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6
김중호 교수
행복한 추억에 담긴 신비한 능력
오랜 냉전이나 갈등 상태에 있던 부부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회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회복은 시간이 걸리며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입니다. 마약과 같이 한 순간에 반짝하며 이루어지는 회복은 진정한 회복이 아닙니다. 부부 두 사람의 참된 노력이 수반되지 않은 회복은 참된 회복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한 과정과 단계는 마치 부부가 함께 현관문을 열고 응접실을 거쳐 침실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등가운데 있는 부부는 심리적으로 침실을 빠져 나와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상태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현관문 밖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랜 갈등 상태에 있던 부부가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침실 문을 열기 전에 현관문부터 열어야 합니다. 현관문을 열지 않고 침실 문을 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관문을 여는 것은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한 첫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한 현관문 열기는 그 동안 얼어붙었던 부부의 관계를 녹이고 단절되었던 대화의 실마리를 찾게 합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경험함으로써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관문 열기에는 얼마든지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행복한 추억의 신비’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인도의 사다나 사목 상담연구소의 앤소니 드멜로(Anthony de Mello) 소장이 추천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말다툼을 하고 나서 다시 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고 싶을 때는 자기들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은 단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기쁨과 활기를 주는 보물 창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었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은 단지 추억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속에는 얼어붙은 부부의 관계를 녹일 수 있는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앤소니 소장의 이미지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큰 앨범과 같고, 마음에 담긴 추억은 그 속에 꽂혀있는 수많은 사진과 같다고 합니다. 그 앨범 속에는 부부가 서로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시절에 찍어둔 사진들이 많이 꽂혀 있습니다. 행복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입니다. 부부가 행복해 지기를 원한다면 마음의 앨범 속에 있는 행복한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서 가능한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마음의 앨범 속에는 부부사이의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찍힌 어두운 사진들도 있습니다.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그런 사진들도 꺼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관문 열기의 단계에서는 아직 꺼내 보아서는 안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응접실에 앉게 되거든 그 때 꺼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현관문은 서로의 아픔에 직면할 수 있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픔을 드러내는 것은 역시 응접실이 적합합니다. 응접실은 이해와 용납과 용서와 화해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화해의 눈물은 응접실에서 흘리는 것이 좋습니다. 현관문에서는 부부의 얼어붙은 두 마음을 녹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는 부부의 행복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꺼내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에 떡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이것들을 나누어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9~20) 그 후 제자들은 박해의 위기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을 기념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지낸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듯이 우리들도 영적인 위기와 삶의 위기를 만날 때마다 주님과 함께 지냈던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던 부부가 부부관계의 위기를 만날 때에는 두 사람이 처음에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억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때 일이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실감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지금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억이라는 말보다는 ‘기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적이 더 적절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듯이. 기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남네시스’라고 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지금 다시 재현한다(represent)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념이란 상상 속에서 과거의 일을 거의 그대로 다시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떡과 잔을 나누면서 예수님을 기념하였고 그 결과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기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큰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 선물을 사용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행복했던 사건들을 기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관계의 회복과 행복을 원한다면 더욱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기념을 통해서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의 신비로움을 다시 느끼고, 둘이서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고, 그때의 사랑과 행복을 다시 경험하고, 그래서 추억 속에 담겨있는 행복의 에너지를 현재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추억의 동력화’라고 부릅니다.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을 잘못 기억하면 오히려 현재의 슬픔을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을 현재의 고통과 비교하면서 비관적으로 기억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더 큰 슬픔과 좌절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추억의 비관주의’라 부릅니다. 앞서 언급한 추억의 동력화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추억의 비관주의는 현재에 대한 한탄과 절망적인 신음소리를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행복했던 추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비관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 추억을 기념함으로써 추억의 동력화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부부가 마음의 앨범 속에서 행복했던 과거의 사진들을 꺼내 본다는 것은 추억의 동력화를 이루어 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념은 심리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정신건강과 인간관계는 물론 믿음과 영성 생활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기념이 상상이나 기억에 실제적인 효험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시각학과 과장으로 있는 월터 체이스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육안과 창문을 통해 실제로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의미에서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눈을 통해 전달받은 뇌 자극 신호는 육안을 통해 전달된 뇌 자극 신호와 생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는 것과 상상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거의 동일한 심리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념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기념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육안으로 보는 것과 거의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냉전과 갈등 속에 있었던 부부가 그 관계를 회복하기 원한다면 과거에 두 사람사이에 있었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들을 많이 기념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것은 부부가 침실로 들어가기 전 현관문을 열 때에 필요한 일입니다. 이제 마음의 앨범 속에 꽂혀있는 행복한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서 들여 다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부간에 대화를 통해서 서로 그 사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응접실을 거쳐 침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