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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평목사 (영동그리스도의교회) 2004.12.24 조회 : 212
2003이 들어서면서 눈만 뜨면 정치계의 부정부패와 기업인들이 권력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돈을 갖다 받치는 사건과
사회의 노사분쟁, 대낮에 강도가 가정에 침입해서
가정주부를 살해하고, 수능시험 성적이 기대치 이하라고
24층 아파트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처에서 개인과 집단의 유익을 위해서
치고받고 싸우는 무서운 사건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부정한 사건들을 보면 두렵고, 비끗하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책임지겠다고 하니 코메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가면 책임을 지는 것입니까?
정치, 경제, 사회에 책임자들이 잘못으로
국민의 아픈 고통은 어떻게 책임질것인가 심히 의문이 됩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너무 절망적이라서
이민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탄 주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므로
피차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2:5-18까지는
대단히 길고 난해한 부분이지만
우리에게 “성탄의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서 2:5-6】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올 세상은
천사들보다 뛰어난 아들에게 복종시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이 목동일 때 외롭고 고독할 때
기록한 시편 8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자기가 있던 들판을 회상합니다.
그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다이아몬드와 황금덩어리처럼,
그리고 하늘의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촛불처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가?”를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폴로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다윗의 이 시편을 외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은
“다윗이 바라보는 해와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습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는 우주인들이 달에 가서
이 시를 외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주인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땅의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이 있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다윗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자신의 외소함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잠시동안 머문다는 것을 인식하십니까?
우리는 언젠가 떠납니다만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삶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드는
꽃과 그리고 곧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그리고 또한
그림자와 같다고 비교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곳에 잠깐 머물다 떠나 버리는
아주 작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2:6】에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절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엉터리 대답을 하거나
대충 대충 말합니다.
그리고 진화론자들과 결탁이된 인본주의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연히 이 땅에 왔고
아메바로부터 진화된 존재라는 이론을 믿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우리가 진화되었다면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고
우리는 또 하나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본주의 자들이 어떻게 해서
인본주의자라고 불리 우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은 동물주의자라고 불러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을 동물의 진화 결과로 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 주의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이론을 합리화한다고 해도
그들의 이론으로는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지 못합니다.
H.G.Wells라는 당대의 유명한 역사가는
“사람은 눈에보이는 외면에 의지하며
잊어버려도 되는 순간적인 물방울 같은 것에 집착하는 존재이며
이 우주의 수많은 천체에 묻어 있는 먼지 같은 존재다.”
라고 규명 하였습니다.
진화론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은 이것이 인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무엇에게도 중요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뉴에이지 주의자들은 사람을 이렇게 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시다.
그리고 이 우주가 하나님이시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우주의 일부분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상은 동서양의 신비주의와 힌두사상과의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사상은 인간 자신비하적 사상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도 “사람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세상과 뉴에이지 운동 주의자들의
인간에 대한 시각과 성경적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인간을 이해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먼저 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전안에 계시는 회중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사람을 보십니까?
여러분이 보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므로
아담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죽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사람 아담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형상대로 자식들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로스로이 자동차를 본 일이 없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자동차 공동묘지에 가서
버려진 로스로이를 보여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본 것은 온전한 로스로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장나서 못쓰게 되어서 버려진 것입니다.
아담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탄의 장난에 패배하여 고장나서 못쓰게 된
겁데기만 남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사람을 본다고 해도
여러분은 진정으로 완전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이 누구이신 가를 알아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간을 보여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절망에서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세가지 상태와 인간이 “왜? 성탄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줄 것입니다.
? 첫째로, 인간은 창조때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부여받으므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하므로 그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상실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면류관을 되찾기 위해서
성탄이 꼭 필요합니다.
♣【 히브리서2:6-8】을 보겠습니다.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피조물 중에
면류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 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7】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으로 하여금 이 지구의 왕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참 인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제와 권위를 볼 수가 있습니다.
♣【 6절】을 보십시다.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편지 한장을
받았다 라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런데 이편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온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대치동에 갑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첫 번째 질문은 “왜 접니까?”라고
놀라서 묻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 나라 대통령이 대치동에 오고,
나를 방문하여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하여
인간 세상을 방문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십니까?”
