하면 자기가 세운 기록을 깰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4년 후에 라이언은 인간의 한계라는 18미터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18.28미터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세계기록은 21미터를 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계에 도전하는 노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도 9초안으로 들어오는 끊임없는 기록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자기 계발과 성공의 대가로 활약하고 있는 Zig Zigler는 이런 용기를 줍니다.
“성공은 당신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할 때 찾아오는 결과입니다.
기독교 작가인 Henry Drummond가 말하듯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큰일을 시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들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그래요.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벤처 신앙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신앙을 갖게 하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 베드로를 끊임없이 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갈릴리 해변 가의 꿈도 희망도 없는 그에게 위대한 꿈을 품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약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인데도 대목이 되게 하고, 거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고방식에 New paradigm shift를 이루게 하십니다.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시몬이라는 연약한 이름에서 베드로, 곧 바위 같은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웅대한 비전을 품게 하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거시적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겨 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순교자가 되어 자신의 처절한 실패를 만회하게 하십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느 날 베드로는 신비한 환상을 봅니다. 로마 군대의 지역 사령관 고넬료라는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여 세례를 주고 성령 받기를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얼른 이해가 안가는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설득시키려고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 보자기 안에 있는 벼라 별 짐승들을 다 잡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레위기 11장 말씀을 인용하여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9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인 E. Peterson은 참 멋지게 번역합니다.
『If God says it''s okay, it''s okay.』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안목과 관점을 크고 넓게 만들어주십니다.
베드로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 Innovation을 가져다주십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소위 자민족 우월주의, ethnocenticism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로 하여금 민족적 장벽을 뛰어넘게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도, 로마인도 전도대상자임을 각인시켜 주고 계신 것입니다. 소위 New market evangelism을 정립시켜주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베드로는 단계적으로 장벽을 한 단계씩 뛰어넘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들도 성령 받도록 기도해주었습니다. 또 욥바라는 동네가 가서는 무두쟁이의 집에 들어가 머물며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대인의 숙적 로마 군대 장교에게도 세례를 주고 성령을 받게 합니다.
민족과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시야와 비전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생각의 paradigm shift가 필요합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심령의 그릇이 커지기를 바랍니다. 인격의 도량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1.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를 중심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철저한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소위 ethnocentric, 자민족 우월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로마 사람 고넬료와 함께 이방인들에게 세례 준 것을 비난하며 나무랐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자기도 원래 그런 사고방식의 사림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민족적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자기도 거부반응을 나타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편협한 마음을 충분히 깨우치시려고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9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
『If God says it''s okay, it''s okay.』
하나님은 자그마치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10절). 그래요. 하나님이 O.K하시면 만사 O.K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는 세계선교를 하게 하시려고 하늘의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첫째는 큰 보자기(huge blanket)와 같은 그릇을 보여주십니다.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는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여기 네 귀퉁이는 동서남북을 상징합니다. 셋째는 가서 먹어라(Go to it, and eat)고 하십니다. 특히 가라는 동사를 역설합니다. 『큰 보자기, 네 귀퉁이, 즉 동서남북으로, 가라, Go!』
이제 더 이상 편협하게 살지 말고, 거시적 비전을 품은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자기 아성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견과 편애의 편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21세기의 국제적인 감각에 맞지 않게 너무 지나친 국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인데, 사고방식이나 마인드는 지나치리만큼 편협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들어가 영주권을 얻어 살면서도,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배타적입니다.
우리가 백인들한테는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동남아 사람들이나 흑인들을 얕잡아보고 무시합니다.
저는 이렇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국제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 21세기 현대인들의 가장 큰 병리 현상은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개인주의입니다. 편협적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역류하여 우리는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너희 마음을 넓혀라』(고후 6:13).
루드야드 키플링은 이런 좋은 시를 들려줍니다.
「마음 넓게 갖자」
주위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때에도 침착할 수 있다면,
또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의심하는 것을 포용할 수 있다면,
또 만약 네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순간마다 거리를 두고 관조할 수 있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안에 있다.
내 아들아! 네가 그러할 때 너야말로 진정한 대장부가 될 것이니라.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영성으로 자민족중심의 편견과 편애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위 사고방식의 change champion이 됩니다. 변화의 챔피언! 얼마나 멋진 평가입니까?
사마리아로 내려가 전도하고, 이웃들로부터 소외당한 무두장이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머물며 친구가 되고, 로마 군인도 전도하고, 나중에는 실패자 마가도 푸근하게 품어줍니다.
그는 갈수록 장벽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영성으로 자기 아성의 장벽을 뛰어넘는 폭넓은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포기와 체념의 장벽을 뛰어넘자
우리는 요즘 계속해서 베드로를 연구하며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정점에 오르려고 할 때마다 뜻하지 않는 반대세력에 부딪칩니다.
그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자마자 유대인 지도자들이 술 취한 사람들이라고 찬물을 끼얹습니다
가슴에 불타는 열심으로 전도하며 기적을 일으킬 때 가로막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그는 과감하게 로마 군인에게 전도하여 세례를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세계 선교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작업을 했더니 당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집니다.
이럴 때 사람은 열정이나 비전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체념하고 주저앉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포기하기를 포기한 사람!』
성공적인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할 마음을 가졌으나,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요즘 학자들의 정리에 의하면, 성공적인 사람들에게는 『역경 지수 : Adversity Quotient』가 매우 높음을 보도해줍니다. 성공의 요인은 IQ에 있지 않고, 역경지수에 있습니다.
한국최초의 맹인 학자로 존경받고 있는 강영우 박사는 수 없는 포기와 체념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람답게「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는 책을 써서 용기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생의 어떤 처절한 운명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 LA 동양선교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강준민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때마침 금요일 밤에 특별 집회를 하는데, 한국에서 이지선이라는 자매가 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좋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지선은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한 자매입니다. 그가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술 취한 사람으로부터 교통 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7개월 간 입원하여 11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예뻤던 이지선 자매의 그때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절망적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어 얼마나 감사하며 창의적으로 살아가는지 그의 간증은 너무나 감동이 됩니다.
이제 그는 8월에 미국에서 얼굴 성형수술을 받고, 9월에 귀국하여 우리 교회에 간증하러 옵니다.
그리고 그는 10월에 뉴욕대학교 대학원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납니다. 가슴아픈 인생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치유하며 꿈을 심어주고자 자신의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는 창의적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지선아 사랑해’ 라는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도 자신의 한계와 장벽을 뛰어넘는 역전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태인 포로 수용소 출신인데도 금세기 최고의 상담심리학자인 V. Frankle은 이런 멋진 감동적인 말을 합니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어떤 악천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장벽을 뛰어넘는 자는 이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한계에 부딪치더라도 포기(give up)하지 말고, 꿋꿋이 전진(go on)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인간 한계의 장벽을 뛰어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