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1
분류 |
---|
권영국 목사 (대흥장로교회)
성경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명하기위해서 애를 쓰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로 올리우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어떻게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와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을 뿐인 hyper Science (고도의 과학책)입니다.
누가는 성경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승천하시기까지를 기록하였다고 1절에서 데오빌로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부터의 사건을 기록하는데 언제까지를 기록하는 것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위에 약속대로 오실 때까지를 기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미완성의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맨 마지막장 마지막 절을 보면 행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복음의 확장은 지금도 계속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고 계시며, 우리도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3가지를 명령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3가지 명령은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써가고 있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핵심적인 명령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40일만 살 수 있다면 자녀들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베개 밑에 보면 몇 만불있고, 생명보험은 얼마를 탈 수 있고, 아무개에게 빌려준 돈 얼마를 받을 수 있고.... 그런것 이야기 하시겠습니까?
한평생 목회했던 어떤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장례식 때에 꼭 이 테이프를 틀어다오.... 장례식에서 목사님이 교회에 말하지 못했던 힘든 것들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김장로님,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목회를 잘 하도록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에서 꼭 뵙겠습니다. 그런데 , 설교시간에는 하품 좀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최권사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를 위해 늘 기도해주셔서, 제게 얼마나 큰 희망과 용기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먼저 천국에서 기다릴 테니 권사님도 천국에서 뵙시다. 그런데, 권사님은 예배시간에 좀 늦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말했다면 삐질 수 있지만, 목사님의 충정어린 부탁에, 모든 교우들이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말고 기다리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테니 기다리라
둘째는 성령 충만을 받고 증인이 되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
셋째는 하늘만 쳐다보지 말라.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귀한 것이 많습니다. 암 환자에게는 암이 정복되었다는 것보다 귀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는 줄기세포의 소식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모릅니다. 가난하고 힘든 가정에서 자녀가 법관이 되고, 좋은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모두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2000년 역사 속에 최고의 복된 약속과 축복은 “성령님이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핵심적으로 우리에게 거듭 약속하신 것이 바로 “성령의 약속”입니다. 성령님을 위하여 기다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증인이 되고, 성령님을 통해서 힘을 다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옛날 사극을 보면, 막 시끌벅적 하다가도 “어명이요...” 그러면 모두가 무릎을 꿇고 다 듣고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어명! 우리의 하던 일을 멈추고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3-5) - 기도하라. 포기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일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기다리는 자세는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앞장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거룩한 성을 떠나거나, 내 방법대로 앞서서 일하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보혜사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기다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21세기는 속도 전쟁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누군가가 조금 더 먼저 해야만 성공한다고 하지만, 신앙의 승리는 우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맡은 일이라도, 내게 그러한 권한이 있더라도 내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앞장서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와 초대교회의 차이점이 있다면, 초대교회는 모두가 기도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려 순종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한발자국도 곁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너무나 조직이 완벽합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더라도 전혀 문제없이 교회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앞장서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기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기다림= 기도)입니다.
또한 기다리라는 말씀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수님만 바라보았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민 생활에서 타민족들이 우리들과 함께 일하면서 다 알아듣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입니다. 아프리카에 어떤 분이 갔더니 거기에도 자장면 집이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들어가서 자장면을 시켰는데, 잘 안 나와서, “시간이 없는데 좀 빨리빨리 주세요.” 그랬더니 주방에서 한사람이 양파 썰다가 말고 칼을 들고 뛰어나오더니, 서울에서 “빨리빨리” 그 말 듣기가 지긋지긋해서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빨리빨리”하느냐? 고 울더래요. 교회 부흥도 빨리빨리 하다가 병들고 지쳐요. 다이어트도 운동을 시작한지 삼일 만에 살이 빠지기를 기대한다면 착각입니다. 빨리 빼려다가 생명까지 빼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결혼도 빨리빨리 서두르다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들 많이 봅니다. 밥을 지을 때에 매 1분마다 밥이 되었나 쳐다보면 밥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열세 살 키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30분이면 다 읽을 책인데, 그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도움꾼과 방해꾼이라는 두 존재가 살고 있단다. 방해꾼은 늘 우리에게 “포기해. 의미 없는 일이야” 라고 말하고, 도움꾼은 언제나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를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94%가 기다림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인생 전체가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7:13에 보면 “스스로 성결케하고 내일을 기다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아간의 욕심과 실수로 말미암아 엄청난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아이성 전투에서 대패하여 30명쯤 죽은 후입니다. 