라고 감격해서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방문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야곱을, 모세를, 여호수아를, 기드온을 방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방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방문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실체를 면밀하게 보면
여러분은 권세를 갖도록 그리고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값어치가 있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직접 설계하시고 지으시고
인간에게 만물뿐만이 아니라
권위와 권세를 주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7-8】에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다스리는 권위와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발 아래 주시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까지 주셨습니다.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지으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여 천사보다 낮게 되심은
한시적인것이며 예수님께서 잠시나마 낮아진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신하여 고난 당하심으로
그들을 형제삼고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망시켜
성도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합입니다.
천사까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권세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과 권세를 받은 인간들이
사탄에 유혹에 빠져서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 8절】하반절을 보시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과
그 권세를 갖고 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입니까?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권을 잘못 사용하므로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죽고 권세가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권이 없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권이 없는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인간과 교제하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기계와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반응하는 사람과 교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여러분을 사랑할 것을 선택하기 전에는
여러분은 상대방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아니하는 한
아무도 자기 자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충성할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낮게 만드셨는데
지금은 동물 즉 금수보다 더 낮은 더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동물 즉 금수도 하지 않는 일을
사람이 한다는 것을 압니까?
어떤 사람이 두 원숭이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원숭이가 “사람은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갔데”라고 합니다.
그 때 또 하나의 원숭이가
“야! 이 바보야! 그런 말 말게 다른 원숭이들이 들으면
창피하다고 분노를 할걸세”라고 했답니다.
저는 또 돼지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돼지우리에 두마리의 돼지가 있는데 한 마리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돼지가 물을 마시려 하자 다른 돼지가
“다른 돼지도 생각해야지!” 라고 하면서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 때 목말라하는 돼지가 “한 모금만 더 마시게 해주면
내가 절대로 사람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겠어”라고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에 인간들이 하는 짓은 동물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전투기로 만듭니다.
인간들은 원자속에 에너지를 발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원자폭탄을 만듭니다.
인간들은 텔레비전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중파를 통해서 시그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텔레비전 안에는 포르노 영화로
그리고 소음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와서는 천사보다 조금 못한 것이 아니라
동물, 금수보다 못하게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적 지혜력은 말의 지혜력보다
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형상이 아주 더럽게 변질되었습니다.
인간들의 형상만 죄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권세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시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 시켰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권세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다스릴 권세가 없습니다.
다윗왕이 ♣【시편 8:6-8】까지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사람의 모양을 보기 원하면
예수님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구 위를 걸으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행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계시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언행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말하는 것, 행하는 것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완벽한 인간이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천사보다 약간 못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예수그리스도께 굴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타고
제일먼저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시기 원하셨을 때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아오라고 하시고
고기 입에서 동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밑에서 고기들이 동전을 물도록
인도할 수 있다면 고기를 낙시대로 인도할 수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
여러분이 아침에 닭이 울지 못하도록 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한 마리의 닭이 정확한 시간에 울게 할 수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모든 새들과
지상의 모든 짐승들과 물속에 모든 고기까지도
관리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엄청난 모든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권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을 오고 갈 때
747점보기를 타고 오고 갑니다.
여러분은 비행사가 747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고 끝내는 이룩합니다.
그리고 항로를 따라 항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비행사가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나르는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체가 하늘을 나를 수 있는 에너지와 원리를 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권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죽음으로 꽉 차 있습니다.
질병으로, 사고로 그리고 자살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세계는 삭막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는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인원이 세상을 주장하는 상상 영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들의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상실하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
성탄이 꼭 필요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 그러나 둘째로 인간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상실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 9절】을 보십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아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범죄 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될 수가 있습니다.
다시 살 수가 있습니다. .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심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구속시키기 위해서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사실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담이었고 또한 사람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이후의 사람들은 아담안에서 살던지 아니면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21】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아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 21절】하반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22절】“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자, 이 말씀을 읽고, 여러분 중에
“나는 아담의 죽음과는 아무관계가 없다”라고 하실분이 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아담의 죽음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또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 모두가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권세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어떻게 자기가 소유한 이 모든 권세를 상실했습니까?
그는 그 권세를 사단에게 갖다 받쳤습니다.
여러분은 사단이 예수님께 한 말을 기억하여야 됩니다.
사단은 40일간 금식을 마친 예수님께
“네가 만약 내게 절하고 나를 예배하면 내가 너에게
이 세상 왕국을 다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사단을 꾸짖으시고 쫓아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권세를 절대로 사단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태초에 받은 그 권세를
사단에게 바쳐졌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사단은
그 권세를 법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이 법적으로 소유했던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법적으로 되찾아야 됩니다.
