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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한 몸에 입이 둘인 벌레가 있었습니다. 서로 언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오른쪽 입이 왼쪽에게 졌습니다. 물어뜯어 많은 피를 흘려 결국 죽였습니다.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입은 둘이었지만 몸은 하나였으니까요. 망하려면 다투면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나라든지 자기들끼리 편갈라 싸우면 망할 것이다. 어느 도시나 가정도 나뉘면 제대로 서지 못한다”(마12:25)고 하셨습니다. 국가나 가정이나 그 사회를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방법은 단합입니다. 그 사회를 파멸시키는 방법은 불화요 다툼입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성도들을 사도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교훈한 말입니다. 가르칠 때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왜냐하면 말다툼은 자신에게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까지 망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말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함부로 말하면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분별 없이 경솔하게 하는 말입니다. 버릇없이 입을 놀려대는 것입니다. 조심성이 없습니다. 그 말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렇게나 해버린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라는 말씀은 모든 말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주의 시키라”는 뜻입니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는 소리, 다투는 소리도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길을 가다가 티격태격했습니다. 누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언쟁하는 것을 예수님이 들으시고 너희가 노중에 말한 것이 무엇이냐? 고 꾸짖으셨습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급한 마음으로 조급하게 하는 말입니다. 과속하는 자동차는 사고의 위험이 커집니다. 빠른 말이 문제가 됩니다.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체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못씁니다. 급하게 하는 일은 실수합니다. 급하게 한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언어는 도시이다. 그 도시를 건설하는데 만민이 말로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언어가 도시를 건설했다는 뜻입니다. 물결치는 해변의 조약돌처럼 인간의 언어도 다듬어져야 합니다. 생각하고 다듬어서 내 보내지 않은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말이 많다보면 실수가 많아지고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전10:14). 예수님은 기도할 때도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각 없이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의미 없는 공허한 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탈무드에 침묵이 만병의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뛰어난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해 지려면 입을 다무는 것이요, 말다툼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잠 13:3)
둘째, 괴롭히는 말입니다.
듣는 입장에서 짜증스럽고 괴로운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들으시고 괴로워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말2:17) 사람들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좋게 보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우신 것입니다.
괴롭히는 말은 잔소리입니다. 여자의 잔소리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에 비유됩니다. 잔소리가 심한 인간을 보고 개가 벼룩 씹듯 한다고 말합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잠19:13)이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지붕들은 경사가 편평하게 되어있어 장마철에는 비가 새는 경우가 생깁니다. 잔소리 심한 아내는 새는 지붕에서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가지 긁는 아내와 큰집에서 사는 것보다 다락 한 구석에서 사는 편이 낫습니다(잠21:9).
또 빈정거리는 말이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사람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농담도 못하냐?고 반문합니다. 아내가 곱게 화장을 한 것을 보고 특유의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한다는 소리가 “입술에 떡칠 했구먼, 누구를 꼬시려고 그렇게 야하게 했나”라고 빈정댑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 괴롭힌다는 것은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편하지 못하게 하는 말을 골라서 합니다. 말버릇 고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잘못된 말버릇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빈정거려서 사람을 괴롭히는 언어 습관을 고치려면 어떻게 할까요? 먼저, 자신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잘못된 습관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언어 습관은 유전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서 고칠 수 있다는 확신과 결심이 필요합니다. 셋째,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오랜 습관을 고치기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계획해야합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의 잘못된 언어 습관에 대해서 비난보다는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진실한 친구의 도움말을 받아야합니다. 다섯째,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 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면에서든지 잘못된 언어 습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실천해 오다가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 실패했어도 포기하지 말고 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쌓아야 합니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빛은 항상 어두운데서 나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너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셋째, 폭언이 문제입니다.
잠언 12장 18절에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폭언이란 난폭하게 칼로 찌르는 듯이 하는 말입니다. 폭행을 당하면 멍이 들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언어의 폭력은 오래가고 깊이 박힙니다. 언어 폭력은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당신 어머니를 닮았소. 장모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툭하면 눈물을 보이듯이 당신도 똑같아.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A~ C." 공격받은 아내가 참을 수 있나요? 아내의 반격이 나옵니다. “그래요 나는 우리 엄마를 닮았어요. 당신은 당신 아버지를 닮았다구요. 당신 아버지는 당신 어머니를 발가락 때만도 못하게 여겼대요. 당신도 똑같이 나를 그렇게 무시하잖아요?” 약점을 공격받고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비비기까지 합니다.
공격과 방어가 거듭되다보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서로의 신뢰가 깨어지고 잘못하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당신 그렇게 뚱뚱하고도 창피하지도 않아?” 여기에 맛서는 아내의 말을 들어 보세요. “그래 누구나 자신의 잘못은 모른다니까? 다른 집 남자처럼 돈 좀 벌어다 줘봐! 나도 헬스도 다니고 다이어트 할 수 있다고, 다른 집 여자들 몸 관리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줄이나 알아! 불쌍한 ‘분이’ 아이구 내 팔자야 내 어쩌다 저런 인간 만나서 이 꼴이 되었는지... 원통해서 못살겠네...”