고통 중에 엎드린 여호수아와 백성을 향하여 주님은 “내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까?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첫 번째였습니다. 성도는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 니이까”(6절)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생각하는 착각된 왕국을 버리지 못하고 초조해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알바 아니다” 오직 관심은 “성령”임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 시대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2. 성령 충만함을 받아 증인이 되라(8절) - 권능의 삶, 증인의 삶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두 번째로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1:8에 나온 “성령 충만을 받아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될 것이다 ( You shall be my witness. ) 당연히 증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면 증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성령이 임하신 심령마다 당연히 또 하나의 증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증인의 삶이야말로 어명입니다. 딤전4: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어명이잖아요. 어명 앞에, 어떤 수식이나 의견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전도는 어명입니다” (따라합시다)
그냥 맨송맨송하게 전도하지 말고, 성령을 받게 되면 “권능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권능은 “듀나미스” 라는 헬라어로서,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힘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엄청난 파워, 폭발력, 힘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자신에게 하나님의 권능도 함께 임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에게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면서 엄청난 폭발력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성령님의 역사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성령님이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늘 힘을 못 쓰고 늘 두려워합니까? 의지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금과 은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3:6)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권능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교회들마다 늘 돈 걱정하고, 사람 걱정하고 그런 교회가 되지 말고,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권능을 행할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당연히 되는 것이 “증인”입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말투스” 영어로는 Martyr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죽음도 겁내지 않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 나가서 두려워하고, 말 붙였다가 창피당하면 어떻게 하나, 혹시 말 붙였다가 저 사람이 안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나.... 전도하러 나가서 관상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을 것 같다... 저 사람은 거절할 것 같다.... 그래가지고는 아무것도 열매가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그랬거든요... 착하게 보이는 사람들... 순하게 보이는 사람들... 더 안믿어요... 도저히 믿을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성령님께서 우리 앞으로 인도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전하십시오. 이것이 증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몇 주 전에도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거 터키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구석구석에 목숨을 걸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청교도의 땅에서 무엇이 두려워서 증인의 삶을 망설입니까? 증인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시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증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은 생각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꿈은 반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 꾼 것과 현실은 반대라는 말이 맞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왜 꿈은 현시로가 반대냐면, 사람은 피곤해서 깊이 잠들면 꿈이 생각나지 않아요... 꿈은 주로 잠 거의 깨도 되는 때에 꾼 것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늦게까지 잠만 자는데, 우승하는 꿈만 꾸면 뭐해요? 날마다 꼴찌가 될 수밖에 없어요. 1등 꿈만 꾼다는 말은 잠만 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 구원입니다. 아무리 목사, 장로, 권사, 직분자로 평생 교회 다녔어도, 한 영혼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무슨 얼굴로 서겠습니까? 성령의 사람이라면 증인은 선택이 아닙니다. 당연한 증인입니다. 입술로 삶으로, 행함으로 눈길 하나하나로 부활의 참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 보고만 있지 말라(11절) - 충성된 삶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들려진 소리가 있습니다. 11절에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재림의 신앙은 하늘만 바라보는 신앙이 아닙니다. 보고만 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이던 예수님이 이제 구름에 가려 안 보이면 예수님이 없어진 것이고 사라진 것입니까? 육체의 눈에 보여야만 믿겠노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합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바람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 핏속에 돌고 있는 산소는 우리 코로 마시는데,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 보고 마십니까? 승천 이후 성령의 시대는 다른 말로 믿음의 시대입니다. 승천하시기까지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지만, 승천 이후 믿음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제는 육체의 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것, 대단한 것을 보고 있는 신앙이 되지 말고, 내게 맡겨진 직분, 내 이웃, 형제, 가족, 교회를 위해서 충성스럽게 땀 흘리며,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재림의 주님의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한동안 시한부 종말론이 1998년에 한국교회를 소란케 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이 분명하니까, 학교도 그만두고, 직장도 그만두고,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하고 주님 오실날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재림의 신앙입니까?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힘을 다해 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재림의 신앙입니다.