이 권세는 사람에 의해서 잃어버렸으므로
사람에 의해서 되찾아야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지 않으시고는
인간을 구속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것을 되찾을 수가 있습니까?
히브리서 2:2-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하신 사역과
왜 성탄이 있어야만 하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 9절】을 보면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고난을 당하시고,
사람이 되셔야 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기 위해서
잠깐동안 한시적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9절】하반절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정된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구원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 당신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분이 유한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영광과 존귀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주님께서
천사보다 약간 못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인한 인간의 고생과 피흘림과
죽음의 빗을 갚고 잃어버린 형상과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성육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인간으로 당한 고생과 고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체만 가지시고
투명인간으로 오셨으므로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소유하셨으므로
여러분이 당하는 아픔과 고난을 똑같이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아픔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제가 이번 미국여행시 L.A에서 호텔 방에서
외롭게 오늘 "왜 성탄?"이라는 설교준비를 하면서
John Lentin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읽고 있었던 부분은
“어두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
라는 장이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다 읽지 못하고 끝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어두운 겟세마내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
라는 부분이 그 때 내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값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빌딩이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경찰이 들어 닥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목사의 감동적 외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깨달은 감격이었습니다.
나는 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생한것과 같은
고생을 하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 때문에 고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사단에게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4】을 보십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라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를 의미합니다.
혈육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혈육에 속한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인간으로 고생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능,
마귀의 권능을 무너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검을 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인간은 권세를 합법적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되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고생을 당하시고
사람처럼 사단의 억압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상에서
사단에 의해서 무장을 해제 받아야 되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 달리므로 사단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손으로부터 죽음의 검을
빼앗는 승리를 이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사탄에 의해서 고생했습니다.
피흘리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저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15절】을 보십시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사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에게 죽음으로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지 못합니다.
어린아기 예수님께서
죄 때문에 고생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사단을 정복하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이 오게된 이유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으면
죽음은 오직 그림자일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림자가 여러분을 두렵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여러분을 상하지 못하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성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다윗의 족보에 있으므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다릅니다.
따라서 짐승은 인간의 양자가 될 수도 없고 또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 할수도 없습니다. 짐승이 인간의 양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인간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길 뿐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우리의 죄는 인간이 되어야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다윗의 족보속에 들어오시고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서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성육신 하셔서 우리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선지자는 ♣【이사야서 53:4-5】를 통해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 고난을 자처하시고
그 노고와 싸워서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슬픔도 느끼시고
골치꺼리와 두려움과 죽음도 체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 아십니다.
■『필리스는 어렸을 적부터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고생을 해왔습니다.
그녀는 자라면서 여러 의사들께 가서
늘 안정을 취하려고 하는 조언과
여러 가지 치료도 받고 처방도 받았지만
그들도 갑자기 엄습하는 천식을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필리스는 계속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별 효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드 박사를 찾아갈때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드 박사는 필리스에게 안정을 취하라고
말하지 않고 처방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내 딸도 너와 동일한 병을 앓고 있단다.
그래서 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천식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매우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우리 약속을 하자꾸나, 네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나를 부를 수 있다는 약속 말이다.
내가 병원에 없을 때에는 집으로 전화를 하렴,
네가 연락을 해오면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나 달려와
너를 치료해 주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필리스는 우드 박사에게
급히 전화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필리스는 진짜로 안정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 예수께서도 인간이 당할 고난을
몸소 체험하여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게다가 지금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니 시험을 당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장례식장을 대단히 자주 갑니다.
그리고 병원에도 자주 갑니다.
병원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어떤 때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절대로 하기 원치 않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고생하는 어머니와 함께 걷고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 어머니를 보면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라고 하는데
절대로 이런 위로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그 분의 느낌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느낌과 슬픔과 아픔이 어떤지 아십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바로 성탄절 새벽에 태어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분 자신도 유혹 받음으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유혹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혹은 동정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을 형제처럼 친밀하게 느끼며 또한 알고 있습니까?
그는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시어
우리와 같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또한 우리와 함께 고난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와 형제 되기를 원하면서
그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또한 그를 알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도 게으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진정한 평강과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같이 되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은 그를 위해서 고난도 감수하며
인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벧전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인간의 탈을 벗어놓고 승천 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면 사람이 계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데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의미는 나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와
아주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보좌를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탄절날에 인간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구세주이십니까?
