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통 했던 연두 빛 띤 개나리가 하룻 사이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활짝 핀 모습으로 노오란 자태를 드러냈다.
교회 마당 끝에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을 유심히 보니 목련 봉오리도 이내 터질듯 부풀어 올랐고 벚꽃가지마다 싹들이 움터있었다.

이제 며칠 후면 예쁜 봄꽃들이 마당 가득히 저마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뽐내며 봄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절로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섰는데 깨끗이 정돈된 거실에서 귀에 익은 클래식 연주가 울려 퍼지며 소파에 앉은 아내가 그 음악에 심취되어 있었다.

‘여보! 이 음악 너무 멋있지 않아요?’ ‘야, 정말 너무 멋있는데 이 곡 이름이 뭐지? 많이 들어본 곡인데 말야.’ 아내는 거실 창 너머로 연하게 보이는 봄 산을 바라보며 문득 옛 생각이 떠올라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인 ‘Spring’ 연주곡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이 곡 이름이 떠올랐고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클래식 감상을 하게 되었다. 너무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과 피아노반주의 앙상블로 인해 우리 집 거실엔 봄기운이 가득해졌고 바깥 봄꽃들이 모두 집안으로 옮겨와 화사한 모습으로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내는 이곡과 함께했던 옛 추억들을 되새기며 삼십 여년 전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4년 동안 자신이 반주해주며 우정을 쌓았던 ‘송희’라는 바이올린 전공친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꿈 많던 학창시절을 얘기하더니 순간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아쉬움과 허무함을 털어 놓는다.

결혼초기엔 애 낳고 키우느라 음악을 접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내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십 여년 동안을 바삐 달려오느라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간의 삶이 조금 아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예수님과의 삶을 살았으니 망정이지 만일 세상의 삶을 사느라 그런 것들을 잃어버렸으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이제부터라도 주어진 남은 생애 속에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계절의 감각도 조금씩 느끼며 살아가는 아내가 되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pring’ 소나타와 함께 느껴본 봄내음이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안에 가득하길 소망해 본다.

오! 주여

저희 모두에게

봄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주시옵소서.

(주후 이천십년 사월 둘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