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6
  

우리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게 할 새해 첫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흑암과 혼돈뿐인 세상에 빛이 있게 하셨습니다(창 1:3). 이것은 오늘날 죄와 죽음으로 얼룩진 세상에 의와 진리와 생명의 비젼을 가져다 주는 교회운동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 하는 기독교의 신앙은 인류의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지평을 열어갑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현재에 안주하는 자가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개척자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 말씀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3절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선진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난 신앙세계의 위대함을 실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올해도 지구촌을 긴장시킬 어두움의 징조들이 예상되고 있지만 우리는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같이 미래를 지향하는 승리자의 길을 갈 것입니다.


Ⅰ. 목적 있는 삶을 뜻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세상에서도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빌 3:12). 본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어 그가 나온 바 고향을 찾았다면 몇 번이나 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의 본향을 목적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히 11:15-16).

(1)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궤도를 운행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생을 영위하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권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고 지명하여 불러내어 그의 소유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인생을 그리스도에게 헌신한 바울은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빌 1:20-21). 로마서 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의 신앙을 이상으로 하고 삶의 모토(motto)로 하여 가장 건전하고 올바른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2) 계시의존(啓示依存)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에 투철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합니다. 스스로 어린아이처럼 무지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마 11:25).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엡 1:17-19).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목적으로 광야여행을 할 때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오직 불기둥 구름기둥의 계시에 의존하여 나아가므로써 목적지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계시에 따라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Ⅱ. 신비로운 믿음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구약시대 하박국 선지는 세상에 진리가 혼미해지고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의 횡포가 극심한 것을 보면서도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합 2:4).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알 만큼만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 바다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행사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7:20).
본문 말씀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여 믿음의 신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은 마음의 눈입니다(엡 1:17). 믿음의 신비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고 그것을 붙잡는 삶입니다.

(1)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봅니다.

본문 말씀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강론하시면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8).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거나 감각적인 기능으로는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신령한 눈이 열려지고 성령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봅니다.

본문 말씀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일러 줍니다(창 1:1-3).
2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대로 보이는 세계와 만상이 사실상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좌우된 다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뿐만 아니라 그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시며 그가 의도하시는 선한 목적대로 섭리하십니다. 자연을 통치하시는 일부터 인류 역사의 흥망과 개인의 생사화복까지 좌우하시며 결국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의를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행 17:25-27).
믿음의 눈을 가진 다윗은 하늘과 땅과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솜씨를 찬양하였습니다. 그 속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하나님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미친 다고 하였습니다(시 19:1-2).



Ⅲ. 그리스도인의 미래지향적인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며 황홀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삶을 시도합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자라나던 고향을 생각하면서 소년시절의 낭만과 안정된 생활의 기반이 되었던 곳을 그리워하였겠지만 그 보다도 더 나은 본향을 생각하며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에 도전하였다고 말했습니다(히 11:15-16). 미래를 열어가려는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지난날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린 사람입니다. 그 이유를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빌 3:8). 그리고 그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빌 3:13-14).

(1) 환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선지자적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선지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보는 자(先見者)요 그것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열어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년 선지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네가 무엇을 보는냐”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에 눈이 트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끓는 가마가 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렘 1:11-13). 그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게 될 징벌과 축복의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니엘도 포로지 바벨론에서 인류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단 2:31-45). 요셉은 소년시절 꿈을 통하여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고, 또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창 37:9). 환상이 있는 사람은 그 삶을 통하여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이루어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그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뒷받침해 주시고 그 축복의 과실을 모든 사람이 같이 나누어 가지에 하십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 앞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간증하였습니다(창 50:20).

(2) 승리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처럼 확신하며 살았던 신앙적 인물들의 사적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역사입니다. 5절에는 에녹의 사적을 특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갔습니다. 그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5:22에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에녹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생활가운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승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말씀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상급주시는 것을 믿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하나님으로부터 상주심의 능력을 공급받는 사람은 승리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는 사람은 무슨 일에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 있게 행동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합력 하여 선이 되게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롬 8:28).
사도 바울은 비천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배가 부르든지, 배가 고프든지, 어떤 경우에도 거기 대처하는 비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빌 4:11-13).

출처/손상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