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믿음  (창6:8-22)


   역사의 기록은 무엇을 중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전개와 초점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세계역사는 ‘연대’가 중심입니다. 인류의 최초부터 지금까지 흘러가는 과정을 연대를 중심으로 기록하여 역사성을 더 명확하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나 개인의 역사에는 ‘사건’이 중심인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시간에 나타난 내용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여 후대에 알려주려는 것이 많습니다. 성경도 물론 역사의 기록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꾸며진 신화나 소설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연대나 사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물론 연대를 중요하게 다루고, 그 시대에 핵심적인 사건을 말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어떤 역사의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적어도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의 믿음 있는 모습, 행동, 삶을 보여주고, 믿음 없는 사람의 삶을 통해 그들의 결과가 얼마나 허망한 가를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사람이고, 특히 믿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나도 그들처럼 좀더 크고 놀라운 믿음으로 한해를 살고 남은 생애를 살기를 다짐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지금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 특히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벨과 에녹에 이어 ‘노아’입니다. 노아는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첫째, 인정받은 믿음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은 곧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계속되는 말씀에 성경은 노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두는 다 인정받은 것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처럼 노아는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고, 또 성경의 인정, 사람의 인정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성경과 역사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 귀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한 평생을 살고, 한 시대를 살면서 가장 귀하게 추구할 것이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인 것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통과할 때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네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기 ‘이제야’라는 말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궁극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의 근원으로서, 축복의 통로로서, 자기와 가정과 당대와 후대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윗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큰 영예를 얻고, 또 많은 고난을 통과한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설교의 내용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이것이 다윗에 대한 후대의 평가요, 성경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당대와 후대의 사람들과 역사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쓰임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니엘도, 이사야도, 그리고 베드로도, 바울도 모두가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은 사람으로서 당대와 후대에 축복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도 이 시대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무엇보다도 내 믿음이 인정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흔들리고 요동하여, 불안함을 주고 있습니까? 인정받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적당히 믿으십니까?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믿음에 있어서 노아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어서,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통로들이 되시고,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2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7장 5절에서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것을 준행한 사람, 곧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냥 순종이 아니라 ‘다’ 준행했다고 말합니다. 부분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은 모두 다 순종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노아의 기록에서 이것을 중요하게 강조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노아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귀한 믿음입니다.

   분명 순종의 길이 복 받은 길이고, 인정받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결코 그리 쉽지 않는 길입니다. 그것은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무슨 징조가 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홍수의 기미는 털끝만큼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일년이년도 아니고 120년을 기다리며 배를 만들어야 했으니 얼마나 고독한 싸움이겠습니까? 노아도 인간인데, 매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왜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의심과 포기와 좌절의 구절이 없습니다. 노아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오직 순종으로 잘 극복하며 승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는 그렇다고 치고, 가족들과 함께 배를 만드는 순종의 길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노아에게만 임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가족을 설득하여 같이 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성격도 신앙도 삶도 다릅니다. 당시에 아버지의 명령이라고 120년 동안 한결같이 배를 만드는 일에 자녀들이나 가족이 함께 따라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걱정과 낙심과 한숨의 세월을 많이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느 곳에서도 가족의 불만이나 염려의 소리가 없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순종이지만 노아와 가족은 잘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변사람들과 이웃들의 비난과 조롱은 더욱 참기 힘든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도 믿기 힘든 세상에 120년 뒤에 임할 홍수를 걱정하며 배를 만드는 노아와 가족들에 대한 이웃의 시선이 결코 곱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배를 바다에 만들지 않고 산꼭대기에 만드는 것을 보면서 아마 미쳤다고 비아냥거리고, 수군수근 했을 것입니다. 당시 노아는 정말 외로운 길, 좁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고,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길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노력과 희생과 수고가 따르는 길이고, 때론 비난과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분명 순종의 길은 세상에서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길, 좁은 길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잘되는 길이고, 인정받는 길이며, 축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십니다.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라고 강력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우리가 가질 믿음의 자세는 오직 순종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은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을 신앙과 불신앙, 순종과 불순종으로 나눕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길을 제시합니다. 나는 어느 쪽입니까? 나는 어느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신명기 28장 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노아처럼, 주님처럼, 우리 모두 때론 힘들고 어렵지만, 외롭고 좁은 길이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여 큰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믿음입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이것을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노아 시대의 상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괘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괘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노아는 그의 시대에 죄악이 충만하여 점점 멸망과 심판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노아는 시대를 보는 눈, 역사의식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런 때에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가 패역한 것을 보면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짓되, 120년 동안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믿음의 눈으로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명령과 120년의 기간이 자기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기회로 알았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기회로 알아서 열심히 순종하며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4-5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보면 노아를 단순히 소개하지 않고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들었을 때 방주만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의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기간이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기회, 전도하는 기회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배도 만들면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알리고, 심판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런 노아에 비해 당시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한마디로 회개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기회를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패역한 사람, 나라, 시대라 할지라도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장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을 참지 않고 그때마다 심판하신다면 우리 중에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번 참으시고, 더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기다리시다가 그냥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기회를 줍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 바로 그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입니까? 120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120년 동안 배를 만드셨을까요? 노아가 게을러서 오래 걸린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려면 120일이라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1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120년이 보통 세월입니까? 한 사람이 평생 살고도 남는 기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충분한 기회를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 뒤 곧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주일 후’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120년이 지난 뒤, 마지막으로 일주일의 기간을 주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돌아오면 산다는 것입니다. 7일은 완전한 수입니다. 이 기간이 짧지만 그래도 돌아오면 된다는 완벽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셨는데 인간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노아 시대를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그토록 오랜 세월, 완전한 기회의 시간을 사랑으로 주었건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노아와 당대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과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입니다. 기회를 잡느냐, 아니면 놓치느냐 하는 것이 믿음에 있어서 가장 크고 중요한 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기회를 주시며 나에게 다가오십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모든 것은 다 기회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도, 회개도, 용서도, 사랑도, 봉사도, 심지어는 건축도, 건축을 위한 헌신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믿음이 귀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노아의 믿음은 인정받는 믿음이고, 순종하는 믿음이며,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후회 없는 삶을 향하여 한 주간도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서해원 목사 설교 중에서