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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3:22~25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구강외과 의사로 명성을 떨치는 로버트 에이몬이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세올라 교회의 장로로서 세계 선교를 위하여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에이몬은 학생 시절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기억하고 의사를 그만 두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뒤늦게 입학하여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오랄 로버트 목사입니다. 그는 유명한 부흥 설교자가 되어 오랄 로버츠 대학교의 설립자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늘 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나는 의사를 하든, 목사를 하든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의사로 살았던 과거나 목사로서 살고있는 현재나 저의 신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소명- Calling'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은 구원적 소명과 헌신의 소명이 있습니다. 구원적 소명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이라면, 헌신의 소명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소명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헌신의 소명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부름 받은 몸입니다.
본문은 부름 받은 자들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2절에 '종들아' 로 말씀은 시작합니다. 바울 당시에 로마 제국에는 6천만명의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미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로마 제국에서의 종들은 다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배우고 똑똑한 종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능에 따라 의사로서 활동하는 종들도 있었고, 귀족의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종들도 있었고, 심지어 로마 최고 학문 기관에서 가르치는 박사 종들도 있었습니다. 이 종들은 정복국가에서 끌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종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기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바로 믿어야 합니다. 바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아 나선 이들의 자세는 과연 어떠합니까?
첫째로 성실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 국민일보에 '눈에 띈 성실인생' 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충북 충주시 금릉동에서 광명건설을 경영하고 있는 민광수 사장은 우연히 공공근로사업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공공근로자 가운데 한 청년이 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청년은 남들이 쉬는 틈에도 혼자 보도블록을 짊어져 나르고 바닥을 고르며 묵묵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민사장은 감독관에게 다가가 젊은이의 신상을 물어보았습니다. 이름은 이종선, 당시 32세로 노부모와 장인까지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사장은 면사무소에 들러 구체적으로 이씨의 성품을 수소문했습니다. 면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씨를 칭찬합니다. 양성면의 한 회사에 다니면서 노부모와 장인 등 5인 가족의 생계를 꾸려 왔던 이씨는 회사가 IMF를 맞아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직장을 잃게 되어 공공근로사업장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공근로사업 보도블록 교체작업에 투입된 이씨는 매일 남보다 1시간 일찍 작업장에 나와 작업도구를 미리 챙겨놓고 동료들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업 시간에는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혼자 잘난 체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는 것입니다. 광명건설의 민사장은 이씨의 성실한 자세를 보고, 자신의 건설회사에 특채로 고용하여 양성면 도로포장 공사 현장에 투입하고 작업반장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성실한 자세로 묵묵히 일했던 이씨는 IMF의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공공근로보다 일당이 몇 배나 오른 직장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일하는 자세가 바로 우리 크리스챤들이 일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22절을 보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고 합니다. 본문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라는 문장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 '눈가림' 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에는 'eye-service' 로 번역하였습니다. 눈 서비스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주인이나 감독이 나타나면 일하는 척하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안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이런 눈가림만 하는 eye-service 를 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보든 안보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임원들은 더더욱 겉으로 하는 척 해서는 안됩니다. 눈 서비스만 해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올해 받은 직분의 귀함을 알고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성실하게 일하시는 복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하듯 일해야 합니다
어느 영국 사람이 토인들을 시켜 물건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 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보면 하고 안보면 일을 안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한 양의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꾸 차질이 생깁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토인들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자신의 눈이라고 설명하면서 떼면 안보이고, 끼면 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토인들은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안경을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없는데도 주인의 눈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토인들이 열심히 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 주일 후에 가보니 또 일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보니 주인의 눈이 자신들을 보지 못하도록 모자로 안경을 가리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일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임원들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하나님께 하듯 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하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씁니다. "이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줄까?" 그리하여 눈치에 익숙하게 되고 체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려고 힘쓰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름 받은 자들은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23절을 보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의 '무슨 일' 이란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서 하는 모든 일을 뜻합니다. 교회 내에서 일만 아니라 사회에서 하는 일까지도 주께서 맡겨주신 일이기에 주의 일인 줄로 믿고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죄짓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고 하나님께 하듯 분명히 일 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상급을 믿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생긴 일입니다. 흑인교회인 성 시온 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에 백인 판사가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판사로서 대법원장에 내정된 올리버입니다. 올리버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 흑인 여종 마르다 포트윈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올리버 판사는 말합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내 아들과 딸들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남아연방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된 것은 물론 판사직도 박탈되었습니다. 시온 교회 목사가 올리버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판사직을 박탈당했을 지라도 하늘의 유업의 상이 더 확실한 것을 믿었습니다.
성도의 섬김은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일한 백성에게는 반드시 약속하신 상급을 주시고 악한 일에 마음을 쓴 사람에게는 그 대가를 치루게 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한 보상이 따릅니다. 그러기에 본문 24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는 일을 하다가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수고가 끝나는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계산하여 주십니다. 계시록 20장 12절을 보면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기록된 책이 나옵니다.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상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행한 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칭찬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선한 행실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다 아시며 그에 따라 상급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 상급은 이 땅의 유업보다도 훨씬 더 귀한 하늘의 유업입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져 버릴 땅의 상급을 보지말고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의 유업을 기대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임원들이 취임하는 주일입니다. 임원들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음을 필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하듯 감당해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의 상급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위대한 상급을 바라보며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 목사 설교 중에서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구강외과 의사로 명성을 떨치는 로버트 에이몬이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세올라 교회의 장로로서 세계 선교를 위하여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에이몬은 학생 시절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기억하고 의사를 그만 두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뒤늦게 입학하여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오랄 로버트 목사입니다. 그는 유명한 부흥 설교자가 되어 오랄 로버츠 대학교의 설립자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늘 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나는 의사를 하든, 목사를 하든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의사로 살았던 과거나 목사로서 살고있는 현재나 저의 신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소명- Calling'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은 구원적 소명과 헌신의 소명이 있습니다. 구원적 소명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이라면, 헌신의 소명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소명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헌신의 소명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부름 받은 몸입니다.
