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도를 마치고 1층 마당으로 올라오니 비둘기 한 마리가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던지 아니면 다쳤는지 배를 바닥에 깐 채로 꼼짝 않고 있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살펴보기위해 가까이 가려고 하자 힘겹게 날개짓을 하며 날듯 뛰듯 몇 걸음을 도망치듯 피하는 것이었다.
좇아가서 잡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또 도망가느라 더 힘들어 할것 같아 그냥 포기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 배고픈 어린 시절엔 부족한 단백질 보충을 위해 참새, 비둘기, 꿩 등을 보기만 하면 잡지도 못하면서 돌을 주워 던지곤 했었다.
그러나 성령을 체험한 이후엔 꽃도 이파리도 나무도 새도 심지어 길에 구르는 돌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 날도 그 비둘기를 보니 아픈 것 같아 더 불쌍한 마음이 들어 다친곳이 있으면 약도 바르고 싸매주기도 하고 또 안수도 해주고 집에 데려가서 며칠간 회복할 때까지 모이도 주고 싶어서 가까이 가려니까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그 아픈 몸으로 날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다.
마침 이집사님이 계시길래 ‘집사님, 저 비둘기 도망가는 모습이 꼭 불신자들 모습 같네요’하고 말하니 공감하시는지 빙그레 웃으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복을 주시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까지 주셨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마귀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생명에서 사망으로 고통과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되어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죄와 저주의 고통속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셔서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려 함이었다.
여러 가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의 복된소식을 전하려고 가까이 가면 이들은 본능적으로 피하며 오히려 복음전하는 자들을 욕하고 핍박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싶고 위로하며 치유와 회복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몰라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교회와 예수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세상과 교회를 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손해가 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간섭당하고 자유를 억압당하고 광신자가 된다고 생각해서 일까? 지금도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교회를 도망치듯 빠져 나가는 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그 비둘기가 자기를 사랑하여 도와주려는 내 진심을 헤아려 그냥 잡혀주면 상처도 배고픔도 모두 해결 받고 건강하게 하늘을 날수 있을 텐데........
오 주여!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수 있을까요? (주후 이천십일년 삼월 넷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