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때 잘해’ 라는 노랫말이 떠 오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야 광명교회 부흥회 인도와 주일과 겹친 장례집례일정 등을 잘 조정해가며 우리 정수원 권사님의 천국 가시는 길을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장으로 정성껏 보살펴 드리고 싶었다.

지난 1999년에 며느리의 전도로 인해 예수를 영접하시고 성령세례와 함께 90°로 굽었던 허리가 펴지는 체험신앙으로 굳건해진 믿음은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식사와 짧은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종일토록 기도하는 생활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그간의 한 많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불심으로 달래며 칠십칠년을 살아오신 삶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회개와 함께 천국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 속에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기도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특히 부족한 저와 우리 가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기도하시고 당신의 자녀들과 또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받아 늘 기도하시던 사랑스런 권사님. 성전을 건축하면서 5층에 방 한칸을 만들어서 아예 이곳에서 생활을 하시며 기도하실수 있도록 해 드리자 그렇게 좋아하시던 우리 권사님. 어디서 나를 만나도 ‘식사하셨어’ 하시며 엷은 미소와 함께 항상 인사하셨던 우리 권사님. 으례히 그곳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아서 오히려 모시는데 소홀했던 나의 부족함이 나를 마음 아프게 한다.

좀더 자주 찾아 뵙고 인사도 하고 잘 보살펴 드릴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속에 장례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며 흐르는 눈물을 참기위해 눈물 떨어지지 않도록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집례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팔십 구세의 한 평생을 천생 여자로서 자식에게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안보이시려고 곧고 꿋꿋하게 살아 오신 권사님. 둘째 아들의 구원을 보시고 싶으셔서 몇 달을 고통 가운데 누워 계시며 영으로 기도하여 결국 그 아들의 금식기도 마지막 날에 편안한 모습으로 하나님 품으로 가신 권사님. 엉덩이와 허벅지에 욕창이 나도록 기도하시면서도 가족들에게 조차 숨기셨던 권사님의 기도가 너무 그리워 집니다.

사랑하는 정수원 권사님! 그간의 제 부족과 소홀함을 용서해 주세요. 우리, 천국 주님 품안에서 다시 만날 때도 ‘목사님, 식사하셨어?’ 하시며 반갑게 맞이 해 주실거죠?

(주후 이천십일년 이월 첫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