본문은 부름 받은 자들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2절에 '종들아' 로 말씀은 시작합니다. 바울 당시에 로마 제국에는 6천만명의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미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로마 제국에서의 종들은 다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배우고 똑똑한 종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능에 따라 의사로서 활동하는 종들도 있었고, 귀족의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종들도 있었고, 심지어 로마 최고 학문 기관에서 가르치는 박사 종들도 있었습니다. 이 종들은 정복국가에서 끌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종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기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바로 믿어야 합니다. 바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아 나선 이들의 자세는 과연 어떠합니까?
첫째로 성실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 국민일보에 '눈에 띈 성실인생' 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충북 충주시 금릉동에서 광명건설을 경영하고 있는 민광수 사장은 우연히 공공근로사업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공공근로자 가운데 한 청년이 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청년은 남들이 쉬는 틈에도 혼자 보도블록을 짊어져 나르고 바닥을 고르며 묵묵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민사장은 감독관에게 다가가 젊은이의 신상을 물어보았습니다. 이름은 이종선, 당시 32세로 노부모와 장인까지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사장은 면사무소에 들러 구체적으로 이씨의 성품을 수소문했습니다. 면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씨를 칭찬합니다. 양성면의 한 회사에 다니면서 노부모와 장인 등 5인 가족의 생계를 꾸려 왔던 이씨는 회사가 IMF를 맞아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직장을 잃게 되어 공공근로사업장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공근로사업 보도블록 교체작업에 투입된 이씨는 매일 남보다 1시간 일찍 작업장에 나와 작업도구를 미리 챙겨놓고 동료들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업 시간에는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혼자 잘난 체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는 것입니다. 광명건설의 민사장은 이씨의 성실한 자세를 보고, 자신의 건설회사에 특채로 고용하여 양성면 도로포장 공사 현장에 투입하고 작업반장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성실한 자세로 묵묵히 일했던 이씨는 IMF의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공공근로보다 일당이 몇 배나 오른 직장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일하는 자세가 바로 우리 크리스챤들이 일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22절을 보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고 합니다. 본문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라는 문장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 '눈가림' 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에는 'eye-service' 로 번역하였습니다. 눈 서비스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주인이나 감독이 나타나면 일하는 척하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안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이런 눈가림만 하는 eye-service 를 해서는 안됩니다. 누가 보든 안보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임원들은 더더욱 겉으로 하는 척 해서는 안됩니다. 눈 서비스만 해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올해 받은 직분의 귀함을 알고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성실하게 일하시는 복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하듯 일해야 합니다
어느 영국 사람이 토인들을 시켜 물건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 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보면 하고 안보면 일을 안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한 양의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꾸 차질이 생깁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토인들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자신의 눈이라고 설명하면서 떼면 안보이고, 끼면 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토인들은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안경을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없는데도 주인의 눈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토인들이 열심히 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 주일 후에 가보니 또 일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보니 주인의 눈이 자신들을 보지 못하도록 모자로 안경을 가리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일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임원들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하나님께 하듯 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하는 동기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씁니다. "이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줄까?" 그리하여 눈치에 익숙하게 되고 체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려고 힘쓰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름 받은 자들은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23절을 보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의 '무슨 일' 이란 우리의 삶의 영역 속에서 하는 모든 일을 뜻합니다. 교회 내에서 일만 아니라 사회에서 하는 일까지도 주께서 맡겨주신 일이기에 주의 일인 줄로 믿고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죄짓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고 하나님께 하듯 분명히 일 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상급을 믿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생긴 일입니다. 흑인교회인 성 시온 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에 백인 판사가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판사로서 대법원장에 내정된 올리버입니다. 올리버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 흑인 여종 마르다 포트윈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올리버 판사는 말합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내 아들과 딸들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남아연방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된 것은 물론 판사직도 박탈되었습니다. 시온 교회 목사가 올리버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판사직을 박탈당했을 지라도 하늘의 유업의 상이 더 확실한 것을 믿었습니다.
성도의 섬김은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일한 백성에게는 반드시 약속하신 상급을 주시고 악한 일에 마음을 쓴 사람에게는 그 대가를 치루게 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한 보상이 따릅니다. 그러기에 본문 24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는 일을 하다가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수고가 끝나는 날,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계산하여 주십니다. 계시록 20장 12절을 보면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기록된 책이 나옵니다.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상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행한 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칭찬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선한 행실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다 아시며 그에 따라 상급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 상급은 이 땅의 유업보다도 훨씬 더 귀한 하늘의 유업입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져 버릴 땅의 상급을 보지말고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의 유업을 기대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임원들이 취임하는 주일입니다. 임원들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음을 필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하듯 감당해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의 상급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위대한 상급을 바라보며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