따라서 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속이고
절망의 벼랑으로 밀어 부친다고 해도
성탄절날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질고와 아픔을 다 아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믿고
기쁘고 즐겁고 소망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003이 들어서면서 눈만 뜨면 정치계의 부정부패와 기업인들이 권력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돈을 갖다 받치는 사건과
사회의 노사분쟁, 대낮에 강도가 가정에 침입해서
가정주부를 살해하고, 수능시험 성적이 기대치 이하라고
24층 아파트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처에서 개인과 집단의 유익을 위해서
치고받고 싸우는 무서운 사건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부정한 사건들을 보면 두렵고, 비끗하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책임지겠다고 하니 코메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가면 책임을 지는 것입니까?
정치, 경제, 사회에 책임자들이 잘못으로
국민의 아픈 고통은 어떻게 책임질것인가 심히 의문이 됩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너무 절망적이라서
이민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탄 주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므로
피차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2:5-18까지는
대단히 길고 난해한 부분이지만
우리에게 “성탄의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히브리서 2:5-6】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올 세상은
천사들보다 뛰어난 아들에게 복종시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이 목동일 때 외롭고 고독할 때
기록한 시편 8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자기가 있던 들판을 회상합니다.
그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다이아몬드와 황금덩어리처럼,
그리고 하늘의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촛불처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가?”를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폴로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다윗의 이 시편을 외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은
“다윗이 바라보는 해와 달과 별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습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쓸 때는 우주인들이 달에 가서
이 시를 외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주인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땅의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이 있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다윗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자신의 외소함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잠시동안 머문다는 것을 인식하십니까?
우리는 언젠가 떠납니다만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삶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드는
꽃과 그리고 곧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그리고 또한
그림자와 같다고 비교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곳에 잠깐 머물다 떠나 버리는
아주 작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2:6】에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절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엉터리 대답을 하거나
대충 대충 말합니다.
그리고 진화론자들과 결탁이된 인본주의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연히 이 땅에 왔고
아메바로부터 진화된 존재라는 이론을 믿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우리가 진화되었다면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고
우리는 또 하나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본주의 자들이 어떻게 해서
인본주의자라고 불리 우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은 동물주의자라고 불러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을 동물의 진화 결과로 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 주의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이론을 합리화한다고 해도
그들의 이론으로는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지 못합니다.
H.G.Wells라는 당대의 유명한 역사가는
“사람은 눈에보이는 외면에 의지하며
잊어버려도 되는 순간적인 물방울 같은 것에 집착하는 존재이며
이 우주의 수많은 천체에 묻어 있는 먼지 같은 존재다.”
라고 규명 하였습니다.
진화론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은 이것이 인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무엇에게도 중요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뉴에이지 주의자들은 사람을 이렇게 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시다.
그리고 이 우주가 하나님이시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우주의 일부분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상은 동서양의 신비주의와 힌두사상과의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사상은 인간 자신비하적 사상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도 “사람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세상과 뉴에이지 운동 주의자들의
인간에 대한 시각과 성경적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인간을 이해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먼저 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전안에 계시는 회중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사람을 보십니까?
여러분이 보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므로
아담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죽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사람 아담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형상대로 자식들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로스로이 자동차를 본 일이 없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자동차 공동묘지에 가서
버려진 로스로이를 보여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본 것은 온전한 로스로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장나서 못쓰게 되어서 버려진 것입니다.
아담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탄의 장난에 패배하여 고장나서 못쓰게 된
겁데기만 남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사람을 본다고 해도
여러분은 진정으로 완전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이 누구이신 가를 알아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간을 보여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절망에서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세가지 상태와 인간이 “왜? 성탄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줄 것입니다.
? 첫째로, 인간은 창조때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부여받으므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하므로 그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상실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면류관을 되찾기 위해서
성탄이 꼭 필요합니다.
♣【 히브리서2:6-8】을 보겠습니다.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피조물 중에
면류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 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7】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으로 하여금 이 지구의 왕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참 인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제와 권위를 볼 수가 있습니다.
♣【 6절】을 보십시다.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편지 한장을
받았다 라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런데 이편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온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대치동에 갑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첫 번째 질문은 “왜 접니까?”라고
놀라서 묻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 나라 대통령이 대치동에 오고,
나를 방문하여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하여
인간 세상을 방문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십니까?”
라고 감격해서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방문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야곱을, 모세를, 여호수아를, 기드온을 방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방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방문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실체를 면밀하게 보면
여러분은 권세를 갖도록 그리고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값어치가 있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직접 설계하시고 지으시고
인간에게 만물뿐만이 아니라
권위와 권세를 주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7-8】에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다스리는 권위와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발 아래 주시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까지 주셨습니다.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지으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여 천사보다 낮게 되심은
한시적인것이며 예수님께서 잠시나마 낮아진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신하여 고난 당하심으로
그들을 형제삼고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멸망시켜
성도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합입니다.
