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6
김용태 교수
한국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혼율이 이미 30%를 넘어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은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이혼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심리적 이혼이란 별거 중에 있는 부부이거나 같은 집에 산다할지라도 서로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부부를 말한다. 법적 이혼과 심리적 이혼을 합치게 된다면 한국 가족에 대해서 위기라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족의 삶의 질이 거의 부부관계의 삶의 질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부부관계의 역기능이나 불안정성은 곧 가족 전체의 역기능이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무엇 때문에 한국 부부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갖게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부부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신혼부부의 갈등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하면 주변의 신랑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은 부부관계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신랑 친구들은 신랑에게 신부를 결혼 초기에 잘 잡아야 한다고 충고를 한다. 여자를 잘 잡는 방법은 힘으로 꼼짝 못하도록 눌러놓는 일이다. “ 여자와 명태는 삼일에 한번씩 두드려야 부드러워진다.”라는 말을 하면서 신랑의 친구들은 부인을 잘 잡아야 한다고 충고를 한다. 반면 신부의 친구들은 신부에게 남자는 결혼 초기에 잘 길들여,남편에게 자신이 요구하는 일들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를 한다.
신혼부부의 친구들은 신혼부부에게 무엇을 충고하고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충고들은 한국 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살아왔다. 연장자 중심의 수직 사회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권위는 여러 가지로 주어진다. 나이, 선배와 후배, 남편과 부인,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 등등 권위에 대한 많은 요인들이 있다. 이렇게 권위에 의한 관계는 결국 한국인들의 관계 형태를 주로 수직적으로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할 때에 서로의 위치와 나이 그리고 직업 등등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신분 또는 나이 등이 알려지면 이제 상하관계가 뚜렷해지고 관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사람들의 관계 형태는 곧 권위에 의한 힘의 관계이다.
결혼을 한 신혼부부도 이러한 한국인들의 힘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신혼이라는 기간은 남편과 부인이 서로를 살피고 탐색하면서 위치를 설정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단계이다. 신혼기간에 형성된 관계를 통해서 두 사람은 부부생활을 해나가게 된다. 따라서 신혼시절에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전체 결혼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남편과 부인 두 사람이 힘의 논리에 의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관계를 형성한다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힘의 논리에 의해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힘에 의한 관계의 형성은 친구들에 의해서 지지되거나 강화되게 된다. 남편과 부인은 신혼시절에 서로에 대한 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하게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해서 두 사람은 모두 다 많은 상처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부부간의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으며 모두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일이다.
신혼부부의 갈등이 힘의 논리로 가는 요인 중의 하나는 한국 사회의 변화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짧은 기간에 이행을 하였다. 조선왕조가 멸망한지 90년 밖에 안된 시점에 우리가 있다. 전통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부부간의 관계는 여필종부이다. 부인은 남편에게 충성을 하고 복종을 해야하는 관계가 여필종부이다. 남편과 부인의 관계는 수직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남편들은 부인들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이고 부인들은 남편들보다 못한 존재이다. 남편들은 일등시민이라면 부인들은 이등시민들이다. 자연히 남성들의 정신세계에는 여성들을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마음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전통 사회의 여필종부라는 부부관계의 도식이 무너지게 되었다. 사회와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남녀의 구분이 점차로 없어지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들은 신체적 측면을 제외하고 서로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생겼다. 이러한 남녀 평등의 사상은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발달을 하게 되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에서 여성들의 생각이 중요하게 받아 들여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는 남녀 평등이라는 사상을 더욱 중요한 생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부부관계의 도식이 무너지면서 현재 한국 사람들은 부부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적절한 이해를 가지지 못한 상태이다. 남녀 평등의 사상은 전통적 부부관계의 틀을 무너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부가 모두 혼란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부부 모두가 서로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수직관계에 익숙해 있는 부부들은 과연 어떤 것이 옳고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 즉 많은 한국 부부들은 부부관계에 대해서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결국 서로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의해 관계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서로를 힘으로 누를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인간의 본능-힘에 의한 논리-이 부부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결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위에서 제기한 힘에 의한 논리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된다. 결혼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하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가족배경과 다른 습관들 그리고 가치관들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곧 결혼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가진 습관, 가치관, 행동방식을 옳다고 주장을 하면 다른 사람의 것들은 부정을 당하게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부정을 당한다면 어떤 인간도 제대로 살기 어렵게 된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게 될 때 서로는 경쟁을 하기보다는 보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부부간의 보완은 마치 합창에서 화음과 같다. 합창을 할 때 네 개의 다른 목소리들이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낸다. 소프라노, 앨토, 테너, 베이스들은 절대로 서로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다른 목소리들은 하나의 목표인 합창을 만들어낸다. 화음은 서로 독특함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서로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화음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은 서로의 독특함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의 독특한 측면은 대부분 남편이 또는 부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점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이 서로 보완을 충분히 이룰 수 있게 된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자아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특성을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부러워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게 된다.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우위를 지키려고 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만족하려고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 자아상을 갖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즉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초석이 된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두 삶을 사는 과정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삶이다. 하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 달라야 한다.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두 다른 목소리를 가져야 하듯이 하나의 삶을 이어가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다른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 두 다른 독특함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을 한다. 상대방을 부정하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결혼이 상보성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만족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아상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