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3
전병욱 목사
거울 효과
23세에 과부가 된 어머니의 유복녀로 태어난 여자분이 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배려로 유학도 하고,나중에는 저명한 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 교회를 떠났던 그분은 어머니의 권면으로 오랜만에 교회에 나가게 되어 잠시 교회를 둘러보는데,실망이 컸다. 여자들이 모여 남 험담을 하고,장로가 다가와서는 아들 대학입학을 청탁하고,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 밖으로 터져나왔다. 너무 화가 난 교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가자고 호통쳤다. 그때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너는 딱 하루 교회 나가 많이도 봤구나.” 이 말에 교수는 무너졌다. 생각 없이 교회 다닌다고 생각했던 그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보는 수준과 자기의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만큼 큰 것이었다. 자기 수준만큼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산다. 그런데 대개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먼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것이 보인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내가 거짓 가까이 있는 것이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내가 교만 가까이 있는 것이다. 소매치기의 눈에는 소매치기가 가장 잘 보이는 것이다. 섬기는 사람 옆으로 가보라. 섬김만 보인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보라.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너무 누추한 것이 자꾸 보이면,세상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인격의 변화는 발걸음에 있다. 좋은 것에 더 가까이 가라.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사건,사람을 통해서 자기를 보기를 원하신다. 야곱은 삼촌 라반을 통해서 사기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야곱은 결혼에서도 사기를 당한다. 자신을 라헬로 속이는 레아의 모습을 통해서 에서인 척하면서 아비의 축복을 도둑질했던 자기를 보았다. 속이는 야곱이 자식들에게도 계속 속는다. 아비에게 상처받은 야곱이 자식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준다. 라헬의 아들인 요셉과 베냐민만 진짜 아들로 인정하고,나머지 아들은 자식도 아니었다.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에 야곱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창 42:36) 요셉과 베냐민만 아들이고,나머지는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아들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신앙이란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은 나를 보게 하는 거울이다. 자기를 봐야 변화가 가능하다. 상처받은 사람이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남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자기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에너지로 변화시키라.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