“이제 정말 막가자는 거야” 하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 주먹이 무서웠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않았다! 어디 한번 때려 보시지! 때려 보라니까?” 그 말 듣고도 참을 남자 있어요? 코앞에 바싹다가 가서 고개 쳐들고 때려 보라고 하면 참지 못합니다. 언쟁이 전쟁이 되는 거지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가정 폭력이 남자 탓도 있지만 어떤 때는 여자가 맞을 짓을 한다더라구요. 여러분 모두 유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촌 누님이 유순이 입니다. 미련한자의 입술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언어가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은 왜 그럴까? 어릴 적부터 부모의 언어 폭력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언어 폭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예민한 사람은 조금만 화가 나도 폭언을 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언어 폭력에 시달려 온 사람은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자녀를 기르면서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부모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허름한 술집에서 앵무새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욕을 많이 들어서인지 앵무새가 욕쟁이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욕하고 헐뜯다가 경찰관이 지나가니까 “경찰관은 모두 도둑놈들”이라고 했습니다. 경찰관이 이런 놈은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면서, 후려쳤습니다. 앵무새는 매를 맞고 죽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앵무새가 억울하다. 벌을 받아야 할 자는 술집 주인인데, 앵무새가 주인의 말을 따라서 했을 뿐인데”라고 했습니다.
유리병 세 개에 각각 밥을 담고 한 병을 향해서 “고맙다”라고 했고, 또 하나에게 “망할놈”이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한 병은 무시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밥은 발효하여 좋은 향기를 내고, 망할 놈이란 말을 들은 밥은 썩어서 냄새가 나고, 무시당한 밥은 악취가 너무 시해 코를 댈 수 없었답니다. 폭언을 들으면 망가집니다.
가장 건강한 대화는 어떤 것일까요? “I''m OK. You''re OK”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둘 다 옳다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둘째, 너는 옳고 나는 틀렸다. 셋째, 우리 둘 다 틀렸다. 넷째, 우리 둘 다 옳다 입니다. 공통 분모를 만들려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게 하십시오(고전 1:10). 말다툼을 일으키는 원흉은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 듣는 이를 괴롭게 하는 말입니다. 폭언, 언어 폭력입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보다 고상해지기 바랍니다. 말다툼 없는 품위 있는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한 몸에 입이 둘인 벌레가 있었습니다. 서로 언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혈투가 벌어졌습니다. 오른쪽 입이 왼쪽에게 졌습니다. 물어뜯어 많은 피를 흘려 결국 죽였습니다.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입은 둘이었지만 몸은 하나였으니까요. 망하려면 다투면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나라든지 자기들끼리 편갈라 싸우면 망할 것이다. 어느 도시나 가정도 나뉘면 제대로 서지 못한다”(마12:25)고 하셨습니다. 국가나 가정이나 그 사회를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방법은 단합입니다. 그 사회를 파멸시키는 방법은 불화요 다툼입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성도들을 사도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교훈한 말입니다. 가르칠 때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왜냐하면 말다툼은 자신에게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까지 망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말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함부로 말하면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분별 없이 경솔하게 하는 말입니다. 버릇없이 입을 놀려대는 것입니다. 조심성이 없습니다. 그 말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렇게나 해버린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라는 말씀은 모든 말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주의 시키라”는 뜻입니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는 소리, 다투는 소리도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길을 가다가 티격태격했습니다. 누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언쟁하는 것을 예수님이 들으시고 너희가 노중에 말한 것이 무엇이냐? 고 꾸짖으셨습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급한 마음으로 조급하게 하는 말입니다. 과속하는 자동차는 사고의 위험이 커집니다. 빠른 말이 문제가 됩니다.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체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못씁니다. 급하게 하는 일은 실수합니다. 급하게 한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언어는 도시이다. 그 도시를 건설하는데 만민이 말로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언어가 도시를 건설했다는 뜻입니다. 물결치는 해변의 조약돌처럼 인간의 언어도 다듬어져야 합니다. 생각하고 다듬어서 내 보내지 않은 말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말이 많다보면 실수가 많아지고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전10:14). 예수님은 기도할 때도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각 없이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의미 없는 공허한 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탈무드에 침묵이 만병의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뛰어난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해 지려면 입을 다무는 것이요, 말다툼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잠 13:3)
둘째, 괴롭히는 말입니다.
듣는 입장에서 짜증스럽고 괴로운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들으시고 괴로워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말2:17) 사람들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좋게 보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우신 것입니다.
괴롭히는 말은 잔소리입니다. 여자의 잔소리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에 비유됩니다. 잔소리가 심한 인간을 보고 개가 벼룩 씹듯 한다고 말합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잠19:13)이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지붕들은 경사가 편평하게 되어있어 장마철에는 비가 새는 경우가 생깁니다. 잔소리 심한 아내는 새는 지붕에서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가지 긁는 아내와 큰집에서 사는 것보다 다락 한 구석에서 사는 편이 낫습니다(잠21:9).
