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박익수 교수
나사렛에서 배척 받으심(6:1-6a)
본문읽기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어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킬까? 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아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4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5 예수께서는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밖에는, 거기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6a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본문해석
이 단락은 3:13절에서부터 시작되는 예수께서 가족들, 외인들, 그리고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았음을 전하는 결론적인 단락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회당장 야이로와 혈루병을 앓던 여인의 믿음과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5:21-43절, 특별히 23,28,34,36절). 결국 예수의 기적은 믿음이 있는 곳에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인간편의 믿음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질문1) 예수께서는 자기의 고향에 돌아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에 회당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예수의 가르침이 "어떠한 내용이었는지"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가르침에 대한 결과로서 그들이 놀랐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입니다.
질문2)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워하면서도 그들은 곧 서로 서로 예수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확인하는 질문들만 해댑니다. 어떠한 질문들을 했습니까(2-3절)?
처음 나오는 두 질문인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 손으로 이런 기적을 일으킬까?"는 예수의 행위들과 관계된 질문이며, 경멸조의 표현인 '이 사람'( s, this guy)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의 질문인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에서도 역시 경멸조의 표현인 '이 사람'을 사용하고 있으며,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전 예수의 직업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 '이 사람'이 4:41절에서는 경멸조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도, 현재 이 질문들에서는 공격적이고 경멸하는 성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두 개의 질문인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이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는 예수의 가정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이런 모든 것"은 두 번째 질문에서 나오는 그의 지혜와 권능을 가리킵니다. 다른 경우에는 언제나 무리들의 질문이 "무슨?"(1:27), 혹은 "누구?"(2:7 ; 4:41)인데 비해서, 여기서는 "어디에서?"로 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슨?"(1:27), 혹은 "누구?"(2:7 ; 4:41)라고 물으면 예수의 직업이나 가족의 배경이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어디서?"라는 표현은 다음 구절에 나오는 예수의 출신에 대한 질문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수께서 지혜의 교사이시며, 권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의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고향의 회당에서 "지혜의 교사"로 입증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서 권위를 느끼고는 놀란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에 대한 질문은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만, 여기 권능, 즉 능력에 대한 질문은 문맥적으로 잘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능력으로 행하신 기적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직접적인 동기가 아직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권능은 앞의 단락들에서 이미 언급한 기적의 행위들을 염두해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에서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한데서 예수를 경멸하는 어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이름이 불리워진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를 따라 불리워졌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사생아(私生兒)라는 암시로 극도의 멸시감을 불러 일으키려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네 번째 질문에서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은 여기서와 마태복음 13:55절에만 나오는 예수의 형제들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3:31-35절에서 예수께서는 나사렛에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와 누이들을 자기의 가족이라고 하시지 않고, 자기 곁에 둘러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다섯 번째 질문에서 "그 누이들"은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직업과, 가족인 마리아, 형제들, 누이들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예수는 단시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그래서 그를 배척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3) 나사렛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예수께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는 놀랐으나, 동시에 그의 가정 배경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를 무시하고 배척하고만 것입니다. 이는 예수를 인간적으로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뜻밖에도 그가 갖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인정하지 못한 나사렛 사람들의 당연한 결과를 표현한 것입니다.
질문4) 자신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어떤 격언으로 통박하셨습니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고향 사람들의 불신앙이 [자신에 대한 선입견(先入見)과 편견(偏見)]에 있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은 다음에 나올 제자직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족과 친척들에게 배척 받으신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가족과 친척들에게 배척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5)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향에서 다만 몇몇 병자들에게만 손을 얹으셔서 고쳐주셨을 뿐 아무 기적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께서 고향에서 아무 기적도 행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철저히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의 사역의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곳에서 행한 이적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 대한 비난과 마음의 완악함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적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랐으면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선입견 때문에 그를 배척했습니다. 이때 아무리 위대한 '이적'을 보인다 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예수는 고향에서 이적을 행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는 결론으로 이 이야기의 주된 관심이 믿음과 믿지 않음, 신앙과 불신앙의 문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유대인이며, 예수의 고향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방인 백부장이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믿었던 사실과 비교해 볼 때(마 8:10 ; 눅 7:9)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두 제자를 파송하심(6:6b-13)
본문읽기
6b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을들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셨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8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9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1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곳을 떠날 대에 너희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아라." 12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 주었다.
