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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복목사 (서울제일교회)
어린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특히 손주, 손녀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기쁨은 보통이 아니다. 그저 앉으면 손주, 손녀 자랑이다. 그래서 ‘주 자랑하면 벌금 만원이다’해도 ‘만원 낼께 자랑 좀 하자’ 그런다.
믿음의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또한 감사한 일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아이들과 청년들과 아비들에게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영원히 거하는 것을 위하여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도의 신앙성장의 세 단계를 살펴볼 수 있다.
1. 아이
12절에 나오는 자녀는 어린 아이(little children)를, 14절에 나오는 아이는 좀 큰 아이(young children)를 의미한다. 어찌되었든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를 의미하고, 이미 그들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은 사람들이다(요일 2:12).
성경 다른 곳에도 아이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전 14:20)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작다. 힘이 없다. 철도 없다. 실수를 잘한다. 많이 알지 못한다. 대체로 순진하다. 어디로 뛸지 모른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위에 올라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기를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왕상 3:7)고 하였다.
누가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모습을 묘사하면서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고 하였다. 이렇게 아이들은 비록 어릴지라도 이제 무럭무럭 자라갈 것이라고 하는 가슴 벅찬 기대가 그들에게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제 믿은 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라도 이미 내 죄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씻어졌고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나는 하나님의 후사(롬 8:16-17)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자. 그리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힘차게 자라가자!
2. 청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청년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다”,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썼다.
성경에도 청년에 관한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그 기골이 청년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욥 20:11)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욥 38:3)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이와 같이 청년들은 글자 그대로 푸르다. 젊다. 힘이 넘친다. 그래서 이때 군대도 갔다 온다. 또 청년기에는 정의감이 있다. 기백이 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용기가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청년은 한 가정의 미래요, 나라의 미래이며 교회의 미래이다.
신앙생활의 청년기에 있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이들은 힘이 있다. 열심이 있다. 무슨 일을 맡기든지 잘 감당한다. 교회는 이들이 곧 일꾼이요, 제 일선에서 활동하는 영적 군대이다. 악한 자를 이기는 것도 이들이요, 강하고 담대하게 흉악한 자를 꺾는 것도 이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살아 역사함으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말씀으로 생활하고 말씀을 적용하여 영적 전쟁을 싸우며 이기고 또 이긴다.
3. 아비
사도 요한은 아비에 대해서는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라”고 13절과 14절에 거듭해서 언급을 하였다. 그렇다. 태초부터 계신 이, 여호와 하나님 곧 창조주 만유의 아버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롬 11:36, 고전 8:6).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잠 9:10)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비는 아버지, 어른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이다. 옛날에 나이는 들었어도 장가 못간 총각은 상투를 못 틀었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초립동이로 어른취급을 못 받았다. 그래서 선교 초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서서평”이란 여선교사는 혹시 실례가 될까봐 정중하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이 어른이십니까? 네가 아이냐?”
신앙적으로도 아비는 믿음의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사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어야 하는가?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영접하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이 일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하시고 역사하셔서 되는 것이고 아비는 이 사실까지 알고 하나님, 곧 태초부터 계신 이가 어떻게 일하시고 역사하시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특히 아비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죄를 범했어도, 배신했어도, 그 귀한 재산을 허랑방탕하여 다 없이 하였어도, 그리고 못나게 거지꼴이 되가지고 돌아왔어도 그 아들을 달려나가 껴안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잔치를 열어주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기뻐한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고 잃었던 아들 다시 찾았다고 말이다. 재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말이 없다. 이미 다 용서했다. 이것이 아비의 마음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아비, 신앙의 아비된 사람은 이 마음을 꼭 가져야 한다.
다시 사도 요한의 메시지로 돌아가 보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Fried green tomato"란 영화에서 80넘은 할머니가 살던 집이 헐렸는데 ”남편과 40년 넘게 살았던 집인데,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곤 낡은 사진 몇 장과 카드뿐이구나“라고 탄식한다. 이 얼마나 허망한 삶이냐, 평생 살다가 남은 것이 고작 이런 것뿐이라니!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가겠는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주님의 대위임 명령을 기억하자. 아비로서 “제자들”, “참 그리스도의 자녀들, 일꾼들”, “계속 뻗어나가는 셀들”을 남기자.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거하는 사람이 된다! 아멘.
