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2
마25:14-30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본문에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금 5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2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1 달란트를 각각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왜 주인이 한 사람에게는 5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2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1 달란트를 주었을까?”라고 하면서 차등 달란트에 준 것에 대해서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그러한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여 활용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사를 잘 해야 합니다. 장사를 잘 한 사람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과 상급을 받고 주인의 잔치 자리에 초대를 받지만, 장사를 잘 하지 못한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벌을 받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김을 당하고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본문의 교훈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자의 재능대로 각각의 달란트를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14,15절)
본문 14절,15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자의 재능대로 각각의 달란트를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람에게는 5달란트를 맡겨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2달란트를 맡겨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1달란트를 은사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달란트를 은사로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 나에게만 이렇게 달란트를 작게 주셨습니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욥과 같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이 비록 까닭 없이 고난을 받았지만 모든 일에 범죄(犯罪)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욥 1:21).
우리는 청기지 의식을 가지고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크든지, 적든지 간에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의도와 요구대로 최선을 다하여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활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인 동시에 의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재능대로 다양하게 달란트를 주셨는데, 여기에 나오는 금 1달란트는 정말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약학 교수이신 [헨드릭슨] 박사가 말한 것처럼 “금 1달란트는 6천 데나니온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1데나리온은 하루치 품삯입니다. 그러기에 금 1달란트는 평범한 사람이 6천일 동안 노동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금액으로서 20년 동안 일을 해야 모을 수 있는 엄청난 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은 결코 소홀히 하거나 하찮게 여겨서는 안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달란트를 받으면 받은대로, 적게 받으면 적게 받은 대로 겸손한 모습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의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와 같은 항존직과 권사, 서리집사와 같은 임시직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고귀한 직분입니다. 아직도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 성숙하지 못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직분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비참하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인생은 죄인 중의 괴수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신뢰를 받은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음이라" (딤전 1:16). 사도 바울의 말은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자세히 풀어 말하자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 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딤전 1:12-14). 이처럼 하나님은 비천한 우리에게 천사도 흠모할 만한 거룩한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회계하신다는 것입니다.(19절) 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주인 앞에서 종으로써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회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회계한다’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맡긴 일에 대하여 계산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심판대 앞에 선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고후 5:10)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에 맡겨주신 일에 회계하실 때에 다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는 사람이 있는 는 반면에는 어떤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는 하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은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아 충성한 종들에게 칭찬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수고한 대로 상급을 주시고,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1달란트 받아 그것을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는 책망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벌을 주시고 바깥 어두움에 쫓아내시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평가 방법은 “절대평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대 평가를 하지 아니하십니다. [절대 평가]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네가 얼마만큼 남겼느냐?’고 물으시지 아니하시고, “어느만큼 최선을 다했는가?”를 물으십니다. 이것이 본 달란트 비유의 강조점이며, 핵심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이며,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比較)해서 그것에 따른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신다면 아마 저는 하나님의 엄청난 질책과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공평하게 평가하십니다. 세상 나라는 상대평가를 하고, 업적에 따라 평가하십니다.
우리는 비교의식이나 열등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1달란트 받은 종처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인 태도를 가지고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의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기 마음대로 주인의 판단하고, 주인이 맡겨준 일에 악하고 게으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종이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지를 그 목적과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비교하면서 그것 때문에 열등의식과 비교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2.우리가 어떻게 해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 16-17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5달란트 받은 종과 2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잘 했습니다. 이들은 장사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장사를 잘 하기는커녕 장사를 하지 않고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이 회계 할 때에 그대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따지면서 장사꾼을 천하게 여기듯이, 유대 사회도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들은 높은 신분으로 농사꾼이나, 목부, 어부들은 천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장사는 종들이나 하는 천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천국을 '장사 잘 하는 것'으로 비유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파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장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6절 상반 절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라고 말씀하고 있고, 17절 상반 절에서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장사를 잘 하려면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내일로 미루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차일피일 늦추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 결코 제대로 장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 충성스런 종들이라면 주인이 부르실 때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곧 그물을 버려두고”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가 주인으로 칭찬 받는 장사를 하려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뭐든지 때가 있는 법, 적기를 놓치지 않고 투자를 잘해야 합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맡겨주면 그때가 적기인즉 바로 나가서 장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한달란트 받은 종을 향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즉시 순종하지 아니하고” 게으른 태도를 가졌기에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16절 하반 절에서 “...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장사를 잘 하려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땅 속에 사장시키면 안됩니다.
여기의 “장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르가사토]라는 말은 “일”이란 뜻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이나 영어성경 NIV에서도 “워크(work)"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번역에서는 “활용”이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월리암 바클레이는 “그것으로 장사하여”(에르가사토 엔 아우토오스)라는 말은 “자신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여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사를 잘 하려면 받은바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대해서 판단하기를 “주인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 하며 타작도 하지 않고 알곡을 거두려는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투자에는 매우 인색하고 또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려는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했습니다.(24절) 아마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장사하며 이익을 남기면 그것은 주인의 소유가 될 것이 뻔하고 또한 만일 장사하여 실패하면 자신이 그것을 배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르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나태함에 대해서 주인에게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이러한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변명은 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말하고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21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을지라도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12:11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에서 말씀하시고 있고, 고전 4:2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도 벧전 4:10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과정이 생략된 체 결과만을 따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충성되게 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사람이 바로 바른 방향성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은 방향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 훌륭한 것, 좋은 것들을 요구하시지 아니합니다. 비록 우리들이 많은 것, 훌륭한 것, 좋은 것들을 남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5 달란트, 2 달란트를 받은 받아 장사를 잘 해서 이익을 남긴 종들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전부이시며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 훌륭한 것, 좋은 것을 요구하시지 아니하시고 바른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열심보다는 진실된 자가 되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생명 지향성을 가진 성도 즉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성도는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우리자신들을 억누르고 어렵게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바른 방향성만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우리는 현실은 실패가 아니요, 성공입니다. 그것은 비관이 아니라, 낙관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정말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 그리스도 지향성적인 삶,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21절과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장사를 잘 하면 칭찬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장사를 잘 하면 주인의 보상은 대단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만 들은 것이 아니라 주인의 즐거운 잔치 자리에 참여하고, 열심히 일하여 받은 이익금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이 땅에서도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이 땅에서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가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장사하지 않고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만 말만 들은 것이 아니라 받은 달란트도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인의 말씀대로 즉시 순종하여 장사를 잘 한 사람에게는 더 풍부한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28-30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 자신은 무엇을 통하여 주님 앞에 충성스런 삶을 살았으며, 무엇을 남기었으며,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되었는가? 잘했다고 생각나시는 일들이 있으면 충성 되이 여겨 일꾼 삼으시고 일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때로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세상적인 판단 속에 주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세상의 견해나 자신의 욕망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반드시 주님과 앉아서 셈할 때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달란트을 받으면 그것을 가지고 즉시 순종하여 장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여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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