또 빈정거리는 말이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사람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농담도 못하냐?고 반문합니다. 아내가 곱게 화장을 한 것을 보고 특유의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한다는 소리가 “입술에 떡칠 했구먼, 누구를 꼬시려고 그렇게 야하게 했나”라고 빈정댑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 괴롭힌다는 것은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편하지 못하게 하는 말을 골라서 합니다. 말버릇 고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잘못된 말버릇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빈정거려서 사람을 괴롭히는 언어 습관을 고치려면 어떻게 할까요? 먼저, 자신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잘못된 습관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언어 습관은 유전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서 고칠 수 있다는 확신과 결심이 필요합니다. 셋째,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오랜 습관을 고치기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계획해야합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의 잘못된 언어 습관에 대해서 비난보다는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진실한 친구의 도움말을 받아야합니다. 다섯째,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 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면에서든지 잘못된 언어 습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실천해 오다가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 실패했어도 포기하지 말고 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쌓아야 합니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빛은 항상 어두운데서 나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너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셋째, 폭언이 문제입니다.
잠언 12장 18절에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폭언이란 난폭하게 칼로 찌르는 듯이 하는 말입니다. 폭행을 당하면 멍이 들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언어의 폭력은 오래가고 깊이 박힙니다. 언어 폭력은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당신 어머니를 닮았소. 장모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툭하면 눈물을 보이듯이 당신도 똑같아.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A~ C." 공격받은 아내가 참을 수 있나요? 아내의 반격이 나옵니다. “그래요 나는 우리 엄마를 닮았어요. 당신은 당신 아버지를 닮았다구요. 당신 아버지는 당신 어머니를 발가락 때만도 못하게 여겼대요. 당신도 똑같이 나를 그렇게 무시하잖아요?” 약점을 공격받고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비비기까지 합니다.
공격과 방어가 거듭되다보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서로의 신뢰가 깨어지고 잘못하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당신 그렇게 뚱뚱하고도 창피하지도 않아?” 여기에 맛서는 아내의 말을 들어 보세요. “그래 누구나 자신의 잘못은 모른다니까? 다른 집 남자처럼 돈 좀 벌어다 줘봐! 나도 헬스도 다니고 다이어트 할 수 있다고, 다른 집 여자들 몸 관리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줄이나 알아! 불쌍한 ‘분이’ 아이구 내 팔자야 내 어쩌다 저런 인간 만나서 이 꼴이 되었는지... 원통해서 못살겠네...”
“이제 정말 막가자는 거야” 하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 주먹이 무서웠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않았다! 어디 한번 때려 보시지! 때려 보라니까?” 그 말 듣고도 참을 남자 있어요? 코앞에 바싹다가 가서 고개 쳐들고 때려 보라고 하면 참지 못합니다. 언쟁이 전쟁이 되는 거지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가정 폭력이 남자 탓도 있지만 어떤 때는 여자가 맞을 짓을 한다더라구요. 여러분 모두 유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촌 누님이 유순이 입니다. 미련한자의 입술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언어가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은 왜 그럴까? 어릴 적부터 부모의 언어 폭력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언어 폭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예민한 사람은 조금만 화가 나도 폭언을 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언어 폭력에 시달려 온 사람은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자녀를 기르면서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부모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허름한 술집에서 앵무새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욕을 많이 들어서인지 앵무새가 욕쟁이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욕하고 헐뜯다가 경찰관이 지나가니까 “경찰관은 모두 도둑놈들”이라고 했습니다. 경찰관이 이런 놈은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면서, 후려쳤습니다. 앵무새는 매를 맞고 죽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앵무새가 억울하다. 벌을 받아야 할 자는 술집 주인인데, 앵무새가 주인의 말을 따라서 했을 뿐인데”라고 했습니다.
유리병 세 개에 각각 밥을 담고 한 병을 향해서 “고맙다”라고 했고, 또 하나에게 “망할놈”이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한 병은 무시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밥은 발효하여 좋은 향기를 내고, 망할 놈이란 말을 들은 밥은 썩어서 냄새가 나고, 무시당한 밥은 악취가 너무 시해 코를 댈 수 없었답니다. 폭언을 들으면 망가집니다.
가장 건강한 대화는 어떤 것일까요? “I''m OK. You''re OK”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둘 다 옳다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둘째, 너는 옳고 나는 틀렸다. 셋째, 우리 둘 다 틀렸다. 넷째, 우리 둘 다 옳다 입니다. 공통 분모를 만들려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게 하십시오(고전 1:10). 말다툼을 일으키는 원흉은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 듣는 이를 괴롭게 하는 말입니다. 폭언, 언어 폭력입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보다 고상해지기 바랍니다. 말다툼 없는 품위 있는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