흑인 출신으로 미국교육계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 과정에서부터 오직 기도로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최초의 흑인 출신 박사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 미국 남부지역은 면화 주산지였습니다. 그러나 면화를 재배하다 보면 땅속에 있던 질소가 없어집니다. 다시 새 땅을 개간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미국 남부지역이 다 황폐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가 땅콩재배를 권했습니다. 땅콩이 질소가 없는 땅에서도 잘 자라고 또 땅콩을 재배한 땅에서는 질소도 다시 생긴다는 사실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남부지역 농가들이 면화재배를 그만두고 땅콩재배에 나섰더니 풍년도 들고 땅도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콩 풍년 때문에 땅콩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이 다 흑자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카버 박사는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아침 일찍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마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쳐다보면서 외쳤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네 작은 소견으로 너무 큰 것을 알려하지 말고, 네 수준에 맞는 것을 물어보아라.'' 그는 다시 여쭈었습니다. ''주님, 무엇에 쓰시려고 사람을 이 세상에 두셨습니까.'' - 주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아직도 네가 감당하지 못할 질문을 하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나 말해 보아라.'' 그는 너무나 숙연해졌습니다. 한참 후 그가 마지막으로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됐어. 너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하라.'' 그는 산에서 돌아와 정말 땅콩을 한 줌 들고 자기 실험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그래서 땅콩버터,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땅콩 구두약을 비롯해 모두 105가지의 땅콩 식용품과 200가지의 땅콩 실용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국 남부지역 농가들이 놀라운 흑자 수지를 맞게 되었습니다. 카버 박사는 1860년경 흑인노예의 자식으로 생일도 모른 채 태어났지만, 1940년 죽을 때에는 흑백을 가릴 것 없이 미국인 전체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 최고의 농학자였습니다. 거대한 것을 보고만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국 골프선수인 최경주 선수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시합을 하고 오면 피곤해서 하루 이틀은 푹 쉬었습니다. 그것이 체력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로부터 시합을 하고 와서 피곤하더라도 매일 단련하고 훈련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근육이란 늘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쉬지 않고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집회를 통해서 은혜 받고 그 다음 주로 다 까먹어요. 왜냐하면 은혜 많이 받았으니까, 좀 쉬어야지.... / 수련회 다녀와서 다음날로 다 까먹어요... 쉬다가...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명하기위해서 애를 쓰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로 올리우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어떻게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와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을 뿐인 hyper Science (고도의 과학책)입니다.
누가는 성경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승천하시기까지를 기록하였다고 1절에서 데오빌로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부터의 사건을 기록하는데 언제까지를 기록하는 것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위에 약속대로 오실 때까지를 기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미완성의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맨 마지막장 마지막 절을 보면 행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복음의 확장은 지금도 계속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고 계시며, 우리도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3가지를 명령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3가지 명령은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써가고 있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핵심적인 명령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40일만 살 수 있다면 자녀들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베개 밑에 보면 몇 만불있고, 생명보험은 얼마를 탈 수 있고, 아무개에게 빌려준 돈 얼마를 받을 수 있고.... 그런것 이야기 하시겠습니까?
한평생 목회했던 어떤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장례식 때에 꼭 이 테이프를 틀어다오.... 장례식에서 목사님이 교회에 말하지 못했던 힘든 것들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김장로님,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목회를 잘 하도록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에서 꼭 뵙겠습니다. 그런데 , 설교시간에는 하품 좀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최권사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를 위해 늘 기도해주셔서, 제게 얼마나 큰 희망과 용기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먼저 천국에서 기다릴 테니 권사님도 천국에서 뵙시다. 그런데, 권사님은 예배시간에 좀 늦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말했다면 삐질 수 있지만, 목사님의 충정어린 부탁에, 모든 교우들이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말고 기다리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테니 기다리라
둘째는 성령 충만을 받고 증인이 되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
셋째는 하늘만 쳐다보지 말라.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귀한 것이 많습니다. 암 환자에게는 암이 정복되었다는 것보다 귀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는 줄기세포의 소식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모릅니다. 가난하고 힘든 가정에서 자녀가 법관이 되고, 좋은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모두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2000년 역사 속에 최고의 복된 약속과 축복은 “성령님이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핵심적으로 우리에게 거듭 약속하신 것이 바로 “성령의 약속”입니다. 성령님을 위하여 기다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증인이 되고, 성령님을 통해서 힘을 다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옛날 사극을 보면, 막 시끌벅적 하다가도 “어명이요...” 그러면 모두가 무릎을 꿇고 다 듣고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어명! 우리의 하던 일을 멈추고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3-5) - 기도하라. 포기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일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기다리는 자세는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앞장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거룩한 성을 떠나거나, 내 방법대로 앞서서 일하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보혜사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기다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21세기는 속도 전쟁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누군가가 조금 더 먼저 해야만 성공한다고 하지만, 신앙의 승리는 우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맡은 일이라도, 내게 그러한 권한이 있더라도 내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앞장서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와 초대교회의 차이점이 있다면, 초대교회는 모두가 기도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려 순종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한발자국도 곁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너무나 조직이 완벽합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더라도 전혀 문제없이 교회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앞장서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기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기다림= 기도)입니다.
