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장 10~12절)

갈렙은 생각할수록 위대한 믿음의 용사입니다.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오직 이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전에 먼저 정탐꾼 12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2명 중의 10명은 부정적인 말로 보고를 했습니다. “그 성벽은 철옹성벽 같고 거기 사는 아낙 자손들은 어찌나 기골이 장대한 거인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비하면 메뚜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다 죽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못 들어갑니다” 하고 낙담시키는 말을 할 때 온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3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호소하기를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할 것이니,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그들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나 그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결과,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던가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40년을 맴돌다가 믿음의 말, 용기를 주는 말, 긍정적인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땅을 분배할 때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지도 않고 요단 동편 땅을 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지파들도 넓고 평평한 땅을 차지하고 싶어 했을 텐데 믿음의 용사 갈렙은 험하고 높은 땅,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1.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장 12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갈렙은 말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산지”는 높고 험악한 땅(hill, country)입니다. 게다가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사는 땅입니다. 또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기 때문에 싸워서 점령하기도 어려운 땅입니다.

게다가 갈렙은 나이가 85세입니다. 여호수아 14장 10~12절에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고 험악한 땅, 거인 아낙 자손들이 사는 땅, 견고한 성읍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웬만하면 자기의 나이를 보나 공로를 보나 또 지도자 여호수아와 가까운 친구의 체면을 보나 평평하고 넓은 땅을 달라고 했을 텐데 갈렙은 85세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건강하고 튼튼하여 전투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그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라고 회피하지 않고 자원하여 어렵고 힘든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거북이도 전진하려면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을 무서워하지 말고 뚫고 나아가는 도전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답이 있는 법입니다. 편안하고 안일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은 큰 발전도, 큰 성공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갈렙이 85세의 늙은 나이에 건강하고 싸울 능력이 있으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높고 험한 산지요, 아낙 자손들이 살고 견고한 성읍일지라도 싸워 쟁취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아름답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비 뽑아 얻은 땅을 기업(基業)이라고 하는데 회사, 사업을 의미하는 企業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된다는 뜻의 “터” 기(其)자, 기업(基業)입니다. 영어로는 “land” 혹은 “lot”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비 뽑아서 받은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基業)으로 생각해서 바꿔달라든지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산악지대이든지, 평지이든지, 넓든지 좁든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아름답다고 하고 만족하며 감사했습니다. 불평하거나 투덜대지 않았습니다. 시편 16편 6절에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좋고 아름답다고 했지, 불평하는 법이 없고 바꿔달라는 법도 없습니다. 시편 136편 21절에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산악지대든지 좁고 험한 땅이든지 좋고 아름답다고 믿고 감사했습니다. 시편 100편 5절에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을 처음부터 나중까지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당장 손해나는 것 같고 불행해보여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섭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반응해야(react) 합니다.

  정근모 장로님은 천재 중의 천재로 20대에 미국 명문대학의 교수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baby professor라고 불렀고 핵 과학자로는 세계가 알아주는 과학자였고 한국과학기술처 장관까지 지낸 분입니다. 그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존재도 부인하고 교만할 대로 교만했었는데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신장병으로 앓던 중에 정근모 박사님이 자기 신장까지 떼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잘 낫지 않던 중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는 중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는 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아들한테 콩팥까지 떼어주며 이 고생을 하는데 뭘 감사합니까?”라고 하고 나서 그는 아들 때문에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아들 위해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닫고 울며 회개하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들 때문에 결국 은혜 받고 한국 기독교의 큰 평신도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쓰든지 달든지, 행복해 보이든 불행해 보이든, 모두가 합동하여 유익한 것임을 알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아름답고 좋다고 믿어야 합니다.