천사까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권세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과 권세를 받은 인간들이
사탄에 유혹에 빠져서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 8절】하반절을 보시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과
그 권세를 갖고 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입니까?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권을 잘못 사용하므로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죽고 권세가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권이 없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권이 없는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인간과 교제하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기계와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반응하는 사람과 교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여러분을 사랑할 것을 선택하기 전에는
여러분은 상대방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아니하는 한
아무도 자기 자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충성할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에게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낮게 만드셨는데
지금은 동물 즉 금수보다 더 낮은 더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동물 즉 금수도 하지 않는 일을
사람이 한다는 것을 압니까?
어떤 사람이 두 원숭이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원숭이가 “사람은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갔데”라고 합니다.
그 때 또 하나의 원숭이가
“야! 이 바보야! 그런 말 말게 다른 원숭이들이 들으면
창피하다고 분노를 할걸세”라고 했답니다.
저는 또 돼지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돼지우리에 두마리의 돼지가 있는데 한 마리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돼지가 물을 마시려 하자 다른 돼지가
“다른 돼지도 생각해야지!” 라고 하면서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 때 목말라하는 돼지가 “한 모금만 더 마시게 해주면
내가 절대로 사람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겠어”라고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에 인간들이 하는 짓은 동물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전투기로 만듭니다.
인간들은 원자속에 에너지를 발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원자폭탄을 만듭니다.
인간들은 텔레비전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중파를 통해서 시그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텔레비전 안에는 포르노 영화로
그리고 소음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와서는 천사보다 조금 못한 것이 아니라
동물, 금수보다 못하게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적 지혜력은 말의 지혜력보다
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형상이 아주 더럽게 변질되었습니다.
인간들의 형상만 죄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권세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시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 시켰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권세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다스릴 권세가 없습니다.
다윗왕이 ♣【시편 8:6-8】까지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사람의 모양을 보기 원하면
예수님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구 위를 걸으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행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계시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언행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말하는 것, 행하는 것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완벽한 인간이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천사보다 약간 못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예수그리스도께 굴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타고
제일먼저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시기 원하셨을 때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아오라고 하시고
고기 입에서 동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밑에서 고기들이 동전을 물도록
인도할 수 있다면 고기를 낙시대로 인도할 수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
여러분이 아침에 닭이 울지 못하도록 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한 마리의 닭이 정확한 시간에 울게 할 수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모든 새들과
지상의 모든 짐승들과 물속에 모든 고기까지도
관리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 엄청난 모든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권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을 오고 갈 때
747점보기를 타고 오고 갑니다.
여러분은 비행사가 747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고 끝내는 이룩합니다.
그리고 항로를 따라 항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비행사가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나르는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체가 하늘을 나를 수 있는 에너지와 원리를 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권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죽음으로 꽉 차 있습니다.
질병으로, 사고로 그리고 자살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세계는 삭막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는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인원이 세상을 주장하는 상상 영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들의 권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상실하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
성탄이 꼭 필요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 그러나 둘째로 인간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상실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권세를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 9절】을 보십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아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범죄 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될 수가 있습니다.
다시 살 수가 있습니다. .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심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구속시키기 위해서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사실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담이었고 또한 사람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이후의 사람들은 아담안에서 살던지 아니면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21】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아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 21절】하반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22절】“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자, 이 말씀을 읽고, 여러분 중에
“나는 아담의 죽음과는 아무관계가 없다”라고 하실분이 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아담의 죽음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또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 모두가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권세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어떻게 자기가 소유한 이 모든 권세를 상실했습니까?
그는 그 권세를 사단에게 갖다 받쳤습니다.
여러분은 사단이 예수님께 한 말을 기억하여야 됩니다.
사단은 40일간 금식을 마친 예수님께
“네가 만약 내게 절하고 나를 예배하면 내가 너에게
이 세상 왕국을 다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사단을 꾸짖으시고 쫓아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권세를 절대로 사단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태초에 받은 그 권세를
사단에게 바쳐졌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사단은
그 권세를 법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이 법적으로 소유했던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법적으로 되찾아야 됩니다.
이 권세는 사람에 의해서 잃어버렸으므로
사람에 의해서 되찾아야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지 않으시고는
인간을 구속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것을 되찾을 수가 있습니까?