어린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특히 손주, 손녀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기쁨은 보통이 아니다. 그저 앉으면 손주, 손녀 자랑이다. 그래서 ‘주 자랑하면 벌금 만원이다’해도 ‘만원 낼께 자랑 좀 하자’ 그런다.
믿음의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또한 감사한 일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아이들과 청년들과 아비들에게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영원히 거하는 것을 위하여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도의 신앙성장의 세 단계를 살펴볼 수 있다.
1. 아이
12절에 나오는 자녀는 어린 아이(little children)를, 14절에 나오는 아이는 좀 큰 아이(young children)를 의미한다. 어찌되었든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를 의미하고, 이미 그들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은 사람들이다(요일 2:12).
성경 다른 곳에도 아이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전 14:20)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작다. 힘이 없다. 철도 없다. 실수를 잘한다. 많이 알지 못한다. 대체로 순진하다. 어디로 뛸지 모른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위에 올라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기를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왕상 3:7)고 하였다.
누가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모습을 묘사하면서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고 하였다. 이렇게 아이들은 비록 어릴지라도 이제 무럭무럭 자라갈 것이라고 하는 가슴 벅찬 기대가 그들에게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제 믿은 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라도 이미 내 죄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씻어졌고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나는 하나님의 후사(롬 8:16-17)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자. 그리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힘차게 자라가자!
2. 청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청년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다”,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썼다.
성경에도 청년에 관한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그 기골이 청년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욥 20:11)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욥 38:3)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이와 같이 청년들은 글자 그대로 푸르다. 젊다. 힘이 넘친다. 그래서 이때 군대도 갔다 온다. 또 청년기에는 정의감이 있다. 기백이 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용기가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청년은 한 가정의 미래요, 나라의 미래이며 교회의 미래이다.
신앙생활의 청년기에 있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이들은 힘이 있다. 열심이 있다. 무슨 일을 맡기든지 잘 감당한다. 교회는 이들이 곧 일꾼이요, 제 일선에서 활동하는 영적 군대이다. 악한 자를 이기는 것도 이들이요, 강하고 담대하게 흉악한 자를 꺾는 것도 이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살아 역사함으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말씀으로 생활하고 말씀을 적용하여 영적 전쟁을 싸우며 이기고 또 이긴다.
3. 아비
사도 요한은 아비에 대해서는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라”고 13절과 14절에 거듭해서 언급을 하였다. 그렇다. 태초부터 계신 이, 여호와 하나님 곧 창조주 만유의 아버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롬 11:36, 고전 8:6).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잠 9:10)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비는 아버지, 어른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이다. 옛날에 나이는 들었어도 장가 못간 총각은 상투를 못 틀었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초립동이로 어른취급을 못 받았다. 그래서 선교 초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서서평”이란 여선교사는 혹시 실례가 될까봐 정중하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이 어른이십니까? 네가 아이냐?”
신앙적으로도 아비는 믿음의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사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어야 하는가?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영접하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이 일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하시고 역사하셔서 되는 것이고 아비는 이 사실까지 알고 하나님, 곧 태초부터 계신 이가 어떻게 일하시고 역사하시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특히 아비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죄를 범했어도, 배신했어도, 그 귀한 재산을 허랑방탕하여 다 없이 하였어도, 그리고 못나게 거지꼴이 되가지고 돌아왔어도 그 아들을 달려나가 껴안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잔치를 열어주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기뻐한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고 잃었던 아들 다시 찾았다고 말이다. 재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말이 없다. 이미 다 용서했다. 이것이 아비의 마음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아비, 신앙의 아비된 사람은 이 마음을 꼭 가져야 한다.
다시 사도 요한의 메시지로 돌아가 보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Fried green tomato"란 영화에서 80넘은 할머니가 살던 집이 헐렸는데 ”남편과 40년 넘게 살았던 집인데,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곤 낡은 사진 몇 장과 카드뿐이구나“라고 탄식한다. 이 얼마나 허망한 삶이냐, 평생 살다가 남은 것이 고작 이런 것뿐이라니!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가겠는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주님의 대위임 명령을 기억하자. 아비로서 “제자들”, “참 그리스도의 자녀들, 일꾼들”, “계속 뻗어나가는 셀들”을 남기자.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거하는 사람이 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