또한 기다리라는 말씀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수님만 바라보았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민 생활에서 타민족들이 우리들과 함께 일하면서 다 알아듣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입니다. 아프리카에 어떤 분이 갔더니 거기에도 자장면 집이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들어가서 자장면을 시켰는데, 잘 안 나와서, “시간이 없는데 좀 빨리빨리 주세요.” 그랬더니 주방에서 한사람이 양파 썰다가 말고 칼을 들고 뛰어나오더니, 서울에서 “빨리빨리” 그 말 듣기가 지긋지긋해서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빨리빨리”하느냐? 고 울더래요. 교회 부흥도 빨리빨리 하다가 병들고 지쳐요. 다이어트도 운동을 시작한지 삼일 만에 살이 빠지기를 기대한다면 착각입니다. 빨리 빼려다가 생명까지 빼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결혼도 빨리빨리 서두르다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들 많이 봅니다. 밥을 지을 때에 매 1분마다 밥이 되었나 쳐다보면 밥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열세 살 키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30분이면 다 읽을 책인데, 그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도움꾼과 방해꾼이라는 두 존재가 살고 있단다. 방해꾼은 늘 우리에게 “포기해. 의미 없는 일이야” 라고 말하고, 도움꾼은 언제나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를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94%가 기다림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인생 전체가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7:13에 보면 “스스로 성결케하고 내일을 기다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아간의 욕심과 실수로 말미암아 엄청난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아이성 전투에서 대패하여 30명쯤 죽은 후입니다. 고통 중에 엎드린 여호수아와 백성을 향하여 주님은 “내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까?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첫 번째였습니다. 성도는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 니이까”(6절)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생각하는 착각된 왕국을 버리지 못하고 초조해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알바 아니다” 오직 관심은 “성령”임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 시대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2. 성령 충만함을 받아 증인이 되라(8절) - 권능의 삶, 증인의 삶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두 번째로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1:8에 나온 “성령 충만을 받아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될 것이다 ( You shall be my witness. ) 당연히 증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면 증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성령이 임하신 심령마다 당연히 또 하나의 증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증인의 삶이야말로 어명입니다. 딤전4: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어명이잖아요. 어명 앞에, 어떤 수식이나 의견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전도는 어명입니다” (따라합시다)
그냥 맨송맨송하게 전도하지 말고, 성령을 받게 되면 “권능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권능은 “듀나미스” 라는 헬라어로서,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힘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엄청난 파워, 폭발력, 힘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자신에게 하나님의 권능도 함께 임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에게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면서 엄청난 폭발력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성령님의 역사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성령님이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늘 힘을 못 쓰고 늘 두려워합니까? 의지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금과 은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3:6)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권능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교회들마다 늘 돈 걱정하고, 사람 걱정하고 그런 교회가 되지 말고,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권능을 행할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당연히 되는 것이 “증인”입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말투스” 영어로는 Martyr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죽음도 겁내지 않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 나가서 두려워하고, 말 붙였다가 창피당하면 어떻게 하나, 혹시 말 붙였다가 저 사람이 안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나.... 전도하러 나가서 관상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을 것 같다... 저 사람은 거절할 것 같다.... 그래가지고는 아무것도 열매가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그랬거든요... 착하게 보이는 사람들... 순하게 보이는 사람들... 더 안믿어요... 도저히 믿을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성령님께서 우리 앞으로 인도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전하십시오. 이것이 증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몇 주 전에도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거 터키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구석구석에 목숨을 걸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청교도의 땅에서 무엇이 두려워서 증인의 삶을 망설입니까? 