히브리서 2:2-9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하신 사역과
왜 성탄이 있어야만 하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 9절】을 보면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고난을 당하시고,
사람이 되셔야 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기 위해서
잠깐동안 한시적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9절】하반절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정된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구원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 당신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분이 유한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영광과 존귀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주님께서
천사보다 약간 못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인한 인간의 고생과 피흘림과
죽음의 빗을 갚고 잃어버린 형상과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성육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인간으로 당한 고생과 고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체만 가지시고
투명인간으로 오셨으므로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소유하셨으므로
여러분이 당하는 아픔과 고난을 똑같이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아픔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제가 이번 미국여행시 L.A에서 호텔 방에서
외롭게 오늘 "왜 성탄?"이라는 설교준비를 하면서
John Lentin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읽고 있었던 부분은
“어두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
라는 장이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다 읽지 못하고 끝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어두운 겟세마내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
라는 부분이 그 때 내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값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빌딩이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경찰이 들어 닥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목사의 감동적 외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깨달은 감격이었습니다.
나는 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생한것과 같은
고생을 하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 때문에 고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사단에게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4】을 보십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라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를 의미합니다.
혈육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혈육에 속한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인간으로 고생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능,
마귀의 권능을 무너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검을 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인간은 권세를 합법적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되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고생을 당하시고
사람처럼 사단의 억압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상에서
사단에 의해서 무장을 해제 받아야 되고,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 달리므로 사단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손으로부터 죽음의 검을
빼앗는 승리를 이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사탄에 의해서 고생했습니다.
피흘리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저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15절】을 보십시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사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에게 죽음으로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지 못합니다.
어린아기 예수님께서
죄 때문에 고생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사단을 정복하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이 오게된 이유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으면
죽음은 오직 그림자일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림자가 여러분을 두렵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여러분을 상하지 못하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성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다윗의 족보에 있으므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다릅니다.
따라서 짐승은 인간의 양자가 될 수도 없고 또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 할수도 없습니다. 짐승이 인간의 양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인간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길 뿐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우리의 죄는 인간이 되어야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다윗의 족보속에 들어오시고
우리의 형제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서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성육신 하셔서 우리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선지자는 ♣【이사야서 53:4-5】를 통해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 고난을 자처하시고
그 노고와 싸워서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슬픔도 느끼시고
골치꺼리와 두려움과 죽음도 체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 아십니다.
■『필리스는 어렸을 적부터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고생을 해왔습니다.
그녀는 자라면서 여러 의사들께 가서
늘 안정을 취하려고 하는 조언과
여러 가지 치료도 받고 처방도 받았지만
그들도 갑자기 엄습하는 천식을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필리스는 계속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별 효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드 박사를 찾아갈때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드 박사는 필리스에게 안정을 취하라고
말하지 않고 처방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내 딸도 너와 동일한 병을 앓고 있단다.
그래서 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천식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매우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우리 약속을 하자꾸나, 네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나를 부를 수 있다는 약속 말이다.
내가 병원에 없을 때에는 집으로 전화를 하렴,
네가 연락을 해오면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나 달려와
너를 치료해 주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필리스는 우드 박사에게
급히 전화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필리스는 진짜로 안정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 예수께서도 인간이 당할 고난을
몸소 체험하여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게다가 지금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니 시험을 당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장례식장을 대단히 자주 갑니다.
그리고 병원에도 자주 갑니다.
병원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어떤 때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절대로 하기 원치 않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고생하는 어머니와 함께 걷고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 어머니를 보면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라고 하는데
절대로 이런 위로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그 분의 느낌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느낌과 슬픔과 아픔이 어떤지 아십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바로 성탄절 새벽에 태어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분 자신도 유혹 받음으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유혹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혹은 동정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을 형제처럼 친밀하게 느끼며 또한 알고 있습니까?
그는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시어
우리와 같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또한 우리와 함께 고난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와 형제 되기를 원하면서
그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또한 그를 알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도 게으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진정한 평강과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와 같이 되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은 그를 위해서 고난도 감수하며
인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벧전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인간의 탈을 벗어놓고 승천 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면 사람이 계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데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의미는 나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와
아주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보좌를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탄절날에 인간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구세주이십니까?
따라서 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속이고
절망의 벼랑으로 밀어 부친다고 해도
성탄절날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질고와 아픔을 다 아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믿고
기쁘고 즐겁고 소망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