  전에 저의 모친은 처녀 때에 온 동네와 교회에서 칭찬 듣는 규수였다고 합니다. 살림 잘하고 총명하고 예의 바르고 손재주가 뛰어난 규수로 온 동네,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잣집, 훌륭한 가문에서 청혼이 들어왔지만 저의 모친은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나는 거지라도 좋으니 예수님 믿는 사람한테 시집간다”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한 장로님 댁 아들인 저의 부친에게서 청혼이 들어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몰래 담배도 피우지요, 술도 마시지요, 16살 난 신랑이라서 장난이 얼마나 심한지 하얀색 한복을 잘 빨아 대려 입히면 그 날로 흙탕구리를 해가지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모이면 독립운동 하러 중국으로 간다, 일본으로 간다, 수군수군하더니 어느 날 숨겨 놓은 돈을 가지고 도망가더랍니다. 만주로 독립운동 한다고 집을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두 달도 아니고 3년 동안 편지 한 장 없이 소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집안 가문에서,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어서 재혼하라고 하면서 자꾸 중매가 들어오더랍니다.

저의 모친은 “나는 전도사 일 보면서 혼자 살지 재혼은 하지 않는다”라고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주위에서는 성실치 못한 신랑 믿고 살지 말고 어서 재혼하라고 빗발치듯이 권면했지만 모친은 하나님이 제 운명을 그렇게 지어준 것이니까 절대로 재혼 안 한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3년 만인 어느 날 남편이 찾아 들어왔더랍니다.

그 후에도 수십 번 이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지만 참고 살면서 7남매를 키워 우리 4형제가  다 목사가 되었고 사위들도 다 목사, 장로를 보았고, 손자 4형제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얻은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아름답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좋은 남편이든 나쁜 남편이든, 좋은 아내든 나쁜 아내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으로 믿고 참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속 썩히는 자식이든 장애인 자식이든 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계셔서 나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믿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비 뽑아 얻은 땅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으로 믿고 감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시편 16편 6절에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땅이 험악한 산지든지 기름진 땅이든지 평지든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다 아름답고 좋다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 21절에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고, 118편 24절에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날은 고통이 오든 기쁨이 오든 여호와가 주신 날은 좋은 날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부목사 생활할 때나 망우리 금란교회에 처음 왔을 때나 우리 생활도 벅차고 어려운데 동생들은 와서 돈 내놓으라 하며 밥상 둘러엎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친구들과 밤에 자고 나간 다음에 보면 방에 맥주병, 소주병, 담뱃재가 가득했습니다. 돈 달라고 할 때 안 주면 우리 어린 딸아이를 거꾸로 들고 마당에 집어던진다고 하고 재래식 변소에 집어넣는다고 위협할 때 우리 부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뭐 돈이 있어야 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야속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이 자식들을 낳기를 했습니까? 내가 맏아들입니까? 왜 이런 십자가를 주십니까?” 하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저의 가정에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동생들 때문에 속 썩고 고생을 했지만 저의 자식들 중에는 그런 속 썩히는 자식이 하나도 없고 아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여 금란교회 후임자가 되고 온 교인들과 하나님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한 것뿐입니다. 아들이 해병대까지 갔다 왔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술 냄새 피우는 것을 본 일이 없고 더욱이 딸들이 다 착하게 자라서 좋은 신랑 만나 목사 사모들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미리 십자가를 져두기를 잘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쓰든 달든 다 아름답고 좋은 것이므로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잠깐 후에 영원한 행복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것 아닙니까? 잠깐 동안 행복해야 얼마나 행복하고, 불행해야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그날그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 118편 24절에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금년의 운수를 알아볼 필요도 없고 그날의 길흉을 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 하나님이 정해주신 날은 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Robert Schuller 목사님이 1973년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그의 13살 난 귀여운 딸이 교통사고로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가면서 병원에 들어서서 딸을 어떻게 대할까 생각했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통곡하고 울게  될 줄 알았는데 딸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 귀여운 내 딸” 하고 웃으며 대했는데 딸도 밝게 웃으면서 “아빠, 할렐루야!” 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슐러 목사님은 일어나는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negatively) 반응하느냐 긍정적으로(positively)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부정적으로 반응할 때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다리는 잃었으나 그 사건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는 없었다”, “세상에 그 어떤 일도 당신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주신 기업은 모두 아름답고 선한 것이며, 여호와의 정하신 날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며 선하고 아름다운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픔보다 더 큰 분입니다. 2007년도 가 황금돼지의 해라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해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