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미리 본 선배 목사님들이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는데 함께 칠 개월을 살던 손주들이 보스턴으로 떠나고 나니 이제야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작년, 갑작스런 경제 불황으로 인한 달러환율의 상승으로 너무 많이 늘어난 유학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반강제 귀국명령으로 한국에 들어온 며느리와 두 손주와 함께 한 지붕밑에 살게 되었을 때 손주들을 보는 기쁨이 너무 커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잘 지냈었었다.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던 우리 집이 갑자기 어린이집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고 거실까지 미끄럼틀과 바닥 쿠션매트와 여러 가지 장난감과 보행기 등등으로 겉잡을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집에 들어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사랑스런 손주들을 보는 기쁨이 복잡한 환경보다 훨씬 크기에 감수하며 잘 지내게 되었다.

작년, 며느리와 두 손주를 귀국하게 할 때의 명분은 경비절약과 졸업 말기의 학업 전념이었지만 사실은 경비절약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었다. 서로 떨어져 살면서 인터넷 화상채팅을 통해 대화할 때 그 모습을 훔쳐보는 내 마음이 여간 아픈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이 실제인줄 알고 화면에 붙어서 얼굴을 비비고, 시간이 오래되어 채팅을 중단하면 울기도 하고 또한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하는 손주들의 모습이 보기에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는 사이에 칠 개월이 지났는데 감사하게도 우리나라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달러 환율이 많이 떨어지게 되어 다시 아들 가족의 상봉이 이뤄지게 되어 아비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준 아들이 예상보다 빨리 모든 과정을 마치고 9月 초순에 귀국하게 되어 이제 남은 몇 달이라도 그곳에서 가족이 모여서 살다가 온 가족이 함께 귀국을 하게 될 것이다.

함께 살던 손주들이 떠나면 한마디로 ‘시원섭섭’하다는 것이 미리 경험해 본 선배들의 말이 었으며 그러나 처음엔 시원해도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또 손주들이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선배들의 경험담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주들을 보내고 나니 우리 집이 다시 예전 분위기로 돌아와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호젓한 분위기를 누리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손주의 살짝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져다가 앞에 세워 놓는다.


오! 주여

이 세상에 가족이란 신비한 관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후 이천십년 삼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