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왕년의 가수 남진이 불러서 크게 히트한 ‘♬저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라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 때, 이 노래는 온 국민이 노래로라도 꿈꿔보고 싶은 아름다운 삶에 대한 소망이 담겼기에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고 사랑했던 국민가요 였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철저한 주의 종(從)이 되고 싶어 그 당시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연립주택 반지하를 세 얻어 살면서 남진이 불렀던 노래와 상관없이 이십 여년을 성역을 위해 달려왔다. 한 때는 상가 2층에 스치로폼을 깔고 네 식구가 한 달간 살기도 하였고 1층의 세탁소에서 올라오는 벤젠등 기름냄새를 맡으면서 다세대 주택 2층에서 몇 년간 살기도 했었다.

동생이 집도 없이 여기저기 세 얻어 사는것을 마음 아파한 누님 부부께서 당시 제법 안락했던 33평형 고층 아파트를 내 이름으로 사주며 ‘목사가 잘못되면 사모는 오갈데도 없이 쫓겨나니 이 아파트는 절대로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반드시 소유해요’하며 신신 당부 했었다.

그러나 이 아파트도 교회를 건축하며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 전세 아파트를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당시 급매로 나온 지금의 아파트를 싸게 사서 사택으로 살게 되었다.

나는 본래 아파트를 선호하진 않지만 산이 보이고 아침에 뻐꾸기 소리가 들리고 공기가 좋은 지금 사는 집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있었는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식구들과 함께 살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단독 주택을 짓기로 하고 드디어 입주를 앞두게 되었다.

원래 내년 1月에 결혼하는 둘째네 가족과 함께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살려고 하였으나 주변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두 가족만 살게 되어 마음이 개운치 않다.

교회 목회자의 사택인 만큼 최대한 검소하게 지을려고 노력을 하고 공사비도 절감하기 위해 우리 이상현 집사회사의 하도급 업체에 맡기며 거의 직영으로 공사하였다.

그 동안 사택을 위해 애써준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 목회 은퇴시까지 이 집에서 감사하며 살다가 나중엔 평창 복지센타에 정말 남진이 부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아내와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남은 생애를 살다가 예수님께서 지어주신 천국의 그림 같은 집에서 영원히 영원히 살고 싶다.

오! 주여

이 땅에서도 종에게

기거할수 있는 그림같은 처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성실하게 천국 고향을 위해 달려가겠나이다.

(주후 이천십년 시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