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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6:11-13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열왕기상 6장은 그 전체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사실과 그 성전의 규모, 구조, 내부 장식 등이 어떠한지를 상세히 전하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첫 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왕상 6:1) 하고, 그 끝에서는 “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 6:37-38) 합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 건축에 열중하고 있는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12-13절을 다시 봅니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 거하시는 곳은 돌을 쌓고 백향목으로 덮고 순금으로 입힌 성전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성전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가운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일도 아니고 또 필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시며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에 열중하고 있던 솔로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솔로몬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세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기뻐하실 줄로, 하나님을 향해 할 일을 다 한 줄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자동적으로 확보하게 될 줄로 착각하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확보하는 것이고 따라서 전쟁도 이기고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던 과거의 착각과 실패를 이스라엘이 반복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지 물건이나 건물 속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다시 한 번 깨우치시기 위하여 성전건축이 다 끝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수 있으며, 성전이 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떠나실 수 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던 언약궤와 예루살렘 성전이었지만, 언약궤는 한 때 이방족속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지금은 아예 없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외국군대에 의해 여러 차례 파괴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그것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찬식을 거행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떡과 포도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얻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인해서만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이지 성찬식에 참여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없이 받아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그저 소량의 떡과 포도주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아무 상관이 없듯이 참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이 없이 세운 교회건물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따라서 별 의미도 쓸모도 없는 건축구조물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에게 임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할 때에(왕상8:22) 한 말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성전의 기능은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적인 이해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어서 한 말들 또한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자기가 지은 성전에 들어오셔서 살아주시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전에 와서 또는 그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왕상8:29-30을 봅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후에도 계속된 솔로몬의 긴 기도 속에서 쉬지 않고 반복된 말은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라는 말이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으로 간구한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마친 솔로몬이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왕상8:54-55)한 말도 우리가 유의할만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왕상8:57-61). 이 축복의 말은 사실상 하나님으로부터 솔로몬에게 임한 말씀을 솔로몬이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요지는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고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아니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 참 하나님은 없음”을 분명히 알고 마음을 온전히 주께로 향하여 그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며 행하고 그의 모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솔로몬이 내린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왕상9:3-9)
하나님을 위한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관련된 이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은 성전의 존재나 그 화려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바로 믿고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에 우리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교회건물을 지었습니까? 큰 교회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기능적인 교회건물을 짓느라고 얼마나 경쟁을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지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실 믿음과 순종의 삶이 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서있는 교회건물들이 하나님께서 던져버리실 것들은 아닌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지는 않을지, 버림받은 우리를 향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나라와 이 교회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며 놀라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게 되지는 않을지를 냉철히 살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대각성과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100년 전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갈망하는 우리가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바른 믿음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지나간 모든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새 삶을 살게 하여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힘써야 할 진정한 성전건축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출처/이수영 목사 설교 중에서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열왕기상 6장은 그 전체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사실과 그 성전의 규모, 구조, 내부 장식 등이 어떠한지를 상세히 전하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첫 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왕상 6:1) 하고, 그 끝에서는 “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왕상 6:37-38) 합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 건축에 열중하고 있는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12-13절을 다시 봅니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 거하시는 곳은 돌을 쌓고 백향목으로 덮고 순금으로 입힌 성전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성전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가운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일도 아니고 또 필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시며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에 열중하고 있던 솔로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솔로몬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세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기뻐하실 줄로, 하나님을 향해 할 일을 다 한 줄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자동적으로 확보하게 될 줄로 착각하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확보하는 것이고 따라서 전쟁도 이기고 만사가 형통할 줄 알았던 과거의 착각과 실패를 이스라엘이 반복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지 물건이나 건물 속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다시 한 번 깨우치시기 위하여 성전건축이 다 끝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수 있으며, 성전이 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떠나실 수 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던 언약궤와 예루살렘 성전이었지만, 언약궤는 한 때 이방족속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지금은 아예 없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외국군대에 의해 여러 차례 파괴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그것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찬식을 거행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떡과 포도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얻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인해서만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이지 성찬식에 참여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없이 받아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그저 소량의 떡과 포도주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아무 상관이 없듯이 참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이 없이 세운 교회건물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따라서 별 의미도 쓸모도 없는 건축구조물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에게 임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할 때에(왕상8:22) 한 말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성전의 기능은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적인 이해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어서 한 말들 또한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자기가 지은 성전에 들어오셔서 살아주시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전에 와서 또는 그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왕상8:29-30을 봅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후에도 계속된 솔로몬의 긴 기도 속에서 쉬지 않고 반복된 말은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라는 말이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으로 간구한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마친 솔로몬이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왕상8:54-55)한 말도 우리가 유의할만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왕상8:57-61). 이 축복의 말은 사실상 하나님으로부터 솔로몬에게 임한 말씀을 솔로몬이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요지는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고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아니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 참 하나님은 없음”을 분명히 알고 마음을 온전히 주께로 향하여 그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며 행하고 그의 모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솔로몬이 내린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왕상9:3-9)
하나님을 위한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관련된 이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은 성전의 존재나 그 화려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바로 믿고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에 우리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교회건물을 지었습니까? 큰 교회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기능적인 교회건물을 짓느라고 얼마나 경쟁을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지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실 믿음과 순종의 삶이 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서있는 교회건물들이 하나님께서 던져버리실 것들은 아닌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지는 않을지, 버림받은 우리를 향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나라와 이 교회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며 놀라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게 되지는 않을지를 냉철히 살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에 대각성과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100년 전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갈망하는 우리가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바른 믿음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지나간 모든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새 삶을 살게 하여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힘써야 할 진정한 성전건축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출처/이수영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