본문해석
6b절은 6:1-6a절을 결론지어주고, 뒤의 열두 제자 파송(6:7-13)을 알려주는 연결구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7절에서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8-9절에서는 선교여행 중에 가져야 될 것과 가지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해서, 10-11절에서는 선교차 어떤 집을 방문하게 될 때와 그들이 방문한 곳을 떠날 때에 대해서, 그리고 12-13절에서는 말씀을 전파하고, 귀신을 축출하고, 병자들을 고치는 제자들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질문6) 예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후에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고향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후, 그곳을 떠나 그 주변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겪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이제까지 해 오신 선교활동을 계속하십니다.
질문7) 예수께서는 12제자들을 선교여행에 몇 명씩 파송하셨습니까?
또한 제자들을 파송할 때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둘"은 증인의 수로서(신 19:15 ; 전 4:9) 둘씩 짝지워 파송하는 것은 유대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상호 협조와 증거의 신빙성을 위해서, 즉 전파되는 말씀의 진실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질문8) 예수께서는 12제자들을 둘씩 파송하시면서 어떠한 권세를 주셨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를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권세는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권세였는데(1:23,27), 그 권세를 이제 제자들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자신의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셨다"가 미완료형이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모든 권세와 능력은 특별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지, 영구적인 소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9:18 참조). 그런데 불행하게도 특히 한국의 교회에는 보내심을 받고 능력을 행하는 사역자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권세와 능력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혹은 자신만이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처럼 내세우며 자랑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질문9)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선교 여행을 할 때 소유해도 되는 것과 소유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십시오.
"지팡이와 신발"을 소유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지팡이나 여행용 막대기는 들짐승을 막아내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고, 신발은 어려운 여행을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빵(양식)이나 여행용 주머니나 자루, 그리고 허리에 찰 수 있는 돈의 휴대는 분명하게 금지되고 있습니다.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선교여행을 떠나라는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해야 할 말씀에 대한 신실성과 자신들을 보내시는 분에 대한 절대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과격한 명령에도 절대 신뢰하고 달랑 빈 몸으로 떠남으로써 제자들은 전파해야 할 말씀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들의 생계문제 또한 자신들을 보내신 분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질문10) 제자들이 선교여행 중에 어떤 집에 머물게 될 때와 그들을 영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예수의 지시 사항들을 찾아 적어 보십시오(10-11절).
어느 집에서 환대를 받은 전도자는 그곳에 머무를 수 있으나, 그 집에서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는 경우에는, 그 집에 계속 남아 있어서는 않되고, 발에 있는 먼지까지도 떨어버리라는 과격한 명령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몸짓은 복음 선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집이나 마을은 곧 이방지역과 마찬가지로 부정한 곳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날에는 환영받지 못하는 목회자는 즉시 떠나라는 말씀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떠나 주기를 바라지만 즉시 떠나지 않는 목회자들 때문에 시험에 빠지는 교회도 많습니다.
질문11) 파송받은 제자들이 나가서 전파한 말씀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12절)
예수께서 1:15절에서 선포하신 내용과 똑같이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질문12) 또한 그들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 이외에 어떠한 이적을 행했습니까?
파송받은 제자들의 활동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했다는 사실에서 확인됩니다. 특별히 그들은 병든 사람을 고칠 때 "기름을 발라서" 고쳤습니다.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의식은 병고침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영적 은혜의 가시적인 표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행위 자체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와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가정배경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예수를 영접하거나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혹시 우리도 예수, 성경, 교회, 그리고 교계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뜻밖에도 예수를 믿기 보다는 부인하지는 않습니까?
* 귀신의 통치가 끝남(물러감)은 곧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가 자신, 가정, 사회에서 귀신을 내쫗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누구의 통치를 인정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