증인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시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증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은 생각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꿈은 반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 꾼 것과 현실은 반대라는 말이 맞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왜 꿈은 현시로가 반대냐면, 사람은 피곤해서 깊이 잠들면 꿈이 생각나지 않아요... 꿈은 주로 잠 거의 깨도 되는 때에 꾼 것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늦게까지 잠만 자는데, 우승하는 꿈만 꾸면 뭐해요? 날마다 꼴찌가 될 수밖에 없어요. 1등 꿈만 꾼다는 말은 잠만 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 구원입니다. 아무리 목사, 장로, 권사, 직분자로 평생 교회 다녔어도, 한 영혼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무슨 얼굴로 서겠습니까? 성령의 사람이라면 증인은 선택이 아닙니다. 당연한 증인입니다. 입술로 삶으로, 행함으로 눈길 하나하나로 부활의 참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 보고만 있지 말라(11절) - 충성된 삶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들려진 소리가 있습니다. 11절에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재림의 신앙은 하늘만 바라보는 신앙이 아닙니다. 보고만 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이던 예수님이 이제 구름에 가려 안 보이면 예수님이 없어진 것이고 사라진 것입니까? 육체의 눈에 보여야만 믿겠노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합니까? 바람이 임의로 불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바람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 핏속에 돌고 있는 산소는 우리 코로 마시는데,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 보고 마십니까? 승천 이후 성령의 시대는 다른 말로 믿음의 시대입니다. 승천하시기까지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지만, 승천 이후 믿음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제는 육체의 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것, 대단한 것을 보고 있는 신앙이 되지 말고, 내게 맡겨진 직분, 내 이웃, 형제, 가족, 교회를 위해서 충성스럽게 땀 흘리며,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재림의 주님의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한동안 시한부 종말론이 1998년에 한국교회를 소란케 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이 분명하니까, 학교도 그만두고, 직장도 그만두고,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하고 주님 오실날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재림의 신앙입니까?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힘을 다해 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재림의 신앙입니다.
흑인 출신으로 미국교육계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 과정에서부터 오직 기도로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최초의 흑인 출신 박사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 미국 남부지역은 면화 주산지였습니다. 그러나 면화를 재배하다 보면 땅속에 있던 질소가 없어집니다. 다시 새 땅을 개간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미국 남부지역이 다 황폐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가 땅콩재배를 권했습니다. 땅콩이 질소가 없는 땅에서도 잘 자라고 또 땅콩을 재배한 땅에서는 질소도 다시 생긴다는 사실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남부지역 농가들이 면화재배를 그만두고 땅콩재배에 나섰더니 풍년도 들고 땅도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콩 풍년 때문에 땅콩 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이 다 흑자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카버 박사는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아침 일찍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마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쳐다보면서 외쳤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네 작은 소견으로 너무 큰 것을 알려하지 말고, 네 수준에 맞는 것을 물어보아라.'' 그는 다시 여쭈었습니다. ''주님, 무엇에 쓰시려고 사람을 이 세상에 두셨습니까.'' - 주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아직도 네가 감당하지 못할 질문을 하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나 말해 보아라.'' 그는 너무나 숙연해졌습니다. 한참 후 그가 마지막으로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됐어. 너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하라.'' 그는 산에서 돌아와 정말 땅콩을 한 줌 들고 자기 실험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그래서 땅콩버터,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땅콩 구두약을 비롯해 모두 105가지의 땅콩 식용품과 200가지의 땅콩 실용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국 남부지역 농가들이 놀라운 흑자 수지를 맞게 되었습니다. 카버 박사는 1860년경 흑인노예의 자식으로 생일도 모른 채 태어났지만, 1940년 죽을 때에는 흑백을 가릴 것 없이 미국인 전체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 최고의 농학자였습니다. 거대한 것을 보고만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충성을 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국 골프선수인 최경주 선수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시합을 하고 오면 피곤해서 하루 이틀은 푹 쉬었습니다. 그것이 체력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로부터 시합을 하고 와서 피곤하더라도 매일 단련하고 훈련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근육이란 늘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쉬지 않고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집회를 통해서 은혜 받고 그 다음 주로 다 까먹어요. 왜냐하면 은혜 많이 받았으니까, 좀 쉬어야지.... / 수련회 다녀와서 다음날로 다 까먹